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43화 (43/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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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오, 그래. 배고파서 일어났지? 아침은 먹었느냐? 기다려라. 오늘은 즐거운 날이니 내 직접 부엌을 다녀오마."

남궁유린을 취한 날인 만큼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의원 안에 작은 부엌이 있어 요리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오늘 아침은 유린기다."

"설마 남궁유린이라서...?"

"크흐흐."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을 준비했고, 사공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뒤.

나와 사공희는 아침을 먹고 마주 앉았다. 무당산 산기슭에서 가져온 공청석유로 차를 우려내는 동안, 사공희는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차를 마시기에 앞서 말씀드릴 게 있사옵니다."

사공희는 말과 함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먹물이 정체불명의 물로 살짝 번진 용봉지회신청서에는 '견희(甄姬)'라는 이름과 사용하는 무공, '태극검'이 적혀있었다.

"용봉지회에 나가겠어요."

"오호? 무슨 심경의 변화란 말이더냐."

"밤사이 상공을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상공은 바람 같으신 분이라 저 혼자의 몸으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사공희는 나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역마살을 가지고 있는 내게 어디 한군데에 박혀서 살아가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다. 사공희를 키우며 1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이제 슬슬 다른 꽃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상공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걸 안 이상, 저는 저만의 방식대로 상공께 몸종으로서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그게 용봉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예. 태극무봉(太極武鳳)이 되어, 무당파를 제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뭐라?"

갑작스러운 사공희의 말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무당파를?"

"예. 언젠가 상공은 무림 공적으로 몰리게 되는 날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왠지 모르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무당파만이라도 상공을 쫓지 않도록 제가 안에서 억제하겠어요. 장문인이 되어서."

"허어."

내가 색마가 되어 무림 공적이 되어도, 사공희가 천라지망의 일각을 무너뜨린다. 사공희의 생각은 확실히 기특하여 내 구미를 당기게 했다.

"허나 견희야, 네가 무당의 주인-장문인이 된다면 거기까지 올라가야 할 계단이 너무나도 많다. 이미 나는 네게 모든 길을 가르쳐주었지만, 너 스스로 올라가야 할 때가 생길 수도 있어."

"이미 각오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상공께서는 여인을 강제로 취하는 것에 가장 희열을 느끼신다는 것을."

아니 어떻게 알았지.

"...크흠! 누가 들으면 내가 강간마인 줄 알겠다! 나는 '건강마'이니라! 양기를 불어넣어 여인을 건강하게 해주는 자지."

"예, 후후. 그래서 제가 상공께 한 가지 청을 드립니다. 언젠가 제가 태극검후가 되어 무당파를 이끄는 날이 온다면, 상공께서는 무당파를 찾아주셔요. 그리고...."

사공희는 나를 향해 절을 하며, 화사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모두의 앞에서 색마에게 태극검후가 겁탈당하여, 태극검후가 색마의 것이 되었음을 천하에 알려주셔요."

"......이야, 너 진짜 대단하구나! 나를 이런 식으로 휘어잡겠다?"

"상공께서 떠나시는 걸 막을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상공께서 저를 기억하시도록 만들겠어요."

역시 사공희는 천재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문패를 '폐원'으로 바꿨다.

"근데 견희야. 너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내가 당장 떠날 것 같았느냐?"

"네?"

"나 지금 당장 안 떠난다."

"...그, 당장이라도 어딘가 휙 사라지실 것 같았...."

"실은 우리 견희 먹일 만년빙정 하나 챙기러 한 달 정도만 다녀올까 했는데, 이거 혼자서 끙끙 앓느라 고생했다. 빙정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겠어, 흐흐."

"......네?"

사공희의 표정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내가 뭐 어디 일 년 넘게 떠나가는 줄 알았느냐?"

푸쉬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던 비장한 얼굴에 수치심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사공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칼을 헝클이며 내 품에 안았다.

"내가 너무 장난을 쳤구나! 하하, 미안하다."

"그, 그치만! 지난번에는 진짜로 멀리 떠날 때가 있는 법이라고...!!"

"에이, 내가 당장 떠나겠느냐? 최소한 네가 화경에는 이르러야 내가 안심하고 떠나지."

내 몸종이 다른 놈들에게 나의 것임을 과신하는 건 괜찮아도, 다른 놈들이 내 몸종을 건드리는 건 하늘이 무너져도 불가능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어떤 미친 색마가 너를 겁간한다면 나는 그놈의 구족을 멸할 것이다. 설령 맹주나 천마, 황제라고 할지라도. 네가 워낙 예뻐야 말이지. 네가 화경 정도는 되어야 내가 안심하고 자리를 떠날 수 있지 않겠느냐?"

"하...."

사공희는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럼 제가 화경에 오르지 못한다면 상공께서는 떠나지 못하시겠군요!"

"이 년이?"

찰싹.

"빨리 화경에 이를 생각은 안 하고!"

"꺄학, 죄송해요, 하앙...!"

나는 사공희의 가슴을 좌우로 가볍게 후려쳤다.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때릴 수 없으니, 대신 여인의 따스함이 가득한 양기주머니 두 개를 손으로 후렸다.

"네가 화경에 이르러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해주랴?"

"힝, 뭔데요...?"

"네가 화경에 이른다면 말이다, 능히 나를 한나절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어머."

사공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화들짝 놀랐다.

"정말요?"

"물론이지! 절정인 네가 지금은 나의 전력을 한 시진 간신히 버티지만 초절정에 오르면 반나절을, 그리고 화경에 이르면 한나절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절하지 않고 계속!"

"와...."

동기부여는 중요하다. 사공희는 자신이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깨우쳤다.

"그럼 그, 말로만 듣던 현경에 이르면...?"

"열두 시진을 합방하고 일각을 쉰 뒤, 다시 열두 시진 동안 할 수 있지."

내가 적당히 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전력으로 열락을 다 할 수 있다. 사공희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내 앞까지 다가와 강아지처럼 머리를 비볐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그럼 강해지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럼 당연하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잊었느냐? 나, 무붕이다. 네 주인이지."

나는 사공희를 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모처럼 기분 좋게 사공희와 정사를 즐기고 싶었지만, 침상의 상황을 보자마자 열불이 났다.

"아니, 남궁유린 이 년이 지가 자고 간 자리를 정리도 안 하고 가?"

남궁유린이 떠난 자리는 개판 그 자체였다. 자신이 밤사이 흘린 땀으로 침상 전체가 꿉꿉해져 있었는데, 심지어 이부자리조차 개지 않고 몸만 쏙 빠져나갔다.

"역시 이 년은 몸종이고 나발이고 태생이 글러 먹은 년이다. 크으, 다쳐서 한 번 더 침상 신세를 지면 그때 훈육봉으로 다스려야겠어."

"...아, 그거 말인데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소곤소곤.

"...천잰가?"

사공희 왈.

제가 용봉지회나가서, 참새들 다리를 전부 박살 내버릴게요.

"대신...우승하면 상을 주셔야 해요?"

"1위는 정해져있는데...것 참."

나는 사공희를 벽으로 밀쳤다.

"지금 미리 상을 주지."

"네? 자, 잠깐만요! 저 아직 씻지도 않, 햐앗?!"

"원래 아침 이슬이 가장 맑은 법이야."

씁-하.

참이슬이었다.

* * *

이주가 흘렀다.

"용봉지회를!! 시자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겠소이다아아!!!"

용봉지회, 개막.

무당파는 용봉지회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비무장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여기에는 호북성 관아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 무인들의 축제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 상인들이 떼돈을 벌 기회가 될 것이다.

호북성으로 들어오는 무가의 사람들을 상대로 숙식 등을 팔기 위해 호북성주는 적극적으로 건물을 짓고 무당파의 용봉지회 준비를 지원했다.

여기에 장문인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려고 한 현철도사의 노력이 더해져, 용봉지회가 열리는 비무장은 무림맹에 준할 정도로 넓었다.

거대한 경기장에 마련된 비무장만 넷.

口자 관객석 안에 田자로 펼쳐진 비무장은 모든 관객이 안력만 있으면 네 경기를 모두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관객석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져 무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까지도 볼 수 있게 자리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용봉이 되기 위해 모인 무인들은 자신들이 싸울 비무장과 자신들의 적이 될 자들을 눈으로 훑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다른 놈들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군."

"그러게요."

나는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진사월을 데리고 나와 관객석에 앉았다. '등봉문'이라는 비무장에는 봉황이 되기 위해 모여든 여인들이 가득했다.

"참으로 절경이구나!"

"도감에 있는 여인들이 정말 많네요. 없던 사람도 있고, 특히...."

진사월은 다른 여인들에 비해 가장 존재감이 강한 흑발적안의 여인을 가리켰다. 검은 도포를 입은 여인, 마교 소공녀는 피처럼 붉은 눈동자와 입술을 반짝이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마교 소공녀,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정파에서 자신을 비겁하게 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는 거지."

"가가, 정말 괜찮은 걸까요? 소공녀가 데려온 비천삼마가 그렇게 손속이 잔혹하다던데."

"일단은 괜찮다. 일단은."

정파의 고수들은 괜히 마인들을 건드리지 않도록 가문의 사람들을 잘 관리했다.

"저기 한 명 빼고."

"인간성은 별로이지만, 저 독기는 같은 여자로서 존경할만해요."

유일하게 천마를 걸고넘어지며 소란을 일으킨 세가가 하나 있었지만, 마인들은 해당 세가에 대한 보복을 한 번 한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2주 동안 고생 좀 했지.'

비천삼마가 움직일 기미가 보여도 내버려 뒀다. 놈들도 내가 눈을 감아주니 적당히 기었다.

하지만 도마가 괜히 소란을 일으킬 기미가 보이는 즉시 기를 날려 놈들을 압박했다. 환마를 압박하니 환마가 적마를 후려치고, 적마는 도마에게 성질을 부려 도마의 행동을 억제했다.

- 갈구는 건 내리갈굼이 갑이지.

혈교주, 연전연승. 굳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비천삼마는 알아서 자중했다.

"놈들도 알 거다. 소란을 일으키면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미친 척하고 살겁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비천삼마는 소공녀의 용봉지회가 끝나는 즉시 곧장 호북을 빠져나갈 것이다.

'자기들보다 강한 고수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는 은거기인이 숨어있는데 무림맹주까지 호북에 왔으니 당연히 조심할 수밖에 없다.

- 먼 길 와주셔서 반갑소. 4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군.

비어있는 비무장의 가운데에 선 중년 사내가 목소리에 기를 실어 말하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중후한 목소리에는 현경 고수의 기감이 서려 있었다.

"어머, 저 사람이...?"

"그래. 무림맹주, <고구마검> 독고자영이다."

"마검(魔劍)이요?"

"마검(磨劍). 상대의 검을 갈아버린다고 하여 마검이다."

백도 무림맹의 대표이자 현재 천하제일인의 후보로 가장 유력한 남자. 나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면 볼수록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이다. 맹주보다 한끗발 차이로 강해서.'

나는 개회사를 시작한 맹주를 객석에서 바라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기감은 나보다 아주 약간 낮은 정도였고, 내가 어떤 무공을 꺼내 쓰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정도였다.

성취가 화경 이하의 무공을 꺼내면 나의 패배.

현경 이상의 무공을 꺼내면 나의 승리.

'독고구검이나 천마신공 같은 거 안 쓰면 무조건 지겠어.'

내공이 받쳐주지 않는 한 현경급에 이른 무인의 무공을 삼재검법 같은 거로 이길 수는 없다.

'쓸 수 있는 내공이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히 내 내공은 사공희의 음기를 몇 번 갈취한 덕분에 쌓이는 속도가 두 배가 되었고, 나는 무림맹주보다 약간 더 많은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채음보양 만세.'

내공이 곧 내 무공의 경지가 되는 만큼, 나는 사공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사공희의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남들의 곱절인 만큼, 나도 그만큼 내공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

-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수많은 선배분들께도 감사드리오.

맹주는 내가 있는 방향을 살짝 눈으로 흘겼다. 내가 자신보다 강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기를 풀풀 풍기고 있으니, 무림 맹주는 나를 못본 척 시선을 돌렸다.

"견희에게 나중에 한 번 더 상을 줘야겠군."

"또 상을 주시게요?"

"견희가 내게 매일 밥상을 주니, 나도 상을 줘야 하지 않겠나?"

"은자 한 냥 주시면 웃어드릴게요. 안 주실 거면 그런 농은 하지 말아주셔요."

나는 은자를 꺼내 진사월에게 건넸다. 진사월은 히죽 웃으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제가 이래서 가가의 농을 좋아한답니다."

"그래? 농익은 나의 양기를...에이, 됐다. 내 농이 고작 은자 한 냥 값이라니. 자존심 상해서 더는 안 한다."

내가 진사월과 잡담을 나누는 사이, 하나둘 참가자의 이름을 부르는 도중 드디어 무당파의 차례가 되었다.

- 무당파! 태극검! 현기도사의 직전제자, 광탈영!! 그리고 현자도사의 여제자, 견희!!

무당을 대표하는 두 남녀가 앞에 나섰다. 사람들은 장포로도 숨겨지지 않는 사공희의 상냥함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는데도 미모를 감출 수 없군. 크으.... 아예 턱 부분을 절구로 빻아버릴 걸 그랬나? 평범하게 예쁜 얼굴이라...크으."

꽃도감 중에 아무 얼굴이나 대충 비슷하게 인피면구를 만들었으나, 특유의 기품과 분위기 때문에 신비한 아름다움이 풍겨나왔다.

"새삼 놀랍네요. 제가 밤일을 가르쳐준 아가씨가 무당파의...호호."

진사월은 은근한 눈빛으로 내 앞섶을 손으로 쓸었다.

"도사라서 밤일도 그렇게 도사셨나요?"

"크으, 역시 너는 나랑 잘 맞는다니까. 농이 아주 찰지구나!"

진사월, 그녀의 나이 올해로 ㅅ-

"상공. 그런데 저 아이가 왜 나가기로 한 거예요?"

"......나를 위해."

나는 남들의 앞에 당당히 선 사공희를 보며 기특함에 눈물이 나왔다. 결코 진사월이 내 양물을 콱 움켜쥐어서 그런 게 아니다.

"본인이 직접 환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더군."

바야흐로, 참된 몸종.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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