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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봉을 찾아라
모처럼 밖으로 나와 외식을 즐긴 뒤 집으로 돌아가 식후떡을 즐기려던 찰나.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때에 나타난 불청객에 나는 절로 짜증이 일었다.
"누구십니까."
불청객을 맞이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의 몸종 사공희. 인피면구를 뒤집어써서 평범한 여인으로 위장한 그녀를 향해, 얼굴을 붉히며 포권을 취한 남자는 다름 아닌 남궁패였다.
"하하, 저는 안휘에서 온 남궁패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여동생, 남궁유린이구요."
"그런데요."
내가 불쾌한 것처럼 사공희 또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기대하고 있던 것처럼 그녀 또한 몸이 달아올라 있었건만, 집으로 돌아가는 시각을 늦추게 만든 장본인에게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만무했다.
'검은 곳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나는 사공희가 앉아있던 자리를 손으로 슥 쓸었다. 사공희가 마침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축축하게 젖어있던 아래가 금방 드러날 뻔했다.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찾아뵙게 된 이유는...."
"그쪽, 혹시 용봉지회에 참가하나요?"
남궁유린은 삐딱한 표정으로 사공희를 노려봤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공희는 당황하며 나를 잠시 눈으로 흘겼다. 사공희의 비무대회 참전은 내게 달려있었으니까.
[벌써 견제하러 온 거다. 너의 기감을 눈치챈 듯하니, 너는 강자로서 저들을 대하라.]
남궁패도 그렇지만 남궁유린에게서 느껴지는 기도 만만찮다. 둘 다 일류고수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절정고수로 금방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무공이라면 자신 있을 남궁의 두 무사가 비슷한 나이대의 절정고수를 발견했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특히 용봉지회에서 겨루게 될 대상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때가 나빴다. 사공희는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 남궁유린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아...아쉽군요. 그럼 실례지만 제가 감히 비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소저?"
"안 돼요. 실례에요."
사공희는 남궁패의 제안을 가차 없이 거절했다. 설마 자신의 비무 요청이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훤칠한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하, 단호하시군요."
"뭐야, 겁먹었나?"
남궁유린의 말에 사공희의 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간단한 도발에도 넘어가는 게 확실히 사공희 또한 무림초졸 다웠다.
무공의 경험과 성 경험은 많아도 무림인을 상대해 본 경험은 아예 없다. 그런 만큼 단순한 도발에도 금방 넘어갈 뻔했다.
[진정해라. 내가 지시하는대로 말하거라.]
내가 아니면. 사공희는 말아쥔 주먹을 천천히 내렸다.
"...스승께서는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도발에는 도발로. 비꼬는 말투에는 비꼬는 말투로. 사공희의 역도발에 두 남녀는 웃는 낯으로 눈을 찌푸렸다. 입은 웃고 있지만, 사공희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은 적의가 서려 있었다.
"실력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요. 저희는 남궁입니다?"
"세가의 이름이 당신들의 실력은 아니지요."
"소저의 이름을 알아도 되겠습니까?"
"외간 남자에게 이름을 밝힐 수는 없죠."
"......상대에 대한 예우를 갖추시지요."
[떡 치러 가려는 남녀를 붙잡아 시비 거는 놈들에게 예의는 개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이들을 강제로 붙잡아 말을 거는 이들에게 갖출 예의 따위는 없습니다."
사공희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은 좀 더 거칠었지만, 사공희는 나름대로 정제하고 가다듬었다.
"잠깐의 대화도 안 된단 말씀입니까?"
"급한 일이 생겨서 일어나려고 하는 이들을 붙잡았는데 잠깐도 안 되지요."
"허...문파가 도대체 어딥니까?"
"말하기라도 하면 뭐 항의라도 하실 겁니까? 비키세요."
사공희는 내기를 뿜어내며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막고 있는 두 남녀의 뒤로 숱한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늘어져 있어, 사실상 이들을 모두 밀치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힘으로 밀고 나가면 사공희가 놈들의 몸에 닿으니.'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나의 기지를 발휘하는 수밖에.
'꽃을 따려면 화원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 법.'
탁.
나는 젓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다.
"이거 난감하군요."
나는 평소와 달리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변성기가 지나 위압스러운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저희 스스로 소개를 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눈이 많은 것도 물론이거니와, 제가 남들에게 노출되면 안 되는 신분이기 때문이지요."
"그게 무슨...?"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조차 제게도 낭패이며, 남궁세가에도 상당한 폐가 될 거라는 말입니다."
내 말에 둘은 흠칫 놀라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사공희는 미리 내 전음을 받고 가만히 있었고, 나는 그들을 엿먹일 패를 꺼내 들었다.
"뭐...이미 이렇게 이목이 끌린 상황에서야 제 신분을 숨기기란 글렀군요. 하루 더 휴식을 취하고 산에 올라가고 싶었는데 이것 참. 견 소저, 돌아가는 즉시 행장을 꾸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부러 나에 대한 호칭은 부르지 않았다. 별호나 다른 호칭을 부르는 것조차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나는 둘을 향해 싱긋 미소만 지었다.
"길을 비켜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일을 정식으로 남궁에다가...아니, 맹에 항의를 할까요."
"도대체 누구시길래...?"
"제가 누구인 건 중요치 않습니다. 말할 수 없다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소란이 일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짜증 나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먼저 폭발한 쪽은 남궁유린이었다.
"정체를 밝혀! 일류 이상으로 보이는 여고수를 데리고 다니는 청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그야 당연하죠. 이번 지회 때문에 제 호위로 나선 사람인걸요."
"이게...!"
"유린아."
그나마 남궁패 쪽은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건지 남궁유린을 진정시켰다. 이미 객잔 안의 시선은 우리를 향해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처음 보는 얼굴인데....
"흠흠, 실례가 많았습니다."
결국 남궁패는 한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의심암귀는 우리의 정체에 대한 온갖 상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행여나 정파의 높으신 분이 아닌가. 남궁의 후기지수 따위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예를 들어, 신의(神醫)의 제자가 아닌가-
"오빠! 이 사람들 분명 마교 사람들인 게 분명해! 맹에 신고해서 감옥 보내자!"
"이 씨발년이?"
"........"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나는 나를 향해 감히 삿대질하며 입을 쩍 벌리는 남궁유린을 향해 다시 싱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보고 마교라니, 미쳤나? 이번 일에 대해서는 남궁에 정식으로 항의하겠다. 감히 이 몸을 마교로 몰아?"
"오빠! 이 새끼 나보고 하는 말 들었어?! 세상에, 씨발년이래!!"
"그, 그만해라. 유린아, 뭔가 이상하다."
원숭이처럼 화를 내는 남궁유린을 진정시키는 남궁패의 이마에 땀이 뻘뻘 흐르기 시작했다.
'좆됐다 싶겠지.'
상상의 나래를 마교 쪽으로 펼쳐서 그걸 입 밖으로 내민 순간, 남궁유린은 우리 둘에게 엄청난 모욕을 한 셈이다. 우리가 만약 정파의 인물들이라면 당장 남궁유린에게 결투를 걸어도 남궁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소란이냐!!"
객잔의 입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궁패는 소태씹은 표정이 되었고, 남궁유린은 표정이 굳었지만 여전히 나를 향한 분노는 숨기지 않았다.
"현타 장로님! 글쎄 이 자가!!"
"......."
현타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살포시 감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전음을 날렸다.
[내가 말하는 대로 나를 소개하거라.]
[그건 사기 아닙니까?]
[사기라니? 내가 놈의 의술을 이어받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현타도사는 해탈한 얼굴로 2층까지 올라왔다.
사실상 무당의 삼인자며, 용봉지회의 관리를 맡은 무당파의 장로이며, 남궁의 가주 바로 아랫급은 되어야 감히 고개를 마주할 수 있는 현타의 등장에 남궁의 남매는 한 가지만 바라는 듯 보였다.
'내가 진짜 마교의 잔당이기를 바라는 눈치군.'
그러면 최소한 자신들의 무례가 '마교의 건방진 놈들을 훈계하려던 것'으로 포장될 수 있으니까. 물론 꿈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소리다.
"제가 모시러 가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현타도사는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에게'.
나는 남궁의 남매에게 한 번 소리 내 비웃은 다음 표정을 바꿨다.
"장로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객잔에서 느긋하게 배를 채우고 산에 올라가겠다고 생각한 제가 굼떠서 그렇지요. 후후. 그래도 다행이군요. 장로를 만나기 전에 괜히 제 정체를 드러냈다가, 마교 놈들에게 잡혀가면 어쩌나 전전긍긍했습니다."
"예. 다행입니다, 무붕 의원."
'의원'. 나의 정체를 암시하는 명칭에 남궁 남매의 표정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고작 의원 나부랭이에게 무당의 장로가 절절매는 게 정상인가?
가능하다. 신의의 제자라면. 나는 둘을 향해 다시금 포권을 취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저는 이번 용봉지회에서 무당파의 요청으로 부상자들의 치료에 지원을 나서기로 한 사람입니다. 저를 무붕이라고 불러주시지요."
"아니, 겨우 의원이...."
"이 분은 신의의 제자시다. 너희가 용봉지회에서 죽기 직전까지 몰려도 목숨만 붙어있다면 살려주실 분이지."
"......."
남궁패가 입 모양으로 작게 씨발 거리더라. 남궁유린은 입을 쩍 벌리며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직감했다.
"스승께 작은 가르침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마교의 잔당이라?"
나는 최대한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남궁유린을 압박했다.
"내 스승께서 마교 개새끼들에게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셨거늘.... 흥, 이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소, 소협! 아니, 의원님!!"
나는 몸을 돌려 객잔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남궁유린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연놈들 때문에 집에 가는 게 더 늦어졌잖아.'
집에 가서 사공희랑 질펀하게 한 판 해야 하는데, 무당산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게 생겼다.
* * *
무당산으로 올라가는 길.
"잘 들어라. 나 신의의 제자 무붕은 지독하게 낯을 가리는 자이며, 어렸을 적 충격으로 일면식이 없는 이와의 만남은 극구 사양하는 청년이다. 알겠느냐?"
"태사부. 신선이 되실 분이 그렇게 하늘을 속이셔도 되는 겁니까?"
"안 그러면 그 자리에서 내가 무당의 태사부인 걸 밝히리?"
"그건 더 안 될 말씀이시죠. 하아, 장문인 대리에게 어찌 말해야 할지."
현타도사는 현재 장문인 대리인 현철도사에 대한 적의가 상당히 누그러졌다. 장문인에 대한 삐뚤어진 욕망이 금방 실현되면서, 현철도사가 무당을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현실과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적극적으로 지지는 안 하지만.
"현기의 안배라고 대충 둘러대라. 애초에 신의 그놈은 신출귀몰한 놈이니,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붕 태사부, 의원을 칭하신 이상 진짜로 의술을 펼치셔야 합니다...?"
"예끼, 이놈. 설마 그 정도도 못 할 것 같으냐? 무당의 이름에 먹칠할 일은 전혀 없으니 걱정 말거라."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태사부. 이분은...?"
현타도사는 첫 만남부터 계속 신경 쓰던 내 옆의 사공희를 가리켰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사공희를 바라보며 내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벗어라."
"........"
찌직, 찍. 사공희는 인피면구를 뜯어냈다. 평범한 여인의 모습에서 순식간에 월궁항아가 나타나자, 현타도사는 숨이 넘어갈 듯 눈이 커졌다.
"어, 어...."
"태극혜검의 진전을 이어받은 아이다. 배분은...에이, 귀찮다. 대외적으로는 네가 사숙(師叔)해라. 어차피 나는 존재 자체가 없어야 하는 자이니. 물론 너만 알고 다른 이에게는 비밀이다. 알겠느냐?"
"아, 알겠습니다. 허어...."
현타도사는 한참 사공희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맞잡고 허리까지 숙였다. 자신보다 한참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낮지만, 태극혜검의 진전을 이어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공희는 장로급 존재가 되었다.
현타도사가 장문인 대리에게 상황을 알리러 떠난 뒤, 가만히 있던 사공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상공, 신의 얘기를 하신 거 말이에요."
"어."
"설마 치료하는 척하면서 여자를 만지려고 하시는 거 아니세요?"
"......현타에게 하나 더 얘기해둬야겠군."
나는 사공희에게 다가가 볼에 입술을 맞춰 상을 줬다.
"나는 남자 공포증을 앓고 있다고. 내 전용 의원은 무조건 일인실로 만들어야겠군. 주변에 방음도 철저하게 해놓고."
"......무슨 속셈이셔요?"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야."
펄럭. 나는 꽃도감에서 남궁유린이 그려진 쪽을 펼쳐, 얼굴을 침 묻힌 엄지로 쓱쓱 비볐다.
"다친 꽃을 정성스레 보듬어 줄 뿐이다. 흐흐흐."
꼭 다쳐라, 남궁유린.
그리고 용봉지회에 참석할 수많은 꽃이여.
[작품후기]
여성전용의원
1인병실
수면향
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