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종택이 쟁탈전 (2)
93화.
최종택은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다 여기에 있지?’
던전을 나왔다고 언질을 준 것도 아닌데 어찌 알고 귀신같이 나타났단 말인가.
그 순간, 그녀들의 몰골이 들어왔다.
오랜 시간 기다린 기자처럼 다소 초췌한 몰골.
‘…설마 기다린 거야?’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녀들은 쇼부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최종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 의지가 담긴 모습에 이재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저 여자들. 뭔가 있어.’
여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들은 분명 평범한 팀원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재희 또한 다소 공격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글쎄요. 그건 그쪽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그러며 싱긋 웃는 백보아.
한데 분명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차갑게 가라앉아있다.
그런 그녀와 일행들을 위아래로 훑어본 이재희가 우습다는 듯 말했다.
“당신들이 그 팀원들이군요. 최종택 씨가 정이 많으신가 봐요.”
“아 뭐… 그렇죠. 저희를 워낙 아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신경전.
그에 예나는 묵묵히 그 옆을 지켰고, 아리아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대화를 경청했다.
그리고 그 순간.
“흐응…”
이재희를 빤히 바라보던 백보아가 슬쩍 최종택을 바라봤다.
마치 마약감시반처럼 탐색하는 느낌으로 둘을 번갈아보던 그녀가 이내 묘한 어조로 말했다.
“좀 걱정했었는데… 별 다른 일 없이 클리어 하셨나보네요. 신기하다…”
“…?”
무엇이 신기하다는 걸까.
당사자인 최종택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인데 옆에서 듣던 예나와 아리아가 맞장구를 친다.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군요.”
“우와, 양심은 있었나 봐요.”
“…?”
점점 아리송해진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무슨 이유때문인지 그녀들의 경계심 가득하던 눈빛이 확 누그러들었다는 것.
아니, 그런 수준을 넘어 의기양양하다.
“……”
이해할 수 없는 반응.
한데 묘하게 기분이 나쁜 건 왜일까.
묘하게 불쾌한 상황에 이재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여자로서 진 느낌이야…'
그녀의 말투가 더욱 공격적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 그쪽들과 달리 저희 구성은 신속 정확을 추구하거든요."
"…어머, 저희랑 같은 지론이네요."
"흐음… 그런가요? 듣자 하니 그쪽은 B등급 던전 밖에 못 돌아보셨다고…"
"아하. 그쪽은 B가 질리셨나 보네요. 뭐… 그럴만하네요. 전 B가 너무 새로워서요."
"……?"
뒤늦게 말뜻을 이해한 이재희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슬쩍 특정부위를 가린다.
그걸로 사실상 게임은 끝이었다.
칼만 안 들이밀었지, 웬만한 남자보다 더 살 떨리는 전투에 최종택이 팔을 쓸어내렸다.
'와씨…, 라임 지린다.'
다만, 소름 돋은 이유가 조금 달랐다.
'B급 새로워… 메모…'
딜교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어 머릿속으로 입력하고 있을 때.
결국 백보아를 당해내지 못한 이재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최종택 씨가 욕심나긴 해도 싫다 하면 놓을 생각입니다."
"현명한 생각이시군요."
그에 백보아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하지만…!"
눈을 부릅뜬 이재희가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이유가 당신들 때문이라는 건 최종택 씨에게 너무 안타깝네요. 그에게 너무 피해 아닌가요?"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여기서 끼어든 건 예나였다.
안 그래도 그간 저 문제로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그때라면 맞는 말이라며 기가 죽었을 테지만,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그쪽보다 우리가 더 어울릴 것 같으니까요."
"…그 말은 5대 길드보다 당신들이 더 뛰어나다는 건가요?"
자부심이 담긴 말.
5대 길드를 걸고 넘어진만큼 그 무게는 클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대기업 길드도 저 말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 예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
오히려 더욱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전과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짙은 감탄을 흘렸다.
'그치, 대봐야 알지… 아. 아닌가?'
그러다 멈칫하더니 슬쩍 밑을 바라본다.
'흠. 요즘 묵직함을 생각하면 굳이 안 대도 될 것 같은데…'
뭘 자꾸 댄다는 걸까.
듣기만 해도 더러운 생각이었지만, 그에겐 나름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다.
이재희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그럼 대보실래요?"
"오우야…"
깜짝 놀란 최종택이 휙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그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얼굴이 붉어진 이재희가 차갑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 있어 보이는데…말로만 그런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그럼 누가 더 최종택 씨에게 어울리는 팀인지 승부할까요? 인원수 맞춰서 이긴 사람이 그의 팀이 되는 걸로. 당연히 세바스찬은 데려오지 않을게요."
"……"
그 제안에 처음으로 예나의 입이 다물어졌다.
마음 같아선 흔쾌히 수락하고 싶지만, 감정적으로 정할 수는 없었다.
아리아와 백보아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니까.
'…이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심 걱정되었다.
아무리 자신과 백보아가 각성했다고 해도 상대는 5대 길드.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동료들에게 향했다.
'아….'
그러자 마주친 백보아와 아리아의 확고한 눈빛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뭐해요? 죽여버리지 않고.
-딱 대요.
예나가 피식 웃자 백보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래요. 어차피 저희가 이길 테니까요. 그렇게까지 미련이 남으시다니까 수락해드릴게요."
"…자신감이 보기 좋네요.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뭐라 말하려던 이재희가 이내 말을 끝마쳤다.
괜히 입을 더 열었다가는 저 망측한 요녀한테 페이스가 말릴 걸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종목은 뭐로 할 거죠? 타임 어택?"
"아뇨, 그냥 깔끔하게 팀 대 팀 대련으로 하죠. 다들 괜찮죠?"
예나와 아리아가 수긍하자 이재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도 인원수를 맞춰서 오도록 하죠. 물론 S급인 세바스찬은 데려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걱정할 게 있나요. 날짜는요?"
"…이틀 후로 하죠."
"좋아요."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홱, 등을 돌린 그녀가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으로 향했다.
이내 리무진을 타고 떠나자 백보아 일행도 결연한 얼굴이 되었다.
"아주 혼내주자고요. 백보센트 다 쓸 거예요."
"어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하다니. 어림도 없죠!
"동감입니다."
그리곤 저들끼리 각오를 다지더니 똘똘 뭉쳐서 떠난다.
덕분에 최종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뭔일이여.'
분명 스카웃 제의를 받은 건 자신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남아있다.
심지어 떠난 사람들끼리 대련을 한단다.
어어, 하는 사이 폭풍이 지나간 상황에 최종택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다 같이 팀하면 안 되나?"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가 평화로운 일인데.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난 모르겠다.'
될 대로 되지 않을까 싶었다.
5.
한편 그 시각.
서리 길드 본부 길드장실.
-구성이 결국 움직였습니다. 이번 던전이 2번째 기회인 것으로 보입니다.
"알겠어요."
연락을 끊은 이설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입에서는 흐음…, 하는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비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혹시라도 그녀의 집중에 방해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툭. 툭.
소리는 제법 오래 이어졌다.
좀 전까지 처리하던 일과는 단위부터가 다른 수준.
'고민이 많으신가 보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무려 세계랭킹에 들만한 인재를 얻느냐 뺏기느냐의 문제였으니까.
심지어 그 대상이 오랜 시간 지켜 봐왔던 인물인만큼 뺏기면 그만큼 배 아픈 일이 없었다.
툭.
그게 못내 아쉽다고 생각했을 때, 소리가 멈추었다.
그 대신 고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깝네요. 암캐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게."
"……"
그리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비서로선 깜짝 놀랄 모습이었다.
'…길드장님이 후회를 하셔?'
처음 보는 모습이었으니까.
늘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그녀는 결정 내린 것에 후회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해결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게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니까.
"크나큰 인재를 놓치게 됐네요."
그런 그녀가 후회를 한다는 건, 달리 말해 방도가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최종택을 서리 길드로 데려올 방도가.
물론, 차선책은 있었다.
"비서실장이 키우는 암살자가 그와 인연이 깊다 했었죠."
"유연을 말하시는 거군요. 듣기로는 승급시험때 섬의 보스를 잡기 전까지 붙어 다녔다고 했습니다."
"좋네요."
길드로 데려올 수 없다면, 직접 그의 팀에 가면 되지 않은가.
다행히도 서리 길드에는 적합한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보낼 수는 없겠어요. 그의 팀에 필요한 건 원거리 딜러이니까요."
"그 말씀은…"
"한지수, 그녀를 보내도록 하죠."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나.
하지만…
"…한지수라면 최근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길드원입니다. 조만간 A급 던전에 들어가기로 한 아이인 만큼 앞으로도 이름을 떨칠 텐데…"
비서실장의 우려를 이설이 단호하게 끊었다.
"그를 같은 편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해요."
"……"
그 말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멍청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한지수가 뛰어나다 해도 최종택의 가치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알겠습니다. 그녀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인 이설이 다시 서류를 꺼냈다.
[S급 던전 허락……]
-곧 출몰할 것으로 추정되는 게이트가……
-S급 헌터의 도움……
무심하게 바라본 그녀가 싸인을 하려던 찰나였다.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S급이라….'
자신이 한참 전에 발을 들인 영역.
그리고 아직까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고 역대급이자 최단 시간으로 발자취를 남긴 남자는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까.
'기대되네.'
묘한 얼굴을 한 그녀가 다시 서류에 싸인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