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38화 (38/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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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전문의원, 무붕

"망했다...."

숙소로 돌아온 남궁패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밖에 있는 무사들도 남궁패와 남궁유린을 딱히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들 또한 지금 상황이 상당히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마교에 의해 실종된 신의. 그리고 용봉지회를 지원하기 위해 온 신의를 상대로 마교로 몰고 갔다.

"신의 제자를 우리가 까발리게 생겼으니 맹에게도 민폐.... 신의에게 마교의 잔당이라고 했으니 그쪽으로도 민폐.... 젠장...!"

와장창!

벽에 장식된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이 났다. 객잔의 물건을 멋대로 집어 던져 깨뜨린 남궁유린의 행동은 본인의 인성을 여실히 드러냈고,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짜증을 부렸다.

"이게 뭐야! 왜 우리가 혼나야 하는데!!"

"하필 혼날 짓을 했지."

"뭐가 잘못됐어? 그놈이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저는 신의의 제자입니다'하고 순순히 밝혔으면 되잖아!!"

남궁패는 신의의 제자가 남궁유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결국 유린의 앞에 남궁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처럼 자신 또한 남궁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야."

"아아악! 짜증나, 전부 박살 냈으면 좋겠어! 오빠는 왜 그런 평범한 여자한테 끌린다고 간 거야?! 이거 다 오빠 탓이야!"

"뭐?"

동생의 짜증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지만, 사실관계를 호도한 말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먼저 가자고 했냐? 네가 그 제자 얼굴 잘생겼다고 말 좀 붙여보라고 나를 얼마나 쪼아댔는지 아냐?"

"그, 그건...."

"동생아, 양심이 있으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물론 나도 여인의 몸에 혹해서 그러기는 했지만, 둘이 같이 잘못을 했으면 같이 혼나야지 어딜 자기만 쏙 빠져나가려고 그래!"

"...흑, 흐윽, 흐아아앙!!"

남궁유린은 서럽게 눈물을 터뜨렸다. 남궁패는 행여나 밖의 사람들이 들을까 기겁을 했고,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남궁유린에게 다가가 그녀를 토닥여줬다.

"미안하다. 오빠가 너무 말이 심했다."

"흑, 흐끅, 흐으윽...."

눈물을 글썽이던 남궁유린은 숨을 몇 번이고 몰아쉬었다. 이게 만약 연기라고 한다면, 남궁패는 모든 남자들이 속아 넘어갈 거라고 확신했다.

"그 인간들이 나쁜 거야, 지들이 먼저 정체를 밝혔으면, 흐끅."

"그래, 그래. 그냥 순순히 말해줬으면 됐을 것을."

둘은 남궁의 사람을 떠나서 일부러 접근하는 것 자체가 민폐였던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안휘에서는 제왕처럼 사람들이 떠받들어줬기에, 안휘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북에서도 남궁의 이름이 먹힐 것이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젠장. 이제 어떻게 하지? 아버지께서 힘을 써주실까?"

"저잣거리에 도는 소문은?"

"이미 거지들이 알아버렸어. 그놈들이 모르는 게 이상하지."

- 남궁의 자제와 신의의 제자 사이에서 시비가 붙었다더라.

- 무당의 장로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신의의 제자가 큰 낭패를 볼 뻔했군 그래.

- 안휘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역시 남궁!

"망할 놈들."

잘못은 신의의 제자와 호위무사가 했건만 세상 사람들은 남궁의 잘못으로 몰아갔다.

둘은 가주이자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자신들을 향해 따끔한 훈계를 내릴 것에 짜증이 났다. 자신들 때문에 신의의 제자가 노출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 호위무사...그 년 꼭 내가 박살 내버릴 거야."

"어떻게?"

"흥. 그런 고강한 무공을 가진 년이 용봉지회에 안 나올 리가 없잖아? 걱정 마. 내가 꼭 그년을 박살 내고 말 테니까."

남궁유린은 검을 뽑아 정면을 향해 겨눴다. 여인의 몸이지만 남궁 특유의 강렬한 기운이 가득한 제왕검형의 1초에 남궁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서라. 절정 초입인 것 같아도 절정은 절정이다."

"흥, 그게 대수야? 우리가 굴욕을 당했는데. 이 수모는 반드시 갚고야 말겠어! 마주치기만 해봐! 바로 비무를 걸어버릴 테니까!"

남궁유린은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신의와 여무사는 두문불출이었다.

- 남궁의 사람들 때문에 대인기피증과 남성공포증이 재발하여, 당분간 병실 안에만 있겠습니다.

"아아아악!!"

와장창.

애꿎은 도자기만 박살이 났다.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용봉지회도 어느덧 2주 앞으로 다가왔다.

- 서찰로 인사드리오. 장문인 대리, 현철도사라고 하오. 신의의 제자께서 몸소용봉지회를 위해 의술을 펼쳐주시는 것에 감사하오. 현타도사가 말한 대로, 무당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신의의 제자, 청년 의원에 대한 이야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내가 무당의 안에 임시로 둥지를 튼 만큼 무당의 주인인 현철도사는 나의 존재를 사양하지 않았다.

- 현기도사께 말씀은 전해 들었소.

설령 내가 자신이 아닌 장문인 현기도사 만사용의 요청을 받고 왔다고 한들, 대외적으로는 '무당파의 초청'을 받고 온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만약 내가 장문인의 초청을 받고 왔다고 하면 그는 나를 견제했을 테지만, 자신을 띄워주는 쪽으로 상황을 꾸미니 냅다 고개를 숙였다.

"의원 한 번 참으로 아름답군그래."

무당파 안쪽, 무사들의 호위를 받는 별장.

무당파에 오는 온갖 손님들이 별장 근처를 지나다니며 안쪽을 흘겼지만, 문은 한순간도 열리지 않았다. 환자를 받을 때만 문이 열리기도 하지만, 별장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은 모두 여자였다.

"상처는 치료되었습니다. 흉터는 절대 남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얼굴에 난 상처라 어찌나 걱정했는지...!"

"하하, 여인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다니, 참으로 괘씸한 사람이군요."

대인기피증과 남성공포증이라는 별 해괴한 명목으로 축객령을 붙인 나는 당당하게 '여자만 치료하겠다'고 선언했다.

"반갑습니다, 소협. 아미파의 멸색사태입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그, 상처가 있어서 치료를 하러 오신...?"

"...혹시 피부 노화에 효과가 있는 약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약재가 부족한데...."

나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모두 일단은 '환자'였다.

"하하하! 신의의 제자께서 여기에 있다고 들었소! 이 몸은-"

"히이익?! 아아악! 오, 오지마아아!!"

"......."

막되먹은 남자 손님이 들어오려고 하는 즉시 나는 기겁을 하며 방 안으로 도망쳤고, 그 날 하루는 의원을 아예 닫아버렸다. 결국 피해자가 남궁 패 이후 셋이 더 늘어나고 나서야 남자들은 의원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용봉지회가 2주 앞으로 남은 현재, 나는 숱한 여자 손님들을 맞이하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했다.

"윤가장에서 오신 분이라고요?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지는 약이요? 어느 쪽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이 상처는...사흘에 한 번씩 이 약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능히 상처가 아물 겁니다. 흉터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생ㄹ...크흠! 달마다 하는 거라면 이 약을 드셔보십시오. 너무 심한 무리만 하지 않으면 용봉지회가 끝날 때까지는 능히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비교적 성실하게 의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처음에는 나를 걱정하던 두 도사도 내가 성실하게 의원의 역할을 다하니, 둘도 나를 신뢰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두시오. 저분은 무당에서 초청한 손님이오. 그대의 억지로 우리를 부끄럽게 할 참인가?"

"장문인. 자제분이 병석에 누워있다고 한들, 신의의 제자분에게 지금 당장 떠나라고는 할 수 없소. 아무리 따님이 힘들다고 한들.... 잠시. 크흠. 제자분께서 딱한 사정을 들으셨소. 병명과 자세한 증상을 남겨주면 약제를 지어 보내겠다고 하시는군."

"뭐요? 천환단?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남성 공포증에 시달리는 나를 굳이 만나겠다고 떼를 쓰는 자들을 돌려보낸다거나, 신의의 제자라는 명칭으로 꼬이는 날파리들을 성공적으로 쫓아내 줬다. 덕분에 나는 아주 편하게 여인들만 상대하며 지낼 수 있었다.

"좋구나, 흐흐."

"상공께서 이런 쪽으로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연분홍빛 간호복을 입은 사공희는 약재가 묻은 손을 털어내며 내 옆에 앉았다.

"덕분에 여자들 엄청 많이 만났네요. 설마 아미파 장문인까지 홀로 오셨을 줄은."

"여자에게 노화는 중대 사항이거든. 특히 장문인쯤 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내공이 몇 갑자 수준이 아니라면 노화는 자연스레 오는 법이란다. 알겠느냐?"

"알겠어요, 상공. 빨리 내공을 길러서 평생 젊음을 유지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상공, 다른 여자들 보니까 어떠셨나요?"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의원과 보조로 최선을 다해 많은 여인을 살폈다. 꽃도감에 있는 여인 중 거의 3할 가까이는 우리 의원을 들렀다 갈 정도였다.

"저보다 아름다운 꽃이 있던가요?"

"꽃마다 제각기 매력은 다르기 마련이지. 씁, 아쉽기는 하더구나. 화단에 핀 꽃만 봐서 감흥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이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사공희를 내 위에 걸터앉게 했다. 남자의 위에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는 건 상스러운 짓이었지만, 지금부터 상스러운 짓을 넘어 성(性)스러운 짓을 할 거니까 아무 문제 없었다.

"견희야. 이게 무슨 초식이라고?"

"대, 대면좌위라는 초식이옵니다. ...상공, 이게 무공은 아니잖아요?"

"색공이란다."

찌걱. 나는 내 위에 걸터앉은 사공희의 치맛자락을 들쳐 양물을 밀어 넣었다. 주변에 기막을 펼쳐 우리가 안에서 하는 행위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기에, 우리는 약재가 가득한 좁은 방 안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일 수 있었다.

"다음 손님 오기 전에 빨리-"

"태사부님, 현타입니다."

방해가 들어왔다.

사공희는 표정을 굳히며 잽싸게 다시 인피면구를 뒤집어썼고, 나는 화를 삭이며 사공희에게 넣은 남근을 빼냈다.

'이번에는 하지도 못했군.'

'그러게요. 끝나기 직전에 들어오면 차라리 더 흥분되기라도 하는데.'

안쪽에서 정사를 나누다 손님이 온 경우는 정말 많았고, 이미 우리는 숱한 방해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이제 자연스레 불완전 연소 상태기는 하지만 태연하게 상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급한 일 있으셨습니까? 아니면 이전 손님이 민폐를 끼쳤습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민폐는 현타가 끼쳤지만, 현타는 굳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나를 '태사부'라고 찾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태사부께 고견을 청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고견?"

"예. 그, 내일까지 용봉지회에 참석하는 후기지수들의 신청이 마감됩니다. 그런데...."

현타는 사공희를 눈으로 살짝 흘긴 뒤, 신청서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비어있군."

"예. 견희 소저께서 용봉지회에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외적 배분은 현철도사와 이야기를 나눈 결과, 등선한 현자사형의 제자로 꾸몄습니다. 제가 견희 소저의 사숙이 됩니다."

"그렇구만. 하지만 그게 본 목적이 아니야. 그렇지?"

나는 현타가 일부러 뒤집어놓은 신청서를 뒤집었다. 그곳에는 몹시 정갈한 필체로 한 여인이 용봉지회에 참가하겠다고 적은 신청서가 있었다.

"소공녀?"

익숙한 필체며, 흔하지는 않은 필적이며, 동시에 아는 필체다. 이름 칸에 이렇게 '소공녀'라고 적어놓을 존재는 단 한 명밖에 없다.

"설마 천마의?"

"예, 그렇습니다. 마교, 그러니까 천마신교 교주의 딸이자 마교의 소공녀입니다."

사공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용봉지회의 취지가 정사마가 아우러지는 후기지수간의 정정당당한 비무대회라고 한들, 천마의 적자가 참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공자도 자기 정체를 숨겨서 가명으로 참가했는데.'

대공자 놈에 대해서도 알아보니, 12년도 전에 용봉지회에 등판하여 무려 12년을 감히 흑염룡(黑炎龍)이라는 별호를 사용했다. 심지어 무공도마공이 아닌 정파의 무공-겁염도의 직전 무공인 파염검(破炎劍)을 사용했다.

지금은 나이가 차서 자연히 흑염룡이라는 별호는 소멸하였고, 마지막 용봉지회 이후 특별한 활동이 없어 따로 별호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공자는 어린 치기에 용봉지회에나서 구룡의 일원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자신의 정체를 극도로 숨긴 덕분에 단 한 순간도 자신이 마교의 존재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인간은 뭐지?'

나 마교의 존재이며, 천마의 딸이요. 아주 방방곡곡에 광고해도 유분수지, 어찌 이렇게 무모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서 왔나? 에이, 설마 혼자서 왔겠어?"

"비천삼마(飛天三魔)도 함께 왔다고 합니다."

"미친."

대외적으로 이리 당당히 오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심지어 마교의 이름난 무사들을 셋이나 데려온 것도 어이가 없었다.

"문파 장문인급을 셋이나 데려왔다고? 전쟁을 일으키자는 건가?"

"그래서 태사부님께 온 것입니다. 부디 혜안을 내려주시지요."

"음...."

소공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나는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은혜가 있는데 어떻게.'

마교 졸개 시절, 재능도 없던 나에게 폭혈대법을 가르쳐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이가 바로 소공녀다. 더군다나 그녀에게 입은 은혜는 내가 죽고 난 다음 생, 현생에도 잊을 수 없는 은혜였다.

'내 동정을 떼줬는데 내가 은혜를 안 갚으면 쓰레기지.'

꼽추였던 나에게 처음으로 파정의 기쁨을 알게 해 준 여자다.

동시에 훗날, 마교를 휘어잡아 대공자와의 1:1 비무에서 승리하여 천마신교의 우두머리-천마가 된 여자다.

"소공녀, 지금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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