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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담, 사천에 서다
쌍고응검의 한쪽, 봉추검을 쥔 청성의 대제자-방도림은 오늘도 봉추검을 익숙하게 사용하기 위해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흐아앗!!"
앞으로 검을 내지름과 동시에 금빛의 봉황이 검에서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봉황은 날개만 펄럭일 뿐 나아가지는 않았다.
"이이익!"
아무리 검을 내질러도, 청풍검법의 상승 초식으로 검을 휘둘러도 소용이 없었다. 봉황은 내기를 탐하며 제자리에서 날갯짓했다. 마치 봉추검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젠장!"
방도림은 거칠게 봉추검을 휘둘렀다. 나무 허수아비는 사선으로 반듯하게 잘려 나갔고, 방도림은 자신의 검이 더욱더 매서워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용봉지회에는 무기의 제약도 없다.'
봉추검을 들고 가면 욕은 좀 먹을 것이다. 하지만 보검을 사용한다는 추문을 모두 덮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보인다면, 그리하여 구룡 중 으뜸이 된다면 다시 창천신룡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남궁패를 찾아가 비무를 벌여도 된다.'
구룡에 오른 이들은 4년간 온전히 구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용의 자리를 탐하는 수많은 뱀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며, 다른 후기지수에게 패배하여 스스로 용의 자리를 반납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방도림은 자신이 있었다. 이번 용봉지회에는 나가지 못했을지언정, 그는 4년의 세월 동안 창천신룡의 이름을 지켰던 남자다. 절치부심하여 싸울 수만 있다면 그에게도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봉추검과 함께라면. 그 누구도 그에게서 봉추검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설령 장문인이라고 한들-
"대사형!! 큰일입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방도림은 훈련장으로 달려온 사제를 조용히 나무란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검이 흔들리며 검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응?"
"대사형, 그, 그게. 자신이 봉추검의 주인이라고 하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뭐라?"
방도림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 검은 나의 검이다. 내가 발견한 내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뭐?"
"하, 하지만 그게...."
"쫓아내라! 자기가 봉추검의 주인이라고 주장해? 하! 성도에 유현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자만 벌써 기백이다!"
"사, 사제들이 전부 박살 나고 있습니다!"
콰앙---!!
훈련장 한쪽 담벼락이 무너졌다. 방도림은 무너진 담벼락 사이, 기절한 청년을 보며 봉추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사제!!"
"창천신룡 방도림! 드디어 만났군!!"
죽립을 써 얼굴을 가린 청년은 철검 한 자루를 움켜쥔 채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산적?"
죽립 아래에 보인 하관의 수염은 녹림의 사내를 연상케 했으나, 목소리는 분명 청년의 것이었다.
"순순히 봉추검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라!"
"미친놈. 이곳이 어디인지 아느냐? 대 청성에 감히 흙발로 들어오다니!!"
"그럼 산 타고 올라왔는데 흙발로 들어오지 버선발로 들어오랴?
"이놈!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짝이 없는 건 네 놈이고."
청년은 한 손을 방도림에게 뻗었다. 뭔가 술수를 부린다 싶은 순간, 그림자 몇몇이 튀어나와 청년을 에워쌌다.
"이놈! 감히 청성파를 습격하다니!"
"그것도 대낮에! 시건방진놈!"
"광오한 콧대를 꺾어주마!"
"장로님들!"
방도림은 장로들의 등장에 쾌재를 불렀다. 이제 놈은 자신이 숱한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날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들어오지는 못하는구나."
하지만 청년은 담담하게 말하며 방도림을 향해 걸을 뿐이었다. 세 장로는 청년의 움직임에 발을 맞춰 진을 유지할 뿐,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장로님들...?"
"이미 입구에서 벽치자 장로께서 당했습니다! 놈은 보통이 아닙니다!"
"벽치자 사숙께서?!"
부들부들. 갑자기 방도림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절정 고수가 당했다는 말에 놀라서 그런 건가 싶었지만, 긴장은 했을 뿐 이렇게 떨 이유는 없었다.
"대사형, 봉추검이?!"
"말도 안 돼...."
봉추검이 떨리고 있었다. 청년의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봉추검의 떨림은 심해졌다.
철컹!
방도림은 검집에 꽂아 넣은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청년을 향해 겨누며 소리 질렀다.
"이 검은 나의 검이다!"
"입 닥쳐라, 도적놈."
"뭐, 뭐라!!!!"
발걸음을 멈춘 청년은 죽립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관을 드러낸 그는 방도림을 향해 대놓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감히 나의 검을 가져가 놓고 그런 망발을 지껄이다니. 주객전도로구나."
"나, 나의 검이라고...?"
"네 놈이 그리도 얻고 싶어 탐이 난 소열제의 무공. 그것의 주인이야말로 진정한 검의 주인이 아니겠느냐?"
철컹.
청년은 자신이 든 철검을 아래를 향해 찔렀다. 돌로 된 바닥에 철검이 꽂히자 장로들은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섰다.
"도림아! 조심해라! 이 놈은 진짜로 위험하다!"
"정말로...검의 주인?"
"정신 차려! 놈은 청성을 습격한 놈에 불과하다!"
장로들은 서로 호통을 지르며 전의를 불태웠다. 설령 진짜로 검의 주인이라고 한들, 그가 멋대로 청성을 습격하여 제자들을 공격한 건 변함이 없었다.
"청풍만상진을 펼쳐라!"
가장 배분이 높은 장로의 말에 다른 장로들이 한 걸음 더 물러서며 검을 들어 올렸다. 방도림 또한 장로들과 함께 검진에 들어와 봉추검을 겨눴다.
"놈! 죽기 전에 유언은 없느냐!"
"아무래도 내가 진짜로 주인이라는 걸 믿지 못하는 모양인데...."
청년은 빈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오너라, 봉통!"
순간, 방도림의 손에 있던 검이 금빛을 터뜨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아악!!"
손바닥에서 느껴진 뜨거운 기운에 방도림은 그만 검을 놓쳤고, 하늘로 솟구친 봉추검은 청년의 손에 착지하듯 손잡이부터 떨어졌다.
"이기어검?!"
"사술이다!"
"사술처럼 보이느냐?"
스스로 청년의 손으로 돌아간 봉추검이 빛나기 시작했다. 청년을 중심으로 날개를 접은 봉황은 오연한 눈빛으로 사방을 내려다봤다.
"보아라! 이것이 용제검의 진정한 힘!"
쌍검을 겹치듯 들어 올린 청년은 호통을 내질렀다.
"낙봉파!"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봉황이, 아래로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파사사삭--!!
금빛의 날개가 땅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 * *
"하아...."
하오문의 기녀, 서희는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힘겹게 붓을 들어 올렸다.
"나쁜 사람."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진득하게 범해지고도 하루가 지났건만, 아직도 다리가 저려 움직이기 어려웠다. 중간에 자신이 기절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로 남자의 거근에 복하사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
범해졌다고 표현은 했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기루에서 만난 남자들 중에 최고였고, 다시 하라고 하면 몸과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런데도 '범해졌다'고 표현하며, 그의 용모파기를 그리며 '격살'이라는 말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감히...돈도 안 내고 도망쳐?"
기루 최고의 미녀 서희를 상대로 소위 '먹튀'를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기루에 들어올 때 선입금한 것으로 대금을 치르기는 했지만, 일류 이상의 기녀들이 다들 그렇듯 남자로부터 직접 받는 부수입이 제법 짭짤했다.
"나를 따먹었으면 돈을 더 내고 가야지!"
그렇다. 서희는 부수입을 얻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분개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서희에게 부수입을 주지 않고 그걸로 다른 기루에 가서 회포를 푼 바람에 서희는 인근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 서희 그년, 그렇게 남자들 많이 잡아먹더니 상대 제대로 만났네. 꼴좋다.
- 임자 만난 거지. 맨날 남자들 기가 빨려서 나오느라 다시는 찾지 않았잖아.
- 밤일이 뛰어나고 몸이 좋으면 뭐 해? 남자들 다 잡아먹는 귀신인데.
"이 년들이...."
서희는 주변에서 들린 소리에 울분을 참지 못했다. 물론 서희가 많은 남자를 며칠간 남자 구실 못하게 만든 전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한 명에게 밤일로 패배한 것을 계기로 튀어나오는 숱한 모욕에 울화가 치밀었다.
"다 죽여버릴까...."
"언니, 손님 오셨어요."
"뭐? 손님?! 누구야, 그 새끼니?!"
"...접니다, 누님."
밖에서 들린 진중한 목소리에 서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병약한 듯하지만 제법 훤칠한 청년은 서희와 마주 앉았다.
"술상을 들일까요?"
"누님, 예전처럼 편안히 말씀하십시오."
"제가 사천당문의 분께 어찌 그러겠습니까."
"누님도 당문의 사람입니다. 독귀 백부님께서 비록 호적에서 파냈다고는 하지만, 여기에 당가의 피가 흐르지 않습니까?"
당가의 도련님, 당건면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서희는 쓰게 웃으며 차를 우려내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말하지 마십시오, 도련님. 저 같은 창녀가 당가의 일원이라고 한다면 독선께서 노하실 겁니다."
"창녀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아뇨. 맞아요. 살 섞는 게 좋아서 스스로 몸 파는 기녀가 된 여자일 뿐이랍니다. 도련님께서는...."
서희는 비릿하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설마 저를 안기 위해 온 건 아니시지요?"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후후, 농담이에요. 그러면 저 말고 다른 여인을...?"
"누님! ......하아, 아닙니다. 제가 찾아온 이유는 누님과 상담을 하기 위합입니다."
당건면의 말에 서희는 난감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하오문의 사람인 걸 아시죠? 가문 내의 일을 누설하면 크게 낭패를 당하실 거예요."
"하지만 누님 말고 제 고민을 들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이정 형님도 없는 마당에...."
"......."
서희는 차를 홀짝이며 눈을 감았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해보렴. 내 앞에서 이정 오라버니를 언급한 이유가 뭐니."
"형님이 돌아오신 것 같습니다."
"...뭐?"
까득. 서희가 움켜쥔 찻잔에 금이 갔다.
"그럴 리가 없어. 오라버니는 분명...."
"예. 가문을 떠나셨지요. 그런데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과 어르신들은 다 쉬쉬하지만, 저는 정황을 다 알아냈습니다. 이정 형님이 잠시 가문에 돌아오셨다는 것을."
"그, 그럴 리가. 그 사람은...아니, 왜 온 거야? 뭘 확인하려고?"
서희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당건면은 불안해하는 서희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형님께서는 이미 소열제의 무공을 습득하신 듯합니다."
"그럴 리 없어. 오라버니는 그냥 거기에다가 보물 지도를 넣었을 뿐이야."
"하지만 오셨습니다. 소열제의 무공을 가지고."
뚝. 당건면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제가...방도림과 정조 사태가 있는 자리에서 그걸 꺼내는 바람에, 흐끅, 그로 인해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해, 흑, 직접 오셔서 두 검을 회수하려고 오신 겁니다. 자기가 용제검의 주인이라면서. 흐끅."
"자, 잠깐만. 그게 말이 돼? 지금 오라버니가 사천에 계신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쾅!
방문이 좌우로 열렸다. 기녀 한 명은 다급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뭐야?"
"서, 서희 언니! 청성파에 난리가 났어요!"
"난리?"
"쌍검의 주인이라는 자가 검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대요! 그런데...."
기녀는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입구를 지키는 제자들부터 대제자까지 모두 당했어요! 심지어 장로급 고수도요!!"
"......!!"
청성산에서 전해진 소식이 성도 안을 순식간에 들썩거리게 했다.
* * *
"으하하하! 청성이 고작 이 정도라니!"
금빛의 용이 하늘로 솟구친다. 금빛의 봉황이 날개를 펼치며 날아드는 단검을 튕겨낸다. 무공이지만 무공이라고 볼 수 없는 사이한 힘에 청성의 무인들은 현실을 부정했다.
"사술이다! 우리를 현혹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황룡을 부릴 수 있단 말이냐!"
"저것은 모두 눈속임이다! 그래, 환마야! 저놈은 환마같은 존재다!!"
당장 검을 맞부딪히는 장로들이 먼저 현실을 부정했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대결에 넋이 나가 있던 제자들 또한 장로들의 말을 믿었다.
"현실을 외면한 어리석은 놈들!"
단 한 명의 검사가 검 두 자루로 청성파 전체를 유린한다는 현실이 믿고 싶지 않았다. 청년은 열두 장로의 합격진 속에서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은 채, 쌍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장로들과 검을 맞부딪쳤다.
콰득!
황룡이 벽주자의 검을 깨물어 으깼다. 봉황이 벽지자의 검을 발톱으로 움켜쥐어 깨부쉈다. 청년을 지키듯 은은하게 빛나는 두 마리의 환수(幻獸)는 소열제의 의형제처럼 든든하게 청년의 좌우를 지켰다.
"이런...말도 안 되는...."
털썩. 이미 검진에서 쫓겨난 방도림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자신의 손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던 봉추검이 짝을 찾은 비익조처럼 날개를 펄럭거렸다.
"이, 개 같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무인에게 아양을 떨며 교태를 부리는 것 같아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과 그리 나이 차도 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 청성의 12장로를 상대로 맞서 싸우는, 아니 압도하는 모습에 자격지심이 일었다.
죽여버리자.
방도림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살의와 질투심은 그의 자아를 가득 채웠고, 오직 눈에는 죽립 아래에 보이는 청년의 비웃음만이 보였다.
"멈추거라."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어깨를 눌렀다. 방도림은 천근과도 같은 무거움에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장문인이다."
방도림을 뒤로 물린 청성의 장문인, 벽박자는 철검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장로들이 일제히 좌우로 흩어지며 길을 열었고, 청년은 벽박자를 향해 정면으로 쌍검을 쥐었다.
"실례가 많았소, 장문인."
"......실례인 걸 알면서도 굳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야 저자가 내 검을 가져갔으니까. 나는 도적에게서 내 물건을 되찾으러 온 것이지, 청성의 도사들과 검을 논하러 온 것이 아니오."
"대관절 그대가 누구기에?"
"나? 흐흐."
청년은 죽립을 봉추검의 끝으로 슬쩍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을 본 벽박자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서, 설마...!"
"그렇소. 나는...."
사락.
죽립을 벗어던진 청년은 자신의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소열제의 후예! 유붕! 자는 검담(劍淡)이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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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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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줄여서 유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