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여제자, 사공희
사공희의 처녀를 취한다.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고, 느긋하게 자라기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설마 그사이에 요리 실력 안 늘지는 않겠지.'
당장 정마대전이 일어나 무당산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도 아니고, 태극혜검을 익힌 태극검후가 나서서 무당파를 휘어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공희의 처녀는 오늘 취한다.
단, 먼저 할 일을 한 뒤에.
"진사월, 네 한나절을 더 사겠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만 여기에 있어 다오."
"어머, 무슨 연유로요?"
"견희에게 첫날밤 여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쳐놓아라."
사공희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진사월은 그런 사공희의 손을 살포시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가가. 대신 기루에 얘기랑 돈을 전해주셔요. 안 그러면 저 하루 동안 돌아가지 않았다고 의심을 할 거예요."
"오냐.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귀찮은 일을 겪게 되는 건 사양이다. 나는 차로 입가심을 한 뒤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가가, 어디를 가셔요? 기루에 다녀오시는 것만은 아닌 듯한데."
"잠깐 산책을 다녀오마."
사공희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녀는 내 진짜 실력을 아니까. 하지만 진사월에게는 말할 수 없다.
'무당파에 잠입한다'는 말을 기녀에게 하겠는가?
무당파의 영역 안에서 물장사를 하는 여인에게 무당파와 척을 질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 괜히 귀찮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기껏 구한 사공희의 밤일 스승을 따로 또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 가가. 그...."
진사월은 막 떠나려던 붙잡아, 애매하게 웃으며 부엌을 가리켰다.
"...저도 할 줄 모르는지라. 아랫것들에게 시켜서 먹는답니다."
"왜 여자가 둘이나 있는데 내가 부엌을 들락날락 해야 하는 거지?"
"대신에 저희 안에 들락날락하시잖아요."
"......그렇군. 내가 손님이라면 어쩔 수 없지. 신세를 졌으니 식사 대접 정도는 해야지. 암."
시간은 어느덧 해가 중천. 나는 부엌에 나의 내기를 남겨 음식이 식지 않게 만들었다.
"적당히 꺼내먹으면 될 것이다. 저녁은 석양이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먼저 먹거라."
"제법 오래 걸리시네요?"
"물론."
이미 시간을 다소 지체했다. 거리상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곳이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반나절로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다녀오마."
나는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무당.
무당파의 모든 비급이 잠들어있는 비고.
'태극검후가 태극혜검 하나로 무당파의 지존이 될 수는 없지.'
추후 무당파의 지존이 될 자는 현타도사 사정후가 있다. 하지만 현시점, 아직 정마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시기에 현타도사보다 더 강한 무당의 도사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두 명.'
당대 최강의 무인이라고 불렸지만 노환으로 등선한 자.
그리고 그자의 뒤를 이었으나, 무당의 몰락을 가져온 자.
"놈이 장문인 독살했다고 하던데."
무당의 배신자가 무당의 비급과 단약을 챙겨 마교로 투신했다더라.
갑자기, 마교 졸개 시절 정보를 얻고 다니며 들었던 풍문이 떠올랐다.
* * *
"커헉!"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옆에 서 있던 장로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사형, 사형!!"
현철도사는 노인에게 달려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노인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노인의 피부는 붉은 발진이 서려 있었으나 현철도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놓아라. 지금은 사형이 아니라 장문인이니라...."
스스로를 무당의 장문인이라고 칭한 자, 현기 도사 '만사용'은 노쇠한 팔로 현철의 팔을 밀어냈다. 피골이 상접한 그의 팔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얇았다.
"장로들이여, 그래서 병자는 찾았느냐?"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 곧 어디에 숨었는지 알려질 겁니다."
"그래. 무당에서 퍼진 병이다. 무당이 처리해야 해, 쿨럭...."
장문인은 흰 비단에 검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살날이 머지않은 것만 같은 모습에 현철도사는 비명을 지르듯 악다구니를 썼다.
"어째서 사형...장문인께서 이런 일을 당하셔야 한단 말입니까! 그날, 그놈을 쳐 죽였어야 하는 건 저였습니다!"
"아니, 아니다. 놈의 은원은 내게 있지. ...흐흐, 젊은 시절의 혈기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장문인은 도포를 걷어 올렸다. 팔에는 천하십대검객으로 불리던 남자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가득했다.
"내가 실수했어. 깔끔하게 목을 날렸어야 했는데, 과거의 은원 때문에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 너희들은 그러지 마라."
"크윽...."
복수를 위해 찾아온 남자와 생사를 걸고 비무를 벌였으나, 장문인은 남자를 죽이는 것에 손속을 뒀고 결국 남자의 피를 뒤집어썼다.
여기까지면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남자는 마공을 익힌 마인이었고 천화에 걸린 환자였다. 중상을 입은 남자는 폭주하기 시작하여 장문인에게 큰 상처를 입혔고, 사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천화를 퍼뜨렸다.
그것이 무당산이 한 달 가까이 봉문하게 된 배경이었고, 지금은 잠잠해지고 있는 천화가 발병한 원인이었다.
"현철, 마인들은 어찌 되었느냐?"
"시신은 모두 화장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살아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모두 죽어 마인들의 뒤를 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그건 어쩔 수 없지. 마인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죽기 전에 증좌를 인멸하고 가니까. 알겠다. 잠시 쉬고 싶구나. 이렇게 불러서 미안했다."
태산 같던 장문인의 나약한 말에 장로들은 모두 울컥하며 방을 떠났다. 현철은 아예 눈물까지 글썽이며 몸을 돌렸다. 장문인은 하나둘 방을 나가는 장로들을 살피다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현타 이놈, 장문인이 말하기도 전에 몸을 돌리고 나가? 너 잠깐 이리 와라."
현타도사, 사정후는 몸을 돌려 장문인의 앞에 섰다. 다른 장로들은 혀를 차며 밖으로 나섰고, 현철도사는 아예 그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장문인의 축객령이 아니었다면 다들 현타도사를 나무랐을 것이다.
"너는 예전부터 아주 하는 행동거지 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어디 장로라고...."
끼이익, 쿵. 문이 완전히 닫히고, 장로들이 모두 떠났다. 길게 늘어지던 장문인의 말이 뚝 멈췄다.
"...그래. 알아보라고 한 건 어찌 됐느냐?"
"마인들이 비고에 출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다만, 단환을 보관해둔 곳에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었습니다. 장로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에."
사제를 나무라던 사형의 훈계가 아닌, 무언가를 염려하고 조사한듯한 대화가 둘 사이에 오다녔다. 장문인은 슬픈 눈빛으로 현타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네가 고생을 좀 해다오. 너 말고는 믿을 자가 없다. 부디 '그분'을 찾아다오."
"...사형,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공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자가 저희의 태사부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마인이어도 상관없다. 마공을 극성으로 익히고, 우리 무당의 검을 잡기 수준으로 익혔어도 상관없어. 태극혜검! 그걸 익힌 분을 어찌 태사부로 모시지 않을 수 있단 말이더냐. 마교의 종자만 아니면 돼! 나 때는 친한 마인들과 서로 생사결을 주고받다가 워낙 많이 봐버린 나머지, 눈대중으로 적의 무공을 익히고 그랬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태극혜검의 사용자를 찾아야 할 게 아니라...."
현타는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사형을 이런 꼴로 만든 진짜 흉수를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식사에 독을 탄 그 악랄한 자를 말입니다. 말씀해주십시오. 누구입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다. 그것만큼은 말할 수 없어."
"그렇게 감싸고 도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시원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흐흐, 그래서 내가 너를 중용한 것이야. 정후야, 부탁한다. 태극혜검을 익힌 선배님을 찾아다오.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반로환동을 하신 초고수라고."
장문인의 눈에는 미약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분께서 무당에 돌아와주신다면...태극혜검을 남겨주신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구파일방의 으뜸이 될 수 있어!!"
"......."
태극혜검의 주인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 * *
"푸엣취!"
"어머, 가가. 고뿔 걸리셨어요? 얼마나 밤에 사월 언니를 고생시켰으면!"
"그런 거 아니다. 킁, 그래서 사월이는 내가 저녁까지만 데리고 있어도 되지?"
"네! 가가도 참 엉큼하셔라. 사월 언니가 그렇게 좋았어요?"
"말해 뭐하겠냐. 이 기루에서 가장 가슴이 큰데."
"꺅! 짐승."
기녀는 쿡쿡 웃으며 내가 건넨 은자를 전부 챙겼다. 나는 기루에 들러 진사월의 시간을 구매했고, 막 진사월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걱정하던 기녀들은 금방 마음을 놓았다.
남자의 집에 출장을 간 기녀가 늦게 돌아오는 일은 비일비재했지만, 연통 하나 없는 건 불안하기 마찬가지였으니까.
"살펴 가셔요. 사월 언니 너무 괴롭히시면 안 돼요~"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무슨."
"꺄아아!"
내가 쇄골을 살짝 들추자 기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 좋아죽었다. 기녀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환상-무림인 미남 소협이 원숙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자신이 겪는 일인 양 좋아했다.
"사월 언니 계탔네, 계탔어. 맨날 '미남 미남!'거리시더니."
"얘, 그냥 미남이 아니라 '꽃미남!'이야. 호호호, 그 언니 주책도 참."
"시끄럽다. 가서 일이나 봐."
나는 기녀들을 물렸다. 기루에서 봐야 할 볼일은 모두 끝났고, 남은 일은 무당산에 올라 본래 하기로 한 일을 처리하는 것뿐이다.
'빨리 해결하고 집에 가서 사공희 처녀 먹어야지.'
계속 조금 더 영글었을 때 처녀를 취하면 그만큼 엄청난 내공을 취할 수 있다는 아쉬움이 계속 든다. 하지만 과육은 너무 익어버리면 쉬어버리고 썩어버려서 오히려 당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꺾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몇 번이고 되뇌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공 비급을 탈취하는 것도 마찬가지. 무당파의 다른 무공을 익히면 그만큼 내공도 빨리 늘어나게 될 거야.'
태극혜검 이외의 무공을 익히면 잡학다식으로 오히려 발전이 더딘 게 아닐까 싶지만, 사공희의 실력이라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더 빠른 성취를 보일 게 분명하다.
"그럼 이제 슬슬...응?"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날카로운 기감에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내가 드러날 뻔했다.
"응?"
"왜 그러십니까, 선배?"
"아니, 방금 누가 나를 보지 않았나?"
"손에 그렇게 꼬치 세 개를 들고 다니면 누구나 쳐다보지요."
두근, 두근.
나는 눈앞에 걸어가는 중년 남자와 미청년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특히 내 시선은 산발이 된 머리에 푼수 같은 모습의 중년 남자에게 꽂혔다.
'암영은신술이 조금만 늦었으면 들킬 뻔.'
종이 한 장 차이 실력이라면 승패는 명확하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상대도 내가 종이 한 장 정도 위의 실력을 갖춘 자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
'신창이 왜 여기서 나와?'
금의위 최강의 고수이자 별호에 '신(神)'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중원 제일의 창술사, 신창(神槍).
옆에 선 미공자가 '감찰관'이라고 적어놓은 완장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역시 신창이 이 동네에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놈들 마교 쫓는 사람들 아닌가?'
마교가 본격적으로 준동하기 전, 황궁 최강의 무사 셋이 중원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마교의 흔적을 찾아다녔다고 들었다.
결국 셋 모두 허탕을 치고 마교는 문파 하나를 멸문시키고 본격적인 준동을 알리며 '무능삼장군'이라는 멸칭을 듣기도 했다.
훗날 무능삼장군이 혈교와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며 유능삼장군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들의 정보 수집 능력은 가히 궤멸적이라고 봐도 무방.
"선배님, 그나저나 잘 들어보십시오. 분명히 이 모녀의 실종이 마교와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니까요?"
"이 넓은 중원 땅에 어디 그런 이름의 여인이 한 둘이냐."
"아 글쎄, 제 직감을 좀 믿어주십시오. 제 추리 덕분에 추소광이 추소광이 아니었던 걸 밝혀냈잖습니까? 팽가의 아가씨께서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추소표국의 비고를 조사하는데 협조해주셨고요."
"떽. 팽가에서 들으면 당장 네 목을 날리러 올 소리. 허튼소리 하지 마라. 그건 너와 나, 그리고 팽가 아가씨만 아는 일이다. 괜히 누가 들었다가는 크게 경을 칠 것이야."
"허, 선배. 누가 저를 해한단 말입니까?"
미공자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삿갓 아래의 얼굴을 본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신창께서 저를 보호해주시는데."
마교 졸개 시절, 내 첫 암살대상이 으스대고 있었다.
사공희와 진사월에 관한 용모파기를 든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