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7화 (5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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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으로

"소열제의 쌍검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허리가 구부러진 남자, 종구는 얼굴을 가린 두 남녀의 앞에서 신명 나게 떠들었다. 나귀 한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잘 닦인 길을 따라 느긋하게 앞으로 나아갔고, 종구는 자신이 아는 바를 중얼거리는 이야기꾼이 되었다.

"청성파와 아미파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는데, 글쎄 웬 동굴에서 검 두 자루를 발견했다지 뭔가. 서로 하나씩 가져가서 확인해보니 웬걸! 소열제의 쌍검이라더군!!"

"소열제가 죽은 이후로 갑자가 골백번도 더 돌았을 텐데 그게 아직 남아있나?"

"골백번까지는 아니더라도...역사적 가치는 있습니다. 진짜라고 한다면 수집가들이 군침을 흘릴 겁니다."

이번 손님은 남자가 빈정거리고 여자는 똑 부러지는구나. 종구는 애써 불쾌한 기색을 감췄다. 저런 식으로라도 대답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종구의 말을 듣고 있다는 얘기였고, 무엇보다도 상대는 종구에게 정보료로 막대한 은자를 건넨 이들이다.

"아이고! 글쎄 그게 그냥 녹슨 철검이 아니더라니까!"

따라서 종구가 얼마나 입을 잘 놀리느냐에 따라 다음에 더 받을 은자의 양도 결정된다. 종구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고응쌍고! 지금의 기술로 만들어진 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예기를 자랑하더라지! 오죽하면 청성파의 장문인과 아미파의 장문인이 직접 검을 들고 비무를 펼쳤겠소? 장문인들조차 검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난 게지!"

"호오. 그렇게까지 잘 드는 검이란 말이오?"

역시 무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쪽은 남자다. 청년이 흥미를 보이자 종구는 자신이 두 눈으로 봤던 것을 기탄없이 묘사했다.

"청성파의 장문인, 벽박자(碧璞子)의 청풍검법으로 푸른 바람이 불고! 아미파의 장문인, 멸색사태는 옥허삼십육검으로 맞받아쳤지! 무공의 수위가 비슷한 둘의 승패는 나지 않았소. 왜냐! 둘이 든 무기조차 차이가 없었거든!"

"이상합니다. 둘 다 검을 거두거나 할 사람들은 아니지 싶은데."

"전투를 멈춘 모종의 이유가 있었겠지. 안 그렇소?"

"물론이오!"

종구는 근질근질하던 입을 드디어 열어젖혔다.

"그들이 발견한 소열제의 비밀 무덤...이라고 하기는 그렇군! 아무튼, 소열제의 쌍검이 숨겨진 곳을 알리는 지도를 누가 발견했느냐, 바로 사천당문이오!"

"어머나."

"개판이로군."

청성파와 아미파만 하더라도 복잡한데 사천당문까지 끼어들었다. 여인은 탄식을 내뱉고, 청년은 큭큭 웃으며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청성과 아미, 당문은 이번에 어떤 용봉도 내지 못하지 않았나?"

"크으, 잘 알고 있군그려. 그렇지. 덕분에 사천 전체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는데...그래서 더욱 쌍검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오!"

"쌍검과 명성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쌍검을 둘로 합쳐야만 소열제가 남긴 검법을 익힐 수 있거든!"

"네?"

"손잡이 부분이 달려있던 금줄로 묶여 있었다더군! 청성과 아미에서 하나씩 가져가는 바람에, 원래는 하나로 붙어있던 검을 둘로 쪼개버린 셈이지! 그러면서 두 개의 검신에 남아있던 구결이 사라졌다고 하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그렇지. 쌍검은 쪼개는 게 아니지."

여인은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쌍검은 차치하고, 소열제의 검에 무공 구결이요? 소열제가 무공을 익혔다는 말씀입니까?"

"불가능한 일도 아니긴 하지. 고대에는 문파와 관의 경계가 희미했으니. 당시 소열제에게 충성을 바친 무후의 후예도 지금 무림에 떡하니 자리 잡아 있지 않은가?"

"크흐흐. 나름 황실의 핏줄이었던 분 아니오? 황가의 무공 정도는 전해받았겠지. 그런데 이게 말이야...보통 일이 아니더라고."

서서히 나귀가 성문 가까이 다가왔다. 종구는 뒤에서 들려오는 은자 소리에 입꼬리를 비틀며 낮게 속삭였다.

"소열제의 쌍검술이 글쎄, 무당에서 새로이 나왔다는 태극혜검급이라고 하더이다!!"

* * *

"비천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실."

객잔. 소공녀와 같은 방으로 들어와 짐을 푼 나는 그녀의 물음에 거짓 없이 답했다.

"청성과 아미가 한 개씩 나눠 가졌다는 검도 진짜일 것이고, 두 검을 하나로 모아야만 소열제의 무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게 태극혜검급의 검법이라는 것도 진실일 거요."

확신에 가득 찬 내 말에 소공녀는 눈을 감아버렸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라 나는 일부러 방해하지 않았다.

'나도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까.'

기억 속에 모든 정보가 남아있다고 한들, 그걸 현재로 끄집어내어 상황과 짜 맞추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천환단 건부터 시작하여 미래가 조금씩 헝클어지기 시작한 이상, 모든 걸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소열제 쌍검 소동'은 나도 익히 알고 있던 일이다. 다행히 소동이 일어나는 시기가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대략적인 과정과 경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천당문에 갑자기 보물지도 하나가 툭 떨어진다.

모종의 이유-아마도 용봉지회가 아니었을까?-로 한자리에 모인 당문의 사람과 청성, 아미의 제자들은 모험심을 불태우며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비급이나 영약, 또는 은거기인의 안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더니 정작 나온 것은 제단에 凶 자로 박혀있는 두 자루의 검이었다. 검은 각각 '이'와 '릉'이라는 글자를 반으로 가르듯 박혀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지도를 발견한 장본인인 당가의 사람이 같이 들어갔다면 지도를 발견한 당문에서 맡아 후한 사례를 하는 거로 훈훈하게 끝날 일이었으나, 마침 당사자가 독공의 운용을 잘못하여 앓아눕게 된다.

결국 청성과 아미의 두 제자가 함께 지도를 살펴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데, 이게 하필이면 지도가 너무 정확해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더라.

- 보물 지도를 우리 당문에서 발견했으니 우리 것이오!

라고 사천당가는 외쳤다.

- 무슨 소리! 발견한 것은 우리들이오!

라고 청성파와 아미파는 외쳤다. 이렇게 보면 사천당문과 청성, 아미 연합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청성파와 아미파 두 문파 사이에도 나름대로 논쟁이 있었다.

- 청성파는 부끄러운 줄 아시오! 제단까지 가는 도중에 깔린 기관진식을 누가 전부 파훼했소? 우리 아미파일세!

- 흥! 정작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소?! 우리 청성의 무인이 없었으면 기둥 뒤에 공간이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오!

9할을 이루어냈으나 결정적인 단서는 찾지 못한 아미파.

1할도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제단에 꽂힌 검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을 발견한 청성파.

두 문파가 서로 대립하기 시작하며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당연히 이 소란은 막 사천에 들어온 나와 소공녀의 귀에 들어올 정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게 우리가 굳이 사천에 온 이유였다.

"소공녀, 보물 지도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다고 생각하시오?"

"......모든 소란의 뒷배경에는 마교가 있습니다. 음습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비열한 놈이."

소공녀는 드물게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맞습니까?"

"그렇소. 대공자가 뒤에 있지."

세 개의 정파 문파가 서로 힘을 합하지 못하게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것. 그리하여 추후마교가 일어날 때 지역 내에서 정파의 문파끼리 서로 연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번에 우리가 사천에 온 이유는 쌍고검을 우리가 챙겨, 대공자의 술책을 무너뜨리는 것이오."

생각만 해도 화가 절로 솟구치게 하는 존재, 대공자의 수작이었다.

절대 사공희에게 줄 선물로 챙기려는 건 아니다.

* * *

- 밤놀이 산책을 조금 다녀오지.

비천색마는 바람처럼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게 된 소공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쾅!

"끄으으...!"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소공녀는 평생 지금처럼 화가 나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짜증 나!"

소공녀는 홀로 침대를 쾅쾅 두드리며 성질을 부렸다. 색마의 앞에서 보인 이지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짜증을 부리며 화를 내는 건 영락없는 그 나이대의 소녀였다.

"도대체 뭐야, 저 인간?!"

소공녀가 화가 난 점은 단 하나.

"색마라면서 내 몸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볼 수 있어! 감히 이 몸을 보고도 안 덮쳐?!"

이름값을 해라. 소공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색마면 차라리 겁탈은 하든가!! 사람 미치게 만들면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색마란 무엇인가. 여인을 두고 아무렇게나 겁탈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비천삼마 중 한 명이었던 도마가 그러했듯, 뒷감당은 생각 안 하고 일단 구멍이 보이면 바로 집어넣는 것이 색마의 본질이었다.

'이 새끼 색마라면서 왜 나는 겁탈 안 하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비천색마는 색마라는 이름답지 않게 자신에게 손 하나 대지 않았다.

'내가 매력이 없나? 아니면 내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아니면 내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상황을 즐기는 건가? 아으, 머리아파...!'

덕분에 마교 소공녀, 이시아는 언제 비천색마가 자신을 겁탈할지 항상 긴장해야만 했다.

긴장하면 즉시, 머리칼이-

쾅!!!

"뭐가 마음부터야! 이게 무슨 계집애들이 읽는 낭만환상소설도 아니고!!"

무림은 약육강식이며, 소공녀 또한 그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령 색마가 자신을 범한다고 해도, 그녀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여인의 몸은 하나의 무기일 뿐이며, 소공녀는 딱히 사랑하는 이에게 첫 경험을 바쳐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직 처녀지만!

'그래도 이왕 할 거라면 나보다 강한 남자에게.'

약자는 강자에게 먹히는 것이 자연의 섭리. 야생의 짐승들에게서나 보일 법한 논리이지만, 천마의 딸로서 봐온 무인들의 생리가 그러했다.

천마는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모든 여인을 취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여인을 취했고, 그중에는 이미 타인을 지아비로 맞이한 여인도 있었다. 힘으로 빼앗았고, 그녀는 천마의 여자가 되었다.

그런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만큼, 소공녀의 생각은 간단했다.

남자도 여자도 결국 강한 사람이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결국 자신이 강해지면 되는 것이라고. 소공녀가 아닌 소천마, 그리고 언젠가 천마의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되면 되는 일이라고.

"그런데...!!"

소공녀는 비천색마와 만나고 난 뒤, 그가 자신을 사천까지 호위하며 데려온 모든 여정을 떠올렸다.

- 소공녀, 이곳 말고 한 시진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객잔이 나올 것이오. 그곳에서 하루 묶고 가도록 합시다.

- 이 산 중에 무슨 객잔입니까? 동굴에 도포 깔고 노숙을 하면 됩니다.

- 어서 오십시오. 두 분입니까? 방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소공녀는 단 한 번도 노숙을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객잔도 몸을 씻어낼 수 있는 설비가 모두 마련되어있었다.

- 아침에 약하시오? 의외로군. 어서 수저를 드시오.

- 뭐죠? 근처 민가를 습격해서 밥이라도 훔쳐 오신 겁니까?

- 내가 만들었소. 오늘은 호북의 전통 요리요.

소공녀는 삼시 세끼를 굶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중간 간식이라는 명목으로 과일까지 예쁘게 깎아 대접을 받았다.

- 도포가 많이 낡았군. 새로 옷을 하나 만들도록 하지. 따라오시오.

- 여, 여긴? 너무 비쌉니다! 이런 고급점포에서 옷을 살 은자는 없습니다!

- 어서 오십시오. 예? 맞춤 제작? 전표...? 황궁에 납품할 물건으로 대령하겠습니다.

소공녀는 이전에 입었던 해진 옷을 전부 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몸단장을 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잘 어우러진 경장과 머리 위를 덮는 얇은 면사포에 소공녀는 차마 옷을 벗지 못했다.

'이건 사육당하는 거 아닌가?'

소공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진심으로 혼란에 빠졌다.

매일 매일 맛있는 밥을 먹여줘, 옷도 새로 다 사줘, 숙소도 다 구해줘, 심지어 비천삼마와 비교하면 색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행동거지 또한 착실했다.

- 으으, 살려주세요....

- 새끼 인면지주의 독에 당한 듯합니다. 아가씨,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치료할 수 있으면 치료해주십시오.

심지어 남들 앞에서는 자신을 모시는 하인처럼 행동하며 허리를 숙였다. '비천'의 자리를 차지한 만큼 비천삼마의 역할을 대신하여 마교 내에서 소공녀의 지지세력이 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비천색마가 하는 행동은 지지를 넘어 충성을 바친 하인의 행동이었다.

'무공은 나보다 몇 배로 강한 사람이 도대체 왜?'

소공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바로 자신과 비천색마의 '힘의 차이' 때문이었다.

'내 몸이 목적이라면 그냥 겁탈하면 될 텐데, 진짜 마음을 얻겠다고 그런 짓을 하는 건가?'

천마에는 미치지 못할 게 분명하지만, 현경에 오른 고수가 자신을 마음에 품고 구애를 멈추지 않는 건 썩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적어도 외형만큼은 나름 소공녀의 취향이기는 했다.

다만.

"......그래도 나보다 연상은 싫어."

연상도 어느 정도가 있지, 상대는 반로환동의 고수가 아닌가. 소공녀는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으으...머리 아파서 머리칼이 빠질 것 같아. 도대체 저자는 왜 나를...아."

사라락. 소공녀는 자신의 손바닥에 장난처럼 그어진 검은 곡선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소아성애자?!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으으, 도대체 뭐지? 내가 도대체 무슨 은혜를 베풀었다는 거야?"

도대체 그는 자신에게 무슨 도움을 받았기에 평생 갚아도 모자를 은혜를 갚겠다고 저리 나서는 걸까.

소공녀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작품후기]

??? : 나는 내가 다 했는데?!

??? : 아 그래서 동정 떼줬냐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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