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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으로
"그럼 그렇지."
아침, 나는 아침부터 목욕재계를 마치고 내 앞에 선 여인을 상대로 검 두 자루를 들어야만 했다.
"한 판이 이런 의미였소?"
"그럼 무슨 의미인 줄 아셨습니까?"
"당연히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서 벌어지는 남녀 사이의 뜨뜻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럼 맞는 말입니다. 이곳은 미혼표식구궁진의 안. 진법을 파훼할 수 있는 이 이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죠."
일부러 저런다. 내가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걸 이해했으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해 못 한 척 주변을 두 팔로 가리킨다. 나는 점점 붉어지는 눈동자에 검 두 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소공녀. 감히 비천색마를 상대로 비무를 청한 것이오?"
"비천삼마보다 강한 존재라고 한다면 저를 가르쳐 주실 스승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후배를 위해주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성심성의껏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나는 괜히 속이 뒤틀려 호흡을 가다듬었다.
'온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나를 덮쳤다. 소공녀의 머리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하며, 움켜쥔 두 주먹 위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천마신공이 벌써 저기까지!'
총 7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마신공의 단계가 벌써 오성에 이르러있었다. 확실히 감히 흑도제일화라는 별호로 마화에게서 꽃의 이름을 빼앗아 올 만했다.'
무공의 수위는 절정 중반.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피부를 짜릿하게 울리는 마기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재능이었다.
'지금도 이렇게 강한데 여기서 더 성장하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소공녀는 이미 대공자가 20세였을 때의 무위를 훨씬 뛰어넘었다. 내가 지금 소공녀의 '전력'을 보자마자 느낀 것을 모두가 느꼈을 것이다. 이대로 성장하기만 하면 다음 대의 천마는 이시아가 될 것이라고.
"대공자가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겠군."
"그래서 저를 견제하는 겁니다. 열두 살 넘게 어린데도 불구하고."
"12년이나 먼저 태어났는데, 3년만 지나면 현재의 경지도 따라잡겠군. 대공자가 그대를 질투하는 것도 당연하겠구려."
소공녀는 입꼬리만 들어 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지적이고 냉철한 이지적인 성향의 그녀가 이토록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상대는 대공자가 유일했다.
"나를 대공자가 보낸 존재라고 생각하시오."
"!!"
적의. 그것이 나를 향한 강한 살의로 뒤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소공녀에게 있어 대공자는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죄를 범했다.
"무당산에서 죽은 검마는 중립을 지키는 십마 중 유일하게 제 무공을 봐준 사람이었습니다."
"천화에 걸렸다는 그 양반 말이군."
"예. 무당파 장문인과 은원관계를 해소하고 떠나간 건 분명 그에게 있어 좋은 일이었지만...저는 제가 가진 무공의 성취를 도전할 수 있는 상대를 잃었습니다."
"검마 말고 누가 소공녀의 전력을 상대로 가르침을 줄 수 있겠소? 자신은 다치지 않고, 상대 또한 다치지 않게 하는 '정파'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가 누가 있겠소. 흐흐."
소공녀의 눈썹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나는 두 검을 내 눈앞에서 비스듬히 교차하듯 세웠다.
"비천색마가 지금부터 상대해주겠소. 어떤 무공을 원하시오?"
"...정말 그 말이 사실입니까? 제가 원하면 어떤 상대든 만들어 주신다는 말."
"그렇소. 단, 내가 그 적이 되오."
나는 소공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몇 가지 초식을 펼쳤다. 매화검법부터 옥녀검, 그리고 마교의 삼마검법까지 나는 완벽하게 복사해냈다.
"상대의 경지도 원한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단, 나도 한계가 있는 몸이니 터무니없는 건 요구하면 들어줄 수 없소. 가령 현경급 개방 고수라거나."
거지 중 현경에 오른 자는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는데 혈교주가 걸렀다. 자신의 심미안에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가진 기억 중 개방 고수의 무공은 초절정 정도가 끝이었다.
"특이한 문파일수록 모사하기 힘들지. 표본이 없거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천색마의 무재가 무엇인지 대략 보입니다. 당신은 상대의 무공을 흉내 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흉내? 크흐, 그렇지 않소."
철컹. 나는 검을 다시 좌우로 늘어뜨렸다. 동시에 옆에 띄워둔 두 개의 검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들어오시오. 흉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
"...당신의 정체,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공녀는 두 주먹을 눈높이까지 올렸다. 자신이 도전했으나 넘지는 못한 태극혜검의 벽을 두고 불태우는 전의는 내 전신을 찢어발길 듯이 뜨거웠다.
"혹시, 당신이 태극화에게 태극혜검을 전수한 자가 아닙니까?"
역시. 소공녀는 약간의 단서만으로 내가 태극혜검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실전된 태극혜검을 태극화보다 더 잘 쓰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설마 당신은 무당의-"
"무당의 도사는 아니오.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당파의 무공을 사용하여 신의의 제자처럼 사칭은 했지만."
나는 소공녀에게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허공에 띄운 두 개의 검은 각각 태극검과 양의검을 펼쳤다.
"...어느 수준까지 원하시오? 태극검을 익힌 절정 고수? 아니면 양의검을 극성으로 다루는 초절정의 고수? 그도 아니면...천외천?"
"하, 태극화보다 더 강고한 경지에 오른 자가 또 있단 말입니까?"
"아무렴! 그는 무붕이라고 하오."
"무슨 말장난이십니까."
나의 호적수는 나 자신이므로 내 숙적이 맞다. 소공녀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일단 들어오시오. 그럼 느끼게 될 것이오."
까닥까닥. 나는 허공에 띄운 검 두 자루를 흔들어 그녀를 도발했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할 때마다 왜 하는지 몰랐는데, 조금은 알겠습니다."
소공녀는 붉은 안광을 터뜨리며 입을 벌렸다.
"시건방진!!"
내 등허리에 짜릿한 전기가 튀어 오름과 동시에, 나는 태극혜검으로 소공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 * *
"스승님, 정조입니다."
"들라."
아미산 깊은 곳, 장문인이 기거하는 별실에 아리따운 여인이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용봉 지회에 도전하였으나 아쉽게도 패배한 여인, 정조사태는 고개를 숙인 채 허리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라."
"......."
"어서."
정조사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멸색사태는 제자의 입술에 묻은 매끄러운 흔적에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게 무엇이냐!"
"유약을...발라...보았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네 무공을 상승 시켜 준다더냐?"
"......."
정조사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정조사태는 인상을 찌푸리는 멸색사태의 노성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신의의 제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입술에 기름을 바르는 건 입술이 트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갈라지기 쉬운 겨울철에는 입술을 보호하여 생기를 북돋아 준다고...."
"시끄럽다! 입술을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 남정네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더냐!!"
"......."
멸색사태의 호통에 이번에야말로 정조사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스승은 제자의 본심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어찌 그걸 모르겠느냐. 너를 딸처럼 키운 나다. 용봉지회에서 네가 여인이 된 걸 내가 모를 성싶더냐?"
"스, 스승님! 그게 아니라."
"여인이 된 것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색에 현혹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결코, 결코!"
정조사태의 어깨를 움켜잡으며 소리치는 멸색사태의 목소리에는 귀기마저 느껴졌다. 결국 정조사태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장문인의 별실에 방문한 목적을 간신히 꺼내 들었다.
"아까부터 쌍고응검 중 와룡검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뭐라?"
정조사태는 허리에 찬 두툼한 검집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검집 밖으로 튀어나온 손잡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뭉툭한 검집은 흡사 검을 가두는 감옥과도 같았고, 멸색사태는 침을 꿀꺽 삼키며 용의 장식이 그려진 검을 천천히 검집에서 뽑았다.
"이, 이건...!!"
우우웅.
검이 떨고 있었다. 멸색사태가 수전증으로 떨고 있다? 그런 일은 하늘이 갈라져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이...주인을 찾아서 울고 있는 것인가?"
순간, 갑자기 검신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검날 위에 새겨진 찬란한 금빛의 용은 검신에 누워 하늘을 향해 승천하려는 듯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웅장한 빛에 멸색사태는 입을 벌리며 순수히 감탄했다.
"오, 오오...!!"
"스승님,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는...."
탕!
멸색사태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검집을 닫았다.
"검의 주인이 나타났을 때다."
"그런 게...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스승님, 계십니까?"
문밖에서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둘은 손님을 맞이했다. 정조사태와 같은 항렬의 또 다른 제자, 정자사태였다.
"정조 사자도 있었군요."
"정자 사매, 무슨 일로...?"
"속가제자들이 저잣거리에서 들은 소문이 심상찮아서 왔어요. 글쎄...."
정자사태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열제의 후손이라는 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여전히 와룡검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카앙, 카앙!
권격이 앞으로 나간다. 네 개의 검은 동시에 반원을 그리며 권의 궤도를 튕겨냈다. 양의검이 좌우로 동시에 아래에서 공격을 틀어막고, 하늘을 날던 검 한 자루가 태청검법의 초식으로 오히려 역공을 펼친다.
"칫!"
소공녀는 목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스쳐도 즉사일 공격을 '적'은 가감 없이 행했다.
"다치는 건 걱정마시오. 내 죽어도 살려 보일 터이니."
상대는 가증스러운 웃음과 함께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일부러 한 손에 든 검을 놓으며 어검술로 검법을 펼쳤고, 세 자루의 검이 날아와 합격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삼재진을 어검술로?!"
"모든 무당의 무공을 어검술로 펼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태극혜검의 정수."
"큭!"
소공녀는 제자리에 한 발을 디디고 몸을 수평으로 빙글 돌렸다. 세 방향에서 휘둘러지는 검로를 향해 천마신권을 지르고, 천마신각을 펼쳤다. 삼면을 빈틈없이 공격하는 세 자루의 검에 마치 1:3 대결을 하는 것만 같았다.
"타-앗!"
소공녀는 바닥을 한 발로 디디고 높이 뛰어올랐다. 수직으로 치솟은 소공녀를 향해 세 검은 그녀를 쫓듯 날아올랐고, 소공녀는 학처럼 두 팔을 펼치며 아래로 마기를 퍼뜨렸다.
펄럭.
소공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 검의 끝을 한 발로 디뎠다. 당연히 칼날이 박히는 게 정상이었으나, 소공녀는 발에 모은 막대한 마기로 검에 가득한 의념을 끊어냈다.
그리고 검을 디디고 더 높이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몸을 옆으로 돌린 소공녀는 한쪽 다리를 아래로 쭉 뻗었다.
"천마파열각!"
"역시 소천마! 천마신공의 후계자라면 천마를 찬양하며 기술을 외쳐야지!"
소공녀는 입술을 깨물며 등 뒤로 마기를 방출했다. 중력과 함께 빛처럼 떨어지는 발끝이 노리는 건 상대, 비천색마의 머리.
"살수를 거침없이 쓰시는군! 그렇다면 이쪽도 보여주지!"
고오오.
순간, 비천색마의 전신에서 금빛의 기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몸에서 운용하던 내공이 현현하는 듯한 모습에 소공녀는 가슴이 철렁거렸다.
'하지만 공격을 멈출 수는 없어!'
"하아앗!"
소공녀는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무언가가 파스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소공녀는 전력을 다해 발끝에 온 마기를 집중했다.
"그거 아시오? 원래 나는 이 두 검을 태극혜검을 위해 가져온 것이 아니오. 소열제의 무공을 보여주기 위함이지."
"설마...!"
"보시오. 이것이야말로 패왕의 검!"
서걱! 두 검이 하늘을 가르듯 교차했다.
"와룡승천!!"
소공녀는 아래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금빛의 용에 전신이 떨렸다. 용은 녹색의 안광을 번쩍이며 소공녀를 잡아먹을 듯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소공녀는 멈추지 않았다. 발끝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용의 이빨을 깨부수고 목구멍을 뚫어 그 뒤에 숨은 상대를 향해 나아갔다.
"천마는, 지지 않습니다!"
"옳은 소리."
귓가에 소리가 울렸다. 소공녀는 어느새 자신의 뒤를 점한 움직임에 전신이 굳었다.
"자기 자신에게 지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허나 아직은 약하오, 소공녀."
톡.
비천색마는 소공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음! 복숭아처럼 말랑말랑하구나!"
퍼-억.
소공녀는 팔꿈치를 뒤로 돌려 색마의 명치를 가격했다. 하지만 색마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검날을 수평으로 세워 팔꿈치를 막았다.
"소공녀. 지금부터 나는 그대의 목숨 대신에...."
뭉클. 주물주물.
"그대의 뒤를 노리겠소. 크하하하!!"
"이, 이...색마!!"
주물주물주물주물.
그날, 소공녀는 천상용제검에 의해 목숨을 열일곱 번이나 잃었다.
[작품후기]
와룡검 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