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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이 지고 난 뒤
[<검각 협곡 붕괴 사건.>
사천당문에서 발견된 보물 지도를 두고 청성과 아미의 대제자들이 찾으러 나섰다가 소열제의 쌍검을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된 사건.
쌍검에는 소열제의 무공이 깃들어있었고, 청성과 아미는 이를 두고 장문인 간에 비무를 펼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이런 와중에 사천당문에서 '황금룡이 승천'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 본 감찰관은 백주흔 장군과 사건 조사에 나섰고, 정체불명의 존재-이하 유검담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음.
백주흔 장군보다 한 수위인 유검담은 검각의 협곡을 무너뜨리고 정체를 숨겼음. 직접 무기를 맞대고 상대한 백주흔 장군의 말에 따르면, 황실에 반역하거나 적의는 없으나 잠재적 위험 요소인 것은 확실함.
이에 본 감찰관은-]
"......어떻게 적어야 하지."
감찰관은 복잡한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방대하게 일어난 일이라 사건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고, 진정한 진실은 검각 협곡과 함께 파묻혀버렸다.
"이런 사건은 또 처음이군. 난해하기 짝이 없으면서도...쉬운 사건은."
검담.
정체불명의 사파 고수가 정파 고수들을 상대로 난동을 부렸다. 끝.
감찰관은 한 줄로 요약하고 싶었으나, 역시 검담이라는 존재가 사용한 무공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의 황실이 소열제의 촉한을 계승한 것도 아니지만, 소식이 황궁에 전해지면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다.
- 한 황실의 무공이라면 응당 우리의 무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동창에서 고생 좀 하겠네."
감찰관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붓을 놓았다.
황궁이 진짜로 관심을 가진다면 그때부터는 동창이 사천 일대를 이 잡듯이 뒤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은 그들의 참고자료가 되어 사천 일대를 들쑤시고 다니게 될 터.
"......무림의 일이니까 무림에서 알아서 해야지."
[무림맹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끝."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에 자신이 애써 머리를 쓸 필요는 없다. 감찰관은 차를 모두 들이킨 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 선배 없으니까 살 것 같다."
"그럼 이제 죽을 것 같겠군."
방문이 열리며 들어온 남자, 신창은 핼쑥해진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감찰관은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말도 마라. 나를 무슨 대역죄인처럼 취급하길래 살기 좀 뿌려주고 오는 길이다."
"...하긴, 선배님 아니었으면 전부 협곡에 파묻혀 불타 죽었을 사람들이죠."
토벌대는 제법 강했지만, 신창이 있었기에 검담을 상대할 수 있었다. 만약 신창이 없었다면 토벌대는 일각 안에 전멸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배, 그게 진짜예요? 막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거!"
"너는 선배가 그놈에게 패배 직전까지 몰렸는데 그걸 또 듣고 싶으냐?"
"당연하죠! 제국 삼장 중 한 명보다 더 강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쩌다가 인연이 닿으면, 나중에 황궁을 위해서 일할 수도 있는 거고요."
"...으으, 아서라. 놈은 결코 황실을 위해 일할 자가 아니야."
신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싸우는 내내 안쪽을 예의주시하더군. 고작 무덤을 지키려고 그런 걸까? 아니야. 무덤 안에 뭔가가 있었어. 그걸 지키려고 싸운 것이다."
"그게 뭡니까?"
"알면 내가 그거 안 그러고 바로 말했지."
"...흐흥, 그러면 보통 이거던데."
감찰관은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비릿하게 웃었다.
"청성을 습격했을 때 청성파의 여제자를 납치했다고 했잖습니까? 근데 정작 청성은 납치당한 여자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그거, 실은 검담의 여자 아닙니까?"
"오늘도 네 상상력이 참으로 풍부하구나. 청성파의 무복으로 변복시켜놓고 청성파를 습격한 다음, 그걸 납치해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더냐."
"글쎄요. 행보를 보면 꼭 누군가를 끌어내기 위한 것 같던데."
"...누구?"
"그걸 알면 제가 바로 말씀드렸죠."
신창과 감찰관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정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다. ...그런데 말이다, 혹시 검담이 이제 갈만한 곳이 어딘지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글쎄요? 왜 그러십니까?"
"왜긴."
신창은 벽에 걸어둔 은색 창을 움켜쥐며 투기를 보였다.
"운룡반월창의 힘을 다시금 보여줘야지. 잠깐 수련하고 오마."
"......."
굳은 얼굴로 방을 나서는 신창을 배웅하며, 감찰관은 혀를 내둘렀다.
"검담...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길래 저 양반이 스스로 수련하게 만드는 거지?"
꺄아아악!!
멀리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감찰관은 화들짝 놀라 소름이 돋았다.
"...어우, 놀래라. 누가 들으면 고문이라도 하는 줄."
다행히 기쁨과 쾌감이 섞인 비명은 금방 잦아들었다. 감찰관은 몸서리를 치며 이부자리에 누웠다.
"에이, 사천 최고 객잔이라고 하더니 방음이 영...."
감찰관은 귀마개를 귀에 끼운 채 잠들었다.
* * *
"꺄아아악! 어떡해! 어쩌면 좋아!"
이시아는 방안을 방방 뛰며 기뻐했다. 이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게 사실상 처음이었다.
"비천, 어떻게 하지?"
"뭐가."
"나 말이에요, 나! 큰일났어!"
이시아는 자신의 얼굴 아래 꽃받침을 하며 씩 웃었다.
"너무 예뻐!"
"알아. 누가 다듬어줬는데."
나는 이시아의 흑단 같은 머리칼 끝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칼은 끝부분이 반달처럼 말려있었고, 덕분에 풍성한 느낌이 강했다.
중원 어느 여인이 머리를 짧게 자른단 말인가?
세상 모든 미인도를 살펴봐도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여인이 부지기수지, 머리가 어깨 아래에 살짝 닿을 정도로 일부러 자른 여인은 없었다.
하지만 예쁘니까 괜찮다. 얼굴이 받쳐주니까 단발을 해도 용서가 된다.
- 예쁜 여자는 뭘 해도 어울리지만, 단발머리를 해도 예쁜 여자는 여신이란다. 폐월수화?
"역혈당옳!"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인생의 진리를 담은 나만의 작은 경전이지."
나는 장터에서 사 온 작은 삿갓을 그녀의 정수리 위에 씌웠다. 일부러 색을 맞춘 검은 삿갓 덕분에 위가 가려져, 이시아는 더욱더 활짝 웃으며 헤실거렸다.
"고마워. 이렇게 안 했으면 누가 봐도 머리카락 잘린 것 같아서 그냥 다니기 그랬는데."
얼굴과 몸은 옷으로 가릴 수 있어도 머리칼은 가릴 수 없다. 살수처럼 흑의로 머리만 덮을 수 없는 노릇이니, 불에 타 짧아진 머리칼을 정돈하기 위해 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아름답군. 내가 다듬었지만 역시 본판이 예쁘니 삿갓을 써도 미모를 숨길 수 없어. 침어낙안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소."
"여자는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잖아. 나, 당신의 충성심에 사랑에 빠진 것 같아."
"...그거 참 아주 무거운 사랑이로군."
"아주, 흐끅, 지랄을, 해라...."
서로 입을 맞추려고 하던 찰나, 옆에서 방해가 들어왔다. 의자에 밧줄로 꽁꽁 묶인 그녀는 우리를 비웃으며 신음을 흘렸다.
"이...썩을 연놈들...."
"패배자가 말이 많아."
"닥쳐! 으흑, 이 개 같은...."
염마는 답지 않게 눈물을 흘리며 억울해했다. 당연히 그녀 때문에 머리칼이 타들어 간 이시아도 억울해했다.
"비천, 저년이 나보고 개 같다는데."
"굳이 따지자면 개보다는 고양이 쪽이 더 가깝지?"
"이상한 소리 하는 거 보니 별로 신경 안 쓰는구나. 됐어, 그러면. 그럼 나도 무시할래."
"야!"
염마는 덜커덩거리며 의자에서 난동을 부렸다. 밧줄이 묶인 부분이 맨살인데도 그녀는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이익...!!"
"소용없소. 저항할수록 더 단단히 묶일 테니."
나는 염마의 몸에 묶인 밧줄의 형태에 만족을 금할 수 없었다. 혈교주 특유의 밧줄 구속법으로 염마는 뒷짐을 진 채 의자에 구속되었고, 쇄골과 허리가 묶여있었기에 흉부가 도드라졌다.
"중단전을 부쉈는데 어떻게 가슴은 그대로일까."
"아악!"
이시아는 가죽장갑을 끼고 염마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게 꼭 뺨을 후리는 것 같아 나는 괜히 침이 꿀꺽 넘어갔다.
"염마 주제에. 염마 주제에. 염마 주제에."
이시아는 영혼 없는 얼굴로 목각인형처럼 움직였다.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천마금나수는 염마의 가슴을 탱탱 부어오르게 했다.
"아, 아응...!!"
밧줄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여자. 왠지 뭔가 새로운 것에 눈을 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금제'가 걸린 이상, 염마를 상대로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소공녀. 그렇게 때려봐야 염마 가슴만 부어오를 것이오."
"쳇."
이시아는 바로 가슴에서 손을 떼어냈다. 염마의 가슴은 이미 시뻘게져서 퉁퉁 부어있었다. 밧줄에 묶인 곳들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이미 염마는 그대의 것이오. 그러니 너무 괴롭히지 마시오."
"엄밀히 따지면 내 것이 아니라 비천의 것이잖아."
"내가 그대의 것이니 내 것도 그대의 것이 아닌가?"
마교 한정으로. 하지만 이시아는 그런 내 말만으로도 기쁜지 염마의 이마를 툭툭 밀며 장난을 쳤다.
"흐흥. 이걸로 십마 중 다섯이 내 거야!"
"다섯?"
도마, 적마, 환마, 그리고 이제 새롭게 우리에게 굴복한 염마. 작게 중얼거리던 염마는 이시아를 향해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었다.
"멍청이야? 숫자 못 세? 어떻게 넷이 다섯이 되니? 죽은 검마를 강시로 만들어서 부활시키기라도 하셨나?"
"만나서 반갑다. 나는 비천색마라고 하는 자다."
염마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이미 나는 검각의 협곡에서 빠져나온 시점부터 인피면구도 벗고 역용술도 해제해서 원래 모습을 보였다.
"색마...? 소공주 너 설마?"
"흥, 얘기했잖아. 남자 보는 눈이 내가 너보다 훨씬 좋다고. 이렇게 강하고 잘생기고 양물도 큰데 색을 좀 탐하면 뭐 어때?"
"미친년. 자기는 색마 하나만 달고 살면서 색마는 딴 여자 박게 한다고? 정신이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여자들 품어도 상관없어! 결과적으로 이 이시아의 옆에만 있는다면!"
소천마와 염마가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건 차치하고, 적마의 얼굴로 이시아와 입맞춤을 나누고 성교를 나눈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해도 이시아가 뺨을 때리며 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어린 모습이 뭐가 좋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어리고 젊은 모습이어도 남자는 중후하고 멋진 매력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자고로 남자란 수염 좀 멋드러지게 기르고 하는게-
- 야! 영계 노리는 건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아!
'그렇군. 오늘도 혈교주 당신의 말에 개안했소.'
역지사지.
내가 나보다 훨씬 어린 여인-정신적으로-을 취하는 것처럼, 이시아도 젊어보이는 청년을 옆에 데리고 있는 걸 선호할 뿐이다. 연상 여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익숙해서 좋지만, 그래도 역시 나도 남자인 만큼 연하도 좋다.
'요즘 가가 소리 안 들어본 지 꽤 됐는데.'
기녀가 가가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진짜 연하.
"그러고 보니 당서희, 그대가 올해로 몇 살이지?"
"......스물셋."
"어머, 늙었네."
염마는 진심으로 울컥해 하며 숨 넘어가려고 했다.
"야! 스물셋도 젊은 거야!!"
"혼기 꽉 찬 걸로도 모자라서 벌써 넘긴 지 한참 지났지? 불쌍해라."
"하! 너는 다를 것 같아? 평생 색마만 보고 살겠다고? 개 같은 소리! 저 남자는 네가 아니라 다른 여자랑 살림 차리고 매일매일 갈아치울 놈이라고! 너는 그냥 월화수목금토일 중에 하룻밤에 지나지 않아!!"
염마는 저주를 퍼부었다. 나도 괜히 뜨끔해서-어떻게 알았을까. 중려신화정을 익히더니 신기라도 깨우친 걸까?-이시아의 눈치를 봤지만, 이시아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다른 여섯 명한테서 채음보양으로 갈취한 내공을 나한테 준다는 거 아니야? 그치? ...비천, 왜 대답이 없어?"
"......."
나는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이시아는 고운 아미를 잠시 찌푸렸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키득거렸다.
"흐흐, 괜찮아. 평생 나만 바라보게끔 만들면 돼. 딴 여자 다 품고 다녀도 가슴속에 이 이시아 한 명 품으면 된다 이거야."
"가슴에 품기는 지랄. 가슴도 빨래판처럼 작은 게."
"......비천, 아무래도 '조교'를 조금 더 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좆됐군, 염마.'
나는 염마를 향해 애도를 표했고, 이시아의 손이 염마의 명치를 눌렀다. 그리고 아래로 쭉 내려가, 염마의 은밀한 곳 근처에 다다랐다.
"히익?!"
이시아의 손이 수풀을 움켜쥐었다. 염마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나를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지만, 나는 이미 많이 사용하고 딱 하나 남은 금창약을 꺼내들었다.
'나도 이시아 중단전 놀릴 때는 목숨 걸고 놀리는데 제깟게 감히.'
"지린염마, 네 년이 꾸민 음모를 아주 뿌리째 뽑아주겠어."
"아아아악!!"
이시아가 손을 잡아당기자, 염마는 다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천을 떠나기 전, 어두운 곳에서 암약하던 염마의 음모를 말끔히 해결했다.
"염마, 지금부터 너는 내 거야!"
"아하아아앙!!"
벌모세수.
우리는 염마를 털갈이하고 깨끗이 세탁했고, 염마는 소공녀의 부하가 되었다.
[작품후기]
지린염마는 죽었습니다
촛농왁싱벌모세수조교씬을 구상했지만
벌써 두 번이나 했으니 그건 다음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