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미녀 길드장과의 던전 탐방 (3) (89/124)



〈 89화 〉미녀 길드장과의 던전 탐방 (3)

89화.

7.
드넓은 사무실.
운동장만  크기에 비해 아무런 인테리어도 하지 않아 다소 단조로운 분위기였다.
하나 그 중심에 앉아있는 노인의 기세는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타고난 권력가의 눈빛.
수많은 경력을 가진 영업자조차 그 앞에서는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다는 호랑이와 같은 눈.


"이번에 특급 유망주가 나타났다고 하더군."


 눈빛을 마주한 이재현은 담담했다.


"최종택이라는 남자 말씀이십니까?"
"그래. 사신 이설을 뛰어넘는 재능이라는 말이 자자하던데…"

그리 말한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손깍지를 턱에 괴며 말했다.


"네가 생각할  어떻느냐."


그러자 드러난 얼굴은 마치 뱀과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인상이었는데, 신기하게 호랑이와 같은 기세를 품고 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에도 이재현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세바스찬도 욕심내고 있다는 것 같더군요."


이태진.
대한민국 최고의 사업가이자 재벌인 노인은 바로 이재현, 그의 할아버지였으니까.
그 불굴의 사업가의 눈이 일순 탐욕으로 물들었다.

"호오… 세바스찬이?"

김수찬.
과거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능한 인재였다. 그만큼 이태진이 혈육을 제외하면 가장 신뢰하는 인물.
때문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이 유망주에게 관심을 보였던 건 사신 이설 때가 처음이었지. 그때도 그저 눈여겨봐야한다고 조언했을 뿐이었거늘….'


세바스찬이 얼마나 눈이 높은지.
그런 그가 욕심을 낼 정도의 인재라니.
상승세가 보통이 아닌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인재인 듯싶었다.


‘하기야… 두 달 만에 준 S급에 도달할 정도이니 당연하겠지.’


그게 이유였다.

“그래서 영입은 잘 되어가고 있나?”

이태진, 그가 발을 뗀 길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발을 뺐을 뿐, 현대사회는 헌터사회다.
강한 헌터를 영입하는 것만큼 중요한  없다는  이태진의 생각이었다.
이재현이 그걸 놓쳤을 리 만무.


“안 그래도 재희가 힘쓰는  같지만…,  안 풀리는 모양입니다.”
“흐음…”

그에 이태진에게서 짧은 침음이 새어나왔다.

‘그 똘똘한 아이가 실수를 했을 리는 없는데…’

예전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손녀다.
사랑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애꿎게도 어린 나이부터 검술과 화교를 갈고닦으며 키워진 아이.
 끝에 결국 각성을 하고 꽃을 피우려하는 아이.


‘딱한 녀석…’

때문에 그녀에겐 미안한  많았다.
언제부턴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슬픈 일이었다. 손녀에게 있어 더 마음이 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태진이 다소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네가 좀 도와주거라. 재희보단 네가 더 경험이 있지 않느냐.”
“안 그래도 힘을 좀 써봤습니다.”
“호오… 무슨 수를 썼느냐.”


당당한 손자의 모습에 이태진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그런데 왜일까.

“음…”


자신의 혈육이지만 기계 같던 이재현이 드물게도 망설였다.
마치 해서는 안  말을 꺼내려는 것처럼.
그 생소한 반응에 이태진이  궁금하다는  재촉했다.


“말해 보거라.”

끙, 혀를  이재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일명 자빠트려라 계획입니다.”
“……”

정적이 내려앉았다.
분위기가 차갑다 못해 싸해지는 걸 느낀 이재현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이마에 힘줄이 가득 차있고,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만화였으면 빠직, 소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저 새끼가…?’


실제로 이태진은 욱한 상태였다.
아니, 아무리 길드가 우선이라 가르치긴 했어도 그렇지.
연애 한 번 못해본 여동생에게 뭐?

“후우….”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뭐라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할아버… 아니, 회장님. 구성이 다시 권좌를 차지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재희를 파는 것도 아닌, 안주인이 되는 거라면 남는 장사아닙니까.”
‘…맞는 판단이야.’


손자가 한 판단은 지극히 옳았으니까.
안 그래도 지금 한국이 일본에게 밀리고 있는 추세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국민에게 있어 치부와도 같은 일.

‘최소 S급 이상… 아니, 분명 세계랭킹에 진입하겠지.’


그런 상황에서 세계랭킹의 씨앗을 얻는다면?
한국의 인지도가  뛴다.
당장은 몰라도 훗날 일본에게 밀리지 않을 수도 있을 터.
 시발점이 되는 곳이 구성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가져와야했다.
무엇이든 이득이 더  테니까.
결정타가 날아온  그때였다.

“무엇보다 재희도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애당초 자빠트리란다고 남자에게 관심이나 줄 애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땐 뭔가 있는  같아요.”
‘끄응…’

누구 손자 아니랄까봐 말도 저리 청산유수란 말인가.
 하나 틀린 말이 없다.
결국 이태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추진해.”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이재현이 뒤돌아가려던 찰나, 이태진이 짤막하게 덧붙였다.


“만약 일이  안 풀렸을 시… 네가 다시 현역으로 뛰거라.”
“…알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발언.
여러 의미가 함축된 말에 이재현이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온 그는 생각했다.


‘역시 할아버지도 기대가 많아 보이네. 녀석은  하고 있으려나.’


지금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8.


“미친 새끼인가?”


쪽지를 보자마자 이재희가 내뱉은 말이다.
자신이 내뱉고도 놀랐는지 흠칫 떤 그녀가 슥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못 들었는지 그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다시 집중한 이재희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아니… 미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고?’


장비를 몰래 빼돌리다니.
이게 오빠라는 사람에게서 나올  있는 발상이란 말인가.
하나 누굴 탓하겠는가.


“내가 직접 확인했어야했는데…’

 미친 오빠를 믿고 맡긴 자신이 죄인이지.
짙은 한숨을 내쉰 그녀가 힐끔 최종택을 곁눈질했다.


‘…어떻게 하지?’


우리 오빠가 당신 자빠트리랍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완벽한 준비를 해왔다고 호언장담한 게 조금 전인데 실수로 준비 못했다고 하기에도 창피했다.

‘하아…’


막막한 현실에 그저 한숨만 내뱉을 때였다.


띠링-

“…?”


그 한숨에 시스템이 화답했다.

[이질적인 기운으로 인해 던전이 변형됩니다.]
[소규모 레이드로 변경됩니다.]


“…??”


뜬금없다 못해 황당할 정도로 갑작스런 문구.
최종택의 반응도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의 앞에 뜬 문구의 내용은 그녀와 많이 달랐다.


[마족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던전 ‘석양의 파도’가 마족의 기운에 반응합니다.]
[소규모 웨이브로 변경됩니다.]


‘엥? 마족?’

갑자기 마족이 웬 말이란 말인가.
브리핑 때도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혹시나하고 이재희를 바라보니 그녀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전에 몽마를 흡수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그게 가장 가능성이 커보였다.
몽마를 흡수했다는 건 몸 안에 마족의 기운이 흐를 수도 있다는 소리니까.
다만,

‘그렇다고 던전이 바뀌나…’

그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침착함을 되찾은 이재희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드물지만…,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 소규모 웨이브는 몬스터가 줄어드는 대신, 몬스터가 강해지죠. 저희한테는 차라리 나은 일이에요.”
“…그렇군요.”


그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 많은 그녀가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기엔 애초에 던전이라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곳이니.


[던전의 변형으로 인해 웨이브가 앞당겨집니다.]
[00 : 00 . 21]


“곧 웨이브가 오네요.”


지금은 그보다 눈앞의 상황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웨이브가 오는 것은 정말 곧이었다.
말이 끝난 직후, 저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게 보인 것이다.


콰아아아-

“워…”

쓰나미처럼 거대한 파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웨이브라하기엔 다소 낮게 느껴졌다. 일반인이 워터파크만 가도 볼 수 있을 법한 사이즈의 파도.

스으윽- 스윽-

문제는 파도를 타고 밀려오는 어류들이었다.
처음 봤던 인디죠스부터 범고래처럼 보이는 놈과 가오리까지.
종류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하나는 동일했다.


“와, 크기 봐. 꼭 내 다리 같네.”
“…??”

뭘 들은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지만, 이내 이재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적어져서 그만큼 개채가 강해진 거예요.”
“오우야… 저게 적어진 거라니.”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데.
그럼 원래는 거의 수백 마리가 나타났을 거란 소리 아닌가.


‘A등급 할 만하네.’

역시 이래야 A등급 던전이지.
 그녀가 웨이브를 경험하고나면 쉽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지 이해가 됐다.

‘그래도 너무 많은데… 미리 없애는 게 좋겠어.’


피식 웃은 최종택이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이재희가 그를 가로막았다.


“곧 인어가  거예요. 웨이브는 기둥 넘어서까진 오지 않으니까 미리 대피해있죠.”
“……”


타당한 전략이었다.
본래 디펜스 게임의 핵심은 안전한 곳을 확보하는 것 아니던가.
사냥도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리를 확보한 후였다.


‘맞는 말이지.’

그런 면에서 이재희의 의견이 백 번 맞았지만, 최종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이재희의 팔을 슬쩍 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위험할  알면서도 하는 게 남자입니다.”
“……”

남자가 아니라 병신 같은데.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걸 애써 막은 그녀가 물었다.

“…방법이 있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생각 없이 저러는 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였다.
과연 종택이는 다 계획이 있었다.

“아수라를 잡고 얻은 스킬이 있거든요. 인어가 오기 전에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거예요.”
“…!”


그에 이재희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뒤로 물러나계세요. 위험하니까요.”

그리곤 앞으로 나아가는 최종택의 등을 기대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대체 무슨 스킬을 얻은 걸까.’

무려 S-등급 던전의 보스다.
그 보스를 거의 혼자 잡아내서 얻은 스킬이니 분명 범상치 않을 터.
안 그래도 강한 그가 사용하면 얼마나 강한 위력이 나올지 기대되었다.
그런 기대를 안고 나아가던 최종택이 작게 중얼거렸다.

“수라기…”

그러자 기운이 반응하듯 넘실거렸다.


사아아-


어둡고 탁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망자의 힘을 끌어다 쓰면 이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한이 돋는 기운.
이재희가 팔을 쓸어내렸다.


‘…오싹하다.’

서늘했다.
마치 무언가 일이 터질 것만 같다.


스으으-

기운은 계속해서 강해졌다.
최종택의 몸을 둘러싸던 기운은 빠르게 퍼져나가 주변으로 번졌다.
그 영향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때마침 석양이 저물며 노을이 진 세상이 서서히 잿빛으로 물들었다.


----!

 막히는 적막함.
마치  안에 들어온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양이… 진다.”


푸슉- 푸슉! 푸슈슉!

그와 동시에 울려 퍼진 소리에 이재희가 눈을 부릅떴다.

‘미친…!’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밑이 반짝인다 싶더니, 이내 지퍼 앞에서 무언가 쏘아져나간 것이다.
심지어 그 수가 보통이 아니었다.

푸슈슉- 푸슉-!

마치 화살 여러 개를 동시에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으로 뿜어진 고간포가 잃었던 색을 채워나갔다.
아름답게 그려지는 하얀 무언가를 보며 그녀가 입을 틀어막았다.


'...’

정신이 혼미해지는 광경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한데 더 놀라운 건 그 위력이었다.

팍! 푸욱!
-----!!!

정확히 머리에 꽂힌 고간포가 그대로 뚫고 지나간 것이다.
그야말로 원 샷 원 킬.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어류들이 모두 바다 밑으로 추락했다.

콰앙! 쾅!

진풍경이었다.
잿빛 세상에서 수십 마리의 어류가 바다에 추락하며 퍼지는 파도의 향연은.
이윽고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사라졌을 때.


“아…”

고간포가 지나간 자리만 색이 물든 세상이, 어느덧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사아아아아-

동시에 소리도 돌아왔다.
세상이 원래 이리도 시끄러웠나 싶을 정도로 가득한 소음.
마치 꿈을 꾸고 온 것만 같은 광경에 이재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가 뭘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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