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종택이 쟁탈전 (3) (94/124)



〈 94화 〉종택이 쟁탈전 (3)

94화

6.
이틀.
간만에 집에서 무료하게 보낸 최종택에겐  시간이었지만, 백보아와 예나, 그리고 아리아에게 있어 무척 혹독하고 바쁜 시간이었다.
얼마나 바빴냐면,

[나 : 만나실래요?]


무료함을 참다못한 그가 체력훈련을 멈추고 보낸 톡에 답장도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세 명 모두에게.
그중 가장 답변이 빨랐던 건 17시간을 기록한 예나였다.


[전직차도녀 : 죄송합니다.  같이 훈련하는 중입니다.]
[나 : 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줄줄이 대답이 왔다.

[피카츄 : 으휴. 속없어 정말… 저 바빠요.]
[나 : 뭐가 바쁜데?]
[피카츄 : …됐어요! 말하기 싫어요.]

"……??"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지 그날 이후로 계속 저런다.
애완동물처럼 졸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녀답지 않았지만, 최종택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저러다 말겠지.'


그보다는 백보아가 문제였다.

[요망한년 : 며칠 참아요.]
[나 : …뭘요?]
[요망한년 : 글쎄요? 대련에서 이기면 말해줄게요.]

그녀만 유일하게, 잠수를 타기 전 먼저 선톡이 왔었다.
차마 대답하기 두려워 바지를 벗느라 그 후로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군요."
"후우. 매우 힘든 일정이었어요."

어쨌거나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드디어 약속 당일이 된 것이다.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녀들의 옆에서 지난 나날을 떠올린 아리아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꼭 이기자구요!"

파이팅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예나와 백보아가 피식 웃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한 소리를 하네요."

화기애애한 그녀들의 틈에 종택이는 없었다.
평소 늘 넌씨눈처럼 가운데 끼어있곤 했지만, 오늘만큼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와씨, 자리 좋네. 구성은 관람석도 다른 건가?'


오늘, 그는 참관인의 자격으로 온 것이니까.
그것도 300석이 넘는 관람석을 혼자 쓰는 특급 VVIP의 신분으로!
그런 만큼 장비도 좋았다.

'뭐 이렇게 푹신하냐. 한숨 자도 딱이겠네.'

웬만한 소파보다 더 푹신한 촉감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였다.


-확인되었습니다. 대전을 시작하기 앞서 간단한 룰 설명이 있겠습니다.

'아, 시작한다.'


스피커를 타고 전해져오는 목소리에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제 팀원들과 이재희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재희의 옆에 웬 남정네도  보였다.


'데리고 온다는 팀원인가.'

한 명은 거대한 도를 들고 있고, 다른  명은 웬 카드더미를 쥐고 있다.
포커라도 치려는 건가?


'잠깐만…, 카드랑 도?'

그 순간, 떠오른 기억에 최종택이 작게 감탄했다.


'도제랑 마술사네.'

도제 강혁진.
마술사 차은혁.
A급 헌터들로 구성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들. 실력은 몰라도 인지도로만 치면 이재희 이상인 헌터들이다.
한데 왜일까.


'…뭔가 되게 작아 보이네.'


예전엔 크게만 보였던 그들이 쥐처럼 작게 느껴졌다.
단순히 멀리서 봐서 작게 보인다는 뜻이 아니었다. 거인처럼 느껴지던 그들이 하찮게 느껴 진다해야하나.
그들보다 강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어우, 역시 작은놈들은… 이 묵직함을 따라올 수가 없지.'

그런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진행자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팀대팀으로 이루어지는 단판 승부이며 상대가 기권하거나 팀원 전체가 전투 불능이  시 승리합니다.


요약하자면 데스매치였다.
하나 일반적인 데스매치와는 조금 달랐다.


-전투불능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전에 지급해준 장치가 보이시나요?
“이거 말인가요?”


백보아의 말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작은 장치가 그녀의 검지와 엄지에 쥐어져있었다.
언뜻 보기엔 도청기처럼 보이는 장치.


‘저게 왜?’


갑자기  도청기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해설자가 기다렸다는  설명했다.

-그 장치의 이름은 DP103. 일종의 베리어 같은 개념으로 죽을 정도의 피해를 입으면 장착한 센서가 데미지를 흡수하고 부서집니다.
‘오오…’


그것 참 흥미로운 기능이었다.
심지어 A급 아티펙트라 성능도 뛰어났다.


‘확실히 구성이 자원이 빵빵하긴 하다.’

저거 하나에 억 단위를 호가한다는데…
한낱 테스트에 수억을 쏟는 곳은 구성 밖에 없을 것이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이 무대부터가 최첨단 장치로 이루어진 무대였다.


‘광역 베리어 값이랑 이것저것 생각하면 뭐… DP103은 껌일 수도 있겠네.’

이게 재벌의 스웩인가.
승부를 하기도 전에 이미  수 이기고 들어갔다.
그 패기에 백보아를 비롯한 일행들도 감탄스런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또한 기절하거나 메스 팀이 보기에 위험하다 판단되면 전투불능 처리하겠습니다.
“……”

평소라면 먼저 도발했을 그녀들이 가만히 있는 게  증거였다.
그 틈에 이재희가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겠어요? 지금이라도 무르고 싶다면 뭐…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어라.”


그러자 백보아가 놀랍다는 듯 고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정말 그래도 되냐는 듯한 눈.
그에 어림짐작한 이재희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녀의 입이 열렸다.


“쫄리셨나요?”
“……”


동시에 이재희의 고개가 멈추었다.
싱긋 미소 지은 백보아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도제와 마술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마스터가 말 싸움에서 지는  처음보네요.”
“제대로 한 방 먹으셨구만!”
“…조용히 해요.”

자신의 길드장이 꼽을 당했는데도 격분하긴 커녕 호탕한 반응이었다.
특히나 마술사는 경우엔 아주 배를 잡고 웃는다.


“……”

대중에겐 신비주의로 알려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가벼운 모습.
그에 당황스러운 건 어쩔  없었다.
뒤늦게 그녀들의 반응을 눈치  마술사가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늘 카리스마 있으신 마스터가 그런 말을 들은 걸 보는  처음이라…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그러며 손을 건넨다.
싱긋 웃으며 건네는 손을 맞잡은 백보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흑마법? 아니, 조금 달라.’

흑마법과 백마법이 조금씩 섞인 듯한 기운.
정확히 무슨 기운인지는 몰라도 성직자인 그녀로선  불쾌했다. 아마 그녀가 성직자인 걸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리라.
찌푸린 그녀와 눈이 마주친 마술사가 특유의 무심한 눈을 슬쩍 접었다.

-미안해요. 우리도 체면이란  있어서 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눈짓.
슬쩍 옆을 보니 도제는 흥미롭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이 많았다는 뜻.

‘기선제압이라…’


나쁜 건 아니었다.
초반에 흐름을 가져오는 건 하나의 전략이었으니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예나와 아리아가 발끈해서 앞으로 나왔다.

“지금 뭐하는…!”


스윽.

가볍게 손을 들어 그녀들을 막은 백보아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그런 그녀의 입고리가 묘하게 올라가있었다.
여유가 느껴질 정도의 미소.
그에 잠시 욱했던 예나와 아리아도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오히려 당황한 것은 마술사였다.


‘내 기운을 막고 있다고?’

자신이 조금씩 흘려보내던 기운이 우뚝 멈춘 것이다.
하나 그것도 잠시.
이내 순식간에 밀려나는 기운에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는 걸 느낀 그가 본능적으로 손을 뗐다.

“커헉.”

동시에 그의 입에서 탁한 기침이 나왔다.
내상을 입은 탓이었다.
다행히 급히  탓에 내부가 화끈거리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성직자에게 밀리다니…. 뭐하는 여자야?’


구성에서 마력으론 한 손에 드는 그다.
그런 그가 단순히 밀리는 정도가 아닌, 기운에서 압살당했다.
심지어 성직자에게 유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혹스러운 건 지켜보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여자…, 보통이 아니야.’

특히나 이재희가  정도가 컸다.

‘그땐 신성력을 감춘 건가…?’

둘이 힘겨루기를 하는 순간, 느껴졌다.
미국의 성녀에 필적하는 기운이. 이틀 전에 봤던 그녀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에 그녀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육체도 서포터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아.’


낭패였다.

‘저 궁수만 상대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활을 든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못해도 A급 헌터.
그것도 자신이 데리고 온 정예팀원들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다.
아니,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녀가 우세다.’


그런 상황에서 저런 서포터라니.
생각보다 치열한 승부가 될 것 같았다. 그게 못내 거슬렸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혼혈로 보이는 여자의 존재였다.

‘저 여자도 힘을 숨긴 건 아닌 것 같아.’


느껴지는 기운이  쳐줘도 B급이다.
B급 중에서도 눈에 띄지 않은 수준.
그에 비해 자신들은 어떤가.
준 S급인 자신과 비롯하여 A급 상위권인 도제와 마술사다.


‘이길 수 있어.’

아니, 이겨야한다.
다름 아닌 최종택이 걸린 싸움 아닌가.
저 여자들에게 지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있지만, 길드 입장으로도 너무 뼈아픈 손해였다.
그래서일까.

스윽.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이 관람석으로 향했다.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최종택에게 시선이 간 것이다.
그런데…

‘…없어?’

최종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멍청한 얼굴로 보고있던 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해설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단판승부이며 반칙을 할 때마다 레드 포인트가 1점씩 쌓입니다. 3점이 되면 탈락입니다.

때마침 룰에 대한 설명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에 당당하게 허리를 편 이재희가 손을 내밀었다.

“장담하신대로 좋은 승부 기대할게요.”
“그래요.”

마주 손을 잡은 백보아가 싱긋 웃었다.
여전히 속을   없는 얼굴에 다소 찜찜해졌지만, 이재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뭘 숨기는지는 몰라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기는 건 자신일테니까.
인사를 나눈 그녀들이 각자 진영으로 물러나자 해설자가 입을 열었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그럼 모의대전을 시작하겠…!
“아, 잠깐만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자연스레 이목이 쏠렸다.
그런 그들의 시선 속에 보인 것은, 다급하게 관람석에 앉은 최종택이었다. 자리에 앉은 그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와그작-


“음, 역시 이럴 땐 팝콘이지.”
“……”

정적이 내려앉았다.
 탄 듯 멍하니 있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백보아의 귀에만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관리자가 카라멜 맛으로 준비할  그랬다며 후회합니다.]

“…이 양반들이 진짜…”


어째 주위에 정상이 없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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