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미녀 길드장과의 던전 탐방 (4)
90화.
9.
흔히 병 맛 영상을 보고나면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내가 뭘 본 거지?
두 눈을 의심하고, 두 귀를 의심한다.
지금 이재희가 보이는 반응도 그와 비슷했다.
‘…저게 보상으로 얻은 스킬이라고?’
어찌 저런 스킬이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가치관과 상식이 깨지는 기분이었다.
멍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후훗, 웃음을 흘렸다.
‘크… 존나 멋있어. 이러니까 여자들이 뻑이 가지.’
정상적인 남자라면 과연 그런 생각을 할까.
하지만 그는 최종택이었기에 기세등등한 얼굴로 어깨를 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이재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망측한… 아니, 이상… 아…”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한참을 버벅이던 그녀가 비로소 한 마디 말을 완성시켰다.
“…그게 새로 얻은 스킬인가요?”
“어… 뭐, 그렇죠?”
정확히 따지면 새로 얻은 스킬과 기존의 스킬을 융합한 스킬이긴 한데….
설명하기가 힘들었기에 그냥 수긍했다.
고간포나 자박꼼에 대해서 말하기는 좀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복잡하니까.
“아…”
하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재희는 탄식을 흘렸다.
‘아수라… 당신은 대체 어떤 존재였던 것입니까….’
그때, 기절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뜻밖의 안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심해의 길잡이들이 당신을 인도하려 합니다.]
“길잡이?”
“…인어네요.”
이재희의 말에 최종택의 눈이 부릅 뜨였다.
마약을 찾는 약쟁이처럼 충혈 된 눈으로 시선을 돌리자 보였다.
스으으-
어두운 바다 위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마치 어둠을 밝히는 반딧불처럼 사방에서 바다를 거닐고 다가오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와…”
그에 최종택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이재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기둥 뒤로 피해요!”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뒤로 물러났다.
한데 인어들의 속도가 생각 이상이었다.
파바밧- 파앗!
그들이 뒤로 빠지자마자 목표물을 발견한 매처럼 빠르게 달려든 것이다.
순식간에 모여드는 빛에 이재희가 이기어검을 사용했다.
인어의 수보다 더 많은 검이 바다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애꿎은 파도만 찌를 뿐이었다.
“…쯧.”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덕분에 기둥 뒤로 피할 시간을 번 것이다.
우뚝.
목표물이 사라지자 인어들의 움직임 또한 멈추었다.
맹렬하게 뽐내던 빛도 점차 사그라져 은은한 빛을 낼 뿐이었다.
하나 그로인해 드러난 미모 때문인지 오히려 더 빛이 나는 느낌이었다.
“…어렵네요.”
기둥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최종택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재희가 동의한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죠. 인어는 날세서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미리 대비해서 피하는 게 가장 좋아요.”
“음, 그거 말고요.”
“…?”
그럼 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최종택은 상념에 빠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와, 씨바… 뒤졌다. 존나 예뻐…’
진짜 인간답지 않은 외모다.
웬만한 S급에 준하는 외모와 투명한 피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까지.
거기에 은은한 빛까지 내니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인어가 나타났을 때 유혹되어 바다 속으로 들어간 헌터가 있다더니…’
왜 그런지 이해가 된다.
솔직히 남자라면 이건 못 참지.
그 정도로 완벽한 미모에 최종택이 이마를 탁 치며 생각했다.
‘와씨…, 인어는 어따 박아야하는 거냐.’
상반신은 완벽한데, 하반신은 흔히 아는 인어의 모습이었다.
다시 말해 가슴은 달렸는데 구멍은 사라진 것이다.
인어랑 할 건 아니었지만, 저 모습을 보니 내심 궁금했다.
그 생각 때문일까.
“어허헣…”
“……”
바보 같은 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재희가 눈썹을 찌푸렸다.
척 봐도 불순한 눈으로 인어를 보는 눈빛이 거슬렸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거 아시나요?”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입술을 빼죽 내민 그녀가 지나가듯 말했다.
“인어는 체외수정이라 교미를 하지 않아요.”
“아…”
그러나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최종택의 눈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아아… 아…”
마치 산타는 없다는 말을 들은 아이처럼 꿈과 희망이 박살 난 얼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던 그가 이내 무릎을 꿇었다.
뭐라 할 말이 많은지 입을 열었다가도 말문이 막히는지 도로 닫는 모습에 이재희가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진짜 정상 아니야.’
새삼 느끼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하나 던전은 그런 그를 기대려줄 정도로 선량하지 않았다.
[웨이브에 대비하십시오]
어김없이 나타난 메시지에 이재희가 자세를 잡았다.
"…얼른 준비해요."
"인어…"
그에 최종택도 슬픈 얼굴로 검을 들었다.
그렇게 두 번째 웨이브가 들이닥쳤다.
10.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았습니다.]
[다음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10 : 01 . 32]
"후우."
수차례의 웨이브를 막은 끝에 나타난 메시지에 이재희와 최종택이 자세를 풀었다.
이재희가 기지개를 키며 말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네요."
5번가량의 웨이브 끝에 얻은 꿀 같은 휴식이었다.
어느새 해도 완전히 저물어 짙은 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누워서 자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더 밤이 깊어지기 전에 텐트를 쳐야했으니까.
'아…'
동시에 그녀는 자각했다.
'텐트 어쩌지….'
텐트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갑자기 던전이 바뀌어 웨이브가 친 탓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건 제법 큰 문제였다.
'남녀 둘이서 한 텐트라니…'
물론 그녀가 남자와 필드 던전을 처음 와보는 건 아니었다.
그중엔 단둘이 밤을 보낸 적도 많다.
하지만 지금처럼 같은 텐트에서 한 이불을 덮었던 적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그렇지 않나. 날 이상한 년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무엇보다 그게 걱정이었다.
섹스어필이나 하는 사람으로 여기면 어쩐단 말인가.
구성의 위엄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그런 인식으로 각인되긴 싫었다.
그녀가 눈치 보듯 힐끔 최종택을 곁눈질했다.
"……"
그러자 보였다.
아련한 분위기로 바다를 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무슨 세상의 멸망을 보고 온 사람처럼 촉촉하게 젖은 눈을 하던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체외수정이라니… 왜 인이 붙은 거야 그럼…"
"……"
그 기가 막힌 모습을 보며 이재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겠다.'
그에겐 생각이라는 게 없어보였다.
자신감을 찾은 그녀가 당당하게 최종택을 불렀다. 그리곤 터덜터덜 걸어온 그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말했다.
"물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아요. 아무래도 텐트 하나로 자야 할 것 같은데… 불편해도 참아주실 수 있나요?"
"아."
그래도 부끄럽긴 했던 걸까.
살짝 말끝을 흐린 그녀의 말에 최종택이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남자는 항시 텐트를 구비해놓거든요."
"…??"
너무도 당당한 발언.
이해할 수 없는 드립에 이재희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척 봐도 이해하지 못한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아… 남자가 아니라 이해를 못 하네. 보아 씨였으면 빵 터졌는데…'
회심의 드립이었건만.
어찌 이런 환상적인 드립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래서 처녀는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처녀는 비치 처녀다.
그런 그의 반응에 이재희는 더욱 아리송해졌다. 마치 부장님의 드립에 웃지 못한 신입이 느낄 법한 어색함.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느껴졌다.
'…뭔진 몰라도 이해하면 안 될 것 같아.'
구성의 길드장답게 훌륭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캠핑 장비를 꺼내자 툴툴거리던 최종택도 어느새 옆에 붙어서 돕기 시작했다.
텐트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건 여기요."
"아, 그거 꽉 잡아주세요."
이재희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됐으니까.
심지어 최첨단 장비라 그런지 대부분 살짝 손 보면 자동으로 완성되는 구조였다.
그렇게 완성된 텐트를 보며 최종택이 작게 감탄했다.
'와… 되게 퀄리티 있네.'
아무래도 텐트이다보니 사이즈가 그리 크진 않았다.
혼자 자기엔 크고, 둘이 자기엔 작은 정도?
하나 디자인이나 장비의 편의성은 웬만한 캠핑카 수준이었다. 이게 정말 텐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별의별 게 다 있다.
'내부는 어떠려나.'
궁금해진 최종택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처럼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그래도 역시 작긴 하다.'
침낭이 하나라고 하던데.
이 정도 사이즈면 두 개를 가져와도 어차피 다 깔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침대를 봐서일까.
몸이 나른해지는 게 오늘 하루 쌓였던 피곤함이 싹 몰려왔다.
풀썩-
'어우.'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드러누운 후였다.
포근하게 감싼 이불에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자 살짝 당황한 듯한 이재희가 보였다.
"아…"
그제야 그녀를 자각한 최종택이 벌떡 일어났다.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단둘이 같이 자는 거잖아?'
그녀와 자신이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멈칫하던 그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지.'
어차피 그녀는 넘볼 수 없는 재벌 3세다.
모텔도 아니고, 던전 때문에 같이 자는 건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때문에 최종택은 의외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벌써 1시간 지났어요."
"아… 그게…"
그러자 이재희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설마 저리 태연하게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쩔 줄을 몰라하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쪼르르 다가왔다.
풀썩.
조신하게 침낭에 앉은 그녀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저 옆에 와서 앉았을 뿐인데 벌써 자리가 좁게 느껴졌다. 차마 눕지는 못하고 머뭇거리자 최종택이 입을 열었다.
"편히 누워요. 왜 그러고 있어요."
"……"
이재희의 눈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눈만큼 머리도 복잡했다.
'…뭐야, 왜 이리 능숙해? 이런 경험이 많은 건가? 아니면 괜히 나만 의식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누구인가.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던 여자 아니던가.
필드 던전 경험도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았다.
"…알았어요."
오기가 생긴 그녀가 당당하게 그의 옆에 누웠다.
화악.
'…어라.'
그러며 확 풍겨온 체취에 최종택의 몸이 살짝 굳었다.
분명 별 생각 없었건만.
약간의 땀 냄새와 샴푸 냄새, 그리고 그녀 특유의 체취가 전해져오니 기분이 묘해졌다.
하아, 하아…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숨결도 한몫했다.
밑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느낌에 최종택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작게 했음에도 워낙 조용해서인지 크게 들려왔다.
"……"
"……"
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
방금까지 떠들던 최종택도 입을 다문 채 멍하니 누워있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메시지 창이 보였다.
[08 : 49 . 31]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얼른 자야 하는데…'
1시간 남았을 때는 깨야 안전한 걸 생각하면 빨리 자야 했다.
한데…
'괜히 신경 쓰이네.'
몸에 조금씩 닿는 부드러운 감촉에 온 감각이 집중되었다. 땀을 흘렸을 텐데 왜 살결이 저리 부드럽단 말인가.
헌터의 신체란 알다가도 모를 신체였다.
'…기분이 이상해.'
그리고 그건 이재희도 마찬가지였다.
팔이 그의 근육 진 팔뚝에 닿을 때마다 몸이 흠칫 떨렸다.
최대한 안 부딪히려고 하는데도 텐트가 좁아서 그런지 계속 맞닿았다.
오히려 움직일 때마다 더 맞닿는 느낌.
'빨리 자야 하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신경 쓰여서 미칠 것 같았다.
'왜 이리 신경 쓰이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구성의 일원이 되기 위해 열중하다 보니, 일상적인 생활을 못 해본 그녀였다.
하나, 그런 그녀의 관점에서 봐도 이건 알 수 있었다.
'…설마 내가 저 남잘 좋아하는 건가?'
이건 설렘이라는 것을.
그걸 자각하는 순간, 그녀가 질끈 눈을 감았다. 동시에 그간 최종택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어… 으음…'
한데 떠올릴수록 그녀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남자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봤던 그 석양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할 이유가 없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자나?'
문득 너무 조용하다는 걸 느낀 그녀가 뒤돈 채 소리에 집중했다.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진짜 잔다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홱 돌리자 그의 얼굴이 바로 앞에 보였다.
눈을 감은 채 편안한 숨을 내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만 설레발 치고 있던 거야?'
자신은 이렇게 복잡해하고 있었는데 누군 맘 편히 자고 있던 게 아닌가.
입술을 빼죽 내민 그녀가 휙 고개를 돌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도 잠이나 푹 잘 심산이었다.
'……'
하나 마음이라는 게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법.
휙.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가 최종택의 잠든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속눈썹이 길구나.'
분위기 탓일까, 그를 의식해서일까.
웬만한 여자보다 더 긴 속눈썹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밑으로 날카롭게 솟아있는 콧날과 적당히 발색 되어있는 입술까지.
-자빠트려.
순간, 그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평소라면 미친 소리라고 웃어넘겼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왜인지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아.'
저도 모르게 손으로 훑던 그녀가 뒤늦게 손을 뗐다.
'미쳤나봐… 내가 뭘 하고 있던 거야?'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고 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자는 사람을 두고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힌 그녀가 조심스레 그를 바라봤다.
'깨진 않은 것 같은데…'
푹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에 다시 조심스레 손을 뻗었을 때였다.
"…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