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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채유린 (1) (102/124)



〈 102화 〉채유린 (1)

102화.


집엔 잘 들어갔는지 물어보는 안부 문자. 아무래도 백보아랑 한창 달리느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 순간, 왠지 여자친구를 두고 양다리를 걸친 남자의 심정을 느끼는  왜일까.
왠지 모르게 뜨끔한 최종택이 다급히 둘러댔다.

[나 : 어제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봤나봐요. 죄송해요.]
[전직차도녀 : 그럴 수 있죠.]
[나 : …]

뭔가 분위기가 싸해진  기분 탓은 아니리라.

'뭐라고 보내지?'

기분이 상해보이기는 하는데 뭐라 답장할지 모르겠다. 머리를 긁적던 찰나 문뜩 떠오른 생각에 최종택이 화제를 돌렸다.

[나 : 아, 그러고보니 다들 강해지기도 했고, 저도 곧 레벨이 오르는데 같이 합을 맞춰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전직차도녀 : 아… 그렇군요.]


'크… 지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자연스러운 화제전환이었다.
물론 예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한 반응이지만, 우리의 최종택은 그런 걸 알아챌 정도로 눈치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착한 예나는 그것마저 받아주는 모양이었다.

[전직차도녀 : 알겠습니다. 협회에 연락해볼게요.]
[나 :  감사합니다. 조만간 식사라도  번 해요.]
[전직차도녀 :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나 : 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전직차도녀 : 아뇨, 그렇게까지 해야합니다.]
[나 : 어음… 알았어요.]

텍스트 문구에서마저 엄격 근엄 진지함이 엿보이는 그녀의 카톡에 마지못해 대답한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국밥이나 먹으면 되지 않나? 하여튼 여자들은 맛을 몰라요.'

가격 싸지, 보기만 해도 든든하지, 음식 시키면 밑반찬들도 쫙 깔리지,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완벽한 음식이란 말인가.
데이트라고는 떡 먹방 밖에 없었던 그에게 여자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궁시렁대고 있을 때 다시금 연락이 왔다.

[전직차도녀 : 마침 어제 던전을 구한 게 있다고 하네요. A등급 던전이라 잠시 탐사를 다녀와야할  같다고 이틀 후에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나 : 오? 좋네요.]
[전직차도녀 : 그럼 알겠다고 연락하겠습니다.]

 차례 더 연락을 주고받은 최종택이 흐뭇한 얼굴로 폰 화면을 껐다.

'A등급이면 구하기 빡셌을 텐데 힘  쓰셨나보네.'


객관적으로 A등급 던전의 소유권은 그 값어치만 해도 상당하다.
어지간한 대형 길드 정도는 되어야 명함이라도 내밀  있는  A등급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마저다 5대 길드가 나서는 순간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가는 게 A등급 던전이다.


지난번 이재희가 괜히 자부심을 보인 게 아니라는 뜻.
달리 말해 협회가 그만큼 그를 신경 써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마음을 생각하면 구성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게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협회에는 권 노아가 있으니까.
S+등급의 무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니 실력 하나는 확실한 양반.

'그러고보니 노아가 필요한 거 있으면 한  오라고 했는데… 한 번 물어볼까?'

그런 그녀라면 미다스의 손길에 대해서 아는  있을지도 모른다.
혹여 모르더라도 자신보다는  알지 않겠는가.

'노아도 한 번 만나고… 아, 수왕도 조만간 봐야겠지? 듣자하니 일처리 잘하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얼굴 한  보러오라는 부모님의 연락이나, 누나 놈의 재촉을 생각하면 조만간 고향에도  번 더 내려가야할 듯싶다.


"에휴."

최근에 정신없이 쏘다녔더니 처리해야할 일이 너무많았다.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오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다 업보인 것을.
머리와 함께 이불을 끌어안고 뒹굴뒹굴 침대에서 구른 그가 다시 휴대폰을 켰다.


[나 : 보아 씨. 협회에서 A등급 던전을 구했대요. 이틀 후에 브리핑 받으라고 해서 연락 보냈어요.]


예나가 연락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느라 못 받았을 수도 있으니 카톡을 남겨놓는  마음 편했다.
볼일을 끝낸 그가 다시 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놀랍도록 할 일이 없었다.

'흠. 이틀동안 일을  끝내놔야하나?'

잠시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뭔가를 하기엔 만사가 귀찮고 피곤했다. 바람도 선선하겠다, 몸도 노곤노곤하니 이대로 낮잠을 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한데,

'왜 뭔가 잊은 것 같지?'


아까부터 무언가 찝찝하다.
한창 하려던 말을 순간 까먹을 때처럼 답답한 기분이랄까. 이럴 때면 어떻게 해야할지 최종택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뭐, 언젠가는 떠오르겠지.'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이 노곤함을 즐기는  더 좋으리라. 서서히 감기는 눈을 느끼며 최종택이 천천히 바지를 내렸다.

-


웅장한 저택.
동화 속에 나올 것처럼 잘 가꾸어진 정원과 분수, 그에 못지 않게 화려한 내부에는 수많은 집사들이 돌아다녔다.

복도가 어찌나 넓은지 화잘실도 쉽사리 찾기 힘든 공간.

그야말로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해도 좋을 풍경.
그에 걸맞게 그곳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가히 천상의 미모라해도 좋을 정도였다.

고급스러움과 귀여움이 한데 베인 분위기.
새하얀 얼굴이나 이목구비는 인형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대충 흐트러트린 금발마저 사랑스럽게 보일 정도로. 하나 그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녀에게선 짙은 성숙함이 느껴졌다.

"하아…"

가느다란 목선과 깊게 베인 쇄골.
그리고 잘록한 허리와 팔다리와는 전혀 다른 풍만한 가슴과 골반.
전형적인 서양인 몸매를 하면서도 동양적인 매력이 담긴 얼굴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휙 몸을 돌렸다.


스윽.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168에 모델 뺨치는 비율,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었음에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성숙한 몸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인형같은 얼굴까지.
아무리 봐도 흠잡을 곳 없는 여성이다.
처음 헌터로 각성했을 때면 모를까, 지금에 이르러선 외모가 절정에 달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런데 어떻게 아직까지 연락 한 통 없을 수 있냐구."


하나 그럼 뭐하는가. 정작 기다리는 남자는 관심   주지 않는 것을. 변명할 거리야 있었다.
최근 그가 많이 바쁘기도 했고,  주변의 여자들 또한 그녀못지 않은 미녀들이니까.


'…보아 씨는 좀 더 예쁜 거 같긴 한데.'


자신이 인형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한 주제 눈빛은 어찌나 고혹적인지 배덕감마저 느껴진다.
같은 여자가 봐도 가슴이 설레는 미모와 분위기.

'…흐, 흥,  많이 예쁘긴 해.'

교관님도 좀 예쁜 거 같기도… 아니, 그래도 그 정도면 자신이 꿇리진 않는다. 그리 생각한 아리아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눈에 포니테일을 질끈 묶은 청순한 미모의 여성의 사진이 보였다.
아리아와 보아, 그리고 예나와 최종택까지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최종택의 모습을  그녀가 볼을 가득 부풀렸다.


'…그래도 나만  해주는  너무하잖아.'


자신한테만 해달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른 여자라면 모를까, 그녀들이라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나만 진심 어린 섹스를 안 할 수가 있어!'

하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도 나름 초창기부터 함께한 자신이 삐졌는데 연락  통 오지도 않는다. 평소라면 참다 못한 그녀가 먼저 연락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나도 쉬운 여자가 아니라고요!'

흥 콧방귀를 끼며 팔짱을  그녀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시무룩해졌다.
이미 기다린 시간만 24시간이 넘는다. 연락이 왔을 거면 진작 왔을 거라는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나도 보아 씨처럼 유혹하고 그래야하나? 아닌데… 나름대로 유혹하는 건데…'


심지어 육탄전으로 들이민 적도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혼자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 리 있나.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 그녀가 외투를 걸쳤다.

아직까진 날이 제법 쌀쌀한 탓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턱시도를 입은 북미계열 남자가 다가와 꾸벅 인사한다.

"아가씨, 어디 가십니까?"
"그냥 바람 좀 쐬려구요."
"그러시다면 저희가 경호를…"
"쓰읍! 또 그런다. 저도 이제 어엿한 헌터라구욧. 그리고 이젠 제가  강할 걸요?"
"크흠…"

무안했는지 경호를 요청했던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말대로 B등급 이상의 헌터가 된 그녀를 호위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긴 했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걸 눈치 챈 아리아가 재빨리 집을 나섰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리 안 늦게 올 거에요!"
"아, 아가씨…"


뒤에서 뭐라 하는 말이 들렸지만 헌터인 그녀를 따라잡을  있을 리 만무. 순식간에 정원을 지나 저택을 빠져나온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한센 아저씨는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어릴 적부터 자신을 키우다시피 해서그런지 가끔 아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그게 싫지는 않았지만, 너무 과하달까.
피식 웃으며 길거리로 들어서자 단숨에 시선이 쏠린다.
마치 그녀에게 시선을 붙드는 마법이 걸린 것처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 번쯤 시선이 닿았다가 사라졌다.

"와 미친… 진짜 존나 예쁘다."
"외국인인가? 몸매가 무슨…"


그중에는 몇 번이나 뒤돌아서 확인하며 감탄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저런 여자랑 사귀는 사람은 무슨 기분일까? 진짜 개부럽다. 남친 없겠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왜, 고백이라도 하게?"
"아니, 존나 배아프잖아."

이제는 익숙한 소곤거림.
어딜가나 뒤따라오는 불결함과 감탄이 뒤섞인 시선도 익숙했지만, 오늘만큼은  불쾌하게 다가왔다.


'…정작 관심줘야할 남자는 묵묵부답이고.'

웬 애꿎은 남자들이 관심을 가지니 원…
기분전환하러 왔다가 괜히 기분만  안 좋아졌다. 입을 샐쭉인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마저도 침을 꿀꺽 삼키며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빨리 장이나 보고 가야지.'


그냥 돌아갈까 싶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나온 김에 간식이라도 좀 사야겠다 싶었다.
그리 생각하며 상가로 들어섰을 때였다.

'…엇?'


친근한 대형마트의 풍경과 장사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묘하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작은 키와 아담한 사이즈.
그에 걸맞는 귀여운 얼굴이지만, 묘하게 섹스러움이 담긴 새하얀 얼굴.
그리고…

쫑긋.

'저, 저건 설마..?'

그녀의 머리 위로 쫑긋이는 무언가를 본 아리아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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