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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아침.
-사천당문에서 황금의 용이 승천했다고 하더라!
새벽녘에 일어난 일은 성도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기이한 현상에 호사가들은 당문의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으나 알려지는 바는 마땅찮았고, 관에서는 정식으로 당문에 조사를 나왔다.
-무가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건 제법 있는 일 아닌가?
-남궁세가에서는 벼락이 떨어지고 무당파에서는 검이 날아다니는데 딱히 뭐….
무림 문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그냥 이상한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흥미만 가지고 끝날 일이기는 하지만, 사천당문 전체에 관졸들이 나서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이고. 왜 하필 ‘황룡’이 승천해서.
관무불가침을 대기에는 너무 사안이 중대했다.
금빛의 용.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당연히 황제다. 당연히 무림의 그 누구도 감히 ‘황룡’을 별호에 담기를 꺼린다. 동창이나 금의위에서 나와서 잡아가거나 조사를 할 가능성이 크다.
-에이, 그대가 잘못 본 게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황룡이라니. 그냥 폭죽이 잘못 터진 거겠지.
-성도 밖에 있던 사람들도 봤는데? 그건 확실한 황룡이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승천했으면 말 다 했지. 그게 어디 무공으로 가능한 일이오?
황룡이 사천당문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날아올랐다. 까닥 잘못하면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사천당문은 순순히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본인은 당문의 가주, 당오독이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장소의 주인과 무림을 대표하는 이들은 관에서 조사를 나온 둘을 정문 앞까지 나와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감찰관입니다.”
“금의위 소속. ...무림인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겠지. 신창이오.”
감찰관, 그리고 신창. 두 사람은 사천을 발칵 뒤집어 놓은 소열제 쌍검 소동을 조사하기 위해 성도 일대를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 * *
“그러니까 쌍검술을 사용하던 침입자가 화골산우진을 통과해 비고를 습격했고, 비고 안의 비밀통로를 이용해 도망쳤다는 말씀입니까?”
“염치없지만 그게 사실이오.”
“독귀 선배님께서 만천화우까지 사용했는데도 말입니까?”
“신창 후배께서 믿지를 않으시는군. 완전히 패배했소.”
당사림은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감찰관과 신창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배님, 독귀 님은 당문 최강의 고수가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독귀 선배님을 1:1로 이겨냈다는 건-”
“신창, 어쩌면 그대보다도 더 강한 존재일 수 있다는 거요. 나도 그의 진면목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신창이 눈빛을 빛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신원미상의 침입자를 상대로 투쟁심을 불태우는 신창의 모습에 감찰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좋으시겠습니다. 싸울 명분이 생겼으니.”
“안심하십시오. 비고에 침입한 자와 싸우게 된다면, 이 신창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쓰러뜨리겠습니다.”
신창의 자신감에 당사림과 당오독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감찰관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붓을 내려놓았다.
“결국 정리해보면 침입자가 쌍검을 사용하며 황금의 용을 현현시키는 자라고 보면되겠군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하네. 현장을 조사하는 게 그대들의 일인 건 알고 있으나,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비고까지는 보여줄 수 없으니.”
“괜찮습니다. 맹의 군사님. 이미 독귀 선생께서 말씀해주신 것만으로 조사는 충분합니다.”
감찰관은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하나둘 읊어 내렸다.
“천상용제쌍고검. 와룡승천. 상룡참. 하나같이 자의식과잉에 자기 자신을 황제라고 참칭하는 대역죄인이나,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능히 그럴 법도 하죠.”
감찰관은 품에서 작은 서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설화가 진실인지, 아니면 그가 이 소설에서 무공의 이름을 따온 건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자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군요. 그야….”
감찰관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소열제, 유현덕의 무공이 현대에 다시 나타난다니.”
“.......”
신창은 조용히 차만 마실 뿐이었다.
* * *
“쫓아라---!!”
멀리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흑의의 여인은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숲을 달렸고, 여인의 뒤를 따르는 흑의인들은 숨을 헉헉대며 여인의 뒤를 지켰다.
“소공녀를 잡아라----!!”
뒤따라오는 이들의 고함에는 희열과 흥분이 가득했다. 소공녀를 잡아 간살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음습하고도 비열한 목소리였다.
“소공녀! 이 이상은…!!”
“조금만 더! 이제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적마의 원군이 올 겁니다!”
소공녀는 부하들을 다독였다. 나 또한 그녀의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적마가 보낸 원군이 도착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애써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다들 일이 그르쳤다는 걸 알면 소공녀를 배반할 놈들이다.’
나는 내 주변에 함께 달리는 흑의인들을 슬쩍 훑었다.
북해빙궁에서 내려온 백설귀부터 사파 출신의 대검귀, 그리고 나머지 소공녀가 부하로 부리는 도깨비(鬼)들은 임무보다 자신들의 목숨이 더 중요한 놈들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에 소공녀를 지키고 있지만, 대공자가 천산을 점령했다는 걸 알면 바로 소공녀를 버릴 것이다.’
마교인들은 천마를 따라야 한다. 천마가 비무를 통해 살해당한 이상, 대공자와 소공녀 간의 후계자 대결에서 이기는 자가 다음 천마가 된다.
‘그러니까 숨겨야 해.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라고.’
소공녀를 지켜라.
설령 이들이 모두 소공녀의 자비로 살을 섞어본 이들이라고 한들, 자기 목숨이 아까워진다면 임무를 포기하고 대공자의 편에 붙을 것이다.
오히려 살을 섞어봤기에 배신할 가능성이 높다. 뒤에서 추격해오는 지린삼마가 우리에게 ‘소공녀를 범할 기회’를 줄 테니 배신하라고 하면 배신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소공녀를 배신하고 살아남아야 하나? 아니면 끝까지 소공녀의 편을 들어 그녀가 도망치기만을 바라야만 하나?
‘여기를 탈출하기만 하면 소공녀가 이긴다.’
비천삼마를 비롯한 야인삼마, 그리고 무마까지 모두 소공녀의 손을 들었다. 대공자를 따르는 건 오직 지린삼마의 세력뿐이며, 단순 전력비만 따져도 7:3으로 소공녀가 유리하다.
더군다나 소공녀 본인이 대공자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단지 지금 도망치는 이유는 소공녀가 극독에 당해 전력을 낼 수 없고, 야인삼마 중 한 사람이 배신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달립시다! 비천삼마만 오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흐흐흐, 그건 불가능하오.”
화륵-
숲 전체가 불에 타올랐다. 앞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불기둥에 소공녀는 나무를 박차고 뛰어올라 집채만 한 불덩어리를 피했다.
“크아아아악!!”
하지만 다른 도깨비들은 모조리 불덩어리에 휘말려 죽고 말았다. 허리가 굽은 나만이 몸을 바싹 엎드리는 거로 간신히 피했다.
“크으으윽!!”
등이 칼침을 수십 개 찔린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나는 바닥을 기어가듯 앞으로 달려가 소공녀의 뒤에 섰다.
“추마귀!”
“아, 앞….”
“으하하! 너무 약해서 있는 줄도 몰랐군! 알았다면 바닥까지 닿게 불길을 더 키웠을 텐데!”
“염마…!!”
불덩어리를 날린 상대, 염마는 광소를 터뜨리며 기를 뿜어냈다. 숲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소공녀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불의 감옥이 되었다.
“환염지옥진. 아무리 소공녀라도 이곳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오.”
“큭...비겁한…!”
“비겁? 그게 뭐? 꼬우면 똑같이 하던가. 나는 예전부터 소공녀의 그런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들었소. 마인이 언제부터 정의와 원리원칙을 따졌단 말인가?”
“누가 언제! 최소한의 인륜과 도리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것조차도 우리에게는 구속이오! 흐하하!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군! 자랑하는 비천삼마는 다른 곳에 발이 묶였고, 옆에 있는 건 쓰레기만도 못한 추마귀 뿐이니까 말이야!!”
염마는 파안대소하며 나를 가리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인 하나를 두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허.”
속이 다 뒤틀렸다. 뭔가 안에서 울컥한 게 피가 역류한 건지 나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저 건방진 새끼의 얼굴에 금이 가게 해야 한다는 것.
“소공녀.”
본래라면 말도 붙이지 못할 상대였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나의 등을 보였다.
“가시오.”
“.......”
소공녀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은 나의 진기를 폭발시키며 앞으로 네발짐승처럼 내달렸다.
캬아아악---!!
“하는 짓이 영락없는 마귀로구나! 네놈은-”
나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앞으로 염마에게 내던졌다.
화륵!
검은 불길에 뒤덮였다. 불길을 가르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불덩어리에 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염마의 불꽃은 그걸로도 모자라 나를 향해 날아왔다.
“크하하! 약해빠진 놈! 역시-”
“미안합니다.”
소공녀는 나를 향해 사과하며 내 어깨를 밟았다. 나는 모든 힘을 다해 그녀의 지지대가 되었다.
파----앙!!
나를 디디고 뛰어오른 소공녀는 높이 치솟은 불기둥을 우아하게 뛰어넘었다. 나는 소공녀의 발판이 되었고, 땅에 무참히 떨어졌다.
“커, 커흑! 커허헉…!!”
“허. 이 미친 새끼.”
염마는 허탈한 웃음으로 불기둥을 넘은 소공녀의 뒤를 바라봤다.
“고작 추마귀 따위 때문에 내가 소공녀를 놓쳤다. 크흐흐, 흐하하!!”
염마는 배를 잡고 웃으며 불기둥을 전부 해제했다. 나는 무너진 어깨를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병신. 그런다고 소공녀가 너를 알아줄 것 같으냐? 소공녀는 네가 죽을 걸 알면서도 버렸다. 머저리 같은 놈.”
“...몰라, 씨발아.”
“허어. 감히 십마인 이몸에게?”
“썅, 어차피 존나 아프게 뒤질 건데 알게 뭐냐. 죽기 전에 욕하든 말든.”
“...흥. 폭혈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 놈이 하는 욕 따위. 좋다. 네놈도 마교의 일원이었던 만큼, 내 인정을 발휘하지.”
사락. 불기둥이 모두 사라졌다. 주변에 흩뿌려진 모든 불꽃을 자신의 손에 흡수한 염마는 나를 향해 다가와 내 명치를 걷어찼다.
“컥!”
“죽이지는 않으마. 불꽃에 타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콰득, 콰직.
어깨가 으스러졌다. 무릎이 박살 났다. 나는 꼴사납게 대자로 자빠졌고, 염마는 내 가슴을 짓밟으며 나를 비웃었다.
“이대로 소공녀가 도망친다면 소공녀는 바로 천산으로 향할 것이다. 대공자가 천마 님의 시신으로부터 모든 내공을 흡수하기 전에, 천산으로 달려갈 테지. 그래, 이곳으로 오지 않고 말이야.”
“허억, 크으윽…!”
“과연 소공녀는 자신을 살려준 너를 구하러 올까, 아니면 대공자를 죽이러 갈까? 죽기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거라.”
“하, 하하하, 하….”
퉤.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놈의 발을 향해 피가 섞인 가래를 뱉었다.
“뭐래, 씨발. 좆도 작은 게.”
“.......”
콰득. 염마는 내 배를 짓밟고 몸을 돌렸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단전은 완전히 망가졌다. 너무나도 아파서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파리 목숨보다 못한 새끼. 어디 한 번 절실히 느껴봐라. 소공녀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염마는 떠났다. 숯더미가 된 숲속에서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거 알게 뭐냐.’
어차피 죽어가던 몸이었다. 소공녀와 함께 탈출한다고 해도 이미 나는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이 목숨을 사용해, 한 명이라도 구하면 그게 어딘가.
투둑, 툭.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람 한 명 찾지 않는 고요한 숲에서, 나는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몸은 죽었는데 혼은 안 죽었네. 음, 좋아. 당첨.”
의식을 잃기 직전, 강제로 눈꺼풀이 올려지며 보게 된 사람은 피처럼 붉은색 투성이였다.
“네가 혈강시 해라.”
-...천? 비천? ...비천색마?
순간.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 * *
“......아는 눈동자다.”
붉은 눈동자 두 쌍이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흑발에 안심하며, 손을 위로 뻗었다.
“소공녀. 부하들에게 몸을 내주어 충성을 요구하는 건 나중에 분명 독으로 돌아올 것이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그럴 것 같다는 거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이니 믿으시오.”
믿어야 한다. 소공녀는 나만 바라보는 여자가 되어야 하니까. 나는 산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에 허탈감을 느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제가 일어나자마자 누우셨으니까요. 그런데 비천, 당신….”
소공녀는 소매를 잡은 손을 뻗어 내 눈 주위를 눌렀다. 나는 갑작스러운 손길에 긴장했지만, 소공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긴장을 풀었다.
“울어요?”
“뭐?”
“그야 눈물이-”
뚝, 뚝뚝.
어째서일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공을 아무리 일으켜도 주체할 수 없었다.
“아...크흐흐, 큰일이군. 좆물을 빼야 하는데 눈물을 빼고 있으니. 이거 소공녀 앞에서 못 볼 꼴을-”
사락.
소공녀는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이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뭐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건지는 모르지만...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이럴 때는 그냥 꼭 안아주라고.”
“.......”
그거야 천마의 아내는 거유니까. 하지만 나는 신체의 차이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모성은 젖 덩어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조금 진정될 때까지, 이러고 있어도 되겠소?”
“후후, 물론입니다. 당신은 몸으로 충성을 사는 건 독으로 돌아온다고 했지만...지금은 괜찮지 않습니까?”
“.......”
-진정한 충성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당신이...옳소.”
나는 그녀의 품에 모든 걸 맡겼다.
“저기, 이제 달이 하늘까지 떠올랐는데 언제까지 울 겁니까…?”
응애.
[작품후기]
당이정이 적마라는 사실을 천상천하유아독룡이 까발려씀다
누군지는 몰라도 참 막되먹은 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