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71화 (7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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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아미파!

사천성 남서쪽에 있는 아미산을 본거지로 하는 문파로, 빠르게 점멸하듯이 검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난파풍검법처럼 표홀한 것이 아미파 무공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다른 문파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성별'일 것이다.

"장문인부터 제자까지, 문파의 요직을 차지한 사람 중 여자의 비율이 엄청 높지."

"여자만 있는 게 아니고요?"

"그건 세간의 편견이오. 엄밀히 따지면 남자도 아미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소. 자격은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이미 아미파는 여자들의 문파가 되어버렸지."

"사문화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아미파는 오랜 기간 여자들이 문파의 이름을 떨쳤고, 세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여성들의 문파'가 되어버렸다. 그에 따라 자연히 남자 제자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줄어들게 되었다.

- 남자가 왜 아미파에 들어가?

라고 하는, 편견이 아미파의 성별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든 것이다.

"소공녀, 그대가 만약 내 아이를 낳아 사천성의 백도 문파에 들인다고 칩시다. 그럼 어느 문파에 넣겠소? 사천당가와 혼인을 맺게 하겠소, 아니면 청성이나 아미로 보내겠소?"

"왜 제가 당신의 아이를 낳는다는 가정인지는 넘어가도록 하죠. 좋습니다, 저는 남아면 청성, 여아면 아미에 넣겠습니다."

소공녀는 정론을 읊었다.

"그렇소. 그게 이미 세간에 짜인 틀이지. 당문에서 태어나지 못한 남아는 청성파를, 여아는 아미파를."

사천성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멀리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자신의 성향과 맞는 문파에 들어가거나, 사천성 내의 다른 일반 중소문파에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 가지 더. 그대가 아미파의 제자라고 칩시다. 촌부인 나와 혼인하여 우리를 닮아 건장하고 멋진 남아를 낳았소. 그렇다면 아미파에 보내겠소, 아니면 청성에 보내겠소?"

"......청성?"

소공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자신도 자신의 자식을 아미파에 보냈을 때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니 꺼리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렇지. 미래가 그려지지 않소? 여성들이 많은 곳에서 소수의 남자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때의 모습이."

"심하게 시달리겠군요."

"시달리는 것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4:6, 3:7, 아니 1:9라고 생각해보시오. 100명의 정원 중 99명이 여자고 남자가 1명이라면, 그건 남자에게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오."

혈교주는 말했다. 여초집단에서 남자는 그저 노예가 될 뿐이라고. 어느 쪽이든 고일 대로 고여버리면 그들만의 좁은 사회가 펼쳐지게 되어 있으며, 썩은 환부는 잘라내지 않으면 영원히 썩어들어간다고 말했다.

"같은 문파의 여자로서는 남자가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내 아들, 내 자식이 여자만 가득한 집단에서 고생하는 건 못 본다 이거지."

여자로서는 아미파가 좋은 선택이지만, 아들 가진 어머니로서 보자면 아미파는 글쎄. 과연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모성에 따른 선택이라는 겁니까?"

"그렇기도 하고, 애초에 아미파의 무공 자체가 남자가 익히기 어려운 부분이 없잖아 있잖소? 아미파의 내공심법은 음양이기 중 음기에 치우친 신공이 대다수요. 그러니 남자가 적지."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배우는 무공이 여성이 익히기 쉽다면, 당연히 남자로서는 아미파의 무공을 익힐 이점이 하나도 없다.

그 때문에 현대의 아미파는 9할 9푼이 여자다. 당장 장문인인 멸색사태도 여자고, 그 뒤를 잇는 수많은 제자도 여자다. 남자가 있다면 문도의 가족이거나 친척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미파는 실력지상주의 경향이 짙소. 뭐 여느 사파 문파에서 논란이 되는, 몸으로 장문인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니 하는 문제는 발생할 이유가 없거든."

"파벌이 있지 않습니까?"

"파벌을 찍어누르는 것이 압도적인 힘이오. 바로 지금의 멸색사태처럼."

"그녀는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후배들의 지지를 받아서 장문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멸색사태. 꽃도감으로 치면 할미꽃까지는 아니더라도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시들어가는 존재지만, 아직 아름다움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 아미파 장문인 같이 나이가 좀 찬 여인들은 미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또 예쁘다니까?

'미시적으로 차근차근 뜯어봐도 주름과 접힌 살밖에 보이지 않지만.'

나는 용봉지회 당시 의원을 찾아왔던 멸색사태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법 괜찮았지.'

그녀는 충분히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귀부인과도 같은 기품을 가진 여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자한 모성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색을 탐하는 마두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야차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보지. 멸색사태는 사천성 일대의 색귀들을 모두 격살할 정도로 손 속의 사정이 과했던 여자요. 그런 자가 어떻게 아미파의 장문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녀보다 강한 존재가 없는 건 아닐 텐데."

"무공도 제법 강하기도 하거니와, 문도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으니까요. 선대 장로들은 멸색사태가 장문인 자격이 없다고 반대했다고 한들, 멸색사태의 위상은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지지. 그녀는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소. 선배들의 반대는 격했고, 후배들은 멸색사태를 찬양했소. 멸색사태가 사천색마를 주살한 것도 큰 역할을 했지만, 아미의 후배들이 멸색사태를 지지하게 된 배경은 바로...."

"바로...?"

나는 아미파의 산에 오르는 동안 헝클어진 소공녀의 머리를 다듬었다.

"두발자유화."

"......예?"

긴장했던 소공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 방향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돈하며 앞쪽으로 쓸어 당겼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어깨 앞으로 곱게 흩어졌다.

"불문에 기반을 두고 오랜 기간 여승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전부 밀었으나, 멸색사태는 그러지 않았다네. 오히려 제자들에게 머리를 기를 것을 종용했지."

"그, 그게 무슨.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멸색사태가 그랬다고요? 다른 누구도 아닌 색을 탐하는 걸 혐오하는 멸색사태가?"

소공녀가 놀라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미의 비구니들은 모두 머리를 밀어 자신의 수양을 증명하던 게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옛날이나 그랬지. 지금의 아미파가 부처를 모시는 시간이 더 길겠느냐, 아니면 무공을 갈고 닦는 시간이 더 길겠느냐?"

소림사와 같이 부처를 모시는 문파라고 한들, 아미파는 이미 무림의 문파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였다.

"소공녀, 그대의 생각은 이러하겠지. 머리를 기르는 행위가 자신이 여승이 아닌 여인임을, 그리하여 색을 조장하는 행위인 것 같다? 아미의 선배들도 그리 얘기했소. 하지만 멸색사태는 이렇게 말했다."

- 어차피 머리를 밀든 밀지 않든 아미파라는 이유로 범해질 바에는, 차라리 여인으로서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고 당당히 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밀어도 겁탈당하고 안 밀어도 겁탈당할 거라면 차라리 밀지 않고 머리를 가꿀 것이다. 그녀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들며 후배들의 머리칼을 지켜냈다.

"...사천성에는 아미파라는 이유만으로 아미의 제자들을 겁탈했던 색마들이 정말 많았던 모양이야. 특히 당시에는 머리털이 없는 비구니만을 노리고 마구잡이로 범한 놈들이 있었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머리를 민 여승에게 흥분하는 자들도 있습니까?"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소? 싹 다멸색사태가 죽였지만."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다.

"아무튼 멸색사태는두발자유화를 통해 많은 여문도들의 찬양을 받았지. 하지만 그것도 금방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소. 이번에는 다들 꾸미는데 정신이 팔려 무공 수련을 게을리했거든."

"참으로 복잡한 문제로군요."

"그래. 그리하여 아미파는 여전히 대립 중이오. 전통을 지켜 머리를 밀어야 한다는 선대의 장로급 존재들인 노모(老母)파와 비교적 젊은 세대로 자신들이 기른 머리를 지키겠다는 유모(有毛)파가 말이지."

"노모파가 더 힘이 강하겠군요. 멸색사태가 장문인에서 물러나면 사실상 구심점을 잃는 셈이니."

소공녀의 답은 정확했다. 장문인이라는 자리에 유모파가 있으니 지금까지 버틴 셈이지, 만약 모종의 이유로 노모파의 파벌이 득세하면 모든 아미의 문도들은 머리가 반들반들하게 밀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미파의 상황을 제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까?"

"물론.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소공녀에게 아미파의 생리에 대해 알려줄 겸, 아미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보가 '염마'의 존재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오."

흠칫. 소공녀는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여기에 염마가 나타날 요소가 어디 있습니까?"

"별거 없소. 나중에 염마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왜 염마가 아미에 '없는지' 알게 될 테니."

나는 선택지를 하나 제거했다. 염마는 아미에 없다.

"아미에 염마가 없다? 아니, 당신이 그렇게 쉽게 정답을 알려줄 리가 없습니다."

"흐흐. 아미에 염마가 없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고, 일단 우리의 목적부터 확인합시다."

염마가 없는데도 왜 우리는 아미파에 온 것인가. 내 질문에 소공녀는 턱을 쓰다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쌍고응검 중 '와룡검'을 가져가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렇소. 그걸 위해, 우리는 저곳을 지나갈 것이오."

나는 아미파의 정문을 가리켰다. 이미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와 소공녀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정문으로 들어가실 겁니까?"

"물론. 기회는 단 한 번이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정문을 지키는 아미파의 무사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쪽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다른 쪽은 장발을 펄럭이는 것이 꼭 두 패로 나뉜 아미의 현상을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포권으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허."

"...혹시?"

소공녀는 나를 향해 헛웃음을 짓고, 두 무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자, 이분은-"

"의원님!!"

안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헐레벌떡 달려오는 그녀를 향해 나긋한 미소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조사태."

"소문은 들었는데 설마 아미산으로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정조사태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녀의 주변을 슬쩍 살핀 뒤, 본론을 꺼냈다.

"...아미파의 장문인께서 청성의 장문인과 비무대결을 펼친 뒤, 큰 상처를 입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정조사태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장문인께서 괜찮다면, 제가 한 번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미파에 들어가는 방법.

"저는 여인들의 상처를 돌보는 데 도가 튼 의원, 무붕입니다."

바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 * *

잠시 뒤, 장문인의 방으로 호출받은 나는 멸색사태와 마주 앉았다. 소공녀는 호위무사인 척 나를 따라왔다.

"용봉지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아미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멸색사태는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진심으로 반겼다.

"나날이 더 아름다워지십니다, 장문인."

"의원께서 주신 약 덕분입니다."

"하하, 신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제 기술은 모두 그분으로부터 나온 거니까요."

"호호호, 겸손하셔라."

나와 멸색사태는 웃음과 약을 주고받았다. 내가 멸색사태에게 준 것은 석류를 근간으로 하여 만든 단환이었고, 멸색사태는 내게 사천 일대에서 사로잡은 온갖 영물이나 짐승들의 내단을 건넸다.

[비천. 장문인의 상처는?]

[거짓말이지.]

소공녀의 눈살이 제대로 찌푸려졌다. 장문인이 환자다?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적으로 내가 장문인과 직접 마주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장문인. 그나저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근심 걱정은 피부에 좋지 않아요."

"하아. 의원님. 혹시 제 '방'에서 잠시 상담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의원, 무붕. 마음의 병 또한 치료해야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의원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후우. 알겠습니다. 실은."

멸색사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 안에 넣어둔 검을 한 자루 꺼냈다. 나와 소공녀는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검신을 보고 '진짜'임을 확신했다.

"쌍고응검 중 하나입니다. 설마 이걸로 이렇게까지 큰 소란이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하아...."

"많은 고뇌가 있으셨던 것 같군요.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두 팔을 걷어붙였고, 멸색사태가 은근한 눈빛으로 내 아랫도리를 흘겼다. 나는 그녀가 쓰러지는 걸 받치며 팔짱을 꼈고, 그녀는 가슴을 내 팔에 문지르며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침소로 가시지요. 제가 뭉친 혈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안내하지요, 이쪽으로 오셔요."

봄꽃처럼 풋풋한 미소로 내 손을 잡는 멸색사태를 따라, 나는 장문인의 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선 소공녀를 향해 와룡검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내가 몸으로 시간을 벌 테니, 소공녀는 그 사이에 거사를 치르시오.]

바야흐로, 미인계.

[작품후기]

5연참을 바라다니 무서운 사람들.

여러분의 피는 무슨 색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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