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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를 검에 불어넣은 즉시 봉황이 날개를 펄럭이며 활개를 친다.
방정맞기 짝이 없는 철부지 같은 검기에 방도림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문제는 봉추검을 사용하여 휘두르는 청풍검법이 일반 철검보다 몇 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명검은 명검이었다. 효과라도 차이가 별로 없었으면 바로 원래 쥐던 애병을 들었을 텐데, 봉추검을 들고 청풍검법을 펼치는 순간 그는 절정을 느꼈다.
"하아, 하아. 이것이 바로 절정 고수의 힘...!"
방도림은 비어버린 단전에 희열을 느꼈다.
자신이 아무리 검기를 많이 소모한다고 한들, 봉추검은 주변의 내공을 흡수하여 손잡이를 움켜쥔 손을 통해 단전으로 보냈다. 검 덕분에 소모한 내공을 회복한다고 말하면 백이면 백 믿지 않겠지만, 그것이 전설 속 소열제의 검이라면 썩 믿을 만 했다.
"이 힘이라면 폭룡도 이길 수 있다...!"
방도림은 검을 다시 앞으로 내질렀다. 용의 머리는커녕 용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여 후기지수 내에서 서열정리가 되어버렸고, 일류 고수였던 자신은 사천 제일의 후기지수는 될 수 있어도 중원 제일의 후기지수는 될 수 없었다.
다시 창천신룡이 되어야 한다.
천하제일룡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강해져야 했다. 설령 무기의 힘을 빌려서라도.
"도림아."
막 검을 출수하려던 순간, 연무장 입구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누가 대제자의 수련을 방해하나 짜증이 일었지만, 방도림은 연무장을 찾은 이를 보고 황급히 검을 회수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벽박자. 방도림의 스승이며 청성의 장문인인 그는 방도림이 연무장에 검을 사용한 흔적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정녕 무조건 그 검을 사용해야겠느냐?"
"예. 봉추검과 함께, 저는 푸른 하늘에 닿아보겠습니다."
"이미 너는 창천신룡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느냐?"
"하지만 신룡(新龍)이지 신룡(神龍)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별호는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별호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좋은 별호를 받았으면 응당 기뻐해야하지만, 이왕 칭할 별호라면 더 좋은 별호가 훨씬 나은 법이다.
그리고 한 번 정해진 별호는 쉽사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적어도 청성의 사람들에게 방도림은 여전히 창천신룡이었다.
"한 번 창천신룡이 된 이상 너는 이미 창천신룡이다."
"아닙니다. 그냥 창천입니다. 신도 룡도 아닙니다!"
"그건 너의 자격지심이니라!! 너는 자랑스러운 청성의 대제자, 창천신룡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창천쉰룡이랍니다!!"
벽박자의 눈썹이 미미하게 떨렸다. 방도림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빼앗긴 신룡으로는 부족합니다. 청성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라면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욱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것은 보검의 힘이지 너의 힘이 아니지 않느냐? 태극화를 기억하거라. 그녀가 어디 질 좋은 무기로 백도제일화가 되었느냐?!"
"윽...!"
스승으로서 제자의 자존심을 꺾는 건 좋은 방식은 아니었으나, 방도림의 의식을 환기하기에는 충분했다.
"태극화가 어디 명검으로 어검술을 사용했더냐? 인근 야장에서 잘 단련된 철검 네 자루를 가져왔을 뿐이다. 중요한 건 본인의 무공이지, 보검이 아니야!"
"하지만 그녀도 언젠가는 분명 명검을 휘두를 겁니다!"
"이놈!!"
방도림이 말대답을 하자 벽박자는 호통을 내질렀다.
"용봉 지회에 나갔다 오더니 세상 모두가 네 것인 것 같으냐?! 지난 4년간 창천신룡이라고 모두가 떠받들어주니 그게 너를 천상의 존재로 만든 것 같으냐?! 별호는 한순간이다. 청성의 검은 도를 닦기 위한 길이지, 네 무위를 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야!"
"아니오, 제 무위를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청성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함입니다! 아미가 가져간 와룡검을 양손에 쥐는 순간, 청성의 대제자가 구룡의 으뜸이 될 겁니다!"
방도림의 눈에는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공에 열의가 없던 이가 의지를 가진 건 좋았으나, 그게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것 같아 벽박자는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아아...보물이라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미혹한다는 말인가...!"
끼요오오오오옷---
벽박자의 공허한 울림은 봉황의 날갯짓에 파묻혀 허공에 흩어졌다.
* * *
"행동으로 나서기 전에 앞서, 상황을 정리해보도록 합시다."
나는 소공녀와 마주 앉아 성도의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나무 패 몇 개와 붓을 챙겨 지도 옆에 놓았다.
"먼저 현재 쌍고응검, 그러니까 와룡검과 봉추검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봅시다. 소공녀, 두 검의 위치는?"
"와룡검은 아미파의 정조사태가, 봉추검은 청성파의 창천신룡이 가지고 있습니다."
"창천신룡? 그런 놈이 있었나?"
"전대 구룡 중 한 명입니다. 비천은 가만 보면 남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꽃도감에 남자는 없었소. 크흠. 일단 상황을 살핍시다."
나와 소공녀는 각각 와룡, 봉추를 나무패에 적고 각각 아미와 청성의 옆에 올렸다. 성도를 기준으로 아미파는 서남쪽 350리, 청성파는 북서쪽으로 160리 정도 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성도 성 내에 있는 각 문파의 무관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둘 다 지금은 각자 본거지에 있다고 하더군."
"성도에 있으면 괜히 사람들이 꼬일 겁니다. 괜히 시비가 붙으면 불편할 테니까요."
"그렇소. 그렇다면 사천당문의 위치는 어디인가?"
소공녀는 '당문'을 적고 나무패를 성도 안에 놓았다.
"비천, 이런 간단한 걸 논하는 건 지면을 낭비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꼭 해야 하는 일이지. 우리가 지금부터 움직일 동선을 그려보겠소."
나는 붓을 들어 우리가 움직일 순서를 정했다.
"아미파에 들려 와룡을 얻은 다음, 청성파에 들려 봉추를 얻을 것이오."
"와룡봉추를 순서대로 가지는 겁니까?"
"그렇소. 아미파에서 와룡검을 가진 뒤, 아미파에서의 일이 청성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하거든."
"속전속결이군요."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사천을 떠나는 것이 중요했다. 어차피 검은 사공희의 손에 들어가겠지만, 대공자의 술책을 최대한 빨리 망가뜨릴 필요가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검을 회수할 것이냐? 그건 나중에 직접 확인하면 되고, 일단 우리가 먼저 들려야 할 곳은 당문이오."
"비천의 덕분에 선택지는 두 개가 생겼습니다. 신의의 제자를 칭하며 정식으로 초대를 받는 방법. 하지만 이건 원하지 않으실 테고. 그리고 또 하나는...잠입을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렇소."
처음부터 나는 사천당문에 몰래 숨어들어갈 계획이었다. 신의의 제자로서 초대를 받은 건 우연에 불과한 일이었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만 있는 편이 더 좋았다.
"잠입은 한다면 소공녀가 짐이 될 가능성이 높소. 어디든 초절정의 고수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윽."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있으니. 그 어떤 장문인도 우리의 잠입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오."
우득, 우드득.
나는 손으로 얼굴 주변을 이리저리 만졌다. 순식간에 몸집이 변하기 시작하는 내 모습에 소공녀는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였다.
"역체변용술을 직접 볼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그 얼굴로 하실 줄은 더더욱."
"이 얼굴이야말로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존재지. 더군다나 이번 소동의 원흉이기도 하고."
"예...?"
소공녀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적마(賊魔)가 어째서 원흉입니까?"
"그의 이름은 당이정. 사천당문 방계로 한때 사천의 신동이라고 불렸던 독공의 귀재요. 모종의 일로 당문에서 벗어나 가문의 무공을 폐하고 마교에 투신했지. 비적질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은폐요. 따지고 보면 그의 진짜 정체는 독마(毒魔)라고 할 수 있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야 가문을 나오면서 모든 걸 버리고 나왔으니까. 언제 그가 독공을 펼친 적이 있소?"
없을 것이다. 이름조차 버리고 자신을 사적(邪賊)이라고 부르는 자인 만큼, 당이정으로서의 과거는 완전히 사천 땅에 묻어두고 천산을 향했던 남자였다.
"하지만 몸에 흐르는 피는 속일 수 없는 법. 그가 세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훔친 보물 중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소. 천년하수오라거나, 문파의 비급이라거나-"
"쌍고응검이 숨겨진 지도라거나."
역시나. 소공녀는 내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간파했다.
"적마가 지도를 가문에 건네고 갔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동방으로 떠났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기 전에 가문을 들릴 이유는 없습니다."
"최근에 뒀다는 말은 아니오. 분명 아주 오래전에 뒀을 것이오. 그게 지금에서야 발견된 것이고. 그리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사천당문에 가야 하는 것이외다."
정답은 이미 도출되어있지만, 정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근거와 증거를 모으기 위해 나는 굳이 사천당문의 비고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이 단순히 적마가 가문에 대한 미련으로 인해 벌어진 소동인지, 아니면 대공자가 술수를 부린 계책인지. 그도 아니면 모든 상황이 맞물려 떨어지면서 벌어진 사고인지. 한 번 확인해보시구려."
"...염마도 찾아야 하고, 사건의 진상도 파악해야 하고.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많다고 생각하면 많겠지만, 어차피 할 일은 딱 하나뿐이라네. 소공녀."
나는 소공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공자의 술책인 게 확실해진다면, 깽판 치면 되는 거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나도 몰라. 하지만 의미는...알겠지?"
나는 소공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었고, 소공녀 또한 씩 웃었다.
"대공자의 계획을 싹 다 망쳐버릴 생각이오. 소공녀, 어떻게 하시겠소? 난 그대의 '비천'으로서, 소공녀의 의지에 따라 최선을 다할 생각이오."
답은 정해져 있지만, 나는 소공녀의 선택에 따라 답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소공녀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오. 그것이 비천색마니까."
"하지만 제가 정문으로 들어가자고 하면 싫어하실 거 아닙니까?"
"그야 당연하지."
"......후후, 그렇게 말씀하시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소공녀는 몸을 일으켰다.
"당신의 뜻을 존중하겠으나, 삼마 대신 세 명 분의 역할을 혼자서 하셔야 할 겁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흐흐, 물론. 세 명이 아니라, 일곱 명도 거뜬히 가능한 몸이니."
<이제 이 쌍고응검은 제 겁니다>, 작전.
결행.
'이 모든 경험이 소공녀가 천마에 이르는 길에 가치 있기를.'
"그런데 비천, 이제 그 새끼의 계획을 망가뜨릴 계획을 말해주십시오. 무엇부터 하면 됩니까?"
"무엇부터라...간단하오."
나는 소공녀의 옷고름을 잡아당겼다.
"일단 벗어."
[작품후기]
토요일 아침이 산뜻하여 연참이란 걸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