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19화 (1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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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으로

사공희가 도망친다.

진짜 사공희인지 닮은 기를 가진 여인인지 다소 애매하기는 하지만, 나의 혈기를 끓게 만드는 향기는 분명 여자의 것이다.

음적.

사공희는 나를 두고 음적이라고 부르며 도망쳤다. 도대체 나의 어디가 음적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진짜로 궁금한데?’

똑같은 오해를 받았지만, 굳이 궁금증을 해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일이 있고, 궁금함에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면 밤잠을 설칠 법한 일이 있다. 마공이 들킨 것은 전자고, 나의 음심이 들킨 건 후자다.

‘이게 여자의 감이라는 건가?’

자신에게 닥칠 위기를 직감하고 도망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 모습에서 약간의 단서라도 있었다면, 다른 여인들과 마주칠 때를 대비하여 조치가 필요했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사공희는 제법 먼 거리를 도망쳤다. 흙바닥과 나뭇가지가 한가득 쌓인 곳을 맨발로 밟으며 도망치고 있었고, 사공희의 발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여인의 맨발을 다치게 할 수 없지!!”

나는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사공희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내 접근을 눈치챈 사공희는 기겁을 하며 자빠졌고, 나는 사공희의 위에 올라타 두 손목을 붙잡았다.

“아아악!”

바닥에 엎어진 사공희의 머리칼에 얼굴이 가렸다.

나는 사공희의 배 위에 걸터앉아 두 팔을 사공희의 머리 위로 올려 한 손으로 붙잡았다. 남은 손으로는 사공희의 턱을 붙잡아 머리칼을 옆으로 치웠다.

“어디 얼굴 좀 보자. 응…?”

사공희의 얼굴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무슨 말이나 하니, 반은 매끄러운 피부에 반은 화상으로 얼룩진 흉터가 진득했다.

그리고 흉터와 피부의 경계는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사공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거칠게 뜯긴 피부를 손으로 잡았다. 겉에 끈적한 고름 같은 것이 손에 잡혔지만, 이질적인 느낌에 나는 뜯긴 피부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인피면구?”

곰보 피부 아래에는 잡티 하나 없는 매끄러운 백옥 피부가 숨겨져 있었다.

이 미모를 고스란히 가지고 검후가 되었다면 검뿐만이 아니라 미모로도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래에는 인피면구 같은 게 아니었는데?’

사공희의 병든 피부는 인피면구가 아니라 진짜 병든 흔적이었다. 나는 기이함에 혼이 나갈 것 같았고, 괜히 내가 덮친 이 미녀가 사공희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까지 들었다.

‘아무리 과거라고 한들 이렇게 다르나?’

솔직히 말하건대 사공희가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다. 오뚝한 콧날과 큼직한 눈망울은 아기사슴 같았고, 도망치면서 붉게 상기된 얼굴은 평생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공희면 바로 먹고, 사공희 아니어도 먹는다.’

나는 그녀의 여린 눈매에서 태극검후 사공희의 흔적을 찾았다. 사공희의 생채기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냄새로 보면 본인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공희는 이런 깨끗한 피부가 아니었다.

할짝.

나는 사공희의 목덜미를 혀로 핥았다. 알싸한 혈향에 나는 흠칫 놀라 바로 혀에 나의 양기를 불어넣었다.

“으엑. 조질 뻔했다.”

하마터면 나 또한 천화가 몸에 피어오를 뻔했다. 나는 손을 아래로 뻗어 사공희의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

스르륵.

나는 사공희의 옷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흉부를 가린 옷감 부위를 손아귀 힘으로 찢자, 어깨부근부터 오돌토돌 튀어 오른 고름의 흔적이 보였다.

“윽…!”

사공희는 눈을 질근 감았다가 나를 올려다봤다. 여인으로서 가슴이 드러났다는 수치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는 나를 향해 간절히 부탁하는 눈빛으로 산 아래를 가리켰다.

“제, 제발 나쁜 마음을 먹지 말아주세요. 제발, 제발 이성을 되찾아주세요...!"

"나쁜 마음?'

"저, 저를 범하시려고, 흐끅…!"

사공희는 겨울밤의 설원처럼 소복이 쌓인 언덕을 눈으로 가리켰다.

아담한 가슴 위에는 나의 손이 살포시 올려져 있었다. 천화 때문에 잠시 생각이 멈춘 사이, 손은 사공희의 가슴 위를 점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사공희를 범하려는 음적처럼 보였다.

"......갈!!"

나는 호통을 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가 너를 범하려는 자로 보이느냐?!"

"네!”

"어째서냐?!"

"그야 당연히...."

사공희는 고개를 숙여 나와 그녀가 맞닿은 부분을 눈으로 가리켰다.

굳이 말해 뭐하냐는 듯한 눈빛에 나는 괜히 뜨끔했지만, 아무리 나라도 현재의 사공희를 상대로 냅다 음양합일을 이룰 생각은 없었다.

"말할...필요가 있나요? 흐끅."

"다르다. 네가 천화에 걸린 주제에 도망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천...화...?"

사공희의 눈빛에는 다른 의미로 공포가 내려앉았다. 치사율이 최소 3할은 넘는 병에 걸렸다는 말에 사공희는 착란을 일으키며 제 얼굴 옆에 떨어진 인피면구를 가리켰다.

"아, 아녜요! 이건 제 얼굴을 가리려고 부모님께서...!"

"얼굴을 왜?"

"제 얼굴을 보면, 흐끅, 남자들이 음심을 품는다고...!"

"그건 인정한다."

속세에 내려온 선녀의 얼굴을 보고 그 누가 품고자 하는 의지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사공희의 단편적인 말과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정보들을 조합해 어떤 가설을 이끌어냈다.

'제갈무후의 아내 황 씨는 진흙으로 얼굴을 숨겼다는 속설이 있지.'

오랜 야사에서도 나오듯이, 미모를 감추기 위해 얼굴 위에 무언가를 꾸미는 건 무림에서 흔한 일이다.

팽유월이 마차를 타고 내려올 때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듯이, 강호의 여인들 중 몇몇은 아름다운 얼굴로 인해 일어나는 불상사에 대비하고자 수염을 붙인다거나 하여 모습을 숨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도 고름 같은 게 찐득하게 묻은 인피면구는 조금.'

노란 돼지비계를 그럴듯하게 묻혀놓은 인피면구는 실제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정교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말로 할 수 없는 역겨움을 자아내는 피부가 얼굴 전체에 드리웠다면, 분명 사람들은 그 아래에 가려진 미모를 눈치채기도 전에 흉측함에 눈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렇게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어째서 미래에는 가짜 인피면구가 진짜 피부가 되었는가. 그 답은 어깨에 서린 천화의 기운에 있었다.

'무당산에 왔다가 천화가 옮았군.'

피고름으로 숨기려고 했던 미모는 평생 빛을 볼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천화에 걸리고도 살아남은 생명력은 분명 대단했으나, 태극검후는 평생 여인이 아닌 무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이런 비극을 용납할 수 없지.'

월궁항아의 미모가 고름 속에 파묻히게 만드는 것은 중원, 아니 전 인류의 손실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저기, 뭘...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겨서 그런 건지, 사공희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치를 슬쩍 보기 시작했다. 범하려던 자세에서 가만히 멈춰있었으니, 사공희도 뭔가 생각을 달리하는 듯했다.

"저, 저를 범하려는 게...혹시...아닌 건가요?"

"아니? 범하려는 게 맞는데?"

"......흑!"

나는 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사공희는 눈물을 주룩 흘리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 훌쩍, 말씀이 다 맞아...! 남자는 전부 짐승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악적, 역병이 도는 곳에서 어찌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할 수 있나요!"

"기상이 대단하군. 다른 여인들 같았으면 계속 울거나 저주를 퍼부을 텐데. 허나 무의미하다. 내게 인륜을 바라지마라. 이미 너를 본 순간, 나는 금수가 되기로 정했으니."

"미친...당신은 미쳤어!"

"흐흐. 그 위세가 언제까지 계속 갈까?"

나는 사공희의 가슴을 움켜쥔 손을 그녀의 어깨 쪽으로 슬며시 움직였다.

"내가 너보고 천화에 걸렸다고 했지. 그게 인피면구를 두고 말한 줄 아느냐?"

"무슨...?"

"너, 천화 걸렸다. 지금 여기 따끔거리지 않냐?"

나는 피부가 붉게 돋아난 곳을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사공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 그건 나뭇가지에 긁힌 상처로...."

"아니. 천화다. 이게 천화가 아니면 나는 내 옷을 벗어 네게 건네주고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마."

"그, 그런! 내, 내가 천화에 걸리다니...!"

사공희는 혼란에 빠졌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흘러내리는 게 멈출 줄을 몰랐다.

"뭐가 영험한 산이야...! 흐끅, 전염병이나 돌고...!"

"전염병이 어디 때와 장소를 가리더냐?"

"흐끅, 흐으윽...! 내가 천화에.... ...아!"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소리를 지른 사공희는 의기양양한 미소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후훗, 내가 천화에 걸렸다고요? 거짓말! 천화에 걸린 여인을 범하려는 미친놈이 어디에...있...."

싱긋. 나는 사공희가 한 마디 끝맺을 때마다 손가락을 아래로 움직였다.

"그 미친놈이 여기 있네?"

"저, 정상이 아니야...! 천화가 옮는다고요! 아무리 미쳐도 그렇지!"

"아, 나 천화에 면역이니까 괜찮다."

"예...?"

"만독불침 모르냐? 천화도 결국 독의 일종이니라. 내게는 독이 통하지 않아."

내 몸 안의 양기가 독이 발현되기도 전에 몸속에서 태워버린다. 혈교 교주가 말하던 '균'이라는 건 내 몸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사멸하게 된다.

"당장 네 핏속에 흐르는 기운도, 발진이 일어난 네 피부를 만진 이 손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말씀이야. 내기해보겠느냐? 내가 너와 남녀상열지사를 벌이고도 병에 옮는지 옮지 않는지."

"앗, 아아...."

사공희는 진심으로 절망하고 좌절했다. 본래 미친놈들을 상대로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사공희는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

"흐흐흐, 이제 슬슬-"

"살려...주세요...흐끅."

"응?"

사공희는 눈물로 내게 애원했다. 움켜쥔 가슴에서 심장박동이 빠르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사공희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서럽게 울며 내게 애원했다.

"제발, 범하셔도 좋으니까, 흐끅, 제발 살려주셔요.... 죽고 싶지 않아요...."

"아니, 천화에 걸려도 꼭 죽는 건 아닌데...."

"죽는다고요! 여기 산에 있는 감옥에 갇혀있을 때, 흐끅, 다 봤어요! 천화에 걸린 사람들 다 죽었다고요!"

"갇혀?"

감옥에 갇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곧 코가 근질거렸다.

사건의 냄새가 난다.

자연발생한 천화가 아닌,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가 느껴진다. 내가 현타도사를 만나기 전에 스쳐 지나간 남자의 행색부터 시작하여, 무당산에 뭔가 사이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끙. 이것 참. 좋다. 그럼 이렇게 하지."

고오오.

나는 사공희의 하단전에 손을 올려 나의 내기를 불어넣었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따스한 양기에 사공희의 숨은 서서히 안정되었다.

"나는 노예가 하나 필요하다. 너, 내 노예가 되어라."

"노...예...?"

"노비와는 다르지. 나를 평생 섬기고 수발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살려주지."

"이...이...!"

사공희의 눈에 적개심이 순간 스쳤다. 인간의 존엄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인륜을 개나 줘버린 내 거래 제안에 사공희는 눈알을 굴리며 거래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아."

"저, 저는...."

꺄아아악----!!

멀리서 다른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혹시나 이쪽을 보고 비명을 질렀나 싶었지만, 이곳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어머니!!"

사공희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를 향해 올곧은 시선으로, 울분을 꾹 참고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시고, 천화가 걸린 것도 치료해 주신다면 노예가 될게요...!"

"내가 엄청 손해 보는 기분인데. 좋다, 흐흐. 그렇다면 계약을 위해 도장을 찍어야지."

스륵. 나는 사공희의 얼굴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위치까지 가까워진 나는 눈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일단 윗입부터 가져가마."

"이, 이...."

"스스로 해라. 내가 열을 셀 동안 하지 않으면-"

콰득.

사공희는 고개를 들어 내 입을 깨물었다. 입술 도장을 찍으랬더니 입술을 깨물었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흐흐, 계약은 성립됐다. 축하한다, 사공희. 너는 이제 나의 노예다."

비릿한 피 맛에 나는 입술 전체를 피로 물들인 뒤, 사공희의 볼에 피로 젖은 입술 자국을 남겼다.

"입술을 깨물어 천화를 옮기려고 한 듯한데,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흐흐, 앙탈은."

"...어머님이나, 빨리...!"

"알았다, 알았어."

나는 사공희를 점혈한 뒤 등 뒤에 업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의 둔부를 아래에서 양손으로 받쳤다.

"가슴은 아직 작은데 엉덩이는 그래도 탐스럽군. 애는 잘 낳게 생겼어."

"이...색마...."

"크흐흐. 색마에게 걸린 네 운명이다. 네 말대로라면 너는 어차피 천화에 걸려 죽은 운명 아니더냐? 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얻은 게지."

인생의 제1막은 내가 찢어버리고, 제2막은 나의 노예로 화려하게 다시 피어오를 것이다.

"아랫입으로는 무슨 말을 할지 기대되는군."

"이...."

자신을 범할 예정인 색마에게 자신과 부모의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여인의 마음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사공희 어미라면 분명한 미모 하겠지?'

거기에 모친까지 노리고 있다는 걸 알면, 과연 그녀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누구처럼 모친을 팔았다는 충격에 자진하려고 할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모친을 팔아 자신의 정조를 지키려는 패륜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모친을 취하려고 할 때, 분명 사공희라면 그리 할테지.'

- 제가 스스로 할테니, 어머니는 가만 두세요!

화간 성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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