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9화 (3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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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전문의원, 무붕

호북성 안으로 들어오는 관문.

아미파의 멸색사태를 비롯한 수많은 고수가 한자리에 모여 진을 쳐서 대로를 막았다.

일반인들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대로를 막아 통행에 불편을 초래했으나, 정파의 무사들이 앞을 가로막은 이는 민초들조차 두려워하고 꺼리는 존재였다.

"도마(刀魔), 적마(賊魔), 그리고 환마(幻魔)."

멸색사태는 자신과 엇비슷한, 또는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고수들을 앞에 두고 침을 꿀꺽 삼켰다. 문파의 장문인이 모였다고 한들, 상대 또한 마교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한 명이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길을 열어주셔요."

황녀보다 더한 보호를 받는 흑발적안의 여인, 소공녀는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마교 소공녀가 정파 무인들을 상대로 인사하는 것은 그냥 보기에는 마인들의 굴욕 같았으나, 마인 들이 예절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정파 무인들을 열 받게 했다.

"저는 맹에게서 정식으로 초청을 받아서 온 몸이랍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소."

멸색사태는 억지를 부리며 진입을 막았다. 그리고 속으로 무림 맹주, 소공녀에게 쌍욕을 박았다.

'오라고 하는 놈도 미친놈이고, 진짜로 온 년도 미친 년이로다!'

정사마가 한데 모여 비무로서 서로 다투지 말자는 취지에 따라, 당연히 마교에도 매번 초대장이 발송되기는 했다.

하지만 마교에서는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 정파의 무인들은 언제나처럼 무난하게 참가 인원이 마감될 것이라 확신했으나, 마감 하루 전에 그만 소공녀가 호북성에 등장하고 말았다.

"내일까지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참가할 수 없는 거로 아는데.... 멸색사태 님, 일단 길을 열어주시고 이상이 있으면 추후에 탈락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음...."

정론이었다. 하지만 정론을 말하는 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공녀의 옆,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실눈의 남자는 건들거리는 자세로 정론을 펼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멸색사태. 서로의 면을 생각하면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적마, 그대가 하는 말을 나보고 믿으란 것이냐?"

"하하. 제가 언제 그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봤습니까?"

"너무 많이 봐서 지금 하는 말조차 믿기지 않는군. 천마의 적녀과 비천삼마가 비무대회만 치르고 조용히 떠날 것이다?"

도마, 적마, 그리고 환마 셋이 무너뜨린 문파만 세 자릿수가 넘는다. 특히 정파의 무인들과 생사결을 즐기는 도마의 경우, 용봉지회에 참가하러 온 후기지수 중 2할가량과 원수지간일 정도로 업보가 많은 존재였다.

언제 터질지 모를 벽력탄 넷을 호북성 안, 무당파 한복판에 들인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멸색사태를 비롯한 정파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억지이며 용봉지회의 취지에 어긋나는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해.'

비천삼마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입구를 틀어막은 이들을 고작 셋이서 전부 쓸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천삼마는 무언가를 의식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모두 기를 거두어 주시오."

좌우로 갈라진 사람들의 사이로 현타도사가 회색 도포를 날리며 나타났다. 관리를 맡은 무당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자의 등장에 모두가 안도감을 내비쳤다.

정과 마를 뛰어넘어, 아무리 초대받은 손님이라고 한들 집주인이 거부한다면 손님도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천마신교에 초대장을 보낸 건 무림맹이지 무당파가 아니니까.

"무당은 큰 소란을 바라지 않소. 용봉지회를 무사히 마치기를 바랄 뿐이오."

현타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정파인들은 설마 무당에서 마인들의 입산을 허락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그건 마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사 나부랭이가 생각보다 머리가 유연하군."

"하하, 정말로 우리가 들어가도 되겠소? 나는 최소한 한 명만 입성하고 나머지 둘은 밖에서 기다리라 할 줄 알았는데."

"......천외천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명심하시오."

현타의 나지막한 말에 비천삼마의 표정이 변했다.

도마는 씩 웃으며 호승심을 드러냈고, 적마는 난감한 듯 웃으며 소공녀에게 고개를 돌렸고, 환마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본다는 거지?"

"...어르신, 체통."

"난 그런 거 몰라!"

"젠장, 치매 걸린 노인네 어떻게 떨어뜨리고 가나 했더니."

비천삼마가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는 사이, 정파의 무인들은 현타도사를 향해 눈을 찌푸렸다.

"어쩌자는 것이오?"

"뭘 어쩌긴. 저들도 사람인데 설마 양심을 저버리겠나."

"현타도사께서는 마인을, 무당파는 마교를 믿는 것이오?"

"무당이 가진 힘을 믿지. 설령 저들이 날뛰어도 동시에 제압할 수 있으니."

현타도사는 일부러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비천삼마는 씩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현타도사의 말에 차마 부정하지는 못했다.

천외천(天外天).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이른 고수조차 감히 넘볼 수 없는 현경의 경지.

비천삼마만 느낄 수 있는 막대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자신들을 산 위에서 노려보고 있다. 사실상 현타도사는 정체불명의 초고수가 보낸 사절이었고, 마인들은 무당의 주인에게 입산을 '허락'받았다.

"후후, 어서 들어가요. 도사님, 역시 저희가 장문인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산까지 안내해주시겠어요?"

"얼마든지. 따라오시오, 소공녀."

현타의 움직임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뒤에 마인 셋을 두고도 뒤를 도는 모습에 많은 정파인들이 입을 벌리며 놀랐고, 현타도사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소공녀와 비천삼마에 한 번 더 놀랐다.

용봉지회, 천마신교 입회.

사람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 * *

"어르신들, 아까부터 왜 가만히 계셨어요?"

소공녀는 난동을 피우지 않은-속된 말로 개지랄을 떨지 않은-세 마두에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의 지지자 중 가장 강력한 세 마두를 데려왔건만, 도마나 적마 둘 다 환마의 눈치만 볼 뿐 난동을 피우지 않았다.

"그거야 치매 걸린 노인네에게 물어보시오, 소공녀."

"끌끌끌. 거기서 깝죽거렸으면 다 같이 모가지 행이야, 모가지."

환마는 손으로 목을 그으며 인파 사이를 가리켰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섞여 있는 가운데, 환마의 눈동자는 어딘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넓군. 무당 사이비 새끼들 다 뒤진 줄 알았더니,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튀어나오고 지랄인 건지."

"화, 환마 어르신?"

"소공녀, 조심하시오. 무림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 '지나가던', '은거기인'이오."

사락.

환마가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목 근처를 집게 손으로 붙잡았다. 손가락에 집중된 내기가 파지직 거리며 전류를 일으키더니, 곧 가늘고 투명한 무언가가 태양 빛에 빛나기 시작했다.

"침?"

"아주 얇은 바늘이오. 문제는 이게 지금 우리 목에 한 개씩 박히기 직전이었다는 게지. 거기 도사, 듣고 있소? 우리는 진정으로 소공녀의 용봉지회만 치르고 갈 생각이오. 나 환마의 별호를 걸지."

사라락.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던 환마의 말에 바늘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도마와 적마는 목을 만지작거리며 몸서리를 쳤고, 소공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공포를 느꼈다.

"도, 도대체 뭐예요?"

"태극혜검."

"이런 미친."

"하...씁. 소공녀. 나 그냥 살겁 일으키고 싸우면 안 되나? 태극혜검의 초고수와 한 번 붙고 싶은데."

도마는 호승심을 일으키며 칼에 손을 올렸으나, 소공녀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나중에 제가 천마의 자리에 오르면 그때 실컷 싸우게 해드릴게요."

"에잉, 그러다 저자가 등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때는 그에 준하는 존재와 싸우게 해드릴게요. 환마 어르신, 그자를 아버님과 비교하면 어때요?"

"...현재는 천마께서 더 강하시지. 다만."

환마는 몸서리를 쳤다.

"곧 늙어 죽을 도사라서 망정이지, 만약 더 성장한다면...."

환마는 뒷말을 삼켰고, 소공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중원은 넓군요.... 좋아요, 더 불타오르게 하네요."

소공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도 강해져서 천하에 제 이름을 떨치겠어요. ...어머?"

인파 속, 평범해 보이는 여인이 미소년과 함께 사라졌다. 소공녀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싱긋 웃었다.

"저 사람...."

소공녀는 둘이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 * *

"견희야, 어떠냐?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모르겠어요."

나는 사공희를 데려와 멀리서 마교 소공녀를 관찰하도록 지시했다. 무인이라면 자신이 상대보다 강한지 약한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안력이 필요했고, 사공희는 소공녀의 실력을 가늠하는 걸 실패했다.

"저기 너보다 강해 보이는 여인이 있다. 마침 연배도 비슷하군. 아니지, 네가 2살 더 많나?"

"...저는 고작 무공을 1년 정도 익혔고, 저쪽은 날 때부터 무공을 익혔잖아요."

자존심을 건드리니 금방 발끈했다. 요 며칠 사이 전부 자신보다 약한 후기지수만 봐왔던 사공희는 자신과 동년배의 여인이 자신이 감히 확인할 수 없는 경지인 것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견희야, 상대의 실력이 안 보일 때는 어떤 경우라고 했지?"

"깎아지른 산의 정상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듯이, 제 안력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대라는 말입니다."

"정답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 천마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다들 그렇다."

"......네?"

"소공녀가 너보다 약한지 강한지는 직접 붙어봐야 안다는 법이지. 내게는 결과가 보이지만, 알려주고 싶지는 않구나. 흐흐."

굳이 정답을 말하자면 호각.

- 천마신공과 태극혜검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천마랑 태극검후가 싸우면 모를까, 소공녀랑 사공희는 얘기가 다르지.'

내공의 수위나 무공의 성취는 사공희 쪽이 훨씬 더 높지만, 소공녀는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자. 비무라면 이길지 몰라도, 생사결에서는 무조건 진다. 그렇기에 한쪽이 확실히 이긴다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확실히 승패를 겨뤄보려면 우선 용봉지회에 나가야겠구나."

"......."

"어디 한 번 용봉 지회에 나갈 지, 아니면 나가지 않을지 생각해 보아라. 내일 저녁까지 현타에게 신청서만 주면 알아서 꾸며줄 테니."

"용봉지회는...."

아직 사공희는 출전을 많이 망설이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드러남에 따라 나와 있을 시간이 상당히 줄어든다는 것.

"제가 출전하면...그만큼 상공이랑 같이 있을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게 참 기특하지.'

무공을 익히는 보람, 밤일을 즐기는 쾌감, 그리고 한 명의 여인으로서 나에게 다양한 삶의 지혜를 익히는 것에 그녀는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별호를 얻고 정식으로 무림에 나서면 그만큼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게 분명했다.

"상공, 혹시 제가 질리신 건 아니지요? 저,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내가 어디 못 가게 몸으로 붙잡으려 하거나.'

꽃은 식물이며, 동물처럼 떠돌아다니지 못한다. 사공복희는 행여나 내가 자신의 곁을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며, 괜히 자신이 육봉 중 하나가 되는 사이 내가 소리 없이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설마 제가 상공께 폐를 끼쳤다고...저를 무당에 두고 가시려는 건가요?"

'눈치 빠른 녀석.'

모처럼 꽃도감도 손에 넣었으니 적당히 무당에 별호와 자리 만들어주고 천하를 유람하며 이 꽃 저 꽃 따먹고 다니려고 했건만, 사공희가 내 양물을 꽉잡고 있는 터라 좀처럼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잘 다독여놔야 하는데.'

최소한 몇 달, 아니 연 단위로 밖에 싸돌아다녀도 나에 대한 정절을 지킬 수 있는 여자로 만들어놔야 했다.

'기껏 예쁘게 키워놨더니 남이 먹는 꼴은 못 본다.'

많은 여인들을 취하려면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사공희를 달고 다니면 여러모로 눈치가 보여서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상공, 왜 저를 자꾸 용봉지회에 참가시키려고 그러는 건가요?"

굳이 사공희를 용봉지회에 참가시키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서 네 상대들을 피떡으로 만들어놓으라고!'

그래야 내가 의원에서 치료를 할 수 있으니까.

내가 소리를 확 내지르려던 순간.

"꺄아아악!!"

비릿한 혈향과 함께, 여인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기감을 퍼뜨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의 상황을 살폈다.

"......여인이 다쳤다!! 가서 수면향을 피워야겠어!!"

나는 사공희를 안고 의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를 꼭 끌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공희를 다독이며, 나는 그녀에게 따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희야, 걱정하지마라. 내가 어찌 너를 버리고 떠나겠느냐?"

잠시 여행을 다녀올 뿐이다.

"상공, 저는 불안합니다. 상공께서 갑자기 떠나실까봐...."

"내가 무슨 증거라도 주랴?"

"......제가 상공의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주셔요. 여기에."

사공희는 아랫배를 내 등에 비볐고, 나는 곧장 사공희를 수풀에 던졌다.

"하 씨. 안그래도 현타 때문에 꼴리는 거 참고 있었는데 그런 말 하기 있느냐?"

"...사, 상공.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지금 저기 사람 죽어가는 것 같은데요...."

"내가 지금 양물이 터져 죽을 것 같으니까, 내가 더 급한 환자다."

꼴려서 뒤질 것 같다. 나는 멀리서 비명이 울려퍼지든 말든 일단 사공희를 수풀 사이로 덮쳤다.

"그리고 걱정마라. 지금 다친 꽃 말이다...."

찌걱.

나는 사공희의 품속에 남근을 밀어넣고 숨을 죽였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니."

피를 흘리는 여인이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작품후기]

야외 플레이와 스토리 진행을 동시에 진행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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