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담, 사천에 서다
염마는 하오문에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직업은 홍등가의 기녀-속된 말로 창녀다.
마인들은 모두 다 색녀인가? 아니면 염마가 특별한 존재인가?
백도의 여인들과 비교해보면 흑도의 여인들이 대부분 자유분방하게 색을 탐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백도 내에서도 흑도 못지않은 색을 탐하는 이들은 수두룩하다.
바로 이 여자처럼.
"이놈!!"
당장 내 앞에서 분노에 휩싸여 검을 휘두르는 멸색사태만 하더라도 그렇다. 평소에 사용하는 검법이 아닌 대 색마 전용 무공, 파사현정(破邪顯正) 검법을 발휘하는 그녀는 이 순간만큼은 화경 고수였다.
"죽어라, 이 더러운 색마!"
"색마를 죽일 때 투선이 깃드는 것도 아니고...참 대단하군."
"닥쳐라! 정자를 어떻게 했어?!"
"이러니까 색마들이 다 죽어 나가지."
카앙! 와룡검을 거꾸로 쥐고 멸색사태의 검을 향해 겨눴다. 손잡이 부분에 금빛의 검강으로 반짝이는 와룡은 멸색사태의 검날을 깨물었고, 나는 봉추검을 휘둘러 검을 부쉈다.
"낙봉파!"
서걱!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에 멸색사태는 검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검으로는 나를 상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거리를 벌렸다.
"제, 제법 강하구나! 이 색마!"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함께 싸우러 온 장로들과 다른 문파의 무사들이 신경 쓰여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멸색사태는 내가 색마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내가 색마라...듣자듣자하니 짜증 나는구나. 진짜 색마가 되어 네년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범해주기라도 하랴?"
"윽!!"
멸색사태는 질색하듯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저 비명이 그녀가 살짝 지려버렸을 때 나는 특유의 신음인 걸 잘 알고 있다.
'지금 상상했군.'
"이, 이, 이이...."
입꼬리가 올라갈 듯 말 듯 부들거린다. 옆에서 누군가 봤다면 멸색사태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치녀인 걸 눈치채겠지만, 멸색사태에게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가장 선두에 있었다.
"일단 네년은 저기서 머리라도 식히고 있거라."
낙봉파, 한 번 더. 나는 전방을 향해 봉추검을 거칠게 내리찍었다. 고개를 빳빳이 치켜든 봉황은 두 날개로 바닥을 강하게 때렸고, 검풍이 부채꼴로 퍼지며 무인들을 위협했다.
"크윽!!"
파사현정검법이 흔들린 멸색사태는 검풍이 뒤로 밀려나 후퇴했다. 나는 검풍에 죽을 뻔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그녀를 보고 백도의 현실에 질려버렸다.
'정파라는 이름 뒤에 숨어 색을 탐하는 이들이 이리도 많다니.'
세상에 어디 색녀가 멸색사태 뿐인가. 내가 용봉지회에서 취한 꽃 중에는 나와 화간을 나눈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팔대세가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넘쳐흐르는 색욕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몸 파는 여인이 된 여자가 한 명 있다.
음탕접, 당서희.
천상천하유아독룡 당이정이 당가에서 도망쳐 나와 호적에서 파인 것처럼, 그녀 또한 스스로 하오문에 들어가 홍등가의 기적에 입적한 것으로 당가를 스스로 나왔다.
"추혼비선!"
"구환살!"
양쪽에서 동시에 다른 초식이 나를 덮쳤다. 나는 좌로는 와룡검을, 우로는 봉추검을 들고 나를 노리는 철선과 단검을 겨눴다.
카앙!
"당문의 존재가 동시에 이 몸을 노리다니. 이거 영광이군."
"......."
"너...."
한순간. 무기를 서로 맞댄 나는 두 남자의 뜨거운 시선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들은 마치 나를 진짜 가족처럼 여기는 것 같아 내가 더 소름 돋았다.
'근데 적마라고 사기 친 이상 끝까지 가야 한다.'
오란지병과 독귀가 만약 1:1 전투에서 나를 호시탐탐 노린다면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비장한 눈빛으로 둘을 째려봤다.
"...당문은 어째서 나를 공격하는 것이오? 설마 간밤에 다녀간 것 때문에 그러는가?"
"이ㅈ-"
"갈!!"
나는 진각을 밟으며 둘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제각기 와룡봉추를 교차로 휘두르며 둘을 한 발자국 물러서게 만들었다.
"장판파 너머로는 누구도 들일 수 없소! 이곳을 넘어가고 싶다면 나를 죽이고 가시오!"
"큭...!"
"그런가.... 그럼 우리도 결심해야겠어."
당사림과 독귀는 내게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뒤로 가볍게 뛰었다. 같은 혈육을 끔찍하게 여기는 당가의 사람들은 내가 적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적마의 의지를 존중했다.
사천당문의 존재가 이런 식으로 난리를 피웠다면, 청성과 아미는 책임을 당가에 물게 될 테니.
"너는...."
"내 이름은 유붕! 자는 검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
당가의 두 고수는 결국 무겁게 눈을 감아버렸다. 뒤에서 암기를 잡고 머뭇거리던 당문의 무사들도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참 가족 같은 곳이야.'
마교로 들어간 자도 혈연이라는 이유로 보살피려고 하다니. 당문이 많은 고수를 데려온 이유는 여차하면 자신들의 손으로 검담을 '죽인 척'하려고 함이 틀림없다.
"물러서지 마라! 사천당문의 의지는 고작 그 정도인가!! 적이 눈앞에 있다면 무기를 들어라! 설령 그게 나의 형제자매가 된다고 한들!!"
내 호통에 당가의 무사들은 표정이 변했다. 망설임은 사라졌고, 모두 전력을 내기 위해 무기를 붙잡았다.
'독룡이 떠난 게 큰 충격이었을 테니. 나중에 염마의 정체를 알면 까무러치겠군.'
적장자가 아닌 방계의 아이라고 한들, 가문에서 유력한 차기 가주급 존재로 촉망받던 자가 바로 독룡이며 적마였다.
그런 독룡이 마교인, 천마를 추종하는 십 대 마인 중 하나가 되었으니 적마에만 시선이 팔렸을 것이다.
'한 번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도 일어나지.'
설마 같은 일이 그다음 여아, 당서희에게 똑같이 일어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운 법이다.
'사실 세 번째지만.'
"만천화우진을 펼쳐라!!"
독귀의 지시에 당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좌우로 넓게 펼쳐졌다. 두 명의 어깨 위에 발을 디디고 선 무사들은 하나둘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냥 다 같이 암기를 던지는 거 아닌가?'
"우오오오!!"
최정상에 오른 독귀가 가장 먼저 암기를 날렸다. 동시에 아래층에 있던 무사들이 날아오르듯 뛰며 암기를 날렸다.
'이건 조금 위협적이군.'
한 명이 펼치는 만천화우에는 중간중간 빈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수십 명이 동시에 암기를 날려 이루는 만천화우에는 무기를 요격하고 검을 회수할 시간이 없다.
'미리 깨우치게 해둬야겠어.'
이럴 때 염마라면. 언젠가 적으로 나타나게 될 염마는 과연 어떤 식으로 만천화우진을 막아낼까.
"상룡참!"
두 검을 옆으로 놓는다. 와룡검을 아래에 두고, 봉추검을 겹치듯 위로 올린다. 그리고 몸을 크게 돌며 전방을 향해 힘차게 참격을 날린다.
카가가강---!!
황룡의 표호와 함께 날아간 검풍이 암기를 모두 요격했다. 바람에 튕겨 나간 암기는 서로 부딪혀 빗나갔고, 벽에 하나둘 박혀 무용지물이 되었다.
"다, 당가의 만천화우가...!"
"괜찮소! 막대한 내공을 소모했을 터이니!"
"고생하셨소, 당문!"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만천화우가 막혔고, 암기를 모두 소모했다. 지공의 고수인 오란지병같은 고수가 있지 않은 이상, 당문은 더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큭, 미안하네!"
"서, 설마 암기를 모두 막아 낼 줄이야."
"크윽, 검담은 괴물인가!!"
당가의 무사들은 논어 읽듯 외치며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들이 연기로라도 물러나기는 했지만, 암기를 다 소진했을 때를 대비하여 무언가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기를 바랐다.
'안 그러면 염마한테 다 암기랑 독이랑 불타버려서 죽어버리니까.'
미래, 사천당문을 반쯤 멸망시킨 건 다름 아닌 염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사천으로 도망쳐 폭주했고, 사천당문의 절반을 불태우며 분사(焚死)했다.
'적마처럼 철선같이 손에 쥐고 사용하는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지.'
암기가 전부 떨어진 암기술의 고수만큼 쉬운 상대가 없다. 독귀도 애지중지하던 뱀들이 모두 죽어버리니 무위가 한참 내려가 있었고, 나는 너무나도 쉽게 무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검담, 검제의 위용에 닿지 않는다. 이대로는 내 승리가 확실할 것이다.
"청성파 놈들은 한 번씩 터졌으면 부끄러운 줄 알고 물러나는 것이 어떤가?"
"이, 이 썩을 놈이!"
"썩을 놈에게 이가 깨져서 썩어 문드러지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공은 상당히 말이 험하군."
저벅, 저벅.
청성파의 장로들 가운데를 헤치고 나온 미중년은 등에 묶어둔 천을 풀어냈다. 단순한 말대 같기도 한 회색 철봉을 움켜쥔 사내는 나를 향해 철봉의 끝을 겨눴다.
"그대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알라."
"남의 조상 무덤을 멋대로 짓밟은 도적놈들에게 예의를 갖추라?"
"설령 양상군자라고 한들 그들 또한 사람이니라."
"하. 어이가 없군. 어디서 남을 가르치려고 드느냐."
반드시 이긴다고 확신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 적들의 가운데 신창(神槍)이 있기 때문.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주지. 관무불가침이라는 말을 모르느냐? 금의위에서 어찌 무가의 일에 관여하지?"
"스스로 검제를 자처하는 불경한 자를 두고 금의위에서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지?"
"하! 멸망한 제국의 후예라고 한들 황제는 황제! 그렇게 따지면 무림에 있는 검황 같은 자들은 왜 진작에 잡아들이지 않았나?"
"그들은 폐하의 인정을 받으셨으니까."
무인의 자존심을 긁는 말이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신창이 내뿜는 기운에 토벌대의 모든 고수는 삼십 장, 아니 거의 오십 장 가까이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신창이 뿜어내는 기세는 살기등등했다.
"누가 보면 대역죄인을 참하러 가는 줄 알겠어."
"물론. 여기서 순순히 오라를 받지 않으면 대역죄인이 될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이 형님을 무릎 꿇려봐라."
움찔. 신창의 눈썹이 비틀렸다.
"배분상, 당연히 소열제의 무공을 이은 내가 더 위가 아니겠느냐?"
"놈!"
신창이 먼저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회색 철봉에 노란색 강기가 스며들기 시작했고, 곧 철봉의 끝에 날카로운 창날이 튀어나왔다.
"흐, 시작부터 전력이냐?"
나는 검제, 제갈건담의 모든 기운을 끌어냈다. 역사적으로나 미래적으로나 숙명적으로나, 천상용제검쌍고검을 사용하는 제갈건담으로서 신창에게 만큼은 질 수 없었다.
'운룡반월창(雲龍半月槍).'
실전된 소열제의 무공과는 달리, 조위와 사마진으로 이어져 현대 금의위의 비고에 들어가게 된 무공.
"으하하! 운명이로구나, 장생!"
"닥쳐라!"
카앙! 와룡봉추를 교차하여 신창의 창날을 막았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혀 내공 싸움으로 나아가는 간운데, 나를 노린 창날은 어느새 언월도의 칼날처럼 변해있었다.
"아주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동생!"
"허.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좋다."
창대를 움켜쥔 신창은 대춧빛처럼 붉어지는 얼굴로 나를 향해 사납게 웃었다.
"통행증 대신이다!"
신창은 내 목을 날리기 위해 반월창을 크게 휘둘렀다.
* * *
"꺄하하하!!"
염마의 비명이 제단을 가득 채운다. 비명소리는 부나방을 이끄는 바람이 되어 순풍이 되었다.
"큭!"
이시아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부나방들을 손등으로 쳐냈다. 화끈거리는 열기가 피부를 덮쳤고, 이시아는 나부끼는 부나방들을 피해 다니느라 조금도 쉬지 못했다.
"오호호! 꼴사납구나!"
"천마승룡각!"
이시아는 높이 치켜든 발을 아래로 크게 내려찍었다. 강력한 내기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었고, 부나방들은 천마신공의 기운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후우, 후우."
이시아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았다. 염마는 부나방들을 뿌리는 철선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제 곧 절정을 넘어설 것 같네. 축하해. 나랑 싸우면서 초절정에 오르시겠다? 근데 어쩌지? 너는 거기서 끝나게 된걸. 강해졌구나!"
짝짝짝. 염마는 철선을 접고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하지만 소공녀, 네가 강해졌다고 해서...."
화륵. 철선의 끝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며 기다란 채찍이 되었다.
"천마지옥염편(鞭)...!!"
"나랑 비등비등해진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는 내가 꼭 잡아다가 기녀로 만들어줄게. 기름 뚝뚝 흘러서 불타기도 좋은 노인네들이 딱 좋아할 것 같은 얼굴이거든. 깔깔!"
찰싹! 화경의 고수가 불꽃의 채찍을 휘두르며 위협했다. 하지만 이시아는 주먹을 들어 올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맨날 남근만 탐하더니 자궁이 아니라 뇌까지 정액으로 가득 차셨나?"
"......."
염마의 표정이 싹 굳었다. 이시아는 옷깃에 묻은 불씨를 가죽장갑으로 털어내며 내공을 일으켰다.
"나는 지는 싸움 안 해."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그가 너를 상대로 승리를 점쳤으니까."
사락.
이시아의 머리칼이 불길에 흩날렸다.
"십 할."
[작품후기]
100%! 십 할!
일러 완성본이 나왔습니다.
작품설정에는 혈흔 없는 버전이니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