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52화 (52/568)

--------------------

막이 내린 뒤

용봉지회가 끝남에 따라, 마교의 소공녀가 굳이 호북에 남을 이유는 없었다.

비록 소공녀가 여느 정파 못지않은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녀가 다소 손속이 과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압도적인 무공 차이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신의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여러 여인이 무인의 길이 꺾일 뻔했다.

- 이대로 어찌 마교의 잔당을 보낼 수 있겠소!

- 아니, 좋게좋게 끝냅시다. 좀.

아무리 무림맹주가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대로 따르면 그게 무림인이겠는가.

- 무림맹주는 나서지 마시오! 더는 소공녀의 편을 들면 그때는 가만히 있지 않겠소!!

결국 소공녀는 용봉지회가 끝나자마자 곧장 무림맹주의 도움 아닌 도움을 받아 임시로 몸을 숨겼다. 흑도제일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마교의 존재에 대한 과도한 관심 속에서, 소공녀는 비천삼마를 찾아 은신처로 곧장 몸을 날렸다.

- 뭐지?! 숲속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어!

- 젠장, 분명 진법이 깔려있을 것이다!

- 찾아라!!!

소공녀를 쫓아온 이들은 모두 소공녀의 은신처를 찾지 못했다. 진법이 있다는 것은 알아냈으면서 정작 진법을 그 누구도 파훼하지 못했다.

"이게 뭐야…?"

그리고 돌아온 무당산 인근 은신처는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미혼표식궁귀진으로 소공녀와 비천삼마만 출입할 수 있는 곳에 도대체 누가 다녀갔다는 말인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오셨소, 소공녀?"

은신처 인근 숲 방향에서 비천삼마는 삿갓으로 머리를 가린 채 소공녀의 앞에 섰다. 소공녀는 셋의 몸에 가득한 상처를 보고 경악했다. 피는 없지만, 전신에 구타의 흔적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정파의 고수에게 당했소.”

“...그 무당의 은거도인 말씀 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우리 셋을 아주 완벽히 가지고 놀았지. 그리고 보시다시피.”

환마는 자신의 턱 아래를 가리켰다. 길게 늘어진 수염은 반듯하게 깎여있었고, 산발이었던 머리는 뒤로 훤칠하게 넘어가있었다. 그 모습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노인네와는 달리, 미노년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우리의 목숨을 앗아갔지. 그는 비천삼마를 죽였소."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뿐만이 아니오.”

"아가씨, 적마입니다."

적마가 갓을 벗었다.

일부러 수염을 길러 얼굴을 숨겼던 그는 수염의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한 피부를 완전히 드러냈고, 머리를 짧게 다듬은 덕분에 귀공자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자는 비천삼마를 죽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꾸몄습니다. 한 거라고는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다듬은 정도이나...."

“어머나. 두 분 모두 한층 더 잘생겨지셨습니다. 그러면....”

“.......”

소공녀의 시선이 도마에게 향했지만, 도마는 끝까지 갓을 벗지 않았다. 적마는 도마의 갓을 향해 흑선을 튕겼고, 대나무 갓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아.”

소공녀는 도마의 머리를 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석양이 지는 붉은 노을빛이 도마의 머리에 비쳐 반짝거렸다.

“크흠!!”

도마는 정수리까지 시뻘게졌다. 소공녀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 다른 두 남자는 미청년과 미노년이 되었는데, 도마만 대머리가 되었단 말인가?

“도대체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은거도인이 우리의 명을 가져갔소. 죽일 이유까지는 없다면서 목 대신 머리카락을 잘라가더군. 그래서 이제 우리는 비천삼마가 아니오.”

“예?”

“비천삼마라는 이름마저 빼앗겼습니다. 저희는 굳이 말하자면 그냥 삼마입니다.”

“도대체 무슨…?”

무당의 도사가 비천삼마를 주살하지 않고 이름을 빼앗아갔다? 명백히 이상했다. 이해할 수도 없고 수긍할 수도 없는 의문투성이였지만, 당사자 이외에는 그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었다.

“젠장, 아가씨. 우리도 이해 못 합니다. 세상 어떤 도사가 자기를 색마라고 칭한단 말입니까?”

도마는 억울함에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래요! 더럽게 강했습니다! 본인의 탈영추적도가 손도 못 쓰고 패배했습니다! 천마께서 내려주신 별호와 부모가 남겨준 이름은 그대로 두면서, 다시 태어나라면서 비천삼마의 이름과 머리칼을 가져갔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이런 식으로 자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다른 둘은 직접 다듬어주고 갔으면서!!”

“.......”

소공녀는 근질근질한 입을 꾹 닫았다. 확실히 다른 둘은 잘린 게 훨씬 더 낫다고 하고 싶을 정도로 외형이 말끔해졌다. 도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울린다고 말하면 분명 실례가 될 것이며, 자신의 지지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른 침과 함께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그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소공녀가 싸운 태극화의 스승이었소. 아마 우리에게 내려진 임무를 알아챈 듯했지.”

“임무요?”

“소공녀가 태극화에게 패배할 것 같으면 그 여인을 겁탈하라는 지시였소. 하늘에서 내려온 지시.”

소공녀는 쏘아붙이려다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공자를 통해 직접 전하신 명령이었습니다.”

“이….”

최악의 예상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소공녀는 머릿속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버님의 명령이 그런 추잡하고 더러운 행위였습니까?"

"소공녀의 생각을 알겠소. 대공자가 거짓을 말했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대공자가 천마님을 흉내 낼 정도로 천마신공의 성취가 높아졌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리가 없다는 가정하에, 천마께서 소공녀 님의 우승을 위해 손을 더럽히겠다고 하시는 것."

상황을 파악한 소공녀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하지만 가장 소공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가장 큰 혼란은 용봉지회의 결과가 상당히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저, 육봉에서 벗어났습니다."

"벗어났다? 스스로 포기라도 하셨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소공녀는 비무장에서 있었던 일을 한 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삼마는 소공녀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검술로 각기 다른 검법을 사용했다?”

“심지어 두 개는 들고, 다른 두 개는 어검술로?”

"젠장, 그런 엄청난 비무를 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다니."

삼마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퍼뜩 정신을 차려 자신들이 누구와 싸웠는지 상기했다.

"...우리는 그 스승과 직접 싸웠지, 참."

“젠장, 역시 스승 맞잖아? 태극혜검의 어검술을 사용하는 자가 사제지간이 아니면 무슨 관계겠어?”

"껄껄껄! 소공녀, 미안하게 됐소. 우리는...."

습격자의 정체는 태극화를 키운 장본인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라면 현자도사지만, 그의 이름만 빌려서 사칭했을 가능성도 있다. 환마는 소공녀에게 자신들이 겪은 일을 그대로 읊었다.

"천마신공을 썼는데도 세 분이 졌다고 하셨습니까...?"

"물론. 상대는 완전히 눈이 뒤집혀있었소. 여제자를 겁탈한다고 도마가 날뛰려고 했으니, 당연히 우리를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긴 했지. 크허허, 진짜 무서워서 아직도 정신이 온전하구만."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상대를 인정하는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젠장, 그놈을 인정하지 않으면? 현경 고수를 상대하는 건 정말 죽을 것처럼 숨이 막힌단 말이오.”

“현경...."

소공녀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아직 닿지 못한 아득한 경지이며, 천마가 도달한 탈마(脫魔)의 경지였다. 단계로 치면 초절정과 화경을 거쳐야 했으며, 소공녀는 부친과 오라비가 걸어간 길을 항상 뒤 따라가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천산에 돌아가도록 합시다."

"아, 그것 말인데...."

삼마는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열기를 주저했다. 결국 머리를 벅벅 긁던-본인도 긁다가 두피를 긁는 바람에 머쓱해진-도마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소공녀와 삼마에게 새로운 임무가 생겼소. 소공녀께서는 이곳에 이틀간 머무르신 뒤, 소공녀를 인도할 새로운 '마(魔)'를 맞이하시오."

"...임무? 혹시 대공자가 말한 것입니까?"

"아니오. 본인이 직접 천마님과 전서구를 주고받은 것이오."

환마는 환술로 만들어진 독수리를 부렸다. 소공녀는 독수리의 발목에 묶인 양피지에 긴장된 손길로 매듭을 열었다.

"전서구로 이런 종이를 쓸 분은 아버님 밖에 없...다녀와라? 뭘?"

行.

집 한 채 값 수준으로 서역에서 들인 종이에는 단 한 글자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잘 들으시오, 그러니까...."

* * *

어둠이 짙게 깔린 동굴 속. 음침하고 사이한 기운이 가득한 곳에 건장한 체격의 중년 사내가 벽을 바라보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그는 흘러내리는 금색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듬고 있었다.

또각, 또각.

입구에서부터 굽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궁중 여인들이나 입을 아름다운 적색의 옷을 차려입은 여인은 사내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상자를 진상했다.

"마화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천마."

"...그래. 고생했다."

중년 사내, 천마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거칠게 집어던졌다. 금색으로 빛나는 가발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원래의 색인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누구의 것이지?"

"공동파 도사의 것이랍니다. 머리칼을 뽑은 데다가 수염까지 잘라서 붙임머리로 붙였사와요."

"그래? 크흠. 어디보자."

천마는 도사의 것으로 만든 가발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가발을 쓰자마자 머리칼이 금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쯧. 이번에도 글렀군."

"죄송합니다, 천마."

"네가 죄송할 일이 아니다. 내가 탈마에 머무르는 것이 화근이지."

천마신공이 극성에 오른 반동인지, 아니면 서역 근처와 맞닿아있는 마교의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천마는 천마신공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벗겨졌고, 상단전에서 흘러나오는 기로 인해 가발을 써도 금발로 물들기 일쑤였다.

"역시 나의 털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힘내셔요. 다음 보고입니다. 소공녀 아가씨께서 흑도제일화가 되셨습니다."

어쩌고저쩌고. 마화의 보고에 천마는 눈을 반짝였다.

"허어, 결국 이기지는 못했다?"

"죽이려고 했다면 먼저 닿았을 거예요. 하지만 소공녀 님이 그런 분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끙, 옆에서 마음을 다독여 줄 사람이 필요한데. 비천삼...아니, 귀천삼마에게 괜한 지시를 내렸나?"

"귀천삼마요?"

"그래. 비천(飛天)의 이름은 회수되었다. 무마(無魔)에 의해."

"......!!"

마화는 눈을 찌푸렸다. 마교에서 유일하게 천마 말고 무마의 존재를 아는 마화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무마는...."

"그래. 하지만 미혼표식구궁진을 밟아 들어오고, 비천삼마를 죽이지도 않고, 환마를 겁박해 이런 편지를 보냈더구나."

마화는 천마가 건넨 종이를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어머.... 푸흡. 갑자기 왜 내공 수련을 하시나 싶더니, 몸이 근질근질하신가 봐요?"

"그래. 태극혜검으로 천마연환장을 초식을 깨뜨렸는데 내가 보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편지에는 태극혜검의 검로와 천마연환장의 구결이 적혀있었다. 고작 글만 읽었음에도 천마는 기술이 파훼 당했다는 것을 직감했고, 상대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본인을 탐색도사 무붕이라고 칭하더구나. 동시에 아직 '내'게서 별호를 받지 않았으니 무마(無魔)라면서. 젠장, 도사 놈이 등선할 생각은 안 하고 색에 물들어있다니. 말세로다."

"탐색...풉. 어떤 성격인지 알 것 같네요."

"그래. 문제는 이놈이 나에게 거래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꼼짝도 못 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래지."

"흠....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만 빼고는 천마께도, 소공녀께도, 삼마에게도 나쁜 건 없네요. 대공자가 피보는 것 말고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단 한 명이 피해만 본다는 것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 마화는 천마의 표정에서 거래를 받아들일 생각이 있음을 직감했다.

"무당에 역병을 뿌린 놈에게도 이득이 돌아가게 했을 리가 없다. 놈은 고단수야. 행동 하나하나에 의도가 담겨있지."

"그냥 성관계에 미친 건 아니고요?"

"...그렇긴 하지. 자기가 감히 내 딸을 옆에서 지도하면서 4년 이내에 화경으로 만들겠다니. 이 새끼, 분명 노리는 게 그걸 거다."

천마는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명 내 딸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게 분명해!"

"어머나! 천마께서 그리도 바라시던 미친 짓이 드디어 일어나는 건가요?"

"크하하! 그렇다. 소공녀가 이번 호북행으로 정파 놈과 눈이 맞아서 '이 사람과 백년가약 맺겠어요!'하는 일을 바랐건만, 이런 거라면 나도 인정하는바. 암. 그렇고말고."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천마는 아이처럼, 그리고 악마처럼 웃었다.

"천마의 딸을 가지는 남자는 천마보다 강해야 하는 법. 시아의 베필이라면 적어도 나보다는 강해야지! 흐흐, 맹주놈이 자꾸 빼는 바람에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어. 오랜만에 몸 좀 쓰겠군."

"나 참. 하여튼 남자들이란."

마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천마, 임무가 뭐예요? 한 장 더 있는 것 같던데. 왜 저한테는 그걸 보여주지 않는 거죠?"

"......크흠!"

천마는 앞섶을 풀어 헤치며 다가오는 마화의 손길에 몸을 뒤로 눕혔다. 그의 손에는 마화에게 보여주지 않은 종이가 구겨져 있었다.

"마화야, 이건 그러니까...."

"천마. 천산에서 당신 밤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는 없다는 걸 잊지 마세요?"

"...흥! 오냐! 나를 상대로 이긴다면 알려주도록 하지!"

천마는 마화를 침대 위로 집어 던졌다. 마화는 키득키득 웃으며, 여우같은 눈초리로 혀를 내밀었다.

"천마, 잊으셨어요? 저는 침대 위에서라면...."

사락, 마화는 두 발로 천마의 바지 앞섶을 내렸다. 어찌나 능숙한지 천마조차 순간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천하제일이랍니다."

"동방에 있는 발모초(發毛草)를 찾아와라? 어머나...풉! 진시황이셔요?"

"웃지 마라...."

천마는 마화와의 침대 위 비무대결에서 패배했다.

[작품후기]

발모제, 혼수, 성공적

수정했습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