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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으로
상천용제검의 사용자, 검제는 천하십대고수다.
미래에서는 천마와 검제가 붙으면 백이면 백 천마가 이기겠지만, 나와 소공녀의 싸움은 백이면 백 나-상천용제검을 쓰는 검제가 이긴다.
그야 당연하다. 검제는 현경 중반급 고수가, 소공녀는 아직 절정 중반이니까.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틈이 존재하는 바이며, 소공녀가 검제의 경지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남아도 아직 한참 남아있다.
언젠가 따라잡기는 한 것이다. 그야 내 기억 속의 검제는 정체되어있고, 소공녀는 끊임없이 성장할 테니까.
"소공녀. 나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소."
나는 도포를 펄럭이며 두 팔을 펼쳤다. 어검술로 띄워놓은 두 검은 바닥에 박혔고, 나는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두 검을 앞으로 놓았다.
한쪽은 와룡이, 한쪽에는 봉황이. 마치 용봉지회를 상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듯한 모습의 기류에 소공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언젠가, 그대는 지금의 나조차 뛰어넘는 강자가 될 것이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이...이...!!"
"더욱 분발하시오. 더욱 정진하시오. 그렇게 되면 언젠가...."
나는 하늘을 향해 두 검을 들어 올렸다. 검날에 비친 내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있었고, 소공녀는 그걸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했다.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소천마가 구경조차 하지 못한 경지. 나는 그녀를 위해 검제의 전력에 더불어 그녀의 미래를 엿보게 했다.
"천마용제검."
천마신공의 내기를 실어, 나는 전방으로 참격을 날렸다. 전의를 상실한 소공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고, 그녀의 좌우로 스쳐 지나가듯 날아간 참격은 등 뒤에 동산을 갈라버렸다.
구구구구.
절벽이 무너진다. 미혼표식구궁진이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나는 내기를 거두어 소공녀를 등 뒤에 업었다.
"이걸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숙소까지 업어서 가겠소."
"......."
나는 소공녀를 등에 업고 손으로 엉덩이를 꽉 붙잡았다. 순산형으로 펑퍼짐하지는 않지만, 손에 잡고 계속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말랑말랑했다.
"도대체 당신은...."
"내 정체가 궁금하신가?"
나는 확신했다. 다른 누구보다 '힘'을 추종하는 소공녀가 방금 일격으로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적의와 긴장에 더불어, 나라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는 것을 다시금 직감했다.
"나는 비천색마라고 하오."
"그걸 누가 모릅니까?"
"흐흐, 하지만 이제야 완벽해졌지."
소공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서야, 나는 진정으로 색마가 되었다. 십마의 자리에 해당하는 마(魔)는 자고로 천마가 직접 별호를 내려주는 것이며, 나는 천마에게서 드디어 색마라는 별호를 듣게 되었다.
언제? 엉덩이를 처음 만졌을 때. 그녀는 나를 두고 색마라고 말했고, 나는 진짜 색마가 되었다.
단순히 여색을 탐하는 색마가 아니라, 마교의 호법사자 중 한 명으로서 천마를 보필하는 남자가.
'그리고 천마의 남편이기도 하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는 겁니까?"
"그렇고 그런 생각."
나는 고개를 돌려 예비천마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질색하며 내게서 머리를 뒤로 뺐지만,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저항의 끝이었다. 천마신공의 부작용으로 진한 탈력감이 그녀를 짓눌렀고, 덕분에 소공녀는 사지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상태였다.
'다음 대의 천마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렇다.
소공녀 이시아.
그녀는 나의 동정을 가져갔던 여자답게, 대공자의 온갖 술책을 꺾고 천마의 자리에 올랐다.
비록 대공자의 간계로 인해 대공자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뒤집어쓰고 정마대전에서 마교를 이끄는 수장이 되었지만, 그녀는 숱한 정파 무인들의 공격에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아 마교를 지탱했다.
- 패자는 할 말이 없는 법. 썩 즐거운 인생이었다! 하지만...어차피 이대로 기가 빨려서 죽을 거라면...마지막만큼은 즐겁게....
"꺅?!"
소공녀는 화들짝 놀랐다. 내가 한 손을 앞당겨 나도 모르게 내 입술을 만지는 바람에, 그녀는 아래로 떨어질까봐 화들짝 놀라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떨어질 뻔했지 않습니까!!"
"......."
죽음의 순간에도 색을 탐하던 똑같은 입술이-물론 훨씬 어리지만-내 앞에서 나를 향해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몸을 돌렸다.
'진정해라. 먼저 하면 지는 것이다.'
스스로 먼저 입을 맞추게 하고, 스스로 먼저 다리를 벌리게 하고, 스스로 먼저 나를 덮치게 만들어야 한다. 소공녀가 나를 꺼리는 단 하나의 조건을 찾아내지 못하는 이상, 나는 아직 그녀를 안을 수 없다.
"...날씨가 춥군. 빨리 돌아갑시다. 가서 씻은 다음, 오늘 밤은 정보를 얻으러 갈 것이오."
"정보라니, 어디에...?"
"보물 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하는 곳."
사락, 사락.
나는 눈길을 걸으며 소공녀의 주변에 나의 양기를 퍼뜨렸다.
"사천당문."
* * *
"젠장, 아직도 찾지 못했는가?"
"지, 진정하십시오. 백부님, 곧 연락이 들어올 겁니다."
콧수염이 간드러진 중년의 사내는 전신에 각양각색의 뱀을 휘감은 채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사내로부터 퍼져나가는 진한 장기에 세가의 일원들도 차마 가까이 가지 못했다.
"가문의 창고에서 보물지도 같은 게 그냥 나왔을 리가 없지 않느냐! 그것도 아미와 청성의 제자 놈들이 지도만 찾아보고 보검을 발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도가!"
"거, 건면이도 열심히 기억을 더듬고 있습니다! 노여움을 거두어주십시오."
"시끄럽다! 기억만 더듬어서 될 것이 아니라, 언제 누가 그걸 그 자리에 갖다 놓았는지 찾아내야 할 것이다!!"
중년 사내의 호통에 세가의 일원들은 모두 부리나케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건 중년 사내와 그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회색 도복의 남자뿐이었다.
"가주, 어떻게 생각하시오?"
"건면이가 거짓을 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님, 비고는 저희도 어렸을 때부터 드나들었던 곳이 아닙니까? 그곳에 그런 물건이 있었다면 저희가 진작에 발견했을 겁니다."
"그렇지. 우리가 알아채도 진작 알아챘겠지. 문제는 비고의 문이 '가문의 존재만 아는 방식'으로 열렸던 흔적이 있다는 것이야."
중년 사내의 말에 가주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먼저 말을 꺼낼지도 몰랐지만, 사내가 꺼낸 문제는 둘 사이에 실시간으로 앙금이 쌓여가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나와 가주, 그대 이외에는 아무도 화골산우진(化骨散雨陣)의 생로를 몰라. 건면이에게 그걸 가르쳐준 건 뼈아픈 내 실책이긴 하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도대체 그곳의 생로를 정확히 밟고 들어갔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네가 아니더냐?"
"저는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신이 드나들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지나간 실력. 그리고 중고안사(重苦眼蛇)의 눈을 피하는 방법도 없을뿐더러, 그 아이는 사천당가의 존재가 아니면 무조건 공격을 하지 않습니까. 중고안사를 깨우지 않고 비고에 들어갈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침입자가 있고 비고에 보물 지도는 남아있으나, 정작 그걸 놓아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귀신이 다녀간 것도 아니고."
"...혹시 그 아이-"
"갈! 그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게! 그놈은 더는 당가의 존재가 아니야!"
"...죄송합니다. 귀신에 관해 이야기하셔서 문득 생각났습니다."
중년 사내와 가주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정답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답답한 가슴을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속이 끓을 정도였다.
"하오문에서는 특별히 다른 이야기가 없더냐?"
"고급 정보가 들어왔으니, 몽환산과 거래를 하자고 했습니다."
"건방진 놈들, 감히 이 독귀의 몽환산을 탐내?"
중년 사내, 독귀(毒鬼)가 험악한 기운을 내뱉자 주변의 모든 뱀이 입을 쩍 벌리며 위협을 가했다. 가주는 침을 꿀꺽 삼키며 하오문에서 온 전갈을 건넸다.
"그래서 대신 다른 거로 거래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고급정보입니다."
"오오, 역시 가주요. 어디보자. ...쌍고응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소열제의 후손이 나타난 듯하다? 이건 무슨 개소리야?"
"청성과 아미의 움직임도 심상찮습니다. 비밀리에 무사들을 보내는 게 뭔가 움직임이 있는 듯합니다."
"흠...그래? 남자인가, 여자인가? 여기에는 적혀있지 않은데."
"'그 아이'에게 전해진 정보에 따르면 남자라 하더이다."
독귀의 표정은 또다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젠장, 가문에 여아가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어쩔 수 없지요. 예진이는 아직 새파란 핏덩이가 아닙니까."
"방계의 아이 중에 마땅한 아이가...젠장."
독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부렸다.
"서희에게 연통을 넣게. 비록 가문을 벗어나 하오문에 몸을 투신했지만,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는 사천당문의 것임을 잊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다만 하오문주가 가만히 있을지."
"하오문주? 건방진 년이 감히 사천당문의 아이를 웃음이나 파는 년으로 만들었으면 주제를 알아야지, 어딜 건방지게."
"........"
가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천당문을 떠나 하오문에 몸을 던진 방계 여인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가문에 먹칠할 게 분명했다. 덕분에 그녀는 하오문으로 떠나는 즉시 호적에서 파이고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형님, 그 아이는 독대신 색을 더 탐했을 뿐입니다."
"안다. 애초에 당가에서 태어나면 안 됐을 아이였을 뿐. 쯧쯧, 하여튼 방계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르겠구나. 그놈도...크흠."
독귀는 헛기침하며 가주의 눈치를 봤다.
"아무튼 더 알아보거라. 여차하면 그를 데릴사위로라도 데려와야 하는바. ......그렇지! 금화를 불러와라!"
"예? 형님, 그건...!"
"어서!"
독귀의 눈에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소열제의 무공을 바탕으로 독공을 완성하면, 우리 사천당가는 비로소 다시 사천제일, 아니 무림 제일의 가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니라!!"
* * *
소열제의 쌍검이 주인을 찾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둘 '주인'이 누구인지 눈에 불을 켜고 성도(청두) 근처를 뒤졌다. 그들이 찾는 이들의 특징은 단 세 가지.
"혹시 그대의 성이 유 씨인가?"
"지, 지유? 지는 아니어유."
한 황실의 피가 이어지는 자라면 필히 유(劉)씨 성을 가진 자이리라. 그렇게 사람들은 성도의 수많은 유 씨를 찾아 나섰다.
다음 특징.
"혹시 귓불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긴가?"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소?"
"하긴 그렇지? ...저기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소열제의 긴 귀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엄지의 지문 자국보다 더 커 보이는 자들이 하나둘 사람들의 질문 습격을 받았다.
마지막 특징.
"분명 쌍고응검을 찾으러 올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청성과 아미파의 앞에서 존재감을 가진 자가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되오!"
쌍고응검이 각자 주인을 찾는다는 설에 따라, 주인이 직접 검을 찾으러 올 것이라는 예상. 이건 성씨나 신체적 특징과는 다른 정황이었지만, 쌍고응검의 주인이라면 반드시 할 것으로 예상되는 행동이었다.
"나 참.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지...."
성도 한복판에 들어온 중년은 손부채질하며 백건을 벗었다.
"벌써 난리군, 난리야."
중년 사내는 곳곳에 돌아다니는 세 세력의 사람들을 보고 혀를 찼다. 당문과 아미, 그리고 청성의 무사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열심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세 문파의 격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 당연히 이럴 때 나서야 하는 세력이 바로 무림맹이다.
"내가 이러려고 군사 한 게 아닌데. 쯧."
중년 사내, 무림맹의 군사는 한숨을 내쉬며 성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림맹에서 사천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고는 하지만, 이미 시일은 많이 지나 상황은 악화 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어디보자...."
"멈추시오. 예사 분이 아닌 듯한데."
녹색과 보라색이 섞인 도복의 중년 사내가 군사를 향해 다가왔다. 눈을 가늘게 뜨며 군사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던 그는 활짝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군사! 맹에서 뵙고 얼마 만에 뵙는지 모르겠구려!!"
"하하, 반년만입니다. 가주님."
"혹시 이번 소동 때문에 이곳 사천까지 찾아온 것이오?"
"그렇습니다. 사실 부하를 보내려고 했지만, 맹주께서 직접 저를 선택하신 바람에...."
군사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당가의 가주는 껄껄 웃으며 당가의 저택을 가리켰다.
"그럼 당연하지. 소열제의 곁에는 무후, 제갈세가의 시조께서 있지 않으셨나! 하하하!"
"......하아."
무림맹의 군사, 제갈길은 주변에서 술렁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에 백우선을 도포 안에 집어넣었다.
[작품후기]
삼국지 소설은 남녀역전물로 생각해둔 게 하나 있긴 한데, 고증을 신경쓰기 너무 어렵고 어차피 러브코미디 될 것 같아서 떡밥만 남길게요.
가제는 삼국지 금모태양전이구요, 얀데레 책사진 사이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분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