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73화 (7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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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고생하셨소."

"하아, 하아, 하아."

지친 서시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은 내가 더 많이 사용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거친 짐승의 정욕을 받아내야 했던 그녀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며 체력을 많이 소진했다.

꿀럭. 미약한 호흡과 함께 동굴 안에서 질척거리는 백탁액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녀의 속에 흘러내리는 나의 정을 비단으로 잘 닦아냈다.

"그대로 두시게...."

서시는 눈물 젖은 눈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지어 하반신마저 살짝 들어 올리며 흘러내리지 않게 막았다. 나는 그에 다시 손가락으로 비단에 묻은 내 흔적을 닦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영계 잡아먹으니까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드시려고?"

"잡아먹힌 영계가 할 소린 아니지 않나?"

"허, 누가 잡아먹혔다고?"

나는 아직도 꼿꼿하게 선 양물로 서시의 꽃잎 주변을 훑었다. 서시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기대감을 내비쳤지만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

"미안하네. 젊은이의 혈기를 이길 수는 없었군."

"내가 당신을 범한 것이오, 서시."

"흐흥...어린 색마에게 따먹힌 것도 제법 괜찮군. 하지만 역시 자주는 만나지 못하겠어."

서시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노쇠한 암사자가 사냥감을 노리는 눈빛에 나는 괜히 등허리가 짜릿하게 울렸다.

"10년만 젊었어도 그대를 내 곁에 가두고 두고두고 취하는 건데."

"흥, 그건 침대에서 나를 기절시켰을 때 얘기지. 어딜 젊은 청년 앞길을 가로막으려 드시나?"

"내 보지로는 그대를 붙잡을 수 없으니 아쉬워하는 거 아닌가?"

"어우, 상스러워라."

나는 양물로 그녀의 꽃잎을 찰싹 때렸다. 충격으로 안쪽에서 국물이 흘러나오는 것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허겁지겁 몸을 비틀었다.

"너무하군. 그래도 이 몸은 한때 아미봉으로 불렸던 여인일세. 나를 취한 걸 영광으로 알라 이 말이야."

"겁탈당하고 싶어서 아미봉이 되셨던 게 아닌가?"

내 말에 서시는 시선을 피했다. 육봉은 후기지수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노리는 온갖 추악한 손길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만 한다.

"아미봉이 되어 범해진 게 아니라, 범해지고 싶은 명분을 찾다가 아미봉이 되었지."

"......흐흐, 어디 가서 말하면 어떻게 될까?"

"어허, 우리는 색붕이 아닌가? 서로 입을 꾹 다물고 즐길 것만 즐기도록 하지."

나는 상체를 숙여 서시의 입을 덮었다. 역시 숙녀답게 설육을 탐하는 솜씨가 진사월보다는 못해도 수준급이었다.

츄릅.

질펀하게 정사를 나눴음에도 더하기를 바랐지만, 시간은 더는 우리의 친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서시와 내 입술 사이의 투명한 실선을 엄지로 훔쳐 그녀의 입술에 문질렀다.

"크흐, 내가 30년만 더 일찍 태어났으면 그대의 처녀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

"흐흐,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그대는 평생 나만 보고 살았을걸?"

"왜, 어디 당신만 아는 감옥에 가두게?"

"못할 것도 없지. 아미산은 아미파의 영역이니까. ...끙, 예전 같았으면 두 다리로 못 떠나게 휘어잡을 텐데."

서시는 자신의 나이 든 육체에 격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와 서시 사이에 있는 시간의 간극은 메우기에는 그녀가 다다른 경지가 아직 높지 않았다.

"무당에 반로환동을 한 초고수가 있다고 들었는데...하아. 나도 반로환동을 하고 싶군."

"왜, 신진 여고수인척 천하를 주유하시려고?"

"나쁜 것도 없지. 무림초졸인 척 나섰다가 녹림의 산채에 붙잡히기라도 하면...흐흐."

나로 치면 아미파 여문도들에게 붙잡혀 살아있는 각좆이 되는 셈일까. 망상으로 가득한 서시를 향해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나는 그녀의 들끓는 색기를 진정시켰다.

"자중하시오. 그런 걸 진짜로 당하면 정신이 붕괴될 걸?"

"그래도 한 번 즈음은 해보고 싶지 않나?"

"......색마들이 감당 못 하고 도망친 이유를 알겠군."

"색마들이 나를 범하지 않았다면 평생 이 재미를 모르고 살았겠지. 이건 색마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일세."

탄식이 하늘을 가린다. 나중에 비천색마가 사천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괜히 아미파의 습격을 당하는 게 아닐까 괜히 걱정이 들었다.

'나중에 범해달라고 찾아오는 건 아니겠지?'

색마를 잡는 천라지망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겁간을 당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의원님, 내 몸은 아직도 쓸만한가?"

"물론. 제자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아니지, 당연히 스승이 더 성취가 높으니 당연한 건가?"

"...참 된 색마."

서시는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직 어린아이다. 결혼할 거 아니라면 마음은 가지고 놀지 마시게."

"물론이지."

결혼하고 애를 낳게 할 거라면 마음을 가지고 놀아도 되는 건가.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근데 그쪽도 참 대담하군. 아직도 양물을 세워놓은 남자가 앞에 있는데, 그렇게 엉덩이를 살랑살랑 거리며 나신으로 다녀도 되는 건가?"

"색을 탐하는 벗끼리 뭐 어떤가?"

서시는 속옷을 그대로 챙겨입었다. 나는 아직 완전히 빼내지도 않고 속옷을 입는 그녀의 행동에 흠칫 놀랐다.

"흐르잖아."

"아껴서 잘 보관해야지. 의원께서 주신 보약인데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되겠는가?"

"말은 참 번지르르한데, 그러고 계속 지낼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젊은 친구 양기를 이렇게 한가득 받았는데 어떻게 빼낼 수 있겠나? 나 즈음 되면 따로 보약 같은 건 필요 없어. 이게 영약이야, 영약."

자신의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는 서시는 마저 옷을 챙겨입었다. 방금 전까지 침대에서 좋아 죽던 여인이 순식간에 아미파의 장문인으로 탈바꿈하자, 나는 기가 차고 코가 막혔다.

"피부 반들거리는 거 보소."

"말했잖나. 영약이라고. 이런 게 바로 채양보신이지. 후후."

서시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지만 나는 괜히 뜨끔했다. 물론 서시를 상대로 채음보양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 그냥 평범한 의원 나부랭이일 뿐이니까.'

괜히 채음보양을 했다가 코가 꿰이기라도 하면 진짜로 아미파에 붙잡히게 된다. 천하를 주유해야 할 몸이 머리 기른 여승들의 사이에 갇혀 헤어나오질 못하게 된다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꽃들에게 민폐이며 실례가 되는 일이다.

'재미는 다 봤으니 이제 떠날 때.'

나 또한 옷차림을 정돈하고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방에 처음 들어올 때처럼 옷을 단정이 정돈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응접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호위무사, 소공녀가 우리를 향해 허리를 공손히 숙였다. 나는 류서시-아미파의 장문인에게 마찬가지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의원님. 다음 용봉지회에...아니, 혹시 이봉결정전에 '오시는' 지요? 제 제자들, 정조와 정자 둘이 참가할 예정입니다."

"이봉결정전이라...."

장문인은 초대장을 건넸다. 나는 그녀가 내미는 손을 맞잡으며, 새끼손가락을 살짝 굽혀 손바닥 안쪽을 간질였다.

"다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는 자가 바로 무붕입니다."

"......훗."

우리는 아미파 장문인의 배웅을 받으며 아미산을 빠져나왔다.

* * *

성도.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 시기였고, 나와 소공녀는 술과 함께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이제 알겠네요, 아미파에 왜 염마가 없다고 한 지."

소공녀는 내 잔을 넘칠 정도로 가득 채웠다. 혹시나 넘칠까 괜히 노심초사했지만, 소공녀는 정확히 술이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잔을 채웠다.

"직접 만나봤으니까. 그리고 그들에게서 염마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그렇소. 살까지 섞어봤으니,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실례하겠습니다."

객잔 내에서 유일하게 실례가 가능한 존재, 점소이가 우리의 상 위에 주식을 올렸다. 큼지막한 뚝배기 위에 큼지막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오골계는 온갖 삼과 함께 푹 익어있었다.

"고맙소."

"숙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날 손님 여러분께 실례가 많아,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필요는-"

점소이를 만류하려던 소공녀는 점소이가 뒤에 꺼내든 붉은 호리병에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닫았다. 나는 알싸하게 풍겨오는 향에 벌써 흥이 나기 시작했다.

"오량액(五粮液)인가?"

"예. 오량액 중에서도 숙수께서 직접 담군 오우량액(五優粮液)이라고 합니다. 따로 값은 받지 않습니다. 그럼 맛있게 즐겨주십시오.."

점소이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오우량액의 마개를 열어젖힌 다음, 옆에 놓인 새로운 술잔에 조금씩 술을 따랐다.

"내가 이래서 비싼 곳을 좋아한다니까."

"세상에...저 술이 얼마나 비싼 건데 공짜로."

"천산에서도 이런 건 얻기 힘들지 않소? 정확히는 천마가 다 먹어 치우겠지. 흐흐."

천마란 자고로 주색에도 능통해야 한다. 아직 색에는 능숙하지 못한다고 한들, 소공녀는 주(酒)에 있어서만큼은 본인의 무공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십시다. 사천까지 왔는데 이걸 안 마시면 섭섭하지."

"와...."

소공녀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잔을 받아들었다. 소공녀와 만난 이래 가장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괜히 더 기뻤다.

"그렇게 좋소?"

"술도 좋고, 함께 먹는 음식도 좋고, 함께 마시는 사람도 좋고.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는데 제가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크흠."

오량액을 마신다는 즐거움 때문일까? 소공녀는 내 얼굴에 금칠하는 걸 서슴지 않았다.

'염마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는데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글렀나.'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데 기분을 잡치게 할 이야기를 하는 건 좋지 않다. 나는 소공녀와 잔을 한 번 부딪히고 술을 들이켰다.

"...크으."

목천장부터 뱃속까지 끓는 게 진짜로 독에 몸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따갑다. 그건 소공녀도 마찬가지인지, 눈을 찡그리며 독주의 짜릿한 맛을 즐기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비천. 염마는 누구예요?"

"응?"

"아미파에도 없으면 청성인가요? 벽박자? 그도 아니면 창천신룡? 아니면 청성의 장로들? 어디보자, 벽박자 말고 비슷한 항렬에 있는 사람들을 나열해보면-"

"그, 그만."

나는 소공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소. 청성파는 머리 아프게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남정네들을 머릿속에 넣으려고 하지 마시오."

"네에? 하지만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그 쓰레기 자식을 따르는 염마를 알아내지 않겠어요? 으응...청성에는 장로가 12명 가까이 되던데, 1장로는-"

"알 필요 없소. 다 잊으시오. 놈들은 염마가 아니니."

"으에."

소공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째려봤다.

"닥치세요, 비천. 제가 지금 이 똑똑한 머리를 써서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잖아요?"

"아니, 잠깐만. 지금 취했소?"

"네? 취하다니요. 아하하! 제가 술에 취할 리가 없잖아요?"

취한 게 확실하다. 언제나 딱딱한 말투를 견지하려던 소공녀가 나를 편하게 대하는 말투부터 취했다.

"하항, 일단 청성은 우선순위 일 위. 하지만 비천의 반응을 보면 청성은 아닌 것 같고.... 청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답은 하나뿐인데."

"어디일 것 같소?"

"하오문?"

소공녀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답 대신 그녀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답을 얘기하리다. 이미 그대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니. 그렇소. 청성에는 염마가 없소."

"그렇죠? 그럴 것 같았어요. 애초에 염마가 청성에 있었으면 멀리 아미파도 갈 필요 없이 청성부터 갔을 테니까."

"...취한 거 맞나?"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 평소보다 몹시 가볍다. 아무리 술에 취해 몸이 들뜨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들, 술에 취해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떠드는 여자는 처음 본다.

'아니, 애초에 내가 여자랑 술을 마신 적이 그다지 없기는 하지.'

기녀들과 마실 때는 그들이 아양을 떨기 일쑤였고, 사공희는 나를 섬기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있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소공녀는....

"정보가 하나로 모이는 곳! 세 세가의 이야기를 한 곳에서 들을 수 있는 곳. 동시에 명문정파보다 잠입하기 훨씬 쉬운 곳. 이것 저것 따져보면 역시 하오문이네요. 와, 염마는 하오문에 있다-"

소공녀는 두 팔을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웃던 그녀는 표정을 싹 지우며 내게 물었다.

"하오문, 지금 박살 내러 갈까요?"

"......진정하시오."

이 여자, 주당인 줄 알았는데 술주정이 상당하구나. 나는 소공녀의 새로운 면을 본 것에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던 소공녀는 십만마인을 이끄는 집단의 우두머리였건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소공녀도 알다시피 하오문은 점조직이오. 기루를 덮친다고 한들 낭인들 사이로 숨어버릴 것이며, 도망에 도망을 거듭하며 숨어버릴 테지."

"어차피 쌍검 소동 정도는 단순한 사건 정도로 치부하고 작전을 벌이면 되니까? 칫, 그냥 튀어나올 것이지."

소공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잔을 비웠다. 계속 술잔을 채워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내 손은 잔을 채우고 병 위에 비단 덮개를 씌우고 있었다.

"좋아요, 비천. 술 깨면 우리 염마 찢어 죽이러 가요. 네에? 네에에에?"

"......끙."

더 주자. 나는 잔을 비우고 다시 잔을 채웠다.

"나중에 술에서 깨고 나면 자신을 죽이고 싶어지지 않을까?"

"아하하!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제가 말하는 모든 걸 알고 있는걸요. 또렷한 정신으로."

소공녀는 붉어진 얼굴로 나를 직시했다.

"지금 제가 술에 취한 것처럼...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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