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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원이 된 이유
누군가에게 등 뒤에서 기습을 당했다. 사공희는 이런 상황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먼저 내가 상대의 기습을 눈치챘는지 확인할 것.
'내가 상대의 기습을 알면서 일부러 받아줬는지, 아니면 진짜 모르고 당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자면 괜찮고, 후자면 위험하다.
사공희는 상대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을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강자다. 초절정, 아니 그 이상의 단계일 것이다.
'그런데 위험할 리가 없지.'
하지만 누가 무림맹의 한가운데, 무림맹주가 가장 신경 쓰는 장원으로 가는 길에서 여인의 뒤를 점하겠는가. 이 세상에 그런 존재는 한 명뿐이다.
익숙한 기.
'태극신공의 냄새가 난다.'
남자의 몸에는 태극혜검을 운용하기 위한 태극신공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태극신공이 비급의 형태로 남아 무당파의 장로들에게 퍼졌다고 한들, 사공희 본인을 한참 뛰어넘는 내공을 가진 존재는 단 한 명뿐이다.
더군다나 일부러 자신의 엉덩이 쪽에 뜨겁고 둔탁한 물건을 비비고 있을 남자라면, 이 세상에는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섞여 있는 다른 사람의 살냄새...?
콰득.
"아야, 야야!"
익숙한 청년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사공희는 입에 깨문 청년의 손가락을 놓지 않고 입속으로 집어넣어 잘근잘근 씹었다.
"놔, 놔! 내가 장난이 심했다!"
다치지는 않게. 하지만 자신의 화는 전해지게. 뒤에서 허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건드리는 신호에 사공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적이었으면 바로 칼로 베어버렸을 거예요."
"적이 아닌 거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래?"
"그야 상공의 몸에서 다른 여인의 냄새가 나는걸요."
"...내가 견희라고 가끔 얘기하기는 했지만 그건 좀 무서운데."
사공희는 몸을 돌렸다. 자신의 잇자국이 강하게 나 있는 중지를 만지작거리던 청년은 불과 반년 조금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키가 훤칠하게 자라있었다.
"키가 더 크셨네요."
발돋움을 조금 해도 시선이 닿지 않아,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왠지 모르게 대견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보지 못한 곳에서 훌쩍 자라버린 것에 대해 괜히 섭섭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저랑 거의 비슷했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내려다보시네요."
"그만큼 자랐으니까. 너도 많이 성장했구나?"
청년은 두 손을 아래로 뻗어 사공희의 가슴을 떠받쳤다.
"내공이 많이 늘었어."
"내공만 늘어난 줄 아셔요?"
"중단전도 늘었군."
"상공만 생각하면서 키웠답니다."
그 누구도 만지는 것은커녕 감히 쳐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던 사공희의 가슴을, 청년은 마치 제 장난감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무게를 재듯 아래를 받쳐 들었다.
"태극은 음양, 천지의 조화. 하단전과 상단전의 기가 중단전에 모이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가? 떠나기 전보다 엄청나게 늘었군."
"당연하죠. 어느 분께서 제 안에 남겨두신 내공이 다 중단전으로 가는걸요."
"하하하, 그거참. 누군지 몰라도 인류를 위해 참으로 잘하였도다."
청년은 사공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사공희는 청년이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가 만족할 때까지 천천히 호흡하며 가만히 있었다.
"후아, 살 것 같다.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오르면 너는 본격적으로 상단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중단전에 깃든 내공도 어느 정도 안정화 될 것이지."
가슴에서 얼굴을 떼어낸 청년은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오랜만이다, 희야."
"......정말, 오랜만이네요."
사공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울컥한 마음을 참기 위해 청년의 품에 안겼다. 가슴 때문에 얼굴을 묻기 힘들어 고개를 숙여 이마를 묻었지만, 그래도 가슴이 뭉개지는 걸 마다치 않고 있는 힘껏 청년을 안았다.
하복부에 닿는 뜨거운 기둥? 오히려 바라던 바다. 사공희는 더욱 몸을 밀착하며 청년의 온기를 만끽했다.
"보고 싶었어요, 상공."
"나도다, 견희야."
청년의 품은 이전보다 훨씬 더 탄탄해져 있었다. 반년 만에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이미 사공희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순간부터 부풀어 올랐던 남근은 열기만 느껴도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사공희가 강해진 것처럼, 청년 또한 더욱 강해져 있었다.
"정말...따라잡으려고 하는데 벌써 한참 더 멀리 가 계시는 군요."
"아무렴 내가 쉽게 따라잡힐 사람은 아니지. ...그런데 견희야. 슬슬 놓아주지 않으련?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
"싫어요."
사공희는 고개를 들고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사공희의 거절에 청년은 눈을 깜빡거리며 놀랐다.
"내가 잘 못 들었나...? 크흠. 그러니까-"
"싫어요. 여자잖아요. 상공이 남자 소개해 줄 리가 없으니까, 십 할 여자잖아요."
"그, 견희야. 그러니까...."
"벌써 뒤통수가 따끔해서 어질어질한데, 설마 사이좋게 지내라는 건 아니죠?"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인데."
또각, 또각.
사공희의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미 한 번 들어본 목소리지만, 서로 좋은 상대가 될 거로 생각하며 좋게좋게 떠난 인연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 자리에서 듣고 있자니 속에 천불이 났다.
"......후후, 후."
사공희는 청년의 품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렸다. 어느새 사공희의 맞은 편에는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흑발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름답다.
반 년 가량 만에 다시 만나는 상대의 모습은 이전과 훨씬 달라져 있었다. 자신보다 몇 살은 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훤칠한 키와 쭉 뻗은 다리, 그리고 항상 자신감 넘치는 아름다운 얼굴은 완연한 여인이었다.
"오랜만이네요, 흑도제일화."
"그러게. 이런 식으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한 때는 호북성 비무장에서 손을 맞잡고 봉황의 자리를 포기했던 두 절정 고수가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둘의 사이좋은 만남을 학수고대하던 청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와...나 신창이랑 붙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청년의 헛소리는 두 여인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둘은 한걸음 걸을 때마다 상대의 걸음걸이, 옷차림, 피부 상태, 보법, 무공, 그야말로 모든 것을 관찰했다.
저벅, 저벅, 저벅.
둘은 서로 앞으로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는 게 자존심에서 지고 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불과 1장 거리까지 가까워지며 순간 걸음을 멈췄다.
"큭...!"
"칫...!"
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1장 거리까지 좁아지고 나서야 둘은 자신이 상대보다 압도적으로 밀리는 곳을 알게 되었다.
태극화는 자신보다 소천마가 하늘에 더 가까이 닿아있음을, 더 높은 경지에 있음을 보고 그녀를 올려다봐야 함에 속이 들끓었다.
소천마는 자신보다 태극화가 훨씬 더 많은 내공을 가지고 있음을,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는 하해와도 같은 중후한 내공에 속이 들끓었다.
서로가 서로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키가 크시네요. 다리도 예쁘시고."
"가슴 더럽게 크네. 만나자마자 얼굴부터 박고, 아주 어머니신 줄 알았어."
"상공이 가장 좋아하는 게 모성이랍니다. 저런, 당신의 모성은...."
"나는 저 녀석을 마음으로 품었으니까 괜찮아."
...두 여자는 서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사공희의 도포 흉부 부분이 이시아의 흉골 부분에 닿았고, 이시아는 고개를 살짝 꺾어 사공희를 내려다봤다. 둘은 서로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흑도제일화, 지난번 비무는 아쉽게 끝났었죠?"
"그러게. 태극화가 더 강한지, 아니면 내가 더 강한지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어?"
싸아아---
다리 아래로 흐르던 호수의 수면에 파문이 일었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물의 움직임은 점점 거칠고 흉악해지기 시작했다.
"승부는 그걸로 보도록 하죠."
"너랑 나랑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 동감이야."
일촉즉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살초를 날릴 수 있는 거리까지 가까워진 둘은 허리 근처에 놓은 손을 맞잡았다.
"이기는 건 접니다."
"흥, 당연히 내가 이기지."
"어머, 일단 여기는 제가 이긴 것 같은데요?"
"서로의 심장 박동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거 모르니?"
"그만."
고고고고
물결의 파문이 가라앉았다. 사납게 몰아치려던 두 기는 더 큰 기에 억눌려 제압되었다.
"싸우지 말고 음양합일해, 음양합일."
"힉?!"
"꺅...!"
둘은 어느새 다가온 청년의 손길에 비명을 질렀다.
서로 마주 본 두 명의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청년은 못된 손을 두 여인의 엉덩이에 각각 올리며 고뇌에 빠졌다. 눈을 감고 손의 감촉을 만끽하는 그의 표정은 영락없는 변태였다.
"음.... 여기는 막상막하로구나."
"뭐? 그럴 리가! 내 엉덩이가 얘한테 밀린다고?!"
화를 낼 방향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사공희는 소공녀의 손을 자신의 엉덩이 쪽에 놓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풉. 지금 상공의 손을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사공희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청년을 향해 입술을 뻐끔거렸다. 소공녀를 향한 도발도 빼먹지 않았다.
"상공, 오랜만에 만났는데 입맞춤을 해주...."
사공희는 진심으로 울컥했다. 발돋움을 해도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을 키가 되어버렸으나, 정작 상대는 시선이 거의 맞닿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을 맞출 수도 있는 체구였다.
쪽.
소공녀는 고개를 앞으로 살짝 뻗은 것만으로 청년의 볼에 입술을 붙였다. 사공희는 자신도 모르게 자보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흥, 어른들끼리 있는데 애가 끼는 거 아니다."
"이, 이...!!"
사공희는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상대의 행동에 진심으로 분개했다. 손가락의 방향도 앞으로 미는 게 아니라 일부러 수직으로 내리꽂는 듯 아래로 누르고 있었다.
"흥!"
사공희는 앞으로 손을 뻗어 소공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둘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소공녀는 자신의 흉판 위에서 봉긋하게 눌리는 가슴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선전포고.
중단전 차이를 과시하는 사공희의 행위에 소공녀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눈웃음을 쳤다.
"싸우자는 거지?"
"어차피 자웅을 겨뤄야 할 사이 아니에요? 흥."
"뭘 자웅까지 겨루고 그러나."
청년은 사공희와 소공녀, 두 여인의 허리를 동시에 안으며 둘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어차피 겨룰 거라면 내 자(子)를 두고 겨뤄. 알겠어?"
넉살 좋게 웃는 청년의 얼굴에 사공희는 소공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진심으로 짜증 나고 화가 났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억울하지만, 동맹을 맺기도 싫지만, 서로 무공을 절차탁마하는 호적수로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있어도 남근을 두고 공유하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헤벌쭉 웃고 있는 청년과의 밤을 생각하면 꼭 동지가 필요했다.
"...나는 이시아야. 사공희, 혼자서 이길 수 있어?"
"아뇨. 유감스럽게도."
"그래? 그러면...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네. ...아주, 몹시 화가 나지만요."
두근, 두근. 두 여인은 서로 맞닿은 가슴-한쪽이 일방적으로 닿아있지만-에서 느껴지는 고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백도와 흑도, 서로 걷는 길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하늘 아래에 있음을 깨닫고 말았다.
"먼저 하늘에 닿는 사람이 임자예요."
"그래. 그때까지는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정과 마.
"상공, 각오하셔요."
"너, 죽었어 진짜."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두 무인을 한 명의 공적(共敵)을 상대로 동맹을 맺었다.
* * *
그 시각, 야심한 밤.
홀로 숙소를 잡고 방안에서 명상하고 있던 유설라는 창문 밖에서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켰다.
끼룩.
검고 작은 뱁새가 창틀에 내려앉아 창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설라는 문을 열어 밤늦게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야, 자기."
"역겨운 소리 집어치워라."
뱁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낄낄 웃었다. 뱁새의 목에서는 분명한 사람의 소리가 나왔다.
"왜 그래? 설마 내가 새라서 그래? 새 아닌 거 아는 사람은 천마님이랑 자기밖에 없는 거 알잖아."
"꼬리를 칠 거면 남자한테 해라. 역겹게 그러지 말고."
"힝, 너무해.... 하지만 그렇게 튕기는 자기도 매력 있어!"
"죽일까...."
한기를 일으키던 유설라는 뱁새의 다리에 묶인 편지를 거칠게 뜯어냈다.
"아야, 아프잖아!"
"환술로 조종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환술 아니거든?!"
"이거나 그거나."
유설라는 편지의 내용을 다 읽은 뒤 뱁새에게 건넸다. 뱁새는 종이를 부리로 집어삼키며 꿀떡 삼켰다.
"너...!"
"히힛, 나는 전했다?"
뱁새의 눈에 반짝이던 붉은 안광이 사라졌다. 눈동자의 색깔이 원래대로 돌아간 뱁새는 마른기침을 캑캑 거리다 픽 쓰러졌다.
"......."
유설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뱁새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다음 생에는 저런 미친년의 수하로 태어나지 말거라."
쩌적.
잠시 뒤.
객잔 근처에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얼음 무덤이 솟아나 있었다.
[작품후기]
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