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요망한년 (2)
98화.
'측정불가 게이트가 발견되었다했던가…'
정확히는 게이트가 생성될 짐조가 보인다고 했다.
S급일 확률도 있으니 준비를 해두라고 했었지. 일처리 하나는 철저한 아이이니 헛된 말은 아닐 것이다.
'지난번 마족 던전도 그렇고 흉흉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군.'
10년 전 A급 마족 던전 사건이 터진 이후 한동안 조용했건만. 최근 들어 여러 일이 많이 터지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최종택이라는 놈이 나타난 시기랑 얼추 맞물리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던 이태진이 말했다.
"최종택, 그 남자는 어떤 것 같으냐."
혹여 빌런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유망주라면 어느 정도인지 체감이 듣고싶었기에 한 지룸ㄴ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재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어떠냐뇨? 그, 그런 남자 따위 제 스타일 아니에요."
"…그게 무슨."
"아니…"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이재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시선을 피한 그녀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좀 이상하긴 한데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요. 팀을 떠나지 않으려는 걸 보면 신의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그 팀도 인정하긴 했지만, 그래도 입밖으로까지 내뱉고 싶진 않았다.
그런 그녀의 심리가 빤히 보인다는 듯 이태진이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겠다. 신의 있는 남자 좋지 않으냐."
"……"
"영입하면 베스트겠지만, 굳이 목매달진 마려무나. 어찌됐든 그와 친분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말이다."
친분을 유지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기에 이재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을 가장하든 대놓고 그러든 적당히 주변을 맴돌며 친밀감을 쌓으라는 뜻이다. 그래야 나중에 도움을 얻거나 운이 좋으면 영입할 수도 있을 테니.
어찌보면 계산적인 행동.
평소라면 별 생각 없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조언이 그리 달가울 수가 없었다. 최종택의 주변에 자연스레 녹아들 명분이 생긴 것 아닌가.
'흐흠, 깔끔하게 포기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게 됐네. 이것 참, 귀찮게 됐다니까.'
푹 숙인 얼굴이 기대감으로 붉게 물들은 것도 모른 채 자기합리화를 하는 그녀였다.
-
집에 돌아온 최종택은 세상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수많은 AV파일이 담겨있었다.
평소라면 고민할 것 없이 체력운동을 시작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보상을 준다더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와?'
백보아 그녀가 언제 연락을 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집으로 오라고 유혹하던 그녀의 표정과 숨결, 향기가 아직도 생생했다. 그 모습만 상상해도 밑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것만 바라보며 참은 시간이 어연 3시간.
화창했던 날씨는 어느덧 어두컴컴한 어둠으로 물들어있었다. 1~2시간이면 모를까, 3시간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아닌가.
'당장의 딸이냐, 기다림의 섹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냥 몇 시간 좀 안 하면 어떻다고 저 난리를 피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종택으로선 나름 심각한 고민이었다.
자박꼼을 얻은 후로 도통 성욕이 가라앉질 않은 탓이다.
'이런 면에선 좀 안 좋단 말이야.'
사실 애초에도 성욕이 저 모양이었고, 그저 체력이 안 되었던 것뿐이지만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시전했다.
그렇게 고민하길 10분.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 번 하고 보자.'
결국 참다 못한 최종택이 바지를 내리려던 찰나.
지이잉-
[요망한년 : 식사하러 올래요?]
[요망한년 : 맛있게 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울렸다.
내용을 확인한 최종택이 쯧 혀를 찼다.
[나 : 갑자기 웬 밥이에요?]
[요망한년 : 보상 ^^ 왜, 혹시 다른 거 기대했어요?]
'…그럼 그렇지. 쉬벌년.'
기분이 확 가라앉지만, 이년이 사람 골리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저 요망한년이 웬 일로 저리 직설적으로 구나 했다. 또 장난끼가 발동해서 저랬던 모양인 것 같은데 최종택으로선 당할 수밖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 고혹적으로 유혹하면 누가 안 넘어가?
'에라이.'
짜증나는데 그냥 한 번 조지고 연락하던가 해? 그런 생각이 순간 확 치솟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여자가 직접 음식을 해준 적이 없었던 탓이다.
백보아가 해준 음식이라…
'궁금하긴 하네.'
예전에는 짐승처럼 박기만 해서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녀가 해준 음식이라 하니 살짝 흥미가 돋는다.
[나 : 혹시 매운 겁니까? 전 매운 거 못 먹는데.]
[요망한년 : 아, 매운맛인데… 매운 거 못 먹어요?]
[나 : 아… 예전에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 매운 건 못 먹어요.]
해준다는데 알아서 처먹지는.
다른 놈이 본다면 눈치 더럽게 없다는 말을 하겠지만, 최종택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성욕 관련해서 딱히 가리는 건 없는 그는 음식에 있어서는 꽤나 까다로운 편이다.
신 것도 싫어하고 너무 짠 것도 싫다.
그 사이의 중도를 지키는 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게 매운 맛이었다.
예전에 잘못 먹었다가 배탈나서 3일을 고생한 적이 있었거든.
조금씩 전자로 저울이 더 기울어지고 있을 때.
[요망한년 : 뭐, 못 드신다니까 어쩔 수 없죠. 그냥 저 혼자 먹고 있을게요.]
[나 : 미안해요. 다음에는 꼭 먹을게요.]
[요망한년 : (눈을 가늘게 뜬 여우 이모티콘)]
그리 톡을 보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요리도 해주고 다정하게 대화도 하고 약속도 잡고하는 모습이… 꼭 연인 같지 않은가. 연애 한 번 안 해본 모솔인 최종택으로선 상당히 이질적인 기분이었다.
마음이 간질간질한 게 진짜 묘하네.
이게 연애세포라는 건가 싶던 최종택이 예나를 떠올려봤다.
그녀와 진심 어린 관계를 맺었을 때를 생각하니 마찬가지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두 명이 다른 여자들이랑 뭐가 다른 거지?
'흠.'
잠시 생각하던 최종택이 결론을 내렸다.
'원래 진짜 섹스를 하면 그런가보네. 많이하면 더 많이 느낄 수 있겠지?'
역시 뇌에 든 게 섹스밖에 없는 남자였다.
어쨌거나 썩 나쁘지 않은 감정에 피식 웃으며 도로 입었던 바지를 다시 내리고 있을 때였다.
[요망한년 : (사진)]
[요망한년 : 진짜 안 올 거죠?]
"…어?"
사진을 클릭한 최종택이 딱딱하게 굳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그의 주니어가 어서 꺼내달라는 듯 바지를 뚫을 기세로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사진이랍시고 보낸 셀카가 너무 야하다.
나체도 아니고 얼굴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터벨트를 입은 채 슬쩍 꼰 다리라인이 너무 탐스럽다.
지구상의 어느 남자가 저 다리를 보고 참으랴.
육감적으로 들어간 허리와, 섹스럽게 튀어나온 골반 라인을 따라 떨어지는 우유처럼 새하얀 다리.
그리고 그 다리를 더욱 섹시하게 꾸며주는 가터벨트까지.
'오우야.'
미니스커트라고 하기도 민망한 치마에 봉긋한 가슴까지 잘 드러나는 구도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그가 섹시 대회 심사위원이었다면 분명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만점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꿀꺽.
다리를 꼬며 드러난 사이로 연분홍 색의 속살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살짝. 한데 오히려 그 살짝 드러나는 점이 꼴림을 더욱 자극시킨다.
예로부터 벗는 것보단 반쯤 벗는 게 더 꼴린다는 말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이건 못 참지.'
이걸 어떻게 참아.
저 다리를 보면 간디도 오우야 소리가 절로 나올 거다.
저도 모르게 확대해서 보고있던 최종택의 표정이 굳건해졌다. 그리곤 언제 딸을 치려했냐는 듯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며 카톡을 하나 보냈다.
[나 : 딱 대]
역시 전 처녀비치는 언제나 옳았다.
-
그 뒤의 기억은 흐릿했다.
그저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는 기억만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백보아 집 앞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온 적이 있었는데…
슬쩍 시선을 내려보니 옷차림도 크게 다를 것 없이 비슷했다. 저녁인 것도 얼추 같고. 그때와 별 다를 것 없는 상황인데 느끼는 감정은 참 다르다.
[풀발이 유지중입니다.]
'음.'
하기야 그땐 병문안으로 온 것이고, 지금은 그런 카톡을 보고 왔으니 다를 수밖에.
그러고보니 그때 진짜 위험했었지.
아파서 죽으려하면서도 감정 없인 하고 싶지 않다고 소리치던 여자가 먼저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노크를 할까 고민하던 그가 이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집 앞이에요. 열어줘요."
-비밀번호 697458이에요. 누르고 들어오세요.
"……"
비밀번호 참…
어떻게 저런 뇌구조를 가진 애가 처녀였나 싶긴 한데 백보아답긴하다. 역시 전 처녀비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굳이 비밀번호를?"
그냥 저번처럼 문 열어주면 될 일 아닌가?
타당한 질문에 백보아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마저 야릇한 게 참 타고난 섹기가 이런 건가 싶다.
-앞으로도 올 일 많을 텐데 번거롭잖아요. 그리고… 지금 나가기가 좀 그래요.
"…왜죠?"
-들어와보면 알아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일단 알았다고 한 그가 통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앞으로도 올 일이 많다라. 그 말이 야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착각일까. 잠시 기분이 좋다가도 이내 고개를 휘저었다.
'아냐, 상대는 그 백보아야. 조심해야돼.'
저 요망한 여자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요즘에야 주로 좋은 방향이긴 했지만, 또 어떤 신박한 발상으로 장난칠지 모르니까. 그리 생각하며 비밀번호를 누르자 신세계가 펼쳐졌다.
"왔어요?"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 있지 않은가.
여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스포트라이트를 강하게 비추고 온갖 연출을 영혼까지 때려박는 장면.
혹은 만화에서 명암부터 그림체까지 달라질 정도로 힘을 준 장면 말이다.
'미친.'
지금 최종택의 눈앞에 그 장면이 보였다.
아니, 단언컨대 그 어떤 연출보다 지금 보이는 게 더 강렬하다.
그도 그럴게 백보아의 의상이 너무 파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