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20화 (20/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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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

"빨리 움직여라! 머뭇거릴 시간 없어!"

무당산 안의 무사들은 난리가 났다. 천화에 걸린 전염병 환자들을 가둔 감옥의 벽이 무너진 것도 난리였고, 그 틈을 타서 격리된 환자들이 마구잡이로 뛰쳐나간 것도 난리였다.

"대사형!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멀쩡한 감옥의 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습니다!"

"필히 누군가가 수작을 부린 겁니다!"

"젠장, 그걸 생각할 시간에 움직이란 말이야! 무당산 아래로 환자가 내려가면 전부 다 끝장이다!"

무당의 제자들은 갑론을박하며 시간을 지체했다. 전염병을 가진 환자들을 당장이라도 쫓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들을 쫓는 게 의미가 없다며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너, 너, 너! 당장 북쪽으로 다녀와! 가서 도망친 환자들을 쫓아!"

"히익?! 시, 싫습니다! 아무리 대사형이라도 그건 너무하십니다! 그들은 진짜 천화에 걸린 환자들이 아닙니까! 대사형이 가십시오!"

"이 자식이?!"

"병들어 죽고 싶지 않습니다! 이곳에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지경인데, 천화에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무인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무사들은 무공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전염병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리고 속가제자들과 항렬이 낮은 제자들을 다독이기에는 무당의 대제자 또한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젠장, 이럴 때 장로님은 어디에...!"

장문인을 비롯한 무당파의 장로들은 현재 산 아래에 격리되어있다.

산 아래에서 행사를 마치고 문파에 돌아가려던 찰나에 전염병이 터져버렸고, 결국 산 위에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장로 한 명 만이 남아 문파를 지휘하고 있었다.

"현타도사님, 도대체 어디에...!"

"대사형, 큰일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장로님께서 습격을 당하셨습니다! 숲속에 기절하신 것을 사제들이 발견했습니다!"

"뭣이?!"

무사들은 모두 혼란에 빠졌다.

무당파 내부에서도 제법 강한 무위를 자랑하는 현타도사가 이런 시기에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

잠시 굳은 얼굴로 산책하러 다녀오겠다며 나선 현타도사는 싸늘한 주검이 될 뻔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주변에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분명 싸우시다가...."

"이런 미친. 누가 감히 장로님을 해한단 말이더냐!"

"크흡. 심지어 얼굴 위에 하얀 천을 덮어 놓았다고...! 조금만 발견이 늦었으면 아마...!"

"......!!"

무사들은 소름이 돋았다. 무당의 장로를 상대로 기습을 펼쳐 쓰러뜨릴 만한 막강한 무공의 주인이 무당산에 있고, 무당산에는 현재 현타도사보다 더 강한 무인은 없었다.

"서, 설마 우리 문파의 비급을...?!"

"그, 그럴 리가 없다! 정신 차려! 지, 지금은 천화에 걸린 환자들을 쫓을 때다! 공사를 혼동하지 마!"

기껏해야 무림 초졸에 불과한 햇병아리들이 모인 무사들은 판단의 근거가 몹시 불안했다.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무당의 모든 비급이 송두리째 사라지게 된다면, 사부와 사조, 그리고 전 무당인들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치였다.

도망친 환자들을 쫓을 것인가.

목숨을 걸고 문파를 지킬 것인가.

"대사형!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큰일! 여기서 더 큰 일이 어디 있다고?!"

"도망친 환자들을 쫓으러 갔던 제자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주변에는 마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

"서, 설마 비급을 노린 마교의 수작?!"

무사들의 선택은 봉문이었다.

* * *

"이보시게! 지금 산 위의 기가 심상치 않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란 말일세!!"

"자, 장로님들. 진정하시옵소서. 성주께서 금방 답을 주실 겁니다."

무당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고성과 아우성이 섞여 혼란이 가득했다. 백발이 성성한 도복의 도사, 무당의 장로들은 관복 사내를 둘러싸 무언으로 압박했다.

"답을 가지러 간 지 벌써 일다경이 지났네!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인가?!"

"저, 저희는 일반 관졸일 뿐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무턱대고 올라가려는 무당파의 사람들과 그들의 폭주를 막으려는 관졸들의 시비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대로가 훤히 보이는 객잔 3층, 검은 죽립의 청년은 차를 홀짝이며 조용히 소란을 구경하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공자님."

청년의 맞은편에는 무복 차림의 미녀가 붉은 입술을 씩 들어 올리고 있었다. 청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난간에 팔을 걸쳤다.

"뭘 대단하기까지야. 이 정도면 어린아이도 생각해낼 방법 아닌가?"

"그걸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게 대단하시단 겁니다."

"내가 뭐한 게 있겠는가? 그냥 다 죽어가던 무사 하나, 좋은 곳으로 보내줬을 뿐이지."

"무당산으로. 말이죠. 후후."

눈썹을 으쓱인 청년은 젓가락을 들어 끝에 간장을 살짝 묻혔다.

그리고는 그릇 한가득 쌓인 만두의 겉을 살짝 찢어, 젓가락에 남은 간장을 쓱쓱 문질렀다. 만두소 안에는 간장의 향이 짙게 배어들었다. 청년은 장난스레 만두를 집어 들며 비릿하게 웃었다.

"마지막까지 교를 위해 충성을 다한 화천마검을 위하여."

"후후.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지? 흐흐, 누가 예상이나할까. ...꽃을 사람이 퍼뜨릴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그렇죠."

여인은 목소리를 죽였다. 주변의 그 누구 하나 듣지 못하게, 맞은 편의 청년만 들을 수 있도록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읊었다.

"하필이면 천화에 걸린 무인 하나가 무당파의 무인에게 복수하러 갔다가 전염병이 퍼지다니.... 아아, 이런 비극이 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러게. 흐흐, 동생 년. 지금쯤 억울해 돌아가시겠지?"

청년은 만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낄낄 웃었다.

"기껏 자기 부하를 위해 준비한 천환단이 부하의 관리 소홀로 팽가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했잖느냐? 참으로 인복이 없는 년이로다."

"그래도 아직 아가씨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청년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금방 표정을 바꾸며 술잔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 내 대계가 성공하면 아버님도 나를 달리 보시겠지? 건배."

"후후. 부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걱정마라. 이상한 변수만 없으면 내 대계는 완벽하니까."

두 남녀는 무당파 장로들이 관졸들에게 발이 꽁꽁 묶인 것을 안주 삼아 술잔을 비웠다.

* * *

- 뭐? 제갈소소와 제갈유를 함께 잡았다고? ...모녀덮밥 개꿀.

모녀를 함께 취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라고 혈교주는 말했다.

한 세대와 두 세대의 여인을 동시에 취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좋다는지 나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고, 혈교주는 나를 세워두고 자신의 의견을 열심히 설파했다.

- 아니 들어봐. 당고종께서도 황후의 언니와 그자의 딸을 후궁으로 들였어! 자매를 동시에 취한 것도 모자라서 모녀를 동시에 취했다고! 그게 어떻게 안 꼴릴 수 있지?

이해할 수 없는 구결이 있다면 다른 것을 대입해서 생각해보라. 나는 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준 스승의 말을 떠올려 혈교주의 미친 사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나를 상대하여 싸웠으나, 둘 다 나에게 패배를 하고 죽었다.

그렇게 이해한 순간, 나는 모녀를 동시에 취하는 패륜이 어떤 이들에게는 짜릿함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혈교주에게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고 공감의 말을 전하지는 못했으나, 나는 모녀를 동시에 취한다는 것 자체를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패륜적인 성행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구나.

그리고 나는 그 패륜을 저지를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비명을 지르는 곳 근처까지 날아왔다.

처음에는 사공희를 내 노예로 완벽하게 다스리기 위한 화간 성립의 계기로 생각했으나, 만약 사공희의 모친이 사공희만큼 너무나도 아름다운 존재라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큰 기대를 안고 사공희의 둔부를 주무르며 달려왔건만.

"저 마인이 네 어머니인가?"

"어, 엄마...?"

나의 눈앞에는 무당의 무사 둘의 사지를 찢고 짐승처럼 시체를 파먹는 괴물이 눈앞에 보였다.

온몸이 붉게 일어난 데다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은 영락없는 괴물이었다. 눈에서 자색의 안광이 튀어나오는 것에 나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딸을 가져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했다가는 내 목이 달아나게 생겼군."

"어, 어떻게, 어째서 저런 모습이...?!"

"뭘 그렇게 놀라느냐. 마교의 마공으로 마인이 된 자가 천화에 걸려 폭주하고 있다. 쯧, 설상가상이로군."

마공을 쓰는 여인이 폭혈대법을 사용해 잠력을 터뜨려 기혈이 뒤틀린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거기에 한쪽 팔을 뒤덮는 천화의 발진이 넘실거리고 있으니, 강시보다 더한 식인귀의 모습과도 같았다.

캬아아악!!

마인은 손톱을 휘두르며 무당의 무사들 몸을 할퀴었다. 손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은 거로 보아 조법을 익힌 여인 같았다. 태극검후의 무골이 어디서 나왔나 싶었더니, 모친이 무림인인 듯 보였다.

"어머니, 어찌...?!"

정작 본인은 모르지만. 여기서 터 파고들어 갔다가는 귀찮은 가정의 비극에 휘말릴 것 같아, 나는 마인이 우리를 눈치채기 전에 그림자 속에 숨었다.

"내버려 두면 두 시진 안에 알아서 자멸할 것이다. 굳이 힘겹게 손을 쓸 이유는 없지."

무당의 무사들에게 쫓긴 사공희의 모친이 마혈을 폭주 시켜 무사들을 죽였다가 마기에 잠식된 것 같았지만, 나는 사공희에게서 화간의 허락을 받을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울 뿐이었다.

"혹시 아버님 계신가? 어머님이 저 모양이니, 아버님께 허락이라도 받으려고 하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죠?!"

"효율적인 선택을 내리자 이거지. 그래서 아버지는 계시냐?"

"...감옥이 폭발해서 같이 도망쳤어요. 각자 도망쳤고요."

사공희는, 이상하리만큼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혹시 아버지가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간 건 아닐까?

"그래? 그럼 아내가 마공을 익힌 자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물어봐야겠군."

겸사겸사 사공희를 내가 가져가겠다고 통보도 좀 하고. 나는 몸을 돌려 사공희의 부친이라는 자를 찾으려고 했으나, 사공희가 내 귀에 대고 빽빽 소리를 질러대느라 몸을 돌릴 수 없었다.

"잠깐만요! 기다리세요!"

"어디서 명령질이야, 짜증나게.... 하, 이쁘니까 한 번 봐줬다. 왜?"

"어머니가 산에서 내려가려고 하세요!!"

무인들을 찢어버린 마인은 슬금슬금 산의 아래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지를 상실한 그녀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점점 내려가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민가를 덮칠 거예요!"

"그래. 일류급 마귀가 민가를 덮칠 테지. 민가에 가기도 전에 곧 무당의 도사들이 나서서 마귀를 물리칠 테고. 나는 그사이에 너를 취하기나 하련다. 아버님이 혹시 어떻게 생기셨느냐?"

"도대체 당신이라는 사람은...! 아무리 색마라도 그렇지!!"

"왜? 그러면 네 어미를 죽이기라도 하랴? 너는 지금 마인이 되어 살겁을 일으킬 네 어미를 네 입으로 죽여달라고 청하려는 것이냐?"

사공희는 침묵했다. 차마 대답은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결연한 눈빛을 읽었다.

"내가 진정으로 마인을 처치하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니에요,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구한다?"

"...천화는 몰라도, 어째서 마인이 된 건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천화를 퍼뜨리는 역귀가 되셨다면...."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사공희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사공희의 선택에 나는 속이 다소 뒤틀렸지만, 마인은 분명 위험한 존재였다.

"확실히 그렇군. 마기를 주변에 퍼뜨리다니."

"네?"

"봐라. 네 어미가 죽인 무당의 무사들을."

푸화아악.

무당 무사들의 몸에서 피분수가 치솟았다. 그들의 몸은 정체불명의 발진이 돋아나 있었다.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한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솟아 오를 만큼 망가져 있었다.

"역귀가 되었군. 살아서 움직이기만 하면 천화를 퍼뜨리는 강시가 되겠어."

"힉...!"

나는 손을 앞으로 뻗어 나의 기운을 뿜어냈다.

"천하의 미녀들이 천화에 피부가 뒤집어지는 건 중원 전체의 손해다."

양기를 뿜어내 불꽃을 일으키는 잡기에 불과했지만, 세간에는 삼매진화라고 널리 알려진 기술과 상당히 비슷했다.

내 손가락에서 피어오른 하얀 불꽃은 역귀가 되어가던 무당의 무사들을 순식간에 숯검정으로 만들어버렸다.

"쯧. 내 이번 한 번만 무림의 평화를 위해 움직이겠다."

"세, 세상에."

지금까지 사공희가 내뱉은 말과는 달리, 이번에는 내 무공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이런 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인이나 탐하고 다닌다니...."

그리고 감탄은 한순간에 나에 대한 매도로 전락했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는 거로 입을 다물게 했다.

"어허. 여인이나 탐하고 다닌다니. 말을 삼가거라."

나는 마인이 내려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천하절색 미녀들만 탐하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미친...."

천하절색미녀라고 칭찬을 했는데 욕을 먹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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