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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봉을 찾아라
내가 요리를 어느 정도 잘하는 편이긴 해도, 언제까지 내가 만든 요리와 채소 과일만 먹고 지낼 수는 없는 법.
때때로 외식은 필요한 법이며, 나는 그럴 때면 사공희에게 인피면구를 씌워 얼굴을 가리게 했다.
몸은 장포로 펑퍼짐하게 입혀 가릴 수 있다고 해도, 얼굴은 인피면구를 씌우지 않으면 도저히 미모를 숨길 수 없었다.
“견희야, 저기 옆에 있는 여인 말이다. 제법 예쁘지 않느냐?”
“제가 더 이쁜데요.”
“어딜 선녀와 인간을 비교하느냐? 너는 이미 천상계의 꽃이다. 흠흠, 여기 인간계의 화훼도감 정보에 따르면 화산파의 매화검수라고 하는구나.”
사공희는 나의 정보에 입꼬리를 비틀며 여인을 비웃었다.
“그래 봐야 저한테 안 될 거예요. 저는 상공의 몸종이니까요.”
그날, 내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이후부터 사공희의 집착은 다른 방향으로 심해졌다. 다른 여인들에 비해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방향으로 자부심을 내비쳤다.
“상공, 제가 더 미모가 출중한가요?”
“당연하지.”
“그럼 제가 더 무공이 출중한가요?”
“물론. 너는 절정고수고, 저 아이는 얼굴만 반반하지 이류 수준으로 보이는구나.”
“밤일도 당연히 제가 더 잘하겠죠?”
“견희가 남들보다 밤일을 더 잘하긴 하지.”
“그럼 제가 이겼네요. 한 명 더 제쳤군요, 후후.”
‘귀여우니까 봐준다.’
사공희는 자신과 다른 여인들을 비교하며 자신의 우월함에 자부심을 가졌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매력으로 내 환심을 적극적으로 사고자 하는 모습에서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미래의 태극검후가 이 모습을 보면 기절하겠군.’
다음 생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며 저주하던 태극검후는 증발했다. 내 앞에 있는 여인은 내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소녀에 불과했다.
‘그런다고 너 하나로 만족할 내가 아니지.’
질투심 유발, 충격요법, 그리고 나의 눈요기.
세 가지 명목으로 나는 사공희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객잔으로 데려왔다. 내가 요리를 하기 귀찮았던 것도 있지만, 사공희에게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음식을 경험할 여유가 필요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점소이는 우리의 앞에 한 상 푸짐하게 내려놓았다. 둘이서 먹기에는 다소 버거운 양이기는 했으나, 무림인 둘에게는 적당한 수준의 양이었다.
“상공, 드셔요. 아앙.”
“이렇게 트인 장소에서 그러면 부끄럽지 않느냐?”
사공희는 젓가락을 들어 내 입에 떠먹여 주려고 했다. 나는 창가 쪽에 나와 있는 자리와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을 가리켰고, 사공희는 게슴츠레 웃으며 내 입에 젓가락을 뻗었다.
“어차피 저희 보는 사람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나는 입을 벌려 사공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내가 주변에 내기를 퍼뜨려놓은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은 우리에게 쏠리지 않았다.
“오, 저기 지나가는 여인을 보거라.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사파쪽 여인인 듯하구나. 일류 고수야.”
“쾌검을 쓰는 검객인 것 같네요. 제가 삼 합 안에 제압할 수 있어요.”
"자신감은 좋다. 허나 실전은 언제나 다양한 변수가 있는 법.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저 여인의 곁에도 다른 이들이 있는 법이지."
여인의 주변에는 여인과 함께 온 문파의 사람인 듯 같은 복장을 한 여인들이 한가득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에 주변 남자들을 경계하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인상만 펴고 있다면 나름 반반한 얼굴이었다.
"선루필승도. 저 문파의 이름이다."
"먼저 눈물을 흘리는 쪽이 이긴다...?"
"그래. 아주 잔악한 수법을 사용하는 이들이지. 색마에게 여인이 겁탈당하기 전에, 먼저 색마를 붙잡아 참혹한 고문으로 먼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는 취지로 모인 문파다. 워낙 손속이 잔인해서 선루필승도는 정파의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사파로 분류되었다."
손속이 잔혹한 것 이외에는 색마에게 당한 피해자나 그 가족이 문파의 일원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훗날 정마대전 시점에는 아무나 색마로 몰고 가며 남자를 고문하여 죽이는 걸 즐기는 미친 집단으로 변했다.
결국 혈강시가 선루필승도를 박살 냈다. 그 순간만큼은 정파도 자연재해로 인해 습격에 대처하는 것이 어쩌다 보니 늦었고, 마교도 고개를 돌려 혈교의 다른 무사들을 공격하러 떠났다.
'7할가량이 가짜였지.'
장로급이나 아주 오래된 고수 3할을 제외하면 모두가 선루필승도의 강대한 세력에 반해 모인 이들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중원의 숱한 이들이 선량한 피해를 보게 될 터.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
선루필승도에 내가 기억에 남을만한 여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사공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쯧, 눈 버렸군."
"어머나."
나는 질색하고 사공희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마침 선루필승도의 무사들이 지나가는 맞은 편에서 감청색 무복을 입은 남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훤칠한 키의 미공자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대로의 중앙을 걷고 있었다.
"남궁세가로구나. 저놈은 구룡 중 으뜸이라고 평가받는 놈이군.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무공은 저보다 약간 아래인 것 같지만, 상공이랑 비교하면 뭐든지 훨씬 못할 것 같네요. 얼굴도 그렇고, 무공도 그렇고."
"그거야 당연한 거고. 흐흐."
나는 술로 목을 축였다. 벌써 남궁세가와 선루필승도가 온 건 제법 이례적인 일이었고, 둘이 마주치면 여러모로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재미있...오."
순간, 남궁가의 무사들 사이에 여인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절로 군침이 넘어갔다.
"위루화(僞淚花)?"
"네? 그런 이름이 없지 않나요?"
"내가 누구냐? 무붕이다. 나 정도 되면 천기를 읽어낼 수 있지. 그 사람의 관상, 사주팔자, 성장 배경 등을 알면 미래에 어떤 별호를 얻을지도 보인단다."
나는 꽃도감을 펼쳤다. 정갈한 글씨로 쓰인 도감에는 내가 위루화라고 부른 남궁의 꽃이 서책을 양쪽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남궁유린?"
"올해로 21세. 아아, 어디서 악연이 시작되었는지 알겠군."
가문의 위세를 이용해 선루필승도의 문파 결성 취지를 망가뜨리고, 숱한 남자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마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감이 왔다.
"운명의 만남이로군."
철컥.
자존심 강한 두 문파가 대로 한 가운데에서 서로 맞닥뜨렸다. 나는 사공희와 함께 객잔 위에서 두 문파의 만남을 내려다봤다.
"아름다운 분들이로군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시작은 젊은 청년의 인사였다. 별로 필요는 없었지만 구매한 돈이 안타까워 꽃도감의 별책부록으로 만든 '꽃미남' 중에 대표적인 예로 있었던 후기지수 중 으뜸, 남궁패였다.
'기억 안 나는 거 봐서는 미래에 뒤졌나 보군.'
마교 졸개로 온갖 무사들을 암살하기 위해 살생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웠던 내가 팔대세가 인물을 기억하지 못한다? 살생부에 없던 인물이다.
'그에 비해 지금 인사하러 나온 여자는....'
"남궁의 소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선루필승도의 대표이자 <칠성도>, 옥선루라고 하옵니다."
"칠성도! 선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궁패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소태 씹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상공, 저건 어떻게 된 거예요?"
"무림은 별호가 갑이니라."
"네?"
"액면가는 서로 비슷해 보일지언정, 선루필승도의 수장은 이미 무림에서 이름을 날린 여걸. 이제 '용'의 별호를 얻기 위해 온 무림초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선배지. 남궁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무림맹에 몸을 담았던 여인을 무시할 수는 없단다."
칠성도 옥선루.
선루필승도라는 문파를 만든 수장이며, 자신을 '대표'라고 칭하는 여걸이다. 나이는 올해 28세로 용봉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마교 출신의 색마 하나를 격살하여 이미 자신만의 별호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맛있겠네."
"상공, 설마...."
"입맛만 다시는 거다. 딱히 꼭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과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맛이 예상가는 음식. 어느 쪽이 맛있는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한 입 베어 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다. 우리가 두 세력의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그들 또한 서로를 소개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저희 문파에서 용봉지회에 참가할 아이랍니다."
"만나서 반갑소."
"...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교적 까칠해 보이는 듯한 어린 여인이 말까지 짧게 하며 인사를 끝마쳤다. 옥선루는 눈썹을 찌푸리며 동생이자 제자처럼 보이는 여인을 나무라려고 했으나, 옥선루를 제외하면 모든 여인들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한껏 경계하고 있었다.
"하하, 혹시 남궁에 뭔가...?"
"그런 게 아닙니다, 소협. 이들은 모두 남자와 악연이 짙습니다."
"...아! 송구합니다. 제가 배려가 없었습니다, 선배님. 먼저 가시지요."
남궁패는 무사들을 좌우로 물렸다. 두 문파의 자존심 대결에서 남궁패는 먼저 길을 비켰고, 옥선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이군. 무당파 제자들이 괜히 가운데에서 피보는 일이 없어서."
마침 대로 근처까지 달려온 무당파 제자들은 남궁의 배려로 기 싸움이 끝난 것에 크게 안도하며 자리를 다시 떠났다. 만약 남궁패가 비켜서지 않았다면 두 세력은 무당이 중재하기 전까지 계속 대로를 차지하고 기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보아라, 견희야. 저게 용봉지회의 실체다. 문파들끼리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다가, 구룡육봉을 결정하는 비무대회에서 누가 더 위에 있는지 결정하는 거지."
"참 별것 가지고 싸운다 싶네요...."
"그 별것 때문에 문파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게다."
자부심과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자들이 무인이다.
남궁세가와 선루필승도 두 세력 또한 자존심 때문에 길을 먼저 비켜서지 않았고, 남궁패는 옥선루라는 무림 선배에게 길을 비켜주는 거로 먼저 양보했다. 그나마 일부러 '선배'에 대한 예우를 하는 척하며,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펼쳤다.
"쯧쯧. 소악마를 일깨워버렸군."
"네?"
"배려를 무기로 활용하는 것을 깨달은 마녀가 하나 태어난 것 같구나."
남궁세가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여인, 남궁유린은 한참 동안 선루필승도의 여무사들이 떠나간 뒤를 째려봤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 때문에 째려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그녀는 언젠가 선루필승도의 수장이 될 몸. 검과 더불어 여성을 무기로 활용하는 법을 터득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년이야. 자신의 성을 무기로 삼다니."
"상공, 그럼 저도 똑같나요? 저도 상공을 몸으로 이기려고 하는데."
사공희는 자신의 몸을 내게 붙였다. 뭉클한 가슴이 내 팔에 닿았고, 나는 사공희의 육탄공격에 엉덩이를 움켜쥐며 진정시켰다.
"너는 다르지.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담하구나. 이렇게 남들 앞에서 대놓고 유혹을 하다니."
"일부러 이런 곳에 데리고 오신 거잖아요. 제가 투기를 부리게 만들려고."
"그래. 다른 여자들 보니까 기분이 어떠냐?"
"......후후, 상공."
사공희는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 인피면구를 살짝 들추며, 본래의 얼굴로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제가 다 이길 수 있어요."
"그래?"
무림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공희는 역시 천생이 무림인이었다.
"일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기 객잔 숙수는 이기지 못할 것 같구나."
"......."
사공희는 침묵했다.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인피면구를 다시 눌러쓴 그녀는 툴툴거리며 과일 하나를 내 입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녀의 과일 찌르기를 입으로 받아낸 다음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어허, 누가 젓가락으로 태극검을 사용하라고 했느냐."
"흥, 두고 보세요. 언젠가 보란 듯이 제가 부엌의 주인이 될 테니까."
"기대하마."
나는 사공희와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내가 하는 것보다는 맛은 못 하지만, 역시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
"상공."
"왜?"
"꼬, 꽃 구경 끝났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건 어떠신가요...?"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유혹하는 사공희의 모습에 나는 아래가 뻐근해졌다. 나는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래? 그럼 당장-"
"실례합니다."
너무나 큰 실례를 저지르는 이들을 향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작품후기]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