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64화 (6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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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

키샤아아앗.

뱀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며 위협을 가한다. 온갖 독을 머금은 뱀들의 심상찮은 위협에 뱀들을 몸에 휘감은 남자, 독귀는 만류기원신공을 운용하며 뱀들을 진정시켰다.

"아까 먹어놓고 배가 고픈 이유가 무엇이냐."

독귀는 밀봉된 항아리에서 독이 주입된 비곗덩어리를 하나 꺼내 손에 올렸다. 하지만 뱀들은 평소라면 없어서 못 먹을 것조차 마다했다. 맛있는 먹이의 기척을 느껴 해갈할 수 없는 식욕이 들끓었으나,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 뱀들을 입맛만 다시게 만들었다.

"허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구나. 알았다, 같이 가도록 하지."

독귀는 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에 뱀들은 환호성을 지으며 독귀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독귀의 몸을 통나무 삼아 기어 다니던 뱀들은 일제히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을 비롯한 전신에 휘감겼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독귀는 옷을 단정히 정돈하고 밖으로 나섰다. 가문의 사람들조차 다가오기 꺼리는 만큼, 하인은 독귀의 방에서 멀찍이 서 있었다.

"어, 어르신?!"

"잠깐 마실을 다녀오마."

"예, 예!"

하인은 넙죽 허리를 숙이며 독귀를 배웅했다.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하인에게서 두려움과 공포가 풍겨 나왔고, 독귀는 혀를 차며 방을 나섰다.

"네가 안내해라."

독귀는 오른팔을 들어 도포를 슬며시 들었다. 손목을 휘감아 나온 붉은 삼각형 머리의 독사가 독귀의 손등 위에 턱을 놓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곳은 비고의 방향인데?"

키샤아앗.

"허허. 알겠다. 놈, 화골산지사에게 벌써 도전할 생각을 하다니. 기특...응? 그건 아니라고? 알았다."

독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고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담벼락과 전각 지붕을 밟으며 순식간에 비고 근처에 도착한 독귀는 뱀들이 혀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한걸음에 뛰었다.

"멈춰라."

"힉!"

막 경비의 순번을 교대하던 가문의 무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독귀의 눈은 손을 등 뒤로 놓은, 이제 막 떠나려고 하던 무사에게 향했다.

"놈, 가라렸다?"

"마, 맞습니다!"

"뒤에 숨긴 것은 무엇이냐?"

"이, 이건...."

가라는 명백히 숨기는 기색이 엿보였다. 독귀는 앞으로 손을 뻗었고, 손목에 휘감겨있던 독사가 가라의 목을 향해 이빨을 박아넣었다.

"커헉!?"

가라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몸을 발작하기 시작했다. 붉은 뱀이 이빨을 박아넣은 곳은 핏줄이 퍼렇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독귀는 느긋한 손길로 목 주변에 손으로 원을 그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홍삼두사(紅三頭蛇)의 독을 혈맥 전체로 퍼뜨릴 것이다."

"마, 말하겠습니다! 이, 이겁니다...!"

가라는 손에 움켜쥔 물건을 떨어뜨렸다. 작은 약병 안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독귀는 눈을 빛내며 발을 앞으로 뻗었다.

쿵! 맛있는 먹이를 둔 짐승의 본능이 상위 포식자에 대한 공포를 순간 이겨버리고 말았다. 독귀의 발목을 휘감고 있던 독사는 약병 안의 냄새를 맡고 독귀의 명령도 없이 몸을 날렸고, 독귀는 발을 뻗어 천근추의 수법으로 독사의 몸을 짓밟았다.

"감히 주인의 것을 탐하다니...쯧."

콰득. 독귀는 독사를 발로 짓밟아 터뜨렸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수에 다른 독사들은 두려움에 떨려 몸을 바짝 휘감아감았고, 독귀는 약병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허어, 인면지주의 내단?"

독귀는 말끔하게 다듬어진 인면지주의 내단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독공의 고수들조차 다루기 힘든 내단을 이리도 깔끔하게 뽑아내다니. 과연 가문의 누가 이런 대단한 일을 벌였을까.

"이건 가주가 비고에 보관하라고 준 것이냐?"

"그, 그게."

"왜 대답이 없어? 죽고 싶은 게야?"

"그러니까...."

"형님, 무슨 소란입니까!"

대화의 당사자가 장포를 휘날리며 비고 앞에 도착했다. 자다가 일어난 듯한 눈빛과 옷차림에 독귀는 혀를 차며 약병을 흔들었다.

"가주는 생각이 있는 건가? 이런 내단을 맡기고 자러 갈 생각을 하다니!"

"예? ...그거 뭡니까? 헉, 인면지주?!"

"가주가...모른다?"

독귀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지금 비고에도 없을 인면지주의 내단을 가주가 아니면 누가 구해왔단 말이오?"

"저도 모릅니다. 저는 한 시진 전까지 맹의 군사를 맞이하여...."

독귀와 가주의 눈이 쓰러진 무사, 가라를 향했다. 독귀는 급히 홍삼두사를 회수했고, 가주는 도포 안에서 약을 꺼내 독기를 억눌렀다.

"이보게, 정신 차리게!"

"크럭, 크러럭...!"

"이, 이런! 홍삼두사야, 왜 이리 많이 독을 많이 넣은 것이야! 평소답지 않게!"

키샤아아아. 독귀의 뱀은 극도로 흥분해있었다. 그 바람에 독은 예상보다 많은 양이 주입되었고, 상비약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독이 퍼지기 시작했다.

"도, 도련ㄴ...."

풀썩. 가라는 고개를 떨궜다. 죽지는 않았으나, 홍삼두사의 독에 따른 고통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도련님...?"

"이, 이...!!"

독귀는 시뻘게진 얼굴로 호통을 질렀다.

"당장 건면이를 불러와! 어서!!"

* * *

"습, 하. 드디어 다 왔군."

나는 먼저 좁은 통로를 빠져나간 소공녀의 다리를 더듬어 몸을 일으켰다. 소공녀는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하긴 눈치 못 채면 바보지.'

일부러 내가 앞에 보낸 것. 일부러 고개를 들고 앞으로 기어간 것. 그리고 몸에 딱 달라붙는 특수한 재질의 암행복까지.

"뒤에서 아주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저런, 미안하군. 내가 내공이 좀 극양지기라서 말이야."

"......만진 것도 아니니, 불문에 부치겠습니다."

만질 걸 그랬나. 아니면 얼굴을 비빌 걸 그랬나. 나는 아쉬움에 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읏...! 자꾸 예고도 없이 그러지 마십시오!"

"예고하고 만지면 된다는 건가? 한 걸음만 옆으로 디뎠으면 함정이었소."

"그럼 좀 더 건전한 부위가 있지 않습니까...!"

"마침 손이 거기 있어서. 잡기도 편하니 얼마나 좋은가?"

"으...!!"

소공녀는 이를 갈았지만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손을 비벼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보시오. 바닥의 장치를."

"......삼매진화까지 쓸 수 있는 자가 왜 이렇게 색을 즐기는지...."

"그냥 즐기는 건 아니오. 천하 십 대 미녀만 진심으로 건드릴 뿐."

"그것 참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소공녀는 비꼬듯 말했으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녀의 머리부터 먼지를 천천히 털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어깨 아래로 손이 내려가려고 하는 순간, 내 손목을 붙잡고 으르렁거렸다.

"은근슬쩍 만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저런. 아쉽게 됐군."

엉덩이는 괜찮지만 가슴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인가. 미래의 천마는 자신의 아담한 흉부조차 자랑스러워했으나, 어린 소천마의 그릇은 아직 작디작았다.

'아니지. 미래에는 포기하고 받아들인 건가.'

마치 현재의 천마가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이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받아들이듯, 소공녀 또한 연륜이 쌓이면서 자신의 중단전이 자라는 한계를 받아들인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육신의 그릇은 개울가에 흐르는 시냇물이지만, 마음의 그릇은 장강보다 넓은 망망대해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증명하냐고 묻는다면, 나의 전생 기억과 탈동정이 그 증거라고 말하는 건 이제 입이 아플 지경이다.

'젖만 나오면 되지.'

자식에게 먹일 어머니의 사랑만 나오면 아무리 작아도 문제없다. 만지는 건 사공희의 것을 만지면 되니까. 검은 소에게 젖을 물리기 힘들면 얼룩소에게 젖을 물게 하면 된다. 나온 배만 다를 뿐 다 나의 자식들일 테니.

"엉큼한 상상을 하는 듯합니다만."

"크흠. 벌써 초를 밝혔군."

내가 용안으로 그녀와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이, 소공녀는 내 삼매진화를 매개로 촛대를 찾아 불을 밝혔다. 사천당문의 비고는 무당파의 비고보다 더 많은 서책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새삼 놀랍습니다. 이게 다 독을 제조하는 방법이라니."

"현대에 이르러 파훼 당한 독부터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독까지. 종류가 적어도 수만 가지는 될 거요. 그리고 내가 그대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말해야 하나,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하나. 어느 쪽이든 결국 소공녀는 정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이득이 되는 상황으로 말하는 것이 당연지사.

"...비밀지도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면, 과연 어디에서 발견되었는가? 그걸 찾으시오. 그러면 바로 내가 그대를 사천당문의 비고까지 인도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오. 찾기 쉬운 곳에 있을 것이오."

"그게 무슨...."

"위가 소란스럽군."

나는 천장을 가리켰다. 소공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지만, 화골산우진 근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을 끌겠소. 소공녀는 안에서 단서를 찾으시오. 반드시...찾아야 하오. 내 입으로는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대체 무슨-"

나는 소공녀의 엉덩이를 토닥여 앞으로 밀었다. 동시에 나는 몸을 돌려 우리가 빠져나온 구멍을 발로 걷어차 무너뜨렸다.

"나가는 길을-"

끼이익.

나는 안쪽에서 빗장을 열어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곳에는 우리가 내려온 천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벽에 박혀있었다.

"열쇠 없으면 못 들어오는 곳이라. 후후."

"......."

소공녀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위에서 들려온 사천당문 사람들의 소란을 듣고 인상을 굳혔다.

"얼마나 오래 시간을 끌 수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소공녀?"

"비천색마, 당신이 사천당문의 무인들을 상대로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냐는 겁니다. 그 사이에 제가-"

"틀렸소."

나는 몸을 돌려 소공녀의 입술을 검지로 눌렀다.

"다시 말하지. 소공녀가 단서를 찾을 때까지, 나는 시간을 끌겠소. 일각이든, 한 시진이든...아니면 하루든."

나는 얼빠진 소공녀의 볼을 좌우로 잡아당긴 뒤, 손을 흔들며 문을 닫았다.

"나간 뒤에 빗장은 걸어놓으시오. 암호는...그래."

나는 문틈 사이로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였다.

"으아아아! 흑도 최고 미소녀 이시아랑 격하게 아이 만들기 하고 싶다아아아!!!"

쾅!

빗장이 닫혔다. 나는 문 너머에서 씩씩거리는 소리에 괜히 무안했다.

"......중원 최고 미녀라고 해야 했나?"

우둑, 우두둑.

나는 무안함을 뒤로 한 채, 밖에 놓아둔 삿갓을 눌러썼다.

"네 놈은 누구냐...?"

화골산우진 밖에는 전신에 뱀을 두른 남자-독귀가 나를 향해 험악한 얼굴로 독침을 날렸다. 나는 흑의 안에서 미리 준비한 철선을 꺼내 들어 독침을 가볍게 튕겨냈다.

"누구냐고 물어보면서 마비침을 날리다니, 역시 독귀. 독한 자일세."

"누구냐고 물었다!"

"그래, 계속 물으시오. 대답해줄 생각이었으면 진작 대답하지 않았겠소?"

"이런 건방진 아해가!"

파바박.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나는 철선을 가볍게 튕겨 내 급소를 노리는 세 개의 침을 동시에 쳐냈다.

"고작 이 정도 암기술로 나를 죽이려고 하다니, 당문도 많이 쇠퇴했군!"

"......흐흐, 흐흐흐! 오냐! 네놈의 정체가 뭐가 중요하겠느냐! 당장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놈을!"

"호오. 그런데 이거 어쩌나. 거기 서 있으면 죽을 텐데?"

딸칵. 나는 기둥에 튀어나온 부분을 가볍게 눌렀다. 내기를 불어넣자마자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독귀는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네, 네놈이 어떻게 화골산우진을...?!"

"알 필요 없소."

쏴아아아아---

"영원히."

멈췄던 화골산우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아이 만들기라니, 미친놈이!!"

쾅쾅! 소공녀는 땅에 발을 구르며 전신을 떨었다. 정수리까지 붉어진 소공녀는 괜히 사천당문의 비고에 화풀이하며 화를 삭였다.

"후우, 후우. 안 돼. 시아야. 냉철해지자. 정신 차려."

자신에게 일부러 말까지 하며 소공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장난스럽게 나가기는 했지만,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초절정 이상의 고수가 나타났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 빨리 단서를 찾아야 했다. 실수로라도 밀리는 바람에 태극혜검을 펼친다면? 끔찍한 일이 펼쳐질 것이다.

'당문이랑 무당파랑 싸우는 건 대공자 그놈이 바라는 걸 거야.'

정파들끼리 치고받고 싸워 정마대전을 일으키는 것. 대공자는 분명 그 전선의 최전방에서 천마 대신 십마를 호령하며 자신이 다음 대의 천마임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단서를 찾아야 해.'

소공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비고 전체를 훑었다. 쌓인 장서만 수만 권 가까이 되어 보이는 곳에서 막연하게 단서를 찾는 건 성도에서 소열제의 후손 찾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나, 소공녀는 입꼬리를 씩 들어 올렸다.

"천마심안, 개."

바닥.

소공녀의 붉은 눈이 닿은 곳에는 누군가의 발자국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작품후기]

작품설정에 러프화 나온 거 조각 올렸습니다. 나중에 완성작 나오면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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