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3화 (5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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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내린 뒤

천마는 탈모다.

정확히는 천마신공을 익히는 모든 이들이 탈모가 된다.

- 천마(天魔)는 곧 하늘! 육신은 땅에 묶여있으나, 혼백은 저 드높은 하늘에 우뚝 선 존재! 그러므로 몸에 흐르는 기는 하늘과 상통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냐, 바로 백회혈이니!

"천마신공의 기는 상단전에 집중되어 있으며, 인간이 올곧게 섰을 때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호연지기를 받아들인다. 인간의 몸은 많이 사용할수록 뼈와 근육이 닳아 노쇠하듯이, 자연히 기가 모인 곳도 그만큼 반동이 일어나기 마련이지."

"그 말씀은 혹시...?"

사공희는 자신의 정수리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톡 까놓고 말해 과도한 내공의 운용이 모근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무공의 상승 경지에 단계가 있듯, 벗겨지는 것도 순서가 있는데...."

"그러니까 소공녀도 언젠가는 벗겨진다는 거죠?"

설명을 전부 전해 들은 사공희는 호적수의 미래에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차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맨들맨들했지.'

천마신공을 익힌 자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벗겨진다. 특히 천마신공을 자신의 원래 내공심법에 섞어서 활용하는 이들은 모근이 약해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탈모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천마신공, 무섭네요. 자신의 체모로 힘을 얻다니."

"그러니까 말이다."

따라서 천마신공은 마공이다. 힘을 얻는 대가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털'이 빠지게 되고, 최후의 최후에는 전신의 모든 체모가 뽑혀 나온다.

"천마신공의 부작용을 이겨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탈마의 경지에 이르는 것. 이른바 현경의 경지와 비슷하며, 이 단계에 오른 이들을 '초마교인(超魔敎人)'이라고 부른다."

"그게 뭐예요?"

"천마신공이 탈마의 경지에 올라 극성에 이르렀을 때의 단계지. 전신의 모근에 마기가 아닌 하늘의 기운이 깃들어, 전신의 털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금색이 된다. 저 멀리 서역의 색목인들과 같은 인간의 색이 아닌, 태양 빛을 머금은 듯 찬란한 금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초마교인이라는 이름인가요?"

"나도 몰라."

이름을 붙인 당사자에게 물어보려면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를 찾아야한다. 나는 혈교주가 하는 말을 들었을 뿐,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한 건 아니니까.

"탈마의 경지에 오르면 모근이 더는 뽑혀 나가지 않지. 이미 하늘의 기운을 몸에 담았으니. 천마신공은 탈마, 현경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천마도 모근을 지킨 채 탈마에 이르지 못했다."

"전부...도중에 벗겨졌다는 얘기군요."

"그래. 지금까지는 한 명도 빠짐없이 그랬지. 지금의 천마도 마찬가지다."

훗날 천마가 될 사람은 예외지만, 현재까지라는 단서를 달았으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모근을 지키는 다른 방법은 바로 의학이다."

"아! 상처를 치료하듯 약을 바르는 거군요! 의학...혹시 천환단?!"

"천환단도 탈모는 안 돼."

"아...."

만약 탈모까지 고칠 수 있었다면 진정한 만병통치약이 되었을 것이다. 전염병조차도 치료할 수 있는 천환단이 탈모를 치료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천마는 풍성한 머리칼을 휘날리며 세상을 주유하고 다녔을 것이다.

"천환단으로는 탈모를 고치지 못하지만, 신선은 탈모를 치료할 수 있지. 정확히는 치료라기보다는 벗겨진 머리가 다시 자라나도록 하는 것인데, 이 비법이 바로 의선(醫仙) 화타의 청낭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신의가 가진 청낭심법의 극의는 의선이 되는 것이며, 의선에 이른 자만이 탈모를 고칠 수 있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환골탈태도 가능한데 환모탈태라고 안 될 리가 있겠느냐?"

모든 걸 가졌지만 머리칼은 가지지 못한 이에게 체모가 돌아간다면, 그는 비로소 완전해졌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좀 그런.... 벗겨진 채로 그냥 살면 안 되나요?"

"갈!!"

나는 단전 아래에서 호통을 내질렀다. 사공희는 움찔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는 두 부모님 덕분에 풍성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태극혜검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알아라!"

"죄, 죄송합니다. 상공. 제가 의도치 않게 상공께 상처를...."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다. 보아라, 내가 어디 벗겨질 두상이더냐?"

나는 사공희에게 풍성한 나의 위를 가리켰다. 탈모는커녕 오히려 머리숱을 털어내지 않으면 과도하게 덥수룩해 보일 정도로 다모(多毛)였다.

"하나의 기만 다루면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생기가 마련. 태극과 음양의 힘을 다루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알겠느냐? 위가 너무 휑하여도 안 되는 것이며, 아래가 너무 풍성해도 안 되는 것이다."

"상공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태극의 묘리를 살리라는 것이지요?"

"그래. 체모 또한 너의 몸이니까."

사공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었다. 비무대회에 대한 반성회는 끝났고, 지금은 뒷 일을 위해 내공을 갈무리할 때였다.

고오오.

태극신공의 내기가 사공희의 전신에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앞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운기를 도우며 음양의 기를 순환시켰다.

'내 머리를 위해서라도 여인의 음기가 필요해. 극양지기만 다루면 나도 벗겨지겠지만, 음기로 머리를 식히면 되니까.'

음양의 적절한 조화만 있으면 탈모도 극복할 수 있다. 쉽게 열이 오르는 머리에 음기를 둘러 열을 식혀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모근을 보호하는 비법이다.

당연히 음기는 채음보양으로 채웠다. 덕분에 나는 풍성하면서도 모근에 너무 열을 많이 받아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사공희는 운기조식을 마쳤고, 다시 우리는 차를 들이켰다.

"상공,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의선이 되면 탈모를 고칠 수 있는데, 왜 마교는 아직 탈모를 극복하지 못한 걸까요? 신의를 납치했으면서."

그렇다.

마교는 탈모를 극복하기 위해 신의를 납치했다.

항간에는 신의밖에 치료하지 못하는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라고 포장되었지만, 극소수의 인원 이외에는 불치병이 '탈모'인 걸 몰랐다.

"그야 신의도 의선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정작 납치한 신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과 예산은 넘쳐나고 성과는 제법 거두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다.

"의선이란게 무공처럼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실전된 비법을 밝혀내는 자가 당대의 의선이 되는 셈이지. 천환단이 유일하게 극복하지 못한 탈모를 극복하는 자라면 능히 의선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탈모를 고치는 약, 발모제를 개발하는 즉시 그가 의선이 된다. 청낭서의 유일한 찢어진 '발모의 장'을 완성하는 자가 바로 의선이다.

진시황제가 불로불사가 아니라 탈모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분명 풍성한 채로 죽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걸 극복할 비법이 청낭서에 적혀있었으니까.

"상공, 그럼 상공이 의선이세요?"

"의선은 아니지만 의선급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그래, 궁금한 모양이구나. 내게는 천마가 그리도 원하는 발모제 제조의 비법을 알고 있다. 그것으로 나는 비천삼마를 제압하고 마교가 네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막았다."

"상공...! 저를 위해 그런...!"

"그깟 비법 하나로 네 정조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그 어떤 것이라도 까발릴 수 있다. 설령 태극혜검이라고 하더라도."

와락. 사공희는 나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안았다. 감격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숨을 헐떡이는 바람에 나도 아랫도리가 껄떡거렸다.

"상공, 정말 고마워요...!"

편지를 받은 천마도 미칠 듯이 기뻐했으리라.

- 소천마는 내가 가져가겠소. 그대와 싸워 이겨, 내 아내로 삼으리다.

'혼수로 가발이 아닌 모발을 들고 가면 얼마나 천마가 좋아하겠어? 심지어 자기랑 전력으로 대련해줄지도 모르는 존재인데.'

천마와 비슷한 급의 도사이자 반선(半仙)인 척 사기를 치며, 천마 가문에 대대로 이어진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천마는 내가 저지른 짓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다.

자존심? 굴욕?

- 흐하하! 내 딸을 가져가고 싶거든 나를 이겨라, 무붕이!!

그런 건 나중에 내가 직접 천마의 앞에 섰을 때, 그가 나를 향해 온갖 분노를 주먹으로 푸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십마 중 무마의 이름을 사칭했고, 내 별호를 직접 정하여 알렸다.

"상공, 그러면 비천삼마는 어떻게 되어요?"

"비천삼마는 내 의도대로 중원을 잠시 떠날 것이다. 천마가 그리도 찾지 못해 안달인 발모제의 약재로 쓰일 발모초, 천마지루(天馬之淚)는 아주 먼 곳에 존재하거든."

천마의 눈물이다.

"어디요?"

"동쪽. 과거 진시황은 서복에게 자기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했지. 그와 비슷한 것이다. 삼마는 발모초를 찾아 중원을 떠날 것이다."

나는 삼마에게서 비천삼마의 이름을 빼앗고 그들을 중원에서 내쫓은 대신, 내가 그들의 역할을 대신해주기로 결정했다. 비록 내가 중간에서 일방적으로 일을 추진했지만, 분명 삼마도 천마도 만족하게 되리라.

다만, 그들이 가야 할 거리는 이곳 호북에서 가도 아주 먼 거리가 될 것이다. 한두 달, 아니 일 년 정도로는 분명 부족할 먼 거리였다.

"아무리 빨리 찾아봐야 다음 용봉지회가 돌아올 때 즈음이 될 터."

"......상공."

사공희는 내 앞에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췄다.

"상공께서는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물어보는 걸 물어봐도 되는지 묻지 말고 바로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지."

"...떠나시려는 거죠? 조만간. 곧."

단도직입적인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술잔을 들어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삼마 대신 소공녀를 옆에서 지켜볼 생각이다."

내 말에 사공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슬이 맺힌 눈썹이 파르르 떨렸으나, 그녀는 곧 입꼬리를 애써 들어 올리며 손을 가지런히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소공녀를 부인으로 맞이하려고 하시는 거죠? 그날, 의원에 찾아온 소공녀와 만났던 날부터 직감했어요. 다른 여인들을 바라볼 때 상공은 항상 여인들의 몸을 바라봤지만, 상공은 소공녀의 두 눈을 직시하셨죠. 비무대회의 관중석에 서셨을 때도, 제 경기가 있을 때도."

"사공희."

"상공께서는 저를 이곳에 두고 떠나기를 주저하셨어요. 하지만 이제 저를 키울만큼 키웠으니. ...정확히는 저를 지켜줄 또다른 울타리가 있으니, 이제는 다른 여인들을 찾으러 떠나도 된다고 생각하신 거죠."

사공희는 역시 똑똑했다.

"별호를 얻고 무당의 중요 인물이 되는 즉시, 무당파는 저를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줄 테니까."

그리고 그게 그녀가 용봉지회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이유였다.

"지난번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나는 사공희의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무당산은 네게 제2의 고향이 될 것이다. 용봉지회를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물러날 현기도사가 죽기 전까지 너와 태극혜검의 길을 걷는 사제가 될 것이고, 현타도사가 너를 굳건히 지지해줄 것이다. 장문인이 될 현철도사도 백도제일화가 된 너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야."

"하지만 거기에 상공은 안 계시잖아요."

"잠깐 자리를 비울 뿐이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제가 그걸 어찌 믿을까요? 꽃을 떠나간 나비가 다른 꽃의 꿀을 탐하러 가려고 하는데."

"그럼 증거를 남겨야겠군."

사락. 나는 양초를 꺼뜨렸다.

"희야.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시간이 거의 1년이다. 하지만 나도 너도 내공 수련을 위해 많은 걸 포기했지."

매일 매일 성교는 했으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 너와 나는 스승과 제자, 주인과 몸종으로 이렇게 있는 것이 아니다."

움찔. 앞섶을 향하는 내 손길에 사공희는 처음 내 위에 몸을 겹치던 날처럼 움찔거렸다.

"남자와 여자로 있는 것이다. 무붕이고 태극검후고 태극혜검이고 나발이고,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 서로 마주 앉아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마주 앉은 사공희와 눈을 마주했다. 사공희가 엄청난 성장을 했듯, 나 또한 사공희를 이제는 내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자랐다. 기대감과 두려움, 그리고 애정으로 가득한 눈동자 속에 비친 남자는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소저. 이름이 무엇이오?"

여인은 내가 건넨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리며, 울면서 활짝 웃었다.

"...소녀, 사공희라 하옵니다."

"그렇소?"

나는 사공희와 이마를 맞대고, 허리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라고 하오. 그대의 지아비가 되고 싶소."

회귀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나는 타인에게 내 이름을 알렸다.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주겠소?"

"네? 사, 상공! 하지만 저는, 그, 태극화이자 백도제일화로, 임신하면...!"

"씁, 견희야. 밥 다 지어놨더니, 쯧. 내가 얘기하지 않았느냐."

찰싹, 찰싹.

"지금의 너와 난 무인이 아니라, 서로를 원하는 여자와 남자라는 것을."

나는 사공희의 가슴을 좌우로 가볍게 후려치며 그녀를 훈계했다.

"나는 너를 원한다, 사공희."

"......저를 가져주셔요."

나는 색마가 아닌 남자로서, 사공희를 안았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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