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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화 〉종택이 쟁탈전 (4) (95/124)



〈 95화 〉종택이 쟁탈전 (4)

95화.

뒷골이 당기는 그들의 모습에 백보아가 이마를 짚고 있을 때였다.


타앗!


"한눈 팔 틈이 있나 보네요?"

기회를 틈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이재희가 백보아를 향해 발검했다.
검집을 타고 더욱 빠르게 베어지는 기술.
검의 여제답게 그야말로  깜짝할 새에 목을 향해 휘둘러졌지만, 멍청하게 당해줄 그녀들이 아니었다.

슈욱!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이재희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 것이다. 이재희의 눈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백보아는 그새 신성력을 둘러 몸을 보호한 상태.
설상가상으로 아리아까지 끼어들고 있는 판이다.
이대로 공격을 감행했다간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아닌, 뼈를 주고 살을 취할 상황.

아니, 그걸 넘어서 단숨에 포위된 상황이다.


"길마님!"
"마스터, 피해요!"

그런 그녀의 뒤에서 도제와 마술사가 소리쳤다.
거리가  둘이 그녀를 도와주기엔 너무 늦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무려 검의 여제.
S급 헌터의 수준에 다다른 그녀에게 이런 난관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슈아악-!


그녀의 주위로 마력이 퍼진다 싶더니 뒤에서  자루의 검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파악! 팍!

"이익…! 이게 뭐야!"


단숨에 화살을 쳐내고 방패를 부술 기세로 박히는 검에 아리아가 기겁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파각-!

검의 위력이 어찌나 센지 정말로 방패를 부수려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위력.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나 싶었으나, 사실 저 위력은 이재희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었다.


'나이스, 차은혁.'


이재희의 눈이 잠시 마술사와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뒤틀린 남자와 여자가 그려진 카드를 들고 있는 차은혁, 그가 버프를 걸었던 것.


그의 능력  하나인 카드 뽑기였다.
마력을 담아 랜덤으로 뽑은 카드에서 나오는 그림에 따라 효과가 부여되는 능력.
간혹 팀원에게 디버프가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잭팟이 터지면 말도 안 되는 효과를 부여하곤 한다.

 뒤틀린 운명이  잭팟 중 하나였다.
1분간 공격력이 50%가량 늘어나는 대신, 버프가 끝난 후 3분간 이동속도가 30% 감소되는 버프.

나름 치명적인 리스크지만 상관 없었다.


'1분 안에 끝내면 돼.'

이재희, 그녀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실제로 아리아의 굳건한 방어도 그녀 앞에선 그저 나무목각 수준이지 않은가.


"지원하겠습니다. 조금만 버티세요!"


뒤에서 예나가 속사에 가까운 속도로 화살을 쏘아내지만, 그중 대다수가 이재희의 마법검에 튕겨나갈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그 수가 20이 넘겼지만…

화르륵-!


"흐흐, 나를 잊으면 쓰나!"

이재희에게 닿기도 전에 도제가 뿜어낸 화룡이  녹이듯 녹여버렸다.
백보아 일행보다 더 체계적인 팀워크.
5대 길드라는 위명에 전혀 누가 되지 않는 클라스에 팝콘을 집어먹던 최종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확실히 치긴 하네."


이재희야 저 정도  건 예상했다.
자신에게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S급에 준하는 실력자. 같이 던전을 돌았을 때  그녀의 실력은 결코 저것보다 적지 않았다.

최종택이 놀란 건 도제와 마술사였다.


'생각보다 더 호흡이 좋아.'


그들 개개인의 능력치는 딱 A랭크 헌터 수준이었다. 오히려 A랭크 헌터 기준으로만 치면 그리 뛰어나지 않은 편.
하기야 작은 것들이 어찌 강하겠는가.
그거야 넓은 마음으로 봤을 때 납득이 되지만, 저들은 지금 본인의 힘보다  뛰어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술사의 버프와 지원.
도제의 광범위 견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탱킹.
마지막으로 이재희의 압도적인 딜.

'…이대로 가다간 정말 지겠는데?'


백보아와 예나도 나름 크게 스펙업을 했다고 들었는데, 예상보다 이재희 팀이  강했는지 쪽도 못 쓴다.
안타깝지만, 이번 경기의 승자는 이재희일 듯했다.

'그럼 진짜 길드에 들어가야하나?'


애당초 본인이 동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저렇게 대련까지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들어가긴 싫은데… 거절하면 싫어하려나?
잠시 고민하던 최종택이 이내 말끔하게 상념을 지웠다.

'뭐, 상관없겠지.'


자기가 안 들어가겠다는데  어쩔 거야.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경기를 관람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경기장을 보니 여전히 밀리고 있다.

파각! 빡!


"으익! 다들 뭐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던전에선 그렇게 날아다니더만!"


방패를  아리아가 밀리다 못해 바닥으로 꺼질 듯 찌그러지고 있다.
백보아는 그런 그녀의 뒤에서 보폭에 맞춰 조금씩 물러나고 있고, 도제와 마술사는 그런 둘을 양쪽에서 둘러 싸고 있다.

누가 봐도 포위한 구조.
그 상태에서 전투가 끝나지 않은 건 아리아가 잘 버티는 탓도 있지만, 거의 예나의 견제 때문이라 볼  있었다.


파밧! 팟!

"쯧, 성가신 여자같으니라고…"
"도제, 여자부터 쳐야겠는데?"


초당 50발에 달하는 미친 화살을 쏟아내는 탓에 도제와 마술사의 발이 묶인 탓이었다.
심지어 일반 화살일 뿐인데 쳐내기도 벅차다.


콰직! 콱!


"아니, 무슨 화살이 이렇게 빠르고 세? 이건 사기 아냐?"

총알이 아닌가 의심되는 속도와 관통력. 도제의 대검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S등급 스킬, 유령시의 효과였다.

'이야, 교관님 각성한 건 알았는데 저 정도일 줄이야.'

심지어 호흡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다.
여유가 있는데도 침착하게 제 포지션을 지키는 게 FM의 정석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
뒤늦게 도제와 마술사가 따라붙었지만, 신속하게 거리를 벌리며 화살을 쏘아낸다.

덕분에 이재희는 혼자서  명을 마크해야했다.
하지만…

'피카츄가 먼저 무너지겠네.'

단신의 힘이 둘을 뛰어넘는다.
백보아와 아리아가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버프를 주고 방패로 막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어라?"

최종택의 눈에 묘한 게 들어왔다.


"보아 씨 표정이…?"

이런 위급한 상황임에도 백보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희미하게 올라간 한쪽 입꼬리, 요망하게 접힌 눈매.
확실하다. 저년 또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음이 통한 걸까, 순간 백보아의 시선이 최종택을 향했다.

휙휙-


손가락으로 뭐라 휘적거리는 걸 본 최종택이 그 의미를 그대로 해석해봤다.


'끝나고… 보상? 뭔 보상을 말하는 거… 아.'


무언가를 깨달은 것일까.
마침 스치고 지나간 그녀의 문자를 떠올린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 야한 생각이라니… 하여튼 요망한 년이야.'


정작 본인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섹드립을 하면서, 정작 남에게는 보수적인 그였다.
하여튼 그건 그거고.
갑자기 이 급한 상황에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이재희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백보아를 향해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자신만만하길래 긴장했는데… 역시 당신들은 저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마음가짐부터 전투력까지 모든 점에서 종택 씨에게 걸맞지 않아요. 그만 포기하세요."
"어머, 입만 산 여자는 인기가 없답니다."

싱긋 웃는 그녀의 반응에 이재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입만 산 걸로 보이나봐요?"
"히익! 나,  죽어요!"

그러며 방패를 내려친 검에 힘을 주자 방패의 일부가 움푹 들어가며 아리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백보아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스윽.

손을 편 그녀가 하나씩 천천히 접었다.

파각! 팍! 빠각!

그럴수록 아리아의 방패는 더욱 볼품없이 찌그러들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손가락을 모두 접은 순간.

콰드득-!


"으악! 뭐하는 거예요! 방패 부서졌잖아요"
"이걸로 끝입니다."


방패가 산산조각났고, 보호받던 아리아와 백보아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더는 탱커가 없는 상황.
예나는 도제와 마술사에게 묶여있느라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재희의 말대로 게임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백보아는 오히려 웃었다.
싱긋, 보는 사람이 열이 받을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1분, 지났죠? 능력치 감소 됐겠네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어차피 당신들은 제 손에 아웃될 것을."
"후후, 그건 모르죠."

의미모를 말을 내뱉은 그녀가 소리친 건 그때였다.

"콤비네이션 C 시작할게요!"
"…뭐요?"


이재희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 순간.
찌그러져있던 아리아와, 열심히 도제와 마술사에게서 도망치던 예나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라져!"


이재희로선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볼품없이 당하던 주제 자신이 디버프에 걸렸다는 이유로 기세등등한 꼴이라니. 준비한 콤비네이션이 있나본데 더는 위협적일 가능성이 없었다.

"제가 좀 약해졌다고해서 달라질 거라 생각하나본데…"


파앗!


백보아의 손에서 푸른 빛이 번쩍인 건 그때였다.
무언가 번쩍인다 싶더니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것과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퍼진  그후였다.


"이게 무슨…"
"뭘 그리 놀라나요? 겨우 20보센트의 위력일 뿐인데."

갑작스레 벼락을 얻어맞은 이재희의 표정이 멍해졌다. 위력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고작해야 C랭크 마법 수준의 위력.
S랭크에 필적한 그녀에게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든 위력이니까.

'무슨 속도가… 잘 보이지도 않았어.'

방심한  감안해도 미친 속도였다.
무언가 온다라는 걸 자각한 순간, 이미 벼락에 맞은 상태였으니까. 온 신경을 집중하면 피할 수야 있겠지만, 벼락을 신경 쓰면서 전투에도 몰두한다?

당연히 무척 힘들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난이도가 치솟은 느낌. 그에 이재희는 진심으로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저 궁수까지 끼어들었다면…'


도제와 마술사가 예나를 붙잡지 못했다면, 필히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테니까.
달리 말하면 이건 기회였다.

'저 궁수 여자가 끼어들기 전에 처리하자.'

20보센트인지 퍼센트인지.
하여튼 저 여자의 허세는 믿지 않기로 했다. 성직자 주제에 저런 사기 스킬을 꺼냈다는 건 전력을 보여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백보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트렝스, 천상의 하모니, 생명의 원천, 신의 가호… 대정령의 가호…"
"오오… 몸에 힘이 차올라요!"


이재희가 벼락에 맞아 당황한 사이 순식간에 아리아에게 버프를 총동원했으니까.
얼핏 느끼기에도 아리아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정도면 A등급에 필적할 정도. 단순히 방어력만 치면  이상이다. 하지만 이재희는 코웃음을 쳤다.


'본체를 치면 되지.'


탱커에게 버프를 줘봐야 방패도 없는 반쪽짜리. 결국 본체는  수밖에 없다. 속도라면 자신있는 그녀에게 있어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타앗!

그렇게 단숨에 땅을 박차 아리아의 옆으로 파고든 순간.
그녀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파지직-

"혼자 오셨네요?"

백보아, 그녀의 몸에서 신성력이 깃든 채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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