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진(眞) 아리아 (1)
108화.
[S급 헌터를 박았습니다.]
[최초의 애널 섹스를 하였습니다!]
[최초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스킬 ‘안전구멍’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번에도 심상치가 않네.”
자박꼼으로 얻은 스킬이 다 그렇지만, 이번 것도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특히 애널 섹스로 인한 보상이라 그런지 더 꺼림칙하달까.
매우 든든하면서도 불결한 이름에 눈살을 찌푸린 최종택이 조심스레 스킬 설명을 확인하더니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안전구멍]
-등급 : S+
-설명 : 그 어떤 역경에도 안전한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이건 또 뭔 스킬이야.”
아니, 고작 구멍 하나 만드는 게 다라니? 다른 스킬들은 그래도 이름하고 좀 다르더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여전히 불친절한 설명도 설명인데 아무리 봐도 '이게 씨발 스킬이야?'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한참을 멍하니 설명을 읽던 그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는 뭐 안 그랬나.'
세삼스레 화나기엔 그간 겪은 경험이 너무 많다. 그리고 자박꼼 관련 스킬은 모두 심상치 않은 위력을 자랑했다.
이것도 엿보기 구멍처럼 성능이 좋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보니 같은 구멍이네. 그럼 좋지 않을까?'
구멍은 늘 옳다지 않은가.
문득 궁금해져서 바로 사용해볼까 싶었으나, 이내 생각을 바로했다.
'또 어떤 스킬일 줄 알고…'
구멍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큰 구멍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예상보다 너무 큰 사이즈면 물건이 다 부서지고 방이 난리가 날 것이다.
혹은 이상한 종류의 스킬일 수도 있고.
자박꼼 계열 스킬이 대부분 스케일이 컸던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집에서 함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편으론 기대감도 들었다.
'S+등급이면 적어도 체위술보단 좋다는 거 아냐.'
체위술로 얼마나 많이 뽕을 뽑아먹었던가.
지금도 사용하는 주력기술인만큼 안전구멍에 대한 기대감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시험해보고 싶은데……
'일단은 참아야겠지.'
구멍 안과 밖의 상황을 동시에 보려면 파티원과 던전이 있어야한다.
던전이 구하고싶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그에겐 조만간 가게 될 A급 던전과 동료들이 있었다.
그날 던전에서 실험해보는 게 최적이리라.
'그럼 오늘은 그만 쉴까.'
판단을 마친 최종택이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웠다.
푹신한 감촉을 느끼며 창문을 보니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 밤 사이로 달빛이 새어들어오고 있다.
그가 본능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09 : 35 PM]
'어두워질 만했네.'
집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직 붉은 빛이 감돌았건만 시간 참 빠르다.
평소라면 한창 체력훈련을 더 하거나 밖에라도 나가 있을 시간이지만, 지금은 몸이 노곤노곤하니 잠이 몰려온다.
하기야 그렇게 몸을 굴렸으니 무리일 법도 하다.
'수왕은 진짜 의외이긴 했어.'
설마하니 그런 걸 준비해올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색다른 경험이라 만족스럽다.
한때는 방구석 찐따였던 자신이 AV에서나 보던 플레이를 하는 날이 오다니.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이번엔 특히 흔히 할 수 없는 플레이라 그런지 더 감회가 새롭게 다가왔다.
'보아 씨도 그렇고, 교관님도 그렇고 세삼 기분이 묘하네.'
만약 자신이 헌터가 되지 않았다면 그들과 이런 관계로 지낼 수 있었을까?
문득 휴대폰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낮설게 느껴졌다.
그 찐따 같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누가 봐도 헉 소리 날 정도로 잘생긴 외모가 묘한 얼굴을 하고 있다.
'고놈 참 잘생기긴 했네.'
헌터는 강해질수록 외모도 뛰어나진다고 하는데 확실히 날이 갈수록 외모가 빛을 발하는 게 느껴진다.
워낙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탓일까.
꽤나 훈훈해졌다고 생각했던 승급 시험 때도 지금이랑 비교하면 오징어가 따로 없다.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웬만한 배우보다 더 나은 것 같은데…
'잠깐, 그럼 보아 씨는 왜 그리 예쁘지?'
신성력이 S등급이라 그런 건가?
가뜩이나 예쁜 외모가 최근들어 더욱 빛난다 싶었더니 다른 능력치가 올라서 더 예뻐진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유독 능력치에 비해 외모가 빛나는 걸 생각하면 태생이 예쁘게 태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외모로 유명한 연예인들 중엔 헌터가 아닌 이들도 많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음? 누구지?"
지금 연락이 올 사람이라 해봐야 교관님이나 백보아 정도.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아무래도 백보아가 일어났거나 요즘 부쩍 연락이 잦아진 예나의 연락인 듯했다.
'응?'
한데 이게 웬걸?
막상 확인해보니 톡을 보낸 상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피카츄 : 누ㅡㅡㅓㅂㄴ나 필요ㅗ도어ㅗㅄ지?]
'이 새낀 또 뭐라는 거야?'
처참하게 일그러진 톡을 보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외계어인가 싶었는데 고대언어를 해석하는 언어학자처럼 신중하게 살펴보니 얼추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너는 나 필요도 없지?'
이게 갑자기 뭔 소리인지는 몰라도 유독 저 'ㅄ'가 돋보이는 건 착각일까.
[피카츄 : 이 나쁜새끼. 말미잘해삼똥개멍겠흐레ㄱ!]
"……"
선명한 나쁜새끼를 보니 착각이 아닌 것 같다.
난데없이 욕을 먹게된 최종택이 황당함에 곧장 답장을 보냈다.
[나 : 이 새낀 갑자기 왜 그래? 술 마셨냐?]
[피카츄 : 그래! 술 마셨따! 머ㅜ어쩔곤데!]
[나 : 아니 술 마셨으면 곱게 자지 뭐하는 거야?]
[피카츄 : ㅇ모모논라랄라라]
"허."
다른 건 몰라도 상태를 보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정상은 아니야."
꽐라도 이런 꽐라가 없었다.
피카츄야 늘 이상한 행동을 해왔지만, 그래도 이렇게 술 마시고 꼬장 부린 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문득 의문이 든다.
'그러고보니 얘가 술을 마신 적이 있었나?'
적어도 알고 지낸 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진 않은 것 같았는데 무슨 사연이 있어 이리 진탕 마셨단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피카츄 : 당신 진ㅉ 나빠.. 쓰레기ㅇㅑ]
[피카츄 : 어떠ㅎ케 내가 화났는데ㅔ 쳐다도 안 보냐?]
"…나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 때문인 것 같다.
영문을 몰라 머리를 긁적이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 기억이 스쳐지나간 건 그때였다.
-몰라요! 이 말미잘 해삼!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버럭 소리치고 떠나던 아리아의 모습.
그 후에 연달아서 너무 익스트림한 일들이 많아서 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때 삐쳤던 것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물론 아직까지도 여자의 마음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그로선 황당할 따름이었다.
예로부터 술에 취한 사람과는 일절 말을 섞지 말라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이 조언은 꽤나 유용하다고 최종택은 자부할 수 있었다.
'두형이 놈 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그놈이 전여친하고 헤어진 날 술에 진탕 취해서 꼬장을 부렸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술집에서 내내 울기만 하던 새끼가 집에 오는 길에 전여친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을 때는 진짜 죽이고 싶었지.'
그뿐인가.
이대로 집에 보내면 배구부 출신이셨던 어머님한테 등이 터지지 않을까 싶어서 자취방에 데려왔더니 화장실이랑 방에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순물은 전부 최종택이 치웠다.
'그때 존나 더 팼어야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때 세 대밖에 안 때린 게 천추의 한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그때의 징조가 보인다.
저 상태를 보니 최소 꼬장 2시간은 예약이었고, 이럴 땐 상대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흐음. 조금 신경 쓰이긴 하네.'
그날 울면서 뛰쳐나간 걸 방치한 것 때문일까.
평소와 같이 금방 삐진 걸 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안 마시는 술까지 마실 정도라고 생각하니 괜히 찝찝하다.
더군다나 그녀는 협회장의 손녀 아닌가.
늘 자신에게 잘해주는 협회장의 모습을 봐서라도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헌터나 돼서는 무슨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영 마음이 불편했다.
"쯧, 하여튼 성가시다니까."
결국 혀를 찬 최종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될듯하다.
-
[말미잘해삼바보똥개 : 너 지금 어딘데?]
[나 : 알게뭐람ㅁ 언젭ㅓ신경썻닥ㅗ]
[말미잘해삼바보똥개 : …너 ㅗ오타아니지.]
‘흥, 바보.’
휴대폰 화면을 보던 아리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지금까지 쳐다도 안 보던 사람이 이제와서 무슨? 심지어 수왕한테 연락할 정신은 있고 자신한텐 연락할 생각은 없었나.
걱정어린 연락에 기분이 좋다가도 그날을 떠올리면 기분이 상한다.
‘내가 언제까지고 그렇게 뒤꽁무니만 쫒을 줄 알구요?’
지난 날의 아리아는 없었다.
이젠 도도하고 쿨한 아가씨가 될 생각이었다. 어딜가든 남자들이 쫒아다니고, 그런 그들을 거들떠도 안 보던 그 시절의 자신 말이다.
‘…그래도 모처럼인데 조금만 볼까?’
하지만 자꾸만 울리는 휴대폰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저 정도면 반성 좀 한 것 같은데 봐줄까?
‘아냐. 마음 단단히 먹어 아리아.’
지금 넘어가면 평소와 똑같아진다.
저 바보는 어디 한 번 마음고생 좀 해봐야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테니까.
그렇기에 자꾸만 키보드로 가려는 손을 애써 붙잡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다행이 오늘은 그녀를 도와줄 친구가 있었다.
꿀꺽꿀꺽-
“크으…! 달다, 달아!”
바로 소주였다.
투명한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비운 그녀가 소주병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한동안 마음고생한 자신을 이 소주가 얼마나 위로해주었는지 모른다.
어른들이 술에 죽고 못 사는 거 이해 안 됐는데…
‘이 좋은 걸 왜 몰랐대.’
지금에 와서는 그런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마셔보는 술인데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은 술이 좀 센 듯했다.
새하얀 피부보다 홍조가 더 많은 얼굴이나, 잔뜩 풀려서 흐리멍텅한 눈을 보면 전혀 신빙성 없는 발언이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엔 그랬다.
“크으!”
그렇게 한 잔, 두 잔…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를 정도로 들이켰을 때였다. 살짝 흐리게 보이던 시야가 이젠 뿌옇게 느껴질 무렵.
“야, 피카츄! 너 거기서 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