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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담, 사천에 서다
"날뛰라고 했지 개 잡듯이 다 때려잡으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혼란을 틈타 청성파의 무복을 입고 무사들의 틈바구니에 잠입한 이시아는 봉추검과 함께 쌍검을 휘두르는 색마에 진심으로 질려버렸다.
"소열제의 후손이 무공이 뛰어난 건 조금 이상한데…."
인덕이나 덕망이 높다거나, 생존술이 뛰어나다거나, 귓불이 넓다거나.
청성파를 호쾌하게 때려잡는 무인의 상은 소열제와 어울리지 않았다.
'소열제가 무공이 뛰어나던가?'
성도에 도착하고 난 후 며칠 사이, 이시아는 비천색마가 밖에서 열심히 채음하는 동안 소열제에 관한 정보를 조사했다.
하오문에서 정보를 사서 알아보고 한창 비싸게 팔리는 연의를 찾아 읽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천상용제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고전소설도 시중에서 하나 구해 읽기도 했다.
유현덕은 무공이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무공이 강대하다고 한들, 청성의 장문인조차 긴장하는 무위를 보여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고대의 존재가 현대에 다시 나타난 셈이라고 한들, 최소한 관운장이나 여봉선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수긍할 것 같은데.'
군신의 무공이 현대에 다시 나타났다거나, 아니면 당대 최강의 무인이 쓰던 비급이 세간에 드러났다고 하면 사천이 아니라 온 천하가 들끓게 될 것이다.
쌍고응검이니 망정이지, 천룡언월도나 방천화극 같은 것이 진짜로 나타난다면 정파에 더불어 사파에 황궁까지 나서서 각축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인덕은 높아도 무공은 그다지 높지 않은 존재 아닌가?'하는 소열제의 무공이어서 흥미만 조금 높을 뿐이었다.
"으하하! 낙봉파!"
하지만 그런 시선도 이제는 끝이다. 한 손에는 철검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감손미라고 말한 봉추검을 휘두르며 청성파의 무인들을 쓸어버리는 그는 신나게 날뛰고 있었다.
'조금 적당히 하라고 명령을 내릴 걸 그랬나?'
청성파가 사천 내에서 그다지 권세가 높은 문파는 아니라고 한들, 엄연히 구파일방의 일원으로 아미파와 양대 산맥을 다투는 백도문파다.
아무리 사파 제일의 고수가 나타난다고 한들, 이 정도는 조금 심했다.
이래서야 천하 십 대 고수가 청성파를 봉문하러 온 것 같지 않은가!
"...씁."
[소공녀. 걱정마시오.]
갑작스러운 전음에 이시아는 깜짝 놀랐다.
전음을 날린 색마는 청성의 장로를 상대로 쌍검을 휘둘러 검째로 패고 있었다. 그는 장로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며 전음을 날릴 정도로 여유로웠다.
[그대는 혹시나 하여 걱정하는 것이지? 소열제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는데, 너무 강하게 싸우는 게 아닌가 하여.]
끄덕. 이시아는 괜히 전음을 날리면 방해가 될까 봐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더라도 자기 생각을 읽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걱정마시오. 소열제 본인이라면 모를까, 소열제의 후손을 자처했기에 명분이 있소.]
'후손?'
[소열제의 아들, 유선이 누구를 아내로 맞이했는지 아시오?]
'그야 장비의 딸-'
"아."
이시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스스로 검제를 자처하는 색마의 검은 거칠고 사납기 짝이 없었다.
[내가 얘기했었지. 후주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고. 자신의 힘으로는 소열제의 무공을 감당할 수 없었소. 그러니 아내를 '선택'했지.]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상황에 어울리는 야사에 이시아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무림에서 명문정파끼리 혼약을 맺듯, 후주도 제 후손의 몸에 당대 최강 중 한 명의 피를 섞은 것이오.]
'오랜 시간이 지나 후손의 몸에서 무인의 재능이 만개하여 천상용제검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만든다?'
[그렇소. 그리고 그게 바로 이 몸.]
"으하하! 덤벼라! 유검담이 여기 있다!"
이시아는 입술이 바짝 말랐다. 검담이든 뭐든 어떻든, 자신의 남자가 압도적인 무위를 보이는 모습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멈추시오."
장문인, 벽박자가 흉흉한 기운을 내뿜으며 훈련장에 도착했다. 이시아는 벽박자에게서 중후한 내공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초절정...아니 화경!'
듣던 것과 다르다. 그도 이시아가 느낀 걸 직감했는지, 검을 늘어뜨리고 벽박자를 예의주시했다.
[자신이 없소.]
"......."
사락. 이시아는 전음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여차하면 천마신공을 사용하여 시선을 끈 뒤, 색마와 함께 이탈할 생각까지 했다.
마교 소공녀가 청성파를 습격했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시아는-
[질 자신이.]
"......."
이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움켜쥔 주먹을 풀었다.
* * *
청성파의 소동은 사천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고, 당연히 사천당문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고, 이정이 이놈이 미쳤나!!”
당사림은 독마 당이정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가 어디라고 습격을 해?! 젠장, 호적에서 파내길 잘했어! 이 미친놈!”
“형님, 급보입니다. 12장로를 상대로 차륜전을 펼치고 있다고 하오.”
“아무렴 사천당문의 피가 흐르는데 당연하지! 암!”
“.......”
당오독은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당사림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형님, 곧 장문인이 나설 것이라는 소식도 있습니다. 당장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가야지. ...그런데 가주, 우리가 괜히 갔다가 만약 녀석을 상대로 쫓게 되면? 놈과 싸워야 한단 말인가?”
“우린 이미 놈에게 습격을 당했소. 우리가 놈의 편을 들면 괜히 오해를 살 수 있단 말이오.”
“아무렴 녀석이 제 정체를 남들에게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위험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군….”
이제 어찌한다. 까딱 잘못하면 관군까지 나서서 청성파를 습격한 자, 검제를 잡으러 갈 수 있다. 아무리 무림의 별호라고 한들 황제를 운운하는 건 영 좋지 않았다.
“...근데 만약에 말이다, 진짜 만약에 놈이 소열제의 무공을 이어받았다면 상관없는 일 아니냐?”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형님.”
“잘 생각해봐라. 무당파의 의천검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그걸 태극혜검을 익힌 태극화가 가지러 온다면, 누가 그걸 주지 않겠느냐.”
“......그건 그렇네?”
무림의 검은 보통 문파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소유권이 정해진다. 소열제의 쌍검이라면 응당 소열제의 무공을 익힌 자가 가지는 게 당연지사.
“엄밀히 따지면 청성 놈들도 멋대로 검을 무덤에서 가져간 게 아닌가?”
“지도가 우리 당문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마시구려.”
“에잉, 사소한 건 넘어가! 중요한 건 이정이 놈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만약 청성을 모두 박살 낼 정도로 강하다면….”
꿀꺽. 독귀와 오란지병은 이미 검제의 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일반 철검 두 자루로도 독귀를 제압한 그가 와룡봉추, 쌍고응검을 모두 움켜쥔다면?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청성의 장문인을 상대로 비무로 이기겠소?”
“그, 그렇지? 벽박자 그놈, 일단 나보다 강한 자가 아니더냐.”
독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맛을 다셨다.
“......이정이가 이기면 호적에 다시 새겨넣을까?”
“형님!"
오란지병은 화병으로 속이 터질 뻔했다.
* * *
미래, 쌍고응검 소동은 세 문파간의 정면충돌로 마무리되었다. 사천당문과 아미, 그리고 청성은 서로 씻을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생겼고, 소동의 원흉인 쌍고응검은 소실되었다.
소실된 척, 무림맹이 챙겼다. 비밀리에 쌍고응검을 회수한 무림맹은 실전된 소열제의 무공을 연구하기 위해 다각도로 연구를 거듭했다.
그로 인해 발견한 천상용제쌍고검의 등장은 숱한 쌍검수들을 미치게 했다.
-극성까지 이르면 현경도 노려볼 수 있다!
천상용제쌍고검을 발견해낸 자들은 다름 아닌 제갈 세가.
소열제와 인연이 깊은 가문으로서 쌍고응검의 연구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제갈 세가는 쌍고응검의 비밀을 밝히는 데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엄청난 비극을 겪게 된다.
-용제검의 비밀을 내놓아라!
용제검의 마성에 홀린 사파의 무리가 무림맹 군사이기도 한 제갈길의 가족을 습격하여 인질로 잡았다.
당시 제갈길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마교의 계책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고, 결국 사파의 무리는 인질로 잡은 제갈길의 가족을 한 명 빼고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 소년이 후에 용제검을 이어받아, 가족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여 검제(劍帝)가 되었다.
그 이름하야, 제갈건담.
물처럼 맑은 하늘이 되고자 했던 제갈 세가의 후손은 복수를 위해 제갈 세가를 빠져나와 제갈이라는 성을 버리고 건담이 되었다. 복수라는 일념 하나만으로 사파를 척살하며 쌍검을 휘두른 끝에 그는 검제가 되었다.
그리고 혈강시에게 살해당했다. 여자였다면 혈강시가 속까지 유린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제갈건담은 남자였다.
남자여도 피는 당연히 혈강시의 것. 그의 피는 내 기억에 남아 검제의 힘으로 발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를 기리기 위해 자신의 자를 검담으로 칭했다. 대신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건 양심에 찔려, 세상이 검제라고 인정하기 전까지 검담(劍淡)이라고 칭하고자 마음먹었다.
“용제검의 주인, 유검담이 여기 있노라!!”
동시에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숨겨, 마치 소열제의 진짜 후손인 양 꾸몄다.
“검...담!”
벽박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게 검을 겨눴다. 청풍검법과 마찬가지로 청성파를 대표하는 검법, 청운적하검의 초식이 내 눈앞에 가장 완벽한 자태로 펼쳐지고 있었다.
"청성파 장문인, 청운적하검, 벽박자. 그대의 이름은?”
“!!!”
청성의 장로들이 모두 훈련장을 벗어났다. 장로들 뿐만 아니라 제자들 또한 급히 훈련장 담벼락 위에 올라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검담이오.”
“무공은?”
“천상용제쌍고검!”
모든 것을 사칭해도 무공의 이름만큼은 바꿀 수 없었다. 나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가문을 지키려했던 검제에 대한 존중이며, 당장 용제검을 사용하는 자로서 진정한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외칠 수 있었다.
“...소설인 줄 알았건만.”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진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서는 딱히 방법이 없었던 셈이지.”
쌍고검이 조위, 사마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후주는 쌍고응검을 선주의 무덤이 아닌 다른 곳에 숨겼다. 그리고 소설의 내용에 용제검의 위치를 남긴 복선을 남겨, 후손이 용제검을 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장문인. 나는 상당히 바쁜 몸이오. 이곳만 가야 할 것이 아니라 아미파에도 들려야 하지. 그러니...일 초로 끝내지 않겠는가?”
“한 합에 모든 것을 담아라? ...좋소. 내 그리하리다.”
펄럭!
남색의 도복이 크게 휘날렸다. 벽박자의 내공이 들끓기 시작했고, 청명한 기운이 벽박자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벽박자의 일검, 받아보시오!!”
“얼마든지.”
벽박자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뛰었다. 선수는 하수에게나 양보하는 것이라는 무림의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벽박자는 먼저 공세를 취했다.
쏴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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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푸른 구름이 넘실거린다. 짙은 안개처럼 다가오는 구름 사이,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나를 향해 번쩍거렸다.
태양을 두 눈으로 직시하면 눈이 따갑기 마련. 구름 사이로 파고드는 노을빛 칼날을 향해, 나는 봉추검을 옆으로 겨눴다.
“구름에 노을이라.”
그는 힘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초절정인 척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지만, 실제로는 사천 일대에서 가장 강한 무인으로서 나를 향해 자신의 성명절기를 펼쳤다.
‘처음 보는 공격이다.’
나는 벽박자의 피를 마시지 못했다. 내가 그와 혈강시로 마주하기 전, 이미 그는 장문인에서 물러나 등선한 존재였다.
즉, 청성은 벽박자 이후로 그 누구도 초절정을 넘어서지 못했다.
“안타깝군. 앞으로 그 누구도 그대만큼 여기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 청성의 장래가 어둡구나.”
“......!!”
“그러니 내가 보여주겠다.”
카앙!
검을 십자로 교차하여 들었다. 하나는 수평으로, 또 하나는 역수로 들어 내공을 일으켰다. 붉은 노을 사이로 빛처럼 파고든 일검은 교차한 검에 튕겨 나갔다.
“큭?!”
공격은 실패. 구름 속에 숨어 노을을 등지고 찌른 살초는 내게 닿지 않았다. 벽박자의 검 끝은 내 미간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대는 강하다, 벽박자.”
사락. 앞머리가 살짝 떨어졌다. 동시에 검 끝이 살갗을 베었다. 그게 인피면구만 아니었다면, 벽박자는 내게 피를 흘리게 만들 수 있었다.
“내 예상을 뛰어넘었군. 닿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끝이 살짝 닿아버렸어.”
“......그대는 대체.”
“하지만!"
고오오오----!!
내 아래에서 금빛의 내기가 폭발했다. 하늘로 튕겨 올라진 벽박자는 급히 검을 회수하여 검면에 한 손을 올렸다.
“검제가 더 강하다!”
하늘로 승천하는 와룡. 땅으로 날갯짓하는 봉추. 그리고 둘의 가운데 검을 붙잡은 검제의 내공.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비로소 용제검의 힘이 완성된다.
“천룡승상참!!"
소열제의 일념이 담긴 궁극의 일격. 나는 두 검을 수직으로 평행하게 내리그었다.
"천하, 삼분!"
서걱!
벽박자의 검이 세 개로 쪼개졌다. 동시에 벽박자의 어깨에도 붉은 피가 튀었다. 좌우로 솟아오른 두 마리의 용은 각각 벽박자의 어깨를 할퀴고 하늘로 승천했다.
"장문인!!"
"경거망동 말라!!"
장로들이 담벼락에서 뛰어내렸으나 벽박자는 위태롭게 몸을 움직였다. 쪼개진 검을 버린 그는 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패배를 인정하오."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데 단 한 합이면 충분했다. 나는 벗어놓은 죽립을 다시 머리에 쓰고 망가지기 일보 직전인 철검을 집어 던졌다.
"패배는 당연히 인정해야 하는 거고,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소. 나의 검을 멋대로 훔쳐 간 죄! 당문에 이어 청성이 받아야 할 것이오."
나는 봉추검을 사방으로 겨눴다. 그리고 검을 한 곳에 놓았다.
"검은 다시 가져가겠소. 대신 청성의 꽃을 가져가지."
탕!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려, 청성파의 도복을 입은 여인을 냅다 어깨에 둘러멨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누구도 나를 쫓을 생각을 못 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여무사의 비명이 청성산을 울렸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외쳤다.
"으하하! 이 여자는 내가 가져간다!! 찾고 싶다면 쌍고검이 있던 곳으로 오너라!!"
나는 청성파의 여무사 한 명을 납치했다.
"그, 그만 만져! 손으로 엉덩이 그만 만지라고!!"
"화경과 현경 고수가 일 초를 겨룬 것에 대한 눈요기 값이다!"
"너 이러려고 나한테 변장시켰지!!!"
주물럭주물럭.
[작품후기]
쬬필살기 천룡승상참.
작가는 투베 4위 기념 3연참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