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4화 (44/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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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용봉지회가 시작됨과 동시에, 내 의원 생활도 막을 내렸다.

정확히는 여성전문의원이 막을 내렸다. 내가 신의의 제자로서 용봉지회에 있다고 해서 그런지 다른 신의의 제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나 혼자 용봉지회의 수많은 환자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의원은 많지."

의술계의 최고봉은 단연 신의다. 황궁에서도 황제 직속으로 삼고 싶어 할 정도로 신의의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신의의 제자가 신의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의원들아, 신의의 제자보다 뛰어남을 증명할 때다. 너희들이 환자들을 돌봐라. 정확히는 남자만."

죽을병이 아니면 나서지 않겠다. 신의의 제자가 의원을 닫으니 자연히 다른 의원들이 기지개를 켜고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소협! 이쪽으로 오시오! 환부에 약초를 발라야 하오!"

"아니, 이거 내기 조금만 두르면 해결되는...."

"이래서 무림인들이란! 상처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환부가 썩어들어가는 걸 모르오?!"

"아, 알겠습니다."

의원들은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여러 의원이 신의의 아성을 뛰어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격려하며, 문을 닫은 의원에서 손님을 기다렸다.

"무붕 의원님! 긴급환자입니다!"

"저런, 어디서 왔습니까?!"

"화산파의 소협입니다!"

"......."

남성 공포증이라고 한들, 비무대회에서 크게 다친 사람을 외면하는 건 의원으로서 실격이었다. 특히 비무대회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 이상, 이제는 남자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끝났습니다. 침 바르고 하루 쉬면 회복될 겁니다?"

"예? 기맥이 뒤틀리고 팔이 부러졌는데...?"

"신의의 제자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지금?"

"아, 아닙니다!"

나는 남자 환자가 올 때는 빠르게 상처를 치료하고 보냈다. 나 또한 그들의 몸에 손을 대기 싫었고, 그들 또한 의원이라고 한들 남자의 손이 자신들에게 닿는 것을 원치 않았다.

'회전율이 제일 빠르지.'

상처를 치료하고 가면 끝. 기맥이 뒤틀리고 팔이 분질러졌으나, 남자 환자들은 긴가민가하며 의원을 떠났다.

'믿지를 못하네.'

신의는 침 몇 번 놓는 것으로 모든 병을 치료했다.

원리는 간단.

침 끝에 천환단의 가루를 조금 묻혀 상처 근처에 찌르면 천환단의 효능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상처를 치료하게 된다.

가루 수준이기에 상처가 회복되는 시기는 다소 느리기는 하지만, 뒤틀린 기맥을 진정시키는데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의원님, 긴급환자입니다!"

"또 어딘데."

"아미파입니다!"

"......!!"

나는 침상을 정돈했다.

"허어...! 어떻게 이렇게 깊은 상처가...!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입구까지 마중을 나가서 환자를 받았다. 아미파의 멸색사태가 직접 부축을 하며 데려온 그녀는 다리를 절며 힘겹게 병동을 찾아왔다.

"어찌 이런...!"

여인의 다리는 뒤틀려있었다. 검에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지만, 무릎 근처가 깊게 파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안쪽으로."

멸색사태는 여인을 직접 침상에 눕혔다. 나는 다리를 걷어 약초를 바르고 침을 꽂아 여인의 뒤틀린 기맥을 진정시켰다.

"상대는 누구였습니까?"

"무당파의 여무사였습니다.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그 누구보다 태극검을 잘 사용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잘했다, 사공희!'

내 예상대로 사공희가 보내준 첫 번째 손님이 내 앞에 도착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안타까운 얼굴로 여인의 허벅지까지 침을 놓았다.

"...사태님, 기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이 위까지 침을 놓아야 합니다."

"그, 그건."

내 손가락은 여인의 국부 주변을 가리켰다. 멸색사태는 장문인답지 않게 눈을 좌우로 굴리며 당황했다.

"괜찮습니다...스승님."

'장문인의 제자!'

여인은 멸색사태의 손을 붙잡으며 힘겹게 웃었다. 나이는 다소 찬 것처럼 보이는 여인의 정보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미파 후기지수, 정조사태. 나이 24세.'

조금 나이는 찼지만 용봉지회 참석자 중에서는 그다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다. 더군다나 체구도 그렇고 외모도 상당히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 갓 스물이 넘은 여인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제 모든 실력을 다했습니다. 상대가 더 강했을 뿐이에요."

"세우야...!"

'이름이 세우인가?'

나는 꽃도감에도 나오지 않은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머금으며 침을 그녀의 국부 쪽으로 놓았다. 정조사태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제게는 다음 기회가 있습니다. 다음...기회가...."

정조사태는 여인이기 이전에 무인이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시원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에 분함을 느끼는 무인이었다.

"정조사태를 잘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물론입니다. 신의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치료하겠습니다."

멸색사태는 의원을 떠났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조사태의 속옷을 잘라 벗겼다.

"힉?!"

"가만히 계십시오."

푸-욱. 나는 손가락 두 개를 꽃잎 사이로 밀어 넣었다. 정조사태는 내가 하는 행동을 순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고, 나는 그녀의 속에 있는 두터운 막의 존재를 확인하고 한 손을 하복부로 뻗었다.

"기의 흐름이 뒤틀려 이곳까지 침범했습니다. 제가 내기를 불어넣어 드릴 테니, 단전에서부터 소주천을 하십시오."

"아, 아니, 잠시만요, 거긴."

"지금 하지 않으면 혈이 뒤틀려 단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아...?"

혼란. 정조사태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하단전이 있는 곳을 손으로 꾹 누르며 나의 내기를 불어넣어 혈맥을 진정시켰다. 상처 입고 뒤틀린 다리를 중심으로 기맥을 안정화하고, 청낭심법의 구결을 읊으며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여인의 꽃잎을 허락도 없이 손가락을 찔러넣었으나, 정조사태는 내 눈치만 볼 뿐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음적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손가락을 넣기만 했을 뿐 아무 행동도 이어나가지 않았고, 자신을 치료하고자 하는 내기에 침만 꿀꺽 삼켰다.

"의, 의원님. 이거 의료행위...?"

"쉿. 지금부터 반 시진 동안 운기조식하겠습니다. 저를 따라 호흡하십시오. 힙, 힙, 후-"

"히, 힙-힙-후-."

'순진해서 다행이다.'

정조사태는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비무의 여파로 인해 들끓던 기맥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상처는 치료가 거의 다 됐다.'

다리는 낫게 되어있다. 하루가 지나면. 단지 지금은 내가 침으로 혈을 짚어놔서 쉽게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계속 청낭심법의 구결을 외우며 운기조식을 도왔다.

찌걱.

일각 정도 지났을까. 동굴 안에 집어넣은 손가락에서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넣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아주 천천히 동굴 전체가 손가락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히아...햐아...후우...."

정조사태의 얼굴은 서서히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미파 특유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갈증에 목이 마른 듯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얼굴로 나를 향해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소, 손을 언제까지 그렇게 가만히 넣고 계실 건가요...?"

'넣자마자 알 수 있었지. 너는 자위를 아는 여인이라는 걸.'

전생에 취한 여인은 아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넣자마자 느껴진 반응에 나는 그녀의 실체를 대번에 파악했다. 정조사태는 자신의 번뇌를 스스로 해갈하는 것으로 다독인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굳어있는 표정으로 정조사태를 한참 내려보다가, 얼굴에 혈기를 불어넣으며 고개를 돌렸다.

"......사, 사태, 지금은 치료 중입니다."

손가락을 떨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정조사태와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양물이 서서히 전방을 향해 힘차게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꿀꺽.

바지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허벅지에 닿을까 말까 하는 모습에 정조사태는 내게 들릴 정도로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해서 그런지, 조금 전까지는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던 동굴이 손가락을 빼내지 못하게 꽉 조여왔다.

"의원님...."

정조사태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했다. 그에 나는 속으로 그녀의 속내를 비웃었다.

'용봉지회에서 육봉을 찾으러 왔구나!'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를 향해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고, 움찔거리는 몸에서는 간절함마저 느껴졌다.

'1전에서 탈락한 여인을 보듬어 줄 남자는 없다.'

아무리 결승전에 오를 여인에게 탈락했다고 한들, 당장 사공희가 결승전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정조사태는 숱한 패배자 중 한 명일 뿐이고, 그 어떤 미꾸라지도 다리가 부러진 참새를 보듬어주지 않을 것이다.

"저...의원님...?"

남자의 온정을 바라는 참새가 머리를 비벼볼 곳은 오직 나뿐. 특히 아미파처럼 여성만 있는 문파라면, 사실상 남자와 정사를 나눠볼 수 있는 때는 4년마다 한 번뿐인 용봉지회뿐이다.

"크, 크흠!"

숫기 없는 청년을 연기하며, 눈으로는 여인의 나신을 흘긴다. 조금 전까지는 의료에 집중하느라 대놓고 봤으면서, 평정심을 잃자마자 바로 조숙한 '미'청년을 연기한다.

- 강호에 있는 나이 찬 여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남자가 누군지 아느냐? 미청년이다. 특히 여린 얼굴과는 다른 흉악한 양물을 차고 있다면 더더욱 좋아하지. 어린놈은 손가락 정도가 좋다고 하는 년들도 있지만...그런 년들도 거근에 박혀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 흐헤헷.

혈, 역, 당, 옳.

"의원님, 저랑-"

"무붕 의원님! 긴급환자입니다!!"

나는 급히 손가락을 빼냈다. 그리고 정조사태의 도복을 잘 여민 다음, 비단으로 손가락을 닦고 밖으로 나섰다.

"아...!!"

안타까움과 분노의 탄식이 뒤에서 들려왔다. 나 또한 안타까웠다.

'안 재우고도 할 수 있었는데!!'

모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화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의원 앞에 찾아갔다.

"도대체 무슨.... 세상에."

내 눈앞에는 피떡이 된 여인이 실려 왔다. 어찌나 손속이 잔혹한지 전신에 피멍이 가득했고, 부어오른 얼굴은 좀처럼 누군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아는 샅내다. 아는 혈향이다.'

하지만 나는 대번에 그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녀를 데리고 온 남자의 얼굴도 익히 알고 있지만, 불과 2주 전에 맡았던 혈향을 잊을 리가 없다.

남궁유린.

그녀의 몸에는 천마신공의 흔적이 가득했다.

* * *

"소공녀, 언제는 나보고 손속이 과하다며?"

"흥. 한 번은 참아도 두 번은 못 참아요."

소공녀는 대기실로 돌아와 들끓는 마기를 가라앉혔다.

"이전에 한 번 망발을 지껄여서 피를 봤으면 정신을 차려야지. 흥."

분노와 살의를 양식으로 삼는 천마신공의 발현에 비천삼마는 경외감을 금치 못했다.

"이제 성인이 되었음에도 절정고수라니...크흐. 육봉은 따놓은 당상이군요."

적마는 소공녀의 무위를 칭찬하는데 아낌이 없었다. 소공녀의 무공은 대공자가 같은 나이였을 때의 단계를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였으니까.

"그걸로 어떻게 만족하겠어요? 육봉 중 으뜸이 되어야죠."

"일봉?"

"화중화. 이번 용봉지회의 우승은 제가 차지하겠어요."

소공녀는 자신의 힘을 확신했다. 수많은 후기지수 중 자신과 감히 천하제일봉을 두고 다툴 여인은 둘밖에 보이지 않았다.

"독고연은요? 알아봤어요? 왜 안 나왔는지?"

"나이도 나이긴 한데...아무래도 지병이 도졌다는 건 확실한 듯합니다. 절세의 검법인 독고구검을 몸에 담았지만, 그렇다고 병약한 신체가 단번에 자라는 것도 아니고요."

무림맹주의 적녀, 독고연.

아직 그녀는 용봉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이미 일류고수들을 꺾은 걸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지병만 없었어도 분명 용봉지회에 나섰을 텐데. 소공녀는 호적수가 없음에 입맛을 다셨다.

"결국 남은 건…."

"예. 현자도사의 제자입니다."

비천삼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현자 항렬이 한창 현역으로 이름을 날렸던 젊은 시절 가장 강력했던 무인인 동시에, 비천삼마가 젊었을 때 몇 번이고 치고받은 상대였다.

"설마 그 괴물이 죽지 않고 제자를 들였을 줄이야."

"스승보다 더 강해질지도 모르겠군. 끙."

"그 노괴, 분명 현자가 맞겠죠? 현자 말고 다른 놈이라면 끔찍한데요."

비천삼마는 예상치 못한 강자의 등장에 긴장했다. 다행히 속세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등선하기 전에 엄청난 제자를 키워 용봉지회에 내보냈다.

"...끙. 몸매 하나는 봐줄 만하던데. 얼굴도 나쁘지 않고."

"도마야, 괜히 건드릴 생각 마라. 가만히 등선하실 도사께서 등선 포기하고 너 쳐죽일라."

"하. 어르신들, 저를 완전히 무시하시네요."

소공녀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천마께서 현자보다 더 강하실 텐데, 제자끼리 싸운다면 당연히 제가 더 강하지 않겠어요?"

소공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대진표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결승전 전까지 무공이 급격히 늘어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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