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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인?"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북팽가의 여식, 팽유월은 불편한 마차에 앉아 창밖으로 던진 시선을 거두었다.
눈앞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밖으로 시선을 돌렸건만, 창호지를 뚫고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팽유월은 다시 안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밖에 있는 촌부들이 신경 쓰이는 겁니까? 하하, 멀리까지 와서 이곳의 분위기를 벌써 살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표정과 목소리는 능글맞기 그지없었다.
말본새에 마치 '네가 안주인이 될 땅의 주민들과 미리 안면을 익혀둬라'는 듯한 기색이 보여, 팽유월은 대놓고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공. 아직 저희는 혼례를 올린 이들이 아닙니다. 부인이라는 칭호는 하지 마시옵소서."
"...흐흐, 하지만 아흐레만 지나면 저와 백년지약을 맺을 사이 아닙니까? 너무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마시지요. 제가 상처를 받아서 아버님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
팽유월은 다시금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가문의 힘든 상황을 이용하여 자금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팽유월은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가 자신을 음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팽가의 가세에 저희 추소표국이 함께한다면, 능히 하북의 패권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하하!"
"......."
팔대세가 중 한 가문의 여식이 금전이나 다루는 표국의 후계자와 혼약을 맺는다.
심지어 팽가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하북도 아니고 안휘까지 내려왔다는 건 주도권이 팽가가 아닌 추소표국에 있다는 걸 의미했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팽유월은 추소표국에 팔려 왔다.
기울어가는 가세를 늘리기 위해, 금 쪼가리 몇 개를 받고 가문의 여인을 표국에 팔아치운 것이다.
까드득.
면사포 아래에 가려진 입술이 피가 날 정도로 잇자국이 났다. 맞은 편의 남자, 추소표국의 후계자 <금돈(金豚)> 추소광은 팽유월의 반응을 비릿한 미소로 즐기며 팽유월의 몸을 마음껏 훑었다.
"어? 화내시는 겁니까? 지아비가 될 남자를 무공으로 겁박하시려는 겁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명백히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상황과 환경이 팽유월이 손을 거두게 만들었다.
무공으로 따지면 팽유월은 추소광보다 훨씬 더 윗 경지에 있는 존재였으나, 가문의 부흥과 금전이라는 짐덩어리가 팽유월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하! 부디 현명한 선택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저희가 화촉을 밝히는 날, 전표가 실린 수레가 출발할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추소광이 슬쩍 몸을 일으켜 팽유월의 옆자리로 몸을 옮겼다. 좁은 마차 안에서 살을 붙이는 추소광의 행동에 팽유월은 진심으로 소름이 끼쳤다.
"모처럼이니 이곳에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혼례까지 건드리지 않겠다고."
팽유월은 추소광의 하복부를 향해 손날을 겨눴다. 면으로 된 흰 장갑은 칼날처럼 예기를 띄고 있었고, 추소광은 땀을 삐죽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하하, 하. 그렇죠. 크흠."
추소광은 슬그머니 옆으로 엉덩이를 붙였다.
손에 불어넣은 기운을 풀어버린 팽유월은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등 뒤에서 끈적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팽유월은 애써 무시하며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씨발, 졸라 예쁘네.
"......."
착각이 분명하다. 창호지 너머, 제법 반반하게 생긴 청년이 정확히 자신을 상스러운 말과 함께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마치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처럼 정확히 꿰뚫어보며 '와, 미친, 선녀다'와 같은 감탄사만 연신 부르고 있었다.
"......풋."
미인이라고 바라 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 시선을 즐겨줄 수 있다.
하지만 미인이라는 걸로 자신을 취하기 위해 가문의 약점을 잡고 음습하게 뒤에서 노리고 있는 남자와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다. 허벅지 위에 올려둔 손 위로 추소광의 두꺼운 손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흐흐, 아흐레만 참으면 되는 거지요? 아버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
팽유월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 *
"크으. 술맛 좋다."
나는 청주로 텁텁한 입안을 깨끗이 닦아냈다. 여인의 옥루로 번들거리던 입안은 타들어 가는 느낌과 함께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상공, 좋으셨어요?"
"상공? 야, 너 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부끄럽냐?"
"하룻밤에 은자 석 냥 주시는 분이 상공이지 그러면 뭐에요? 흥."
팽유월을 닮은 기녀, '홍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여인은 나신으로 내게 안기며 교태를 부렸다.
그녀의 몸은 간밤에 흘린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으나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저 땀이 나로 인해 생긴 것이니.
"상공, 저희...."
"됐다. 괜히 앞길 창창한 청년 인생 망칠 생각하지 말아라. 그러면 다음에는 다른 계집을 부를 테니."
"칫, 너무하세요. 상공밖에 모르는 몸으로 만드셨으면서!"
홍련은 내 하초로 손을 뻗었다.
이미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진 나의 물건을 값비싼 도자기 다루듯 쓰다듬었다.
"하아, 정말 대단하셔요. 이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튼실한 걸 가지고 계시는 거죠?"
"어려서부터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충분한 수면, 그리고 약간의 운동만 있으면 되는 법이다."
"그러면 저를 극락으로 보내주시는 기술은 어디서 배우셨을까나?"
"타고난 거지."
나는 홍련이 내 허리 사이로 기어들어 오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개처럼 엎드리며 머리를 귀로 쓸어넘기는 그녀는 자연스레 내 양물을 입에 물었다.
"너도 참 타고난 기녀로구나. 남자의 것을 묻지도 않고 입에 물 생각을 하다니."
"츄릅. 다른 분들한테는 안 해요. 상공한테만 해드리는 거지."
"그래, 그런 거로 알도록 하마."
나는 평상 위에 올려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아직 병에는 술이 반이나 남아있었고, 동이 틀려면 한참 시간이 남아있었다. 저녁상이랍시고 들어온 찬거리는 이미 차가운 밤공기에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얼마나 했지?'
낮에 은자를 구해 기루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홍련을 찾았다. 팽유월보다는 못하지만, 고양이와 같은 인상의 여인은 아무리 이 동네 제일의 기루라도 찾기 쉬운 여인이 아니다.
"츄흡, 하아. 상공, 좋으신가 봅니다? 혀가 끝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게, 하아."
홍련의 입은 그녀의 안처럼 뜨겁고 축축했다. 기루의 여인들을 그리 많이 안아본 건 아니지만, 홍련은 다른 기루에서도 영입하려고 뒷공작을 벌이는 우수한 기녀였다.
가느다란 혀가 귀두를 빙글 휘감아 핥는 움직임에는 나에 대한 열렬한 봉사심이 느껴졌다.
내가 당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 그런 충족감이 내 전신을 짜릿하게 울렸다. 이런 여인의 하룻밤을 은자 세 냥으로 샀다? 남는 장사다.
"술맛이 참으로 좋군. 홍련아, 미안하다. 내 너의 하룻밤을 사느라 선물을 준비해오지 못했느니라."
"네? 후후, 상공께서 저를 지명해주신 게 제게 선물입니다."
홍련의 침으로 범벅이 된 양물은 어느덧 다시 혈기왕성해져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세 시진 가량 일각도 쉬지 않고 혈기를 내뿜었는데도, 약간 봉사를 받았다고 금방 다시 타오르는 나의 욕구에 홍련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상공, 다시 시작해주셔요."
"나는 술이나 마시련다. 네가 알아서 올라타라."
"네? 그, 그런...."
나는 허리를 뒤로 눕히며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여인에게 스스로 올라타라는, 기녀조차도 부끄러워하는 체위에 홍련은 우물쭈물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실례라니? 내가 신세를 지는 거지. 어디 이즈음 까지 나를 견뎌내는 기녀가 있더냐?"
내 말에 홍련은 배시시 웃으며 내 허벅지 위에 걸쳐 앉았다.
따뜻하게 데워졌던 술잔이 차게 식을 만큼 우리는 서로의 몸을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 정도로 나의 양기를 버티는 기녀는 홍련밖에 없었다.
"상공께서 너무 대단하신 겁니다. 그거 아셔요? 큰 언니께서 상공 오실 때마다 어린아이들을 숨기시는 거."
"나는 애새끼는 취급 안 한다."
"피, 저는요?"
"꽃은 가장 아름다울 때 취해야 향기로운 법이지."
"말은."
홍련은 내 어깨 위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섬섬옥수라는 표현보다는 살짝 굳은살이 박인 손길은 그녀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했다.
"상공, 저-"
"홍련 언니! 큰일 났어요!!"
문이 벌컥 열리며 기녀 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홍련은 내게 보이던 표정을 지우고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친년, 손님 앞에서 무슨 추태를 부리는 거야!"
"크, 큰 언니가 죽어요!!"
"...뭐?"
홍련의 달아오른 몸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녀와."
"......염치없습니다, 상공. 저건 받지 아니하겠습니다. 다음에 오셨을 때 더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홍련은 내가 놓아둔 은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옷을 급히 챙겨입었다. 나는 내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를 손으로 흔들어 떠나보냈고, 차가운 술로 목을 씻어 넘겼다.
"크흐. 공짜로 하다니. 좋군."
역시 돈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열심히 혀를 놀려준 가치가 있었다. 나는 홀로 술잔을 채우며 창 위에 걸린 달을 보며 목을 축였다.
"응? 무슨 일이냐? 네년이 대신 하려고?"
"아, 아뇨. 그게...."
내 흥을 깬 기녀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머뭇거렸다.
"말해라. 은자가 탐이 나느냐? 홍련의 시간이 허사가 된 것 같아서? 걱정 마라. 하룻밤의 절반을 썼으니, 절반은 두고 가마."
대범한 이라면 전부 두고 가겠지만, 나는 소인배다. 세상 여자가 홍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술로 몸의 열을 식히고 나면 다른 기루에 가서 은자 두 냥 만큼의 여인을 안으면 되는 것이다.
셋을 반으로 나누면 애매하니, 내가 둘을 챙긴다.
"호, 홍련 언니께서는 당신을 사모하고 계셔요...!"
"...씁. 코 꿰이는 건 별론데. 어린 녀석아, 그런 말을 하면 나라는 우량고객을 내쫓는 셈이다. 나는 홍련의 몸을 취하러 온 거지, 마음을 취하러 온 게 아니야."
"지금, 밑에서 추소표국의 후계자가 홍련 언니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우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나보고 홍련을 구하기라도 하라는 말이더냐?"
나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내가 왜?"
"어르신!"
"하아.... 오랜만에 종일 재미 좀 보려다가 끊긴 것도 빡치는데, 불편한 일에 휘말리게 생겼네?"
나는 한숨과 함께 탁자를 톡톡 건드렸다.
"여기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군. 삼구야."
스륵.
창가에 검은 복면을 한 중년인이 착지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외인의 등장에 놀라는 기녀의 혈을 짚었다.
"야, 너 걔 살리고 싶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어, 어떻게 하시려고?!"
"어떻게 하기는. 무림 식으로 해결해야지. 제자야, 가라."
* * *
"진정하시옵소서!"
"진정?! 진정하게 생겼어?! 그년을 당장 내 눈앞에 데려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추소광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그의 뒤에 선 호위무사들은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으나, 금전으로 고용된 이들이 고용주의 행태를 방해할 리 없다.
"홍련이는 지금 다른 손님을...."
"내 전용이다! 감히 어딜 다른 남자에게 안게 한다는 말이냐!"
"그런 억지가...!"
"찾으셨습니까."
추소광의 앞에 홍련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단정하게 정돈한 머리와 옷차림은 몸단장을 마치고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 그래! 크흐, 네년이 참 그년을 빼닮았어. 흐흐, 당장 나와 이 밤을 즐기자꾸나! 하하하! ...응? 잠깐."
술에 취해 미쳐있던 추소광은 성큼성큼 걸어가 홍련의 옷을 와락 열어젖혔다. 앞섶이 옆으로 흐트러지자, 홍련의 가슴이 겉으로 드러났다.
"이, 이 걸레 같은 년! 진짜로 다른 남자와 하고 있었어?!"
머리와 옷은 단정하게 갖출 수 있어도, 쇄골부터 젖무덤까지 이어진 남자의 손길과 잇자국은 감출 수 없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가슴이 드러난 홍련은 추소광의 손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젠장! 기분이 더러워져도 유분수지! 어딜 남이 따먹던 계집을 들이미는 것이냐!"
"마, 말씀드렸잖습니까. 지금 홍련은 다른 손님을 모시고 있는...."
"그러니까 이 년은 내 전용이라고 했잖아!"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표국의 표사들은 그들에게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젠장! 남의 물건이 드나든 창녀를 내놓는 기루 따위, 더러워서 쓰지를 못하겠군! 돌아가자! 추소표국은 앞으로 누구 하나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고, 어르신! 죄송합니다! 부디...!"
"무슨 소란이냐."
기루의 위층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란을 일시에 잠재우는 목소리에 추소광은 전신이 굳었고, 무사들은 검을 뽑으려다가 몸이 그대로 멈췄다.
"내가 안던 여인에게 주인이 있는 줄 몰랐는데...."
저벅, 저벅. 위층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이 술에 취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그의 몸에는 여인과 정사를 나누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고수!"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기세는, 술기운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중년의 고수, 삼구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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