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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원이 된 이유
"사질, 혹시 목이 마르진 않는가?"
"사질, 혹시 몸이 불편하진 않은가?"
"사질, 혹시 맞은 편에 앉은 현타가 불편하지는 않은가?"
"이놈들이."
현타도사, 사정후는 사제들의 주책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맞은 편에 앉은 면사포의 여인은 그저 웃기만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피면구에 면사포까지 이중으로 쓰고 있었지만, 이미 일행은 모두 그녀의 맨 얼굴을 확인한 지 오래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숙 여러분."
"크으...! 사질이 우리를 사숙으로 불러줬어!"
"이제 등선해도 여한이 없다.... 아아, 현기 사형, 당신이 간 길을 따라갑니다...."
"태극화! 태극화! 태극화!"
"미친놈들이 따로 없군그래."
이 주책바가지 노인네들이 내가 알던 근엄한 도사들이 맞나, 사정후는 진심으로 소름 끼쳤다. 심지어 한 명 정도는 여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하남성 행에 동참한 현질도사가 가장 극성이었다.
"사질, 역시 제가 마주 앉는 게 좋지 않겠어요? 현타가 앞에 있으면 현타의 숨결에 내공이 상할 수 있어요."
"야, 나 장문인 대리다."
"그럼 술 처먹고 난리 피우지나 말지."
"...누가 들으면 자기가 내 마누라인 줄 알아."
사정후는 짜증을 내며 창문 밖을 향해 지공을 날렸다.
"아악!"
이마에 지탄을 얻어맞은 현질도사는 마차에서 떨어져 나가며 씩씩거렸다.
"너무 그렇게 밀어내지 마셔요, 사숙."
태극화, 사공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낮게 웃었다.
"다 좋아서 저러는 거예요."
"저게?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저거랑 인연을 쌓은 지가 어느덧 30년인데."
"후후. 좋아서 그런 건데 어쩌겠어요? 사랑은 막을 수 없는 법이랍니다. 바로-"
"멈춰라----!!"
마차는 일제히 멈췄다. 말들 또한 제자리에 멈췄고, 도사들은 길을 가로막은 이들을 향해 유심히 관찰했다.
"녹림...?"
50명이 넘는 산적 무리는 최소 이류 고수로 구성된 사파의 무리였다.
"으하하! 이 몸은 녹림72채, 굴림채(堀林砦)의 두목, 대물이다!"
"녹림이오, 사질.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이오."
"태극화! 나랑 결혼 해주시오!"
서걱.
마차 안에서 날아간 묵빛 검이 날아가 대물의 목을 겨눴다. 사공희는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실례합니다. 저희가 가는 길이 급해서."
"크으, 목소리마저 쌀 것 같군! 내 스무 한 번째 아내로 맞아들이는데 손색이 없도다!"
"......."
사공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차 안으로 돌아갔다. 사정후는 밖으로 손을 뻗은 뒤, 검을 휘두르듯 아래로 손짓했다.
"쫓아내."
"감히 우리 사질을 노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네 이놈! 감히 우리 사질을 상대로 그런 추잡한 생각을 버리다니!"
"""태극혜검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장로들의 검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사정후는 미친듯이 날뛰는 장로들을 보며 한탄했다.
"주책이지, 주책이야."
태극혜검의 어검술을 익힌 장로들은 다들 어검술로 산적들을 퇴치하며 말그대로 날아다녔다. 사공희는 가만히 앉아서 묵빛검으로 대물을 압도했다.
"사숙도 처음에는 그러셨잖아요. 태극혜검 2성 익히셨을 때는 현기 도사님 무덤에 가셔서 통곡하셨으면서."
"...크흠. 공희야. 그건 장문인한테 비밀이다. 장로들 다 1성인데 나만 2성이면 내가 곤란해진다. 특히 현철 사형한테는 더더욱."
"장문인께서도 아직 1성이기는 하죠."
녹림의 무리를 어검술로 퇴치하는 것처럼, 무당의 장로들은 모두 태극혜검을 익혔다. 태극혜검은 이제 무당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장문인보다 태극혜검을 더 잘 다루는 '다른 장로'가 존재한다? 아직 연차가 낮은 사공희라면 모를까, 같은 배분의 현타 도사는 장문인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철 도사는 다시금 그릇된 짓을 저지를 지 모른다.
모두가 태극혜검을 익히며 무당은 강해졌지만, 그에 따른 단점도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양반이 허락한 거 맞냐? 태극혜검 이렇게 많이 풀어도 되냐고."
"네."
사공희는 나지막하게 웃으며, 날아오르는 검들을 향해 자랑스럽게 웃었다.
"상공께서도 이런 곳에 쓰라고 태극혜검을 가르쳐 주신걸요."
"......공희야, 스승님, 스승님."
사정후는 누가 들었을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당파 내에서 유일하게 전후 사정을 전해 들은 자로서, 그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왜요? 한 번 상공은 영원한 상공이셔요. 상공께서 허락해주신 덕분에 현타 사숙께서도 태극혜검을 익히셨잖아요. 상공께서 제게 태극혜검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저를 지키는 자위 수단으로 쓰라고 가르쳐 주신 걸요."
"......."
'현기 사형, 우리가 제대로 속았소.'
망할 노인네.
등선하기 전에 태극혜검만 남기고 떠난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제자를 건드린 파렴치한이었다. 사제간의 정이 돈독한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제자라는 이름의 아내로 키워서 취한 셈이었다.
무당에 태극혜검의 진전을 이어준 자는 장삼봉의 화신이 아닌, 등선하면 분명 천계에서 색선(色仙)으로 불리게 될 변태였다.
'현기 사형, 내게 정답을 알려주시오.'
그러나 모든 진실을 전부 까발리기에는 무당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후훗, 후후훗...."
현타 왔느냐. 너는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아니다.
명부에서 들려오는 현기 도사의 목소리에 사정후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 * *
이시아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기녀 운운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기녀를 불러서 회포를 풀 이유는 없었다.
'이미 내공은 쌓을 만큼 쌓았고, 무림맹의 영역에서 기루에 다니면 바로 들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무림맹 인근의 기녀들은 태반이 하오문이요, 태반이 맹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품을 여자가 없어 대신 안았던 안휘, 방중술을 가르쳐주기 위해 강사로 고용했던 호북,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일부러 하오문의 기녀를 찾았던 사천과 달리, 이곳 하남에서는 기루를 찾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바로 옆에 이시아가 있는데 내가 왜 기녀를 '사서' 안아야하겠는가?
"그대랑, 나랑, 합시다. 당장."
"아...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
막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녀는 내 제안에 꺼리는 낯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밖에 없는데 갑자기 웬 존대?"
우리는 방 안에서 식사 중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객잔에 모인 탓에,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고 방 안까지 식사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이시아는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그, 그냥 말하면 왠지 그냥 박을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먹고 하고 먹고 하고 하는 건...."
고분고분해진 이시아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간신히 내게 대답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시아는 며칠 동안 쌓인 회포를 풀기는 풀었지만, 결국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대가 힘들면 어쩔 수 없지. 알겠소. 내 참으리다. 대신 참는 만큼 다음이 힘들 수 있소."
"으으.... 진짜 7명 운운하는 이유가 있네, 으윽. 진짜 당신 무공보다 방중술이 더 뛰어난 거 아니야?"
"그럴 지도 모르지. 흐흐."
아무리 이시아가 초절정에 진입하려고 하는 단계라고 한들, 내공만 따져도 이미 현경 고수인 나를 상대로 어찌 혼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짜증나, 정말."
이시아는 허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는 후들거려서 제대로 가누지 못해 내가 부축해야 할 판이었다.
"달을 보고 싶어."
"밤공기가 차다."
"괜찮아요. 누구 덕분에 지금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으니까."
나는 여전히 몸이 뜨거운 이시아를 안고 창가로 향했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고, 나는 이시아를 내 무릎 위에 앉혀놓고 밤공기를 즐겼다.
"비천, 정말로 태극화가 여기에 올까?"
"물론. 그래서 내가 일부러 두 검을 무당으로 보내지 않고 가져오지 않았소?"
나는 침대 옆에 놓인 두 자루의 검을 가리켰다. 협곡에서 내가 썼던 검과 달리, 서안과 낙양을 거쳐 한 자루씩 구매한 명검은 와룡과 봉추의 신기가 깃들어있었다.
협곡에서 잃어버린 봉추검? 누가 발견한다고 한들 검에 깃든 신기는 이미 진즉에 회수했다. 협곡 안에서 파낸다고 한들 평범한 철검에 불과하며, 와룡검 또한 새롭게 형태를 바꿔치기했다.
사공희에게 주기 위해 와룡검과 봉추검을 가져온 나는 호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봉결정전이 열리는 하남으로 바로 왔다. 그녀가 이곳으로 올 예정이므로.
"그대를 따르기로 하기 전, 태극화를 떠나는 날 약속을 했소. 만약 때가 되어도 '선물'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이봉결정전에서 다시 만나자고."
"내가 만약 이봉결정전에 오고 싶지 않았다면? 그러면 엇갈리는 거 아니야?"
"그럴 수가 없지. 이봉결정전 만큼 그놈들이 수작을 벌이기 좋은 판이 또 어디 있겠소?"
"이거 완전 확신범이네."
소공녀는 나처럼 중원 널리 퍼진 예쁜 꽃들을 따러 다니는 게 여행의 목적이 아니다. 엄연히 대공자가 세상에 퍼뜨린 음모를 밝혀 정마대전의 불씨를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마침 대공자의 계획이 이봉결정전과 연결이 되어있고, 마침 나와 사공희의 재회가 이봉결정전인 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정황이 너무 뚜렷했다.
"처음부터 계획했었어?"
"물론. 9할 정도는 확신했소. 소공녀가 흑도제일화가 되어 중원인들의 이목을 끌었으니, 대공자도 이제 조급해지겠지. 아무리 정체를 숨기려고 숨었다고 한들, 한 번 맛본 구룡의 이름값은 쉽게 떨치기 힘든 법이거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는 거네."
천마신교의 천마가 되려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십만마인들을 이끌 지도자의 귀감을 가져야 한다. 이는 곧 별호나 명성, 그리고 마인들의 지지와 함께한다.
이미 흑도제일화라고 '정파'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이시아를 마인들이 배척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소공녀의 패도에 반해버렸소!
- 소천마! 소천마! 소천마!
- 나 대공자 지지하는데 소공녀 패기는 인정한다.
그것도 용봉지회라는, 정파인들의 축제 한복판에 쳐들어가서 비천삼마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에 성공한 이시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이다. 무공만 강하면 여자도 천마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남녀에 대한 차별이 가장 적은 게 역설적으로 마교니까.
- 대공자는 지금 뭐함?
소공녀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대공자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것이다. 뭔가 하는 것 같은데 하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아 사람들이 대공자가 얼마나 중원 전체에 악행을 펼쳐놨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공자는 분명 이번 기회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릴 것이오."
이봉결정전은 숱한 여인들에게도 명성을 높일 기회지만, 대공자에게도 또 다른 기회로서 작용할 수 있다. 내 설명을 진지하게 들은 이시아는 나를 향해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모두 이용해서 대공자의 계책을 망가뜨리고, 독고연을 취하려고 하는 거지?"
"전후관계가 반대지. 독고연을 취하려고 하다 보니, 대공자가 독고연을 상대로 개수작을 부리고 있던 것이오. 마침 그게 이봉결정전이지."
세상에 대공자의 계책에 의해 고통받는 무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중원 전체에 퍼져있는 그의 술책을 전부 헤아리기만 해도 족히 기백은 넘을 것이다.
단지 내가 독고연을 취하려다보니 대공자가 던져놓은 올가미가 눈에 밟힌 것 뿐이다. 만약 독고연이 내가 취할 여인으로 점찍어두지 않았다면, 그녀는 분명 대공자의 술책에 빠져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슬슬 궁금해하는 눈치로군. 대공자가 독고연에게 무엇을 했는지."
"그래. 궁금해 미칠 것 같으니까 빨리 얘기해주지 않을래? 사천에서부터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
천천히 용제검의 소식을 퍼뜨려 이목을 끌려다가 우발적으로 다른 문파들을 습격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소공녀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 대공자가 빙마를 거두고, 이봉결정전을 망치려 들려고 한다!
야인삼마 중 한 명, 빙마(氷魔)가 대공자의 편이 되었다. 우리가 사천에서 염마를 공략하는 동안, 대공자는 야인삼마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것이다. 아마도 자기 수하인 지린삼마가 배반하지 않을 거라는 가정하에.
'빙마 말고도 작업 중일 거야. 대공자는 그런 놈이니까.'
이시아가 염마를 시녀로 들이지 않았다면 숫적으로 크게 열세에 놓일 뻔했다.
"혹시 이번에도 비밀로 할 거야? 빙마가 누군지."
"굳이? 별호부터 누군지 뻔히 보이는 존재를 뭐하러 숨기겠소. 빙마는 북해빙궁의 궁주요."
천하 십 대 고수라고 하기에는 끗발이 조금 낮아도, 천하 삼십대 고수까지 폭을 넓히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는다.
염마도 화경의 고수였지만, 빙마도 화경 초입의 고수다. 지금은 어떨 지 모르지만 미래에는 그랬다.
"그리고 이번에 빙마가 올 것이오."
빙마, 유설라(劉雪羅). 그녀는 분명 불특정 문파를 사칭하며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공자라면 능히 그럴 자니까."
문파를 사칭하는 것.
힘을 숨겨 정체를 숨기는 것.
자신의 성명절기를 바꿔 세상을 혼동시키는 것.
내가 써먹은 모든 방법은 대공자가 써먹은 방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공녀. 그대에게 부탁이 있소."
"염마를 먹었으니까 이제 빙마를 먹겠다? 그리고 시녀로 들이게 해달라?"
"흐흐, 소공녀. 빙마가 그대를 초절정으로 인도할 수 있소."
나는 이시아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걸어다니는 만년빙정이 나 잡수시오 하고 오는데, 안 먹으면 그게 등신이지."
채음보양.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작품후기]
떡협지, 빙궁주, 채음보양
...강호의 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