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승
합격술이 있다.
강한 무인을 상대로 조금 급수가 떨어지는 무인들이 동시에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로, 상대하는 일인에게 있어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잡기다.
'성공하면 진법이 되고, 실패하면 잡기가 되지.'
비천삼마의 합격술은 분명 뛰어나고 균형이 잘 잡혀있다. 전위의 도마, 중위의 적마, 그리고 후위의 환마가 한 명을 '죽이기 위해'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는 천마를 죽이기 위한 건데.'
셋은 천마를 상대로 합격술로 이기려고 했다. 야수와도 같은 도마가 앞에서 날뛰고, 적마가 암기를 뿌리며 도마의 빈틈을 메우고, 환마가 진법을 구축하여 상대를 약화하고 두 마인을 강화한다.
황금조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게 나를 대상으로 펼쳐지면 몹시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1:3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는 두 자루의 검을 제각기 휘두르며 공격을 흘려냈다. 왼손에 든 검으로 태극검을 펼치며 도마의 찌르기를 막아냈고, 오른손에 든 검을 앞으로 내질러 도마의 빈틈을 공격했다.
파직!
철편 하나가 바닥으로 튀었다. 도마의 빈틈을 보완함과 동시에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내가 도마의 빈틈을 찌르면 그 공격 또한 흘려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또 아까처럼 바꿔치기할 것이냐?"
"놈!"
도마는 도를 회수하며 몸을 크게 돌렸다. 어떤 존재든 죽을 때까지 쫓아가서 목을 베는 탈영추적도는 참격에 특화되어 있다. 평범한 참격이라면 그냥 피하면 그만이지만-
"천마탈영참!"
도마의 칼날에는 검은 마기가 들끓고 있었다. 그냥 옆으로 스치듯 피하면 마기가 내 몸을 좀먹어 들어갈 공격이었다. 도법은 탈영추적도의 초식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내공심법은 그의 원래 내공심법에 더불어 자리 잡은 천마심공이었다.
받아치는 방법은 오직 상대의 공격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것뿐. 나는 검 두 자루에 각각 내기를 따로 불어넣으며 검을 휘둘렀다.
"양의검을...? 도마, 피해라!"
뒤에서 적마의 비명이 들려왔다. 도마는 붉은 안광을 터뜨리며 공격에 취해있었고, 나는 양기를 가득 머금은 검을 사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큭?!"
도마가 휘두르는 칼을 정면에서 아래로 튕겨냈다. 도마는 인상을 찌푸렸고, 그의 손목에서 순간적으로 저릿하며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나는 남은 검에 음기를 가득 담아 수평으로 휘둘렀다.
"천마독풍격!"
"천마환영수!"
도마의 목을 잘라내기 위해 휘두른 검이 두 개의 무기에 막혔다. 하나는 흑철로 이루어진 부채였고, 다른 하나는 내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곰의 손이었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직접 앞까지 달려온 게 가상한걸?"
나는 세 마인과 검 한 자루 간격에서 마주 섰다. 비천삼마 셋 모두가 나에 대한 살의를 내뿜으며 붉은 안광을 뿌렸고, 나는 땅을 박차고 뒤로 뛰었다.
"유감이지만 남정네랑 숨결 닿을 위치에서 얘기하기 싫다."
"이 미친 새끼...!"
"그래서 정체가 뭐냐고, 미친놈아!"
비천삼마는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끝까지 내 정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양손에 든 두 검을 앞으로 겨누며 그들을 비웃었다.
"색마!"
"웃기지 마라! 무당파의 무공을 쓰는 색마가 어디 있다고!"
"당가의 무공을 재조합해서 마공으로 쓰는 적마도 있는데?"
"이놈!!"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도 내가 내 정체를 말하기 싫다고 돌려 말했으면 진작 깨달아야지, 내가 누구인지 자꾸 캐묻는 비천삼마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이미 정체를 밝혔다. 너희의 존재를 가져갈 존재이니라."
"네 놈은 예우도 없나?! 죽이기 전에 별호라도 알려주고 가든가!!"
"색마!"
"씨발!"
비천삼마의 몸에서 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오는 통에 나는 입이 갑자기 바싹 말랐다.
"폭혈대법?"
강제로 주화입마에 들어가 내공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마공. 천마신공을 운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원래의 내공심법에 강제로 마기를 불어넣은 상황에서, 강제로 잠력까지 끌어올리며 기를 운용한다?
"터지겠군."
"""크아아아아!!"""
세 마인의 몸에서 귀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미 인간의 모습은 많이 뒤떨어져 있었고, 산해경 속에 나오는 요괴들보다 더 괴물 같았다.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 이들을 두고 누가 마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아주 나를 죽이려고 작정했군."
폭혈대법은 상대의 피를 보지 않으면 해제되지 않는다. 일반 조무래기라면 폭혈대법을 사용한 뒤 혈맥이 뒤틀려 죽을 수도 있지만, 천마신공을 운용하는 비천삼마에게 폭혈대법은 외형만 다소 기괴하게 바뀔 뿐이다.
단, 상대를 무조건 죽여 피를 본다는 가정하에.
"폭혈대법 쓰고도 지면 그냥 뒤져야지."
상대를 무조건 죽이겠다는 의념을 가지고 쓰는 기술이다. 당연히 죽이지 못하면 원래대로 돌아가기는커녕 자신이 죽게 된다.
그게 마공이니까.
"크흐흐, 네 놈!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어떻게 나의 정체를 알아냈는지 알아낼 것이야!"
"네놈의 정체를 까발리겠노라!"
"것 참."
바라는 것도 많다. 나는 검 한 자루를 바닥에 꽂은 채, 내가 그들을 상대하는 무공의 극의를 끌어냈다.
"태극검후가 어검술을 익힌 이유가 무엇일 것 같으냐?"
"무슨...?"
도마가 내 말을 막으며 흉악한 기가 담긴 칼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환마가 지팡이로 그를 제지했다. 역시 경험 많은 노고수답게, 내가 입을 열자마자 내게서 정보를 캐내려는 것이 머리 하나는 비상한 환술사였다.
태극검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어검술 얘기는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환마는 핏빛 눈동자로 나를 꿰뚫어 보려고 했다.
"가슴이 너무 커서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었거든. 그럼 몸이 안 움직여도 무공만 펼치면 되는 거 아니냐?"
철컥, 철컥, 철컥.
잘 단련된 철검 세 자루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비천삼마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검에 입을 벌리며 경악했고, 나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그냥 움직이기 귀찮아서 쓴다. 뭔지는 알지?"
"태극혜검!!"
환마의 비명에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극혜검의 힘을 똑똑히 보아라."
사공희가 내가 된다.
* * *
하늘에 검이 춤추기 시작했다.
무림맹주마저 경악하며 몸을 일으켰고, 모든 이의 시선은 비무장에 집중되었다.
"이런 훌륭한! 장문인 대리,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무림맹주는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비무장 위에는 검은 여인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검 두 자루를 상대로 수세에 몰려있었다.
"양의검, 태극검을 동시에!! 오오오!!"
공수일체. 양의검으로 검을 찔러넣으며, 태극검으로 적의 반격을 흘려낸다. 비무는 분명 일 대 일로 시작했는데, 마교 소공녀는 두 명의 무당파 무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역시! 대진표를 바꿔서 이 경기를 끝으로 하기를 잘했어! 흐하하!"
맹주는 손뼉을 치며 자신이 부정을 저질렀음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맹주의 잘못을 따질 수 없었다.
"이미...후기지수는 커녕 절정 고수들의 싸움이 아닌가?"
홀로 오연히 서 있는 태극무봉은 정상에서 내려다보듯 꼿꼿이 서 있었다. 양손에 든 쌍검은 가만히 땅에 늘어뜨린 채, 소공녀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어검술에 모든 의념을 집중했다.
"언제 저런 대단한 여고수를 키우셨소?!"
"하하, 선대의 은총입니다."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들 누가 믿을까. 장문인 대리 현철도사는 모두가 자신을 향해 바라보는 눈빛을 만끽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한평생 앞길만 막고 사고만 치는 줄 알았는데, 현기도사와 현타도사는 뒤에서 엄청난 여고수를 키우고 있었다.
무당의 신진 여고수가 천마의 딸을 꺾는다? 이것만큼 무당의 명성을 널리 높이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기만 하던 복수인 듯, 태극무봉의 어검술은 끝이 없었다. 내공이 고갈될 법도 하건만, 태극무봉의 내공은 너무나도 깊어 고갈될 줄을 몰랐다.
이대로 흘러만 가면 승기는 따놓은 당상. 소공녀는 천천히 비무장의 장외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태극무봉이 위기를 벗어났듯 소공녀 또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소공녀도 대단하군!"
"저 정도면 소공녀가 아니라 소천마(小天魔)라고 불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아앗!"
동시에 펼쳐지는 태극검과 양의검을 마기를 사방으로 폭발 시켜 튕겨냈다. 호흡이 흐트러지기도 잠시, 소공녀는 흔들리는 두 검 사이로 파고들며 직선으로 달렸다.
"그렇지! 어검술을 사용하는 상대는 본체를 노려야지!"
"맹주, 누구편이오?"
소공녀가 달리는 길에 붉은 직선이 빛나며 스쳤다. 관객들이 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소공녀는 태극무봉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큭!"
태극무봉은 손에 든 쌍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받아냈다. 검과 주먹이 맞부딪히는데도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관객들은 더욱더 가열차게 공방을 주고받는 두 고수의 싸움에 손에 땀을 쥐었다.
"크으...나도 여자였다면 저들과 비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미친 오빠 새끼가 내 앞에서 뭐라고...? 진심으로 혐오스럽다."
"유, 유린아! 내 말은 그러니까...."
"에휴, 됐어."
남궁패의 실언에 남궁유린은 진심으로 혐오감을 내뱉으며 짜증을 부렸다. 참으로 무인다우면서 참으로 안하무인다운 말이었으나, 그게 하필이면 천하제일룡이었다.
"태극화! 태극화! 태극화!"
"지지 마라, 소공녀! 나 너한테 걸었다!!"
천하제일봉을 다투는 자리를 두고 펼쳐지는 비무장을 향해 수많은 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백과 흑의 우열을 가리는 비무는 흑백의 논리를 떠나, 이미 무의 길을 걷는 두 천재 무사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 명은 이기고 한 명은 진다. 어느덧 서로 합을 주고받는 건 삼백 합을 넘었고, 서로 최선의 무공을 펼치는 대결에서 점차 패색을 보이는 건 소공녀 쪽이었다.
"큭!"
두 주먹으로는 네 개의 검을 막을 수 없다. 손으로는 쌍검을 휘두르고 의념으로도 쌍검을 휘두르는 태극무봉의 검에 소공녀는 땅에 주먹을 내지르며 거리를 벌렸다.
"하아, 하아, 하아."
전신에 땀이 가득 차올랐다. 상대도 숨이 흐트러져 있긴 마찬가지였지만, 내공의 소모는 소공녀 쪽이 더 심했다.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많은 겁니까?"
"글쎄요...얼마나 많이 쌓았는지 저도 모르겠는데요."
태극무봉은 은은한 미소로 검을 단전 앞에서 십자로 교차했다.
"항복하셔요. 이 비무, 제 승리입니다."
"......."
무공의 수위는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소공녀 쪽이 더 높았다. 실전경험도 소공녀가 더 많았고, 실제로 중간중간 허를 찌르는 공격에 태극무봉은 몇 번 공격을 허용하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를 몸에 축적한 겁니까?"
하지만 태극무봉은 하해와도 같은 내공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심지어 어검술로 내공이 실시간으로 소모되면서도, 검은 계속 하늘을 날아다녔다.
"한 달 전에는 분명 내가 더 위였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태극무봉은 검을 좌우로 놓았다.
"한 달. 당신을 상대로 내공만 계속 쌓으면 이긴다고 하셨습니다."
"누가요?"
"ㅈ......저를 가르쳐 주신 분께서."
태극무봉은 나지막하게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도포가 흩날리며 네 개의 검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좋은 스승을 두셨습니다. ...부럽게도."
소공녀는 쓰게 웃으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하지만 승리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저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소공녀는 마지막 말을 삼킨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상대가 네 개의 검을 모두 허공에 띄운 만큼, 자신도 결착을 내기 위해 남은 마기를 모두 끌어 올렸다.
"천마는, 지지 않습니다!!"
사락, 사락.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소공녀는 빛이 되어 뛰어올랐다.
* * *
"천마신공 특. 부작용으로 탈모 옴."
나는 어검술로 네 개의 검을 다루며 비천삼마를 제각기 상대했다. 1:3을 3:3으로 만들고, 세 마인을 서로 떨어지게 만들어 1:1이 세 곳에서 일어나도록 상황을 유도했다.
"으아아! 왜 내공이 줄지 않는 것이야아아아!!"
마인이 된 도마가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마기가 실린 탈영추적도는 서서히 빛이 꺼지기 시작했고, 나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웃었다.
"천마신공보다 더 뛰어난 방법으로 내공을 쌓았거든!"
- 크하하! 채음보양으로 5갑자까지 쌓아? 미친 새끼! 너는 본좌가 인정한다! 이 개 같은 색마 새끼야!!
천마는 나를 인정했다. 나의 채음보양을 인정했다. 혈강시로서 자신을 쓰러뜨렸던 나를 색마로서 인정했다.
"우리 벌써 한나절은 싸웠던가...슬슬 저쪽도 결착이 났겠어."
달이 떴을 때 습격을 하여 비천삼마를 이곳에 묶어놨으니, 아마 해가 중천에 뜬 지금쯤 비무도 끝이 났을 것이다.
'녀석, 혹시 신나서 사검을 띄우지는 않겠지?'
아직 거기까지는 내공이 부족해서 두 검은 들고 사용하도록 말했지만,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스승의 가르침은 개무시하는 게 제자들 특징이다. 만약 네 검을 들었다고 한다면, 소공녀에게 일격을 얻어맞을 수 있다.
그럼 소공녀가 천하제일봉-
"......에이, 몰라. 될 대로 되라지."
드디어 결착이 났다. 나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세 마인을 한곳에 몰아넣었다. 폭혈대법으로 들끓는 마기가 전부 소진될 때까지 나는 세 마인을 상대했다.
"고개를 들어라."
나는 검날을 세워 세 마인의 고개를 들게 했다. 도마도, 적마도, 환마도 원 없이 싸운 모습에 저마다 만족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 너희에게 하나 가르침을 주도록 하지."
십마라는 존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강자에게 지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태극검후가 비천삼마보다 더 강했을 뿐이다.
"네놈들의 명, 내가 가져가마."
서걱.
[작품후기]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