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74화 (7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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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이시아

천마 이시아.

자신과 띠동갑 가까이 차이가 나는 친오빠 대공자를 죽이고 천마의 자리를 이은 흑도 제일의 천재로, 30세가 되기 전에 그녀는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

후계자 대결에서 승리한 그녀는 대공자를 지지하던 지린삼마를 모두 죽이고 야인삼마도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죽여, 새로이 자신을 지지하는 십마를 뽑아 기강을 바로 세웠다.

하지만 이미 대공자가 벌여놓은 악행은 새로운 천마의 탄생으로 수습할 수 없었다.

수많은 문파에서 벌어진 재앙의 근원은 모두 대공자였고, 이시아는 여동생이자 가족이자 당대의 천마로서 거대한 흐름에 탈 수밖에 없었다.

정마대전.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정마대전에서 이시아는 천마로서 최전방에 서서 싸웠다. 호적수인 무림맹주를 상대로 서로 몇십 번을 치고받고 싸우며 상승의 경지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중에 혈교의 발호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나는 혈강시로서 이시아를 죽였다.

그녀를 범하고 그녀의 피를 머금어 천마신공을 깨우쳤다. 그리하여 내 몸 안에 새겨진 천하오대고수 중 한 명이 바로 <천마 이시아>다.

그녀가 사용하는 모든 무공에 대해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네? 궁금하지 않아요?”

...하지만 내 눈앞의 ‘이시아’는 달랐다. 기억 속 천마의 과거라고 한들, 과거의 존재가 미래의 존재와 같을 리가 없다.

“새삼스럽군. 소공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둘만 있을 때는 시아.”

소공녀는 볼을 부풀리며 나를 젓가락으로 겨눴다.

“지금 우리 둘만 있으니까 시아라고 부르세요. 소공녀 명령입니다, 비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명령이 아닌데.”

“시끄러워요. 소천마가 하라면 해야지 말이 많아!”

“...맞는 말이군.”

나는 소공녀-이시아의 젓가락 위에 만두를 살짝 올렸다.

“사람은 술 마시면 개가 된다더니, 그대는 개가 아니라 현자가 된 것 같군.”

“그렇습니까? 그래서 저는 취한 걸까요, 아닐까요?”

“천마는 술 따위에 취하지 않소. 하지만 이렇게 취한 모습을 보이는 건….”

가능성은 두 가지. 취한 척을 하거나, 진짜로 내공을 전부 풀어버리고 취기에 몸을 맡겼거나.

“...진짜로 취했군.”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사실 어느 쪽이든 딱히 상관없소.”

전자라면 간사한 불여우 짓이고, 후자라면 나를 미치게 할 작정이다. 천마의 딸이라는 자가 ‘나를 온전히 믿고’ 내기의 운용을 풀어버린 셈이니까.

‘내가 대공자의 사람이면 진짜 어쩌려고.’

분명 의심은 했을 것이다. 정체불명의 색마에 대해 몇 번이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믿고 자신의 신변을 내게 의탁했다. 내가 그녀의 옆에서 동침하던 순간에도 내공을 운용하던 사람이 나라는 짐승을 앞에 두고 제대로 술에 취했다.

“그대가 아무리 고주망태, 인사불성이 된다고 한들 나는 그대를 지킬 것이오. 그러니 마음 놓고 술을 즐기시오. 천산에 가면 마시기 힘든 술이니.”

“피, 아주 잘나셨어.”

이시아는 오량액을 술잔 가득 채워 한 모금 들이킨 뒤 잔을 상 위에 올렸다. 방금 전까지 기가 펄펄 끓어 넘치던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비천. 진정으로 저를 가지고싶습니까?”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군 그녀는 빈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다음 천마가 될 겁니다. 그런 여자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십만마인의 표적이 되겠지. 여자 천마의 첫 번째 남편이 되어도 유분수인데, 여자 천마를 여러 아내 중 한 사람으로 들이려고 하니.”

“제 추종자들이 전부 들고일어날 겁니다. 수많은 마인 들이 저를 당신에게서 빼앗기 위해 난동을 부릴 겁니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면 애초에 벌이지도 않았소.”

나는 이시아의 잔에 술을 다시 채웠다.

“감히 나의 것을 탐하려고 드는 자가 있다면 목숨마저도 빼앗을 것이오. 설령 상대가 맹주, 천마, 신선이라고 할지라도.”

“각오는 충분한 것 같군요. ...좋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

이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상을 두고 마주 보던 우리는 졸지에 바로 옆에서 서로의 숨결이 닿는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저를 왜 가지고 싶어 하시는 거죠?”

“예뻐서.”

우문즉답.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에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시아의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가슴 빼고 모든 걸 가진 여자. 그런 존재를 내가 가지지 않는다면 누가 가질 수 있겠소? 이 대륙, 이 세상에 오직 나만이 그대를 품을 수 있소.”

“상당히 시건방진 말씀을 하시는 군요? 저는 아직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요, 물론이죠!”

“.......”

내 기억 속 천마는 죽어가던 와중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의 잔을 다시 채웠다.

“마십시다.”

“이럴 때는 예의상이라도 더 커질 수 있다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헛된 희망을 품게 하는 건 공허한 울림일 뿐이지.”

이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술을 다시 벌컥 들이켰다. 양손으로 잔을 잡고 마시는 모습에 나는 괜히 걱정되어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넘어질라.”

“은근슬쩍 잡는 거면서.”

“일석이조지.”

“하여튼 말하는 거하고는.”

툭. 이시아는 내 어깨에 고개를 놓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표정 없이 나를 관찰하는 눈빛은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따가웠다.

“비천,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알고 있소.”

“하지만 제겐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이시아는 허벅지 위에 올려둔 내 손을 다소곳이 붙잡았다.

“당신의 정체, 당신의 과거,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필요한 건 단 두 가지. 당신의 힘. 그리고 당신의 충성.”

“이시아.”

나는 이시아의 손을 들어 왼손 약지에 다시금 입을 맞췄다.

“나는 그대의 지아비가 될 사람이오. 내 아이의 어미를 위해 온 힘을 헌신할 수 있지만, 나의 충성은 강요할 수 없소.”

“그럼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당신의 여인이 된다는 가정하에 묻는 것입니다만, 실제로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가 차서 여쭤보는 것입니다만, 저처럼 모든 걸 다 가진 흑도제일의 미녀를 두고 기녀랑 놀아나고 아미파 장문인이랑 관계를 맺고 다니는 건 뭐죠?”

“그건 그대를 너무나도 아끼니까 그런 것이오.”

가장 아픈 곳이 찔렸으나, 나는 미리 준비해둔 방패로 이시아의 칼날을 튕겨냈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라서 일부러라도 안 빼주면 내가 그대를 덮칠 것 같거든.”

“몸을 가지기 전에 마음부터 가지겠다? 그런 사람이 저를 알몸으로 만들고 엉덩이를 주무르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려고 하셨습니까?”

“그게 다 마음을 가지기 위한 수단이다 이거지.”

“......푸흡, 그래요. 알겠어요.”

이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내 품에 고개를 묻었다. 정수리 두피까지 잔뜩 붉어진 이시아는 이마를 내 어깨에 대고 그대로 속삭이듯 말했다.

“방으로 돌아가서 눕고 싶어요.”

“.......”

나는 이시아를 부축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과 방은 그다지 멀지 않았고, 마침 점소이 말고는 아무도 우리 근처에 없었다.

저벅, 저벅.

나는 이시아의 허리를 붙잡고 앞으로 걸었다. 그녀는 내 걸음에 맞춰 비틀거리듯 따라와 걸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따스하게 데워진 방은 술기운 때문인지 다소 더웠고, 나는 곧장 이시아를 침대에 눕혔다.

“으으응….”

이시아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백옥같은 피부가 드러났다.

“.......”

이시아는 흐트러진 자세로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한숨을 크게 내쉰 뒤, 고개를 내려 나의 양물을 살폈다.

‘터졌네.’

바지가 터졌다. 술기운 덕분에 한창 끓어오른 양기가 남근에 모이는 바람에 바지가 터져 아래가 불끈 솟아있었다.

‘그렇게 빼고 뺐는데도 아직 이 정도로 서다니.’

나는 새삼 이상했다. 천마 이시아는 한 번 내가 취했던 여인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까.

단지 여인의 처녀를 취한다는 것 때문에?

아니다.

‘단지’가 아니다.

‘내가 모르는 이시아.’

사공희의 경우와는 다르다. 미래에서도 현재에서도 처녀를 가졌던 태극검후와는 달리, 나는 미래에서 그녀에게 동정을 줬으나 그녀의 처녀는 가지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꼴리는 여자가 누군지 아느냐? 바로 먹지 못하고 지나간 인연이다.

'처녀 이시아.'

불끈불끈.

더는 참을 수 없다. 나는 일단 이시아의 위에 올라타 그녀를 내려다봤다. 천마 숙면 대법으로 일정하게 몰아쉬는 숨은 그녀가 그사이에 잠든 걸 증명하고 있었다.

"하아아…."

이시아의 숨결에서 진한 술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잠든 여자를 취하는 건 괜찮은데, 그래도 처녀를 잠든 사이에 훔쳐 가는 건 실례지. 특히 그게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진 여자라면. 한 번 먹고 치울 여자라면 모를까, 평생 함께할 여자를 상대로 그런다? 으으, 그건 좀.

혈교주와 혈교주가 싸우기 시작한다. 혈식대법과 귀혈수라검으로 맞서 싸우는 혈교주 둘의 전투는 끊임없이 나를 갈등하게 했다.

-남자 앞에서 술 마시다 곯아떨어졌으면 끝난 것이다!

-그렇게 건드렸다가 패가망신하는 놈들이 어디 한 둘이냐!

-어차피 좆대로 사는 인생인 것을!

-그래도 첫날밤을 술 먹이고 의식 없는 중에 치르는 건 예의가 아니야!

갈등은 계속된다. 색을 탐해야 하는 색마와 소공녀에게 충성하는 비천이 서로 갑론을박하며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럴 때 스승님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나의 스승님.

비록 말주변은 부족했지만, 항상 옳았던 그분.

'스승님,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주시오.'

그분이 이 상황을 보았다면 분명 이리 말씀하셨을 것이다.

-너는 언제까지 여인을 부끄럽게 할 참이더냐.

“......!!”

순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던 윤리의식과 비천색마가 전부 날아가고 나니, 내 눈에는 한 명의 여인만이 보였다.

두근, 두근.

자고 있는가? 아니다. 자는 게 아니라 자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술에 일부러 취했나? 그건 맞다. 본인 스스로도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을 마신 것이다.

“하...미치겠네.”

제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기를.

미래의 이시아에 대한 나의 안목을 바탕으로, 지금의 이시아가 내게 보인 행동들의 결과가 내게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자는 사이에 처녀를...나는 당신을 믿었는데!!

-크헤헤, 색마를 믿은 네 잘못이니라!

-쁘에엥, 아빠아아아!!

-누가 나의 딸을 술 처먹이고 겁탈했느냐!!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과가 일어나지 않기를.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되뇐 다음, 결정을 내렸다.

‘가진다.’

사공희의 처녀를 가질까말까 수도 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꼴려서 참지 못했던 날처럼, 나는 결국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소공녀, 미안하오. 나는-”

“씨발, 존나 뜸 들여서 못 참겠네.”

“응?”

와락. 아래에서 뻗어진 손이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야, 누워.”

“소, 소공녀?”

“이시아라고 부르라고 했지.”

휘릭!

이시아와 나는 순식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눈 깜짝할 새 내 배 위에 걸터앉은 이시아는 머리를 정돈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덮치라고 대놓고 말해야 알아듣습니까? 숫총각도 아닌 사람이 눈치가 왜 이리 없습니까?”

“아니, 누,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는 좀 더-”

“닥치세요. 소공녀 명령입니다.”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이시아 같은 미인이 자신의 검지로 입술을 지그시 누르는 데 입을 열 남자는 없을 것이다.

“나 참. 그냥 자지를 보지에다가 박고 푹푹 찌르다 싸기만 하면 끝나는 걸 뭘 그렇게 어렵다고 자기가 걱정하는지.”

“.......”

호쾌함에 지려버릴 것 같았다.

“서로 알몸도 봐, 몸 만지는 건 예사야, 거기에 이렇게 침대도 같이 써. 소림사 스님도 여기까지 오면 바로 파계하겠다고 할 겁니다.”

“.......”

덮치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내 멱살을 잡았다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말 한마디만 하고 범하려고 했다고 한들 변명밖에 되지 않고, 강호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건 한 둘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줘도 못 먹은 멍청이가 되는데-

"너, 그냥 아무것도 하지마. 내가 알아서 다 해."

‘그냥 줘도 못 먹은 병신하자.’

눈앞의 이시아에 천마 이시아를 투영하려고 했던 내 패배다. 어린 이시아는 훨씬 더 행동이 직선적이고 막힘이 없었다.

"뭐? 마음을 가지기 전에 몸을 가지지 않는다고? 허. 그래, 그러세요. 당신 의견은 존중하고 지켜는 드릴게. 대신."

-잘 들어라. 아내가 먼저 하자고 할 때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꿀꺽.”

"당신이 나를 가지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가지는 겁니다. 당신은 내 비천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내가 되기 전의 여인이 하기를 원할 때, 네가 세워야 할 건 자존심이 아니다.

"너는 입 닥치고 좆이나 세워."

이시아의 패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후기]

패도!

시아 소저에게는 미안한데 구천현녀 일러 러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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