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천색마-7화 (7/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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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

"그래도 자기 목숨 아까운 줄 아네."

나는 표국의 비밀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와 천환단을 챙겼다.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하는 신의의 약을 어떻게 추소광이 소국주로 있는 표국에서 구한 건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주인은 이제부터 나다.

'이건 나중에 중요할 때 써야지.'

떨어져 나간 팔도 일각 안에 천환단을 먹고 붙이면 다시 달라붙는다고 할 정도로 무서운 영약이다.

내공을 늘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파괴된 단전도 다시 되살릴 수 있다고 하는 궁극의 회복약이었다.

'천환단이 사라졌으니 난리가 나겠지?'

하북팽가를 협박하여 혼인까지 성사시킨 계기가 바로 천환단이다. 하북팽가와 세력을 하나로 합칠 기회와 자신의 목숨 사이에서 추소광은 제 생명을 선택했다.

'팽가의 분노를 살 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추소표국은 내 기억에 딱히 이름있는 표국이 아니었다. 설령 내가 천환단을 훔친 것으로 내가 아는 미래가 뒤틀린다고 한들, 나는 딱히 상관없었다.

설령 이 천환단으로 인해 정마대전이 더 빠르게 발발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더 많은 여자뿐. 세계가 망하더라도 나는 한 명의 여인을 취하겠-

"아, 아니네. 내가 알던 년들이 다 뒤지면 어떻게 하지?"

정마대전이 앞당겨진다면 그에 따라 죽어 나가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게 될 터. 당연히 미래는 확정된 것이 아니니, 살아야 할 사람도 죽게 될 수 있다.

'그냥 버려야 하나?'

손이 닿지 않는 포도는 신맛이 날 거로 생각하며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죽어 나가는 이들을 내가 중원 전역을 누비며 살려서 키우고 잡아먹기에는 너무 귀찮다. 정 먹고 싶다면-

"어서 옵쇼!"

나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객잔에 들어갔다.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점소이는 내가 꺼낸 은자 한 냥에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무엇을 드시렵니까?!"

"소면으로."

"예.... 소면 하나...."

"닭 한 마리 푸짐하게 넣어서. 가능한가?"

"얼마든지 가능합죠!"

점소이는 빛처럼 주방으로 사라졌다. 은자 한 냥의 위력은 어린놈이 싹수없이 반말을 지껄이는 것조차 웃어넘기게 만들었다. 나는 물잔에 비친 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나름 귀공자인 척하고 다닐만한 정도는 되나?'

평생을 거지꼴로 살아온 만큼 망가지기 전에 대한 외모를 평가하기 쉽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의 시선에 혐오와 공포가 담겨있지 않은 것이 어색할 따름이었다.

"끄응."

나는 천환단을 꺼내 탁자 위에서 빙글빙글 굴렸다. 검지로 여인의 꼭지를 간질이듯, 살랑살랑 천환단을 누르고 굴리며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구했어.'

사실 한 번에 천환단을 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최소한 두세 번은 헛걸음을 할 거라고 작정하고 좋게 속아 넘어가 주려고 했건만, 추소광은 내 예상을 기분 좋게 깨고 진짜 천환단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일반 단약과 모습은 비슷하지만 단약 안에 있는 미미한 기운에 나는 진품임을 직감했다. 제조자인 신의의 기력이 담긴 단환이 어찌 천환단이 아닐 수 있으랴.

'죽여서 기강을 다잡은 다음 천환단으로 살려서 몸종으로 데리고 다녀? 말도 안 되지. 그건 천환단이 아까워.'

미래에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미녀들을 어떻게 탐하면 좋을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천환단의 겉에 먼지가 묻든 말든, 나는 나의 사색을 위해 마음껏 천환단을 굴렸다.

"기다리셨습니다!!"

"다 됐는가?"

"네! 여기있습니다. 그...."

점소이는 그릇을 내려놓으며 멎쩍게 웃었다. 그릇 안에는 닭 한 마리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잘 익어있었으나, 그 크기가 그릇 안에 다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작았다.

"이보시오?"

"그,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무사님들이 다녀가는 바람에 영계 하나 남았습니다."

"영계? 지금 나보고 장난하는 거요? 속이 꽉찬 걸 가져와도 모자랄 판에, 다 자라지도 않은 영계...를...."

짝.

나는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어!"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풋사과도 사과인 것을.

"그대가 내게 혜안을 주는구려. 고맙소."

"네? 아, 예. 소협에게 도움이 되었다면야."

"여기, 그대의 가르침에 대한 값이요."

"힉."

점소이는 자신의 손에 올려진 은자 세 냥에 흰소리를 내며 숨을 참았다. 슬쩍 밖으로 나온 주방장의 눈치를 보던 점소이는 주섬주섬 자신의 주머니 속에 은자를 집어넣었다.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점소이는 미소와 함께 조심스레 걸었다. 나는 주방에서 뛰쳐나온 주방장이 점소이의 귀를 잡고 주방 안으로 잡아당기는 것을 보며, 푹 익은 영계의 두 다리를 손으로 잡고 벌렸다.

"가능."

병아리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나는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식사에 전념했다.

* * *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팽유월은 함께 점심을 먹자는 추소광의 제안에 거절하지 못하고 나왔다가 흠칫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핼쑥해진 추소광은 얼굴에 핏기가 가셔있었고, 미약한 불안과 조급증을 보였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

팽유월은 추소광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일부러 과장되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움직임의 어딘가가 부자연스러운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 듯한데요."

"...크흠. 그, 그게."

추소광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죄송합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네?"

무릎을 꿇을 기세로 사과하는 추소광의 행태에, 팽유월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지?

"어제 제가 너무 과음하여 못 볼 꼴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부인, 부디 제 실수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직은 부인이 아닙니다."

"크흠. 예, 아직, 아직...?"

추소광은 팽유월의 단어 선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가심으로 차를 홀짝인 팽유월은 차가운 얼굴로 정자의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밤에 저도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어쨌든 부부의 연을 맺을 사이. 부군이 될 사람에게 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예? ...아, 크흠. 그렇지! 그렇소. 내 사과를 받아들이리다."

이 얼마나 알기 쉬운 남자란 말인가. 팽유월이 저자세로 나오자마자 바로 의기양양해서 말을 편하게 하며 어깨에 힘을 주는-

"큭."

"......어깨를 다치셨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부자연스러움의 원인이 보였다. 어딘가 엉거주춤한 자세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어깨에 칼침을 맞은 이들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자객?"

"그, 그럴 리가요! 그런 자가 들었을 리가 없잖습니까!"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렇게 격하게 반응을?"

"크흠! 그런 거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하는 추소광의 행동은 명백히 이상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더 괴상해지는 추소광의 행동에 팽유월은 의심이 더욱더 깊어졌다.

이 남자, 지금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당당하던 남자가 자신의 눈치를 볼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있긴 있지.'

자신을 똑 닮은 기녀에게 옷까지 비슷하게 입혀 취하려 했다.

울분에 검무를 추다가 방안에 홀로 틀어박혀 속으로 눈물을 삼킨 걸 생각하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정도였으나, 결국 이 남자가 자신이 평생을 함께할 남자라는 현실에 그녀는 모든 걸 받아들였다.

'천환단만 아니었어도.'

가주이자 백부인 팽가 제일의 무인, <악참도> 팽이왕을 다시 일으켜 세울 유일한 단약만 아니었어도 혼사는 이루어질 수조차 없었다.

구파일방, 팔대세가 사이에서도 순위를 다투어야 할 참에, 무가도 아닌 평범한 표국이 팽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천환단을 이용한 협박 때문이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주가 위험한데 혼사를 거부한다고?

- 일단 가주부터 살리고 봐야지!

- 유월아.... 형님을 위해 네가 애써 다오. 부탁하마.

"쯧."

팽유월은 혀를 차며 잡념을 지워버렸다. 하인들이 내어오는 식사는 기름지기는 해도 제법 먹을 만 했고, 후식으로 나온 용정차도 가문에서 마셨던 것 못지않게 깔끔했다.

"하, 쓰읍, 크으...."

눈앞의 남자가 남편이 될 사람이라는 현실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최소한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갔을 것이다. 아니면 외형은 이렇더라도 어제 봤던 일류 무사급의 무공을 갖추고 있다면 모를까.

'그놈도 다 거기서 거기긴 하지.'

팽유월은 추소광의 아부를 적당히 흘리며 차로 속을 달래던 순간, 하인 하나가 급히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도련님! 급한 일입니다!"

"급한 일이 아니면 너는 죽을 줄 알아라."

추소광은 하인을 가까이 불러 고개를 돌렸다. 하인은 팽유월의 눈치를 보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저잣거리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뭐? 무슨 소문? 내가 그...어제 그거?"

개미처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지만 팽유월의 귀에는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아뇨. 그것 말고...천환단 말입니다."

"......!"

내색하지 않고. 팽유월은 자연스러운 손길로 차를 홀짝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하인은 그런 팽유월의 집중을 눈치채지 못한 듯, 마저 추소광의 귀에 속삭였다.

"저잣거리 약방에 천환단을 구했다는 소문이-"

쾅!!

정자에 여인의 발자국 하나가 크게 찍혔다.

* * *

"주인장, 그게 사실이오?! 천환단이 들어왔다는 게!"

"아직 모르지.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내가 어찌 알아."

약방의 노인은 약재함에서 사람들을 물리며 손으로 내쫓았다.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금줄을 치고 유리함 안에 넣지 않았다면, 분명 누구 하나는 검은 손을 뻗었을 게 분명했다.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하셨대?!"

"알면 다쳐. 근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놈이 진짜 고수인지, 이게 진짜 신의가 만든 천환단인지. 자네들이 보기에는 이게 진짜인 것 같은가?"

"비켜주세요."

뒤에서 옥구슬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좌우로 거리를 벌렸고, 가운데 트인 길로 아름다운 여인이 금줄 앞에 섰다.

"주인장, 이것이 정말 천환단입니까?"

"어...뉘신지...?"

"하북팽가의 팽유월이라고 합니다."

팽유월은 포권까지 갖추며 예를 표했다. 갑자기 아름다운 무림인의 인사를 받자, 노인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라 하며 팽유월의 눈치를 봤다.

"어, 그, 팽가의 여식께서도 구경하러 오신 건지요...?"

"저는 이것을 사러 왔습니다."

당찬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건의 주인인 약방 주인 또한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오. 내 의술이 미진하여, 신의께서 만드신 건지 알 방법이 없지."

"복용하고 효과가 있다면 천환단이 맞는 거겠죠. 그래서 얼마입니까?"

"아니, 글쎄, 내가 아무리 그래도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는 걸 멋대로 팔기에는 곤란하다니까...."

"비, 비켜!"

뒤에서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한 남자가 급히 뛰어왔다. 추소표국의 소국주인 추소광은 금줄조차 무시하고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자, 잠시만! 소국주님!"

"천환단! ...왜 일곱 개지?"

유리함 안에 있는 천환단은 전부 일곱 개였다. 모두 똑같은 형태로 금박이 씌워진 단환은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는 것만 같았다.

"크흠. 미안하오. 진짜 천환단인 줄 알고 깜짝 놀랐군."

추소광은 어깨를 문지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천환단의 주인이 하는 말에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로 하나둘 약방을 떠났다.

"저, 정말 가짜입니까?"

"그러면 저게 진짜겠소? 신의는 만백성을 위해 약을 만드시는 분. 누가 봐도 값을 후려치기 위해 금박을 씌워놓는 짓은 하지 않소. 흥!"

추소광은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낯빛이 어두워진 팽유월은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크흠, 그. 실은 말이오. 나도 저 양반 딱히 마음에 안 들거든. 맨날 약값을 후려치고 말이야."

약방 노인은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게, 헛기침하며 팽유월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의님이 만든 건 아니지만, 이건 분명 천환단이오."

"예...?"

"저기."

약방 노인은 제조실 안쪽을 가리켰다. 팽유월은 홀린 듯이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음? 뉘시오?"

사람 한 명 앉을 법한 작은 공간. 좌식 책상 위에 약재와 제조기구를 마구잡이로 흩뿌려 놓은 청년은 팽유월을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예쁘다...."

"......그, 혹시."

팽유월은 들끓는 희열을 감추지 못한 채, ㅊ텅년이 평상 위에서 만들고 있는 작은 단환을 가리켰다. 날카롭게 쥔 소도의 끝에는 뿌연 기운이 서려 있었고, 청년은 하나의 단환을 여러 개로 쪼개고 있었다.

"신의님의 제자...세요?"

"제자요? 에이, 제가 무슨 그 노인네 제자예요?"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냥 그 할매 기술 좀 배웠, 히익?!"

팽유월은 자신도 모르게 청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혹시 천환단을 만들 줄 아시나요?!"

"저, 저기."

청년은 팽유월의 커다란 존재감에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다, 닿습니다."

"아."

팽유월은 고개를 푹 숙이며 손을 놓았다. 두 팔로 자신의 앞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공자."

"아, 아니에요."

"......."

풋풋한 남녀의 모습에 약방 노인은 표정이 썩어버렸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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