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9화 〉현무 던전 (2) (119/124)



〈 119화 〉현무 던전 (2)

119화.

키이이이익!

더듬이와 커다란 집게발, 그리고 전갈과도 같은 길고 거대한 꼬리까지. 여러모로 달랐지만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흘러내리는 액체 대신 딱딱한 붉은 갑주였다.

"잉?"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 탓이었을까.
어디선가 의문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소 맥이 빠지는 반응이었지만, 최종택도 심히 동감하는 바였다. 확실히 위라는 컨셉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놈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키긱, 긱.

잘못 집혔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거대한 집게발이나, 조금씩 흘러내리는 위액을 정통으로 맞는 중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갑주가 상당한 포스를 자랑했으니까.

실제로 느껴지는 마력도 산성 슬라임과는 격이 달랐다.

'멘티스와는 비교도 안 되고…이 정도면 A등급은 되겠는데?'

겨우 A등급 던전이면서 중간보스가 A등급 수준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철갑 던전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같은 등급이라도철갑 던전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했으니까… 던전 구조도 전부 다르고.'

어쩌면 중간보스가 여럿인  아닌, 보스가 여럿인 걸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보다 빨리 등장했네요."
"그러게요. 안 움직여도 알아서 등장하는 식이었구나."

탐사팀이 추측한 것보다 더욱 빠른 등장에 일행들이 소곤거렸다.
확실히 하루종일 탐사를 나서야 보스를 발견할 거라는 보고를 떠올리면 상당히 빠른 등장이긴 했다.

‘오히려 좋아.’

하지만 잡몹들론 성에 차지 안던 최종택에겐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그건 일행들도 비슷했는지 금방 포지션을 잡는다.
최종택 앞으로 나선 아리아를 선두로 예나와 한지수가 백보아를보호하며 후방을 맡는 식이었다.

한지수와는 오늘 처음 합을 맞추는데도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제가 먼저 어그로 끌게요.”

그리 말하며 방패를 쥐고 돌진하는 아리아. 그런 그녀의 몸이 신성한 빛을 뿜어낸다 싶더니 이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반투명한 보호막이 몸을 감싸는 걸 느끼며 그녀가 호기롭게 방패를 들이밀었다.
어그로를 끌 때 그녀가 습관적으로 하는 자세.

‘그래도 A등급 보스 수준인데  방에 되려나?’

A등급부터는 어그로 한 번 잘못 튀면 바로 진형이 붕괴된다.
자신이야 그렇다쳐도 몸이 약하고 기동성이 느린 한지수와 백보아는 크게 다칠지도 모를 일.
만약 안 된다면 금단의 도발을 사용하리라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증오의함성!”

키에에에엑!

다행히 보스놈은 금방 아리아의 도발에 걸려들었다.
제 머리보다 수 배는 큰 집개발을 들고는 천하의 원수를 보듯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몸 높이 2M, 몸과 꼬리 길이 도합 8M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가재가 달려드는 건 보는 것만으로 호러 그 자체였다.
덤프트럭에 치이면 저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압박감.
특히나 살벌하게 꺽여있는 꼬리에 찔리기라도 하는 순간 바로 황천길이 어떤지 구경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아리아는 숙련된 탱커.

“방어태세!”

능숙하게 방어력을 올리더니 이내 자세를 잡고 놈의 돌진을 방패로 흘려낸다.
마치 놈이 스스로 방향을 바꾼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능숙한 움직임.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방향을 흘리자마자 성가실  있는 꼬리의 궤도에 방패를 틀어막아 움직임을 봉쇄한다.
하나 작은 몸집으로 거대한 꼬리를 온전히 막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는 일.

후웅! 슈악-!

눈 먼 꼬리를 아무리 방패로 막으며 피한다해도 결국엔 한계가 올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방패로 튕겨낸 순간,  틈을 노리고 꼬리의 끝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왔다.

이대로라면 잔인하게 뚫릴 법한 위기.
하지만,

콰직!

키엑?

꼬리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뚫는 대신, 단단한 방어막만 두드릴뿐이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공성용 창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무기로 저 얇고 작은 방어막 하나 뚫지 못하다니.
그에 놈도 어리둥절한지 몇 번이나 다시 찔러보지만, 그녀는 끄떡도 없었다.

“어림도 없다구욧!”

 대신 양손으로 깎지를  그녀가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후우웅-

“흐얍!”

어느새 보스의 꼬리만큼이나 거대해진 팔을 들어 내리찍자 놈이 신발에 밟힌 바퀴벌래처럼 찌그러진다.

콰앙!
키에에에에에엑!

바닥이 움푹 파이며 균열이 생길정도의 위력.
놈의 갑주가 갑주가 튼튼한 탓에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지만, 한참을 정신을 못차리는  보니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워… 살벌하네. 진짜 많이 늘었는데?’

원래도 능숙한 편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같이 던전에 갔을 때와 비교해도 월등히 뛰어나다.
 사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일.
단순히 탱킹만 뛰어난 게 아니라 어그로 관리나 회피 움직임,  관리  모든 면이 대폭 상승했다.

그건 비단 아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어그로 잡았어요! 딜 넣어요!”
“잘했어요!”
“버프 들어갈게요.”

그녀의 외침을 신호로 미리 버프를 준비하던 백보아가 버프를 쏟아넣었고, 마찬가지로 캐스팅을 하고있던 한지수가 대마법들을 쏟아넣었다.

위이이잉- 딱, 딸칵.

천장과 바닥에 생긴 각종 마법진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맞물릴 때마다 한줄기 섬광과청염이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저건 또 뭐야? 스킬  개를  거지?’

우연인듯하지만, 백보아의 신성력과 한지수의 청염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이 퍽 잘 어울렸다.
척 보아도 심상치 않은 현상.

키에엑! 키엑!

뇌가 있다면 피해야 정사이건만, 보스는 어지간히 열이 받았는지 아리아에게 집착할 뿐이었다.
이윽고 놈이 아리아를 향해 몸을 들이받으려는 순간.

번쩍!

키에에에엑!?

마법의 발동이 완료되었는지 한줄기 섬광이 번쩍이더니, 이내 거대한 화마가 놈을 집어삼켰다. 놈의 몸을 모두 집어삼킬 정도로 큰 불길이었다.

화악! 화르륵-

케에에엑!

청염은 영혼을 태우는 불꽃.
아직 청염을 온전히 일깨우진 못했지만,  특성이 어딜 가지 않는지 여태껏 비교적 멀쩡하던 가재놈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쳐보지만, 그럴 때마다 날아오는 예나의 화살이 방해했다.

파각! 팍!

키에에엑! 키엑!

…아니, 단순히 방해 수준이 아니긴 했다.
방해라기엔 화살   한 방이 치명상처럼 느껴졌으니까.
저 위력들도 대단하지만, 그 모든 공격이 통할 수밖에 없게끔 어그로를 잡고 있는 아리아가 유독 돋보였다.

‘대박이네. 이거 내가 안 나서도 되는 거 아냐?’

진심으로 감탄스러웠다.

‘진심 어린 섹스가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란 남자… 어디까지 대단한 거지?’

저들을 저리 강하게 만든 자신이라는 남자가.
그도 그럴 게 무슨 도핑이라도 한 것처럼 말도 안 되게 강해지지 않았는가.

 모습 어디에도 힘을 해방하지 않은 이재희의 공격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던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또한 어디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연약한 백보아는 없었다.
자신의 나약함에 분해하던 예나 또한 없었다.

그저 던전 학살범들만이 있을 뿐.

‘이쯤 되면 진심 어린 섹스만 하고 다녀도 군단 하나는 만들  있지 않을까?’

우스개소리긴 하지만, 정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진심 어린 섹스가 될 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쳐도 지수는 얼마나 재능충인 거야?’

다른 이들이야 진심 어린 섹스 때문에 강해졌다 치자.
하지만 한지수는?

‘뭐 대체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저럴 수 있지?’

물론 백보아의 사기적인 버프가 들어간 점이나, 태초에 세상에 몇 없는 사기적인 속성 지배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너무 강해졌다.

‘하기야… 학업에 신경 쓴다고 던전에 1년 가까이  들어갔던 애를 사신 길드에서 계속 지원해준 것만 봐도 사기적인 재능이라는 거겠지.’

어찌보면 그녀는 이미 만들어진 헌터였을지도 모른다.
불의 지배자를 제대로 각성시키기만 하면 완성되는 그런 헌터.
세상에  없는 S등급 속성 지배자들이 모두 세계권에서 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속성 지배자라 사기인 거냐, 마침 사기캐가 속성 지배자를 얻은 것뿐이냐는 분쟁이 있었었지.’

답은 전자인 듯했다.
실제로 한지수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아직 그들에 비하면 청염이 한없이 초라할 정도인  보면 아마 아직도 성장중이라는 걸 텐데, 앞으로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지 않을까 싶다.
보다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쨌거나 슬슬 나서지 않으면 정말로 잡히……’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했던가.
그리 생각하며  손잡이에 손을 얹자 기다렸다는 듯 알림창이 떠올랐다.

[위의 수호자를 처치하셨습니다.]
[핵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엥?”

그에 시선을 돌리자 불길에 휩싸여 가뜩이나 붉었던 갑주가 한층 더 붉어진 채 가만히 서있는 보스가 보였다.
한참을  자세로 서있던 보스가 이내 거대한 몸을 떨어트렸다.

쿠우우웅!


“에구, 힘들다.”
“고생하셨어요.”
“후후, 이 정도로 뭘요.”

그리곤 저들끼리 서로 고생했다며 칭찬을 주고받는다. 그 광경을 멀찍이서 멍하니 바라보던 최종택을 발견한 그녀들이 손짓한다.

“안 오고 거기서 뭐해요!”
“어, 그러고보니 종택이 아무것도 못했네.”
“으이그, 그러니까 그 주인공 본능 좀 버리라니까요.”


처음으로 최종택의  없이 잡아낸 그녀들이 세상 뿌듯한 얼굴로 허리를 핀다. 다같이 약속이라도  듯 비슷한 표정과 자세였다.
덕분에 허리를 펴며 드러난 풍만한 볼거리가 흐뭇하긴 했지만, 멋쩍은  사실이었다.

“하하… 진짜 잡아낼 줄은 몰랐네요.”
“후후 이 정도는 식은 죽먹기죠. 저희도 이제 강하다구욧!”

평소라면 같잖은 소리하지 말라며 피식 웃었을 그였겠지만, 이번만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진짜 강해지긴 했어.’

무려 A등급 보스를 압도한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저거 핵이 나온 거면 예상대로 중간보스인 건가? 아니면 그냥 핵마다 보스가 있는 걸까?

그보다  핵은 어떻게 부수지?

‘무슨 다이아몬드같이 생겼네.’

농구공만한 다이아몬드를 동그랗게 깎은 것처럼 생겼다. 손으로 툭툭 쳐보니 겉모습에 걸맞게 강도가 상상이상이었다.
이거 깨려면 하루종일 붙잡고 있어야할 수도 있겠는데?

띠링-

[핵에 손을 얹어 마력을 집어넣으십시오.]
[핵이 부숴지면 다음 핵으로 가는 길이 열립니다.]

“아.”

다행히 그런 무식한 방법은 아닌 모양이다.

‘마력을 부여한다라… 뭔가 마법구슬 같네.’

만화 속에서 보던 것과 같은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심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눈빛으로 드러난 걸까.
눈이 마주친 그녀들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 것도 안 했으니 이번에는 종택 씨가 해요.”
“나두 괜찮아. 하고 싶으면 해.”
“어, 어어……”

뭔가 고맙긴 한데 기분이 묘하다.
늘 자신이 하던 포지션인데 역으로 당해서 그런가? 하여튼 덕분에 원하는 걸 성취한 최종택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곤 천천히 핵에 손을 올렸다.

‘마력을 부여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어떻게 부여하는지는 굳이 시행착오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평소 스킬을 사용할 때처럼 몸안에 있는 마력을 이곳에 흘러넣는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스으으.

그렇게 몸속의 마력을 손끝으로 흘려보낸 순간.

파직!

“윽?”

몸안이 간지럽다 싶더니, 돌연 따끔하는 감각과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한데  스파크의 색이 심상치 않다. 마력을 표현하는 푸른색 대신 검은 마력이 주변으로 용솟음친다.
마치 수라기와 흡사한 모습.

‘…수라기가 아냐.’

그러나 최종택은 확신했다.
수라기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감각,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마력에 의문어린 표정을 짓기도 잠시.

띠링-

[특수한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봉인이 풀립니다.]

“……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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