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진(眞) 예나 (1) (84/124)



〈 84화 〉진(眞) 예나 (1)

84화.

8.
로또에 당첨되면 대개 반응은 비슷하다.
방을 뛰어다니며 기쁨을 표출하며 어떻게 돈을 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데 그 액수가 도를 넘어섰다면?

“아니… 뭐지?”

그때는 기쁨보다 의심이 먼저 든다.
지금 보고 있는 게 꿈이 아닌 현실이 맞는지. 어쩌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에 휘말린  아닐지.

“…이건 좀.”


지금 최종택의 상태가  그랬다.
국가비밀을 접한 회사원처럼 심각해진 얼굴로 입금된 액수를 확인했다.


-10,000,000,000원 입금.

억도 아니고 10억도 아닌 백억.
한숨 자고 일어나니 100억이 다이렉트로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 놀라운 현상에 최종택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니… 거기 있던 게 이 정도 가격이라고?”


10억은 받아봤지만, 이런 금액은 또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헌터생활을 하며 번 돈보다 던전  번 돌아서 얻은 돈이 더 컸다.
S등급 스킬이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진짜는 따로 있었다.
휴대폰 상단에 알림이 뜬 것은 그때였다.


[불감증여제]
[수신] [거절]


‘응? 전화?’


고개를 갸웃한 그가 전화를 받자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성의 길드장, 이재희입니다. 연락이 없으시길래, 제대로 입금확인 하신 건가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제야 현실임을 자각한 최종택이 퍼뜩 대답했다.


“예, 뭐… 확인하긴 했는데…”

망설이듯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이내 물었다.

“그… 던전에 있던  100억이나 됐나요? 100억이 입금되어있길래 잘못 입금된 건가 해서요.”

그들이 깬 던전은 S-등급 던전.
A등급 던전과는 벌이가 차원이 다르다 해도 100억을 벌 정도는 아니었다.
S등급 헌터들도 던전 한 번에 100억을 벌지는 못하니까.
꿀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잘못 보낸  꿀꺽했다간 문제가 커지니까…’

심지어 상대는 대기업.
괜히 욕심을 부렸다간 제대로 코가 꿰이는 수가 있었다.
아직 구성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그로선 피해야할 상황.

‘아까워도 줘야지.’


때문에 그는 바로 돈을 돌려줄 생각이었다.
한데…


-그 정도는 아니긴 했는데 저를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조금 더 쳐서 보냈습니다. 부디 받아주시길.
“아…?”


예상과는 아주 다른 대답에 최종택이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 실화냐. 조금 더  게 100억이라고?’


무슨 횟집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팁이랍시고 만 원짜리 한  건네준  같은 무심함이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재벌 스웩인가.
그녀에 비하면 정연아는 귀여운 졸부 아가씨였다.
쿨하다 못해 시릴 정도로 시원한 답장에 최종택이 구성에 대한 이미지를 수정했다.


‘와씨… 구성 가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과의 약속이나 백보아와 같은 동료들이 걸리는 것도 있었지만, 객관적인 판단이기도 했다.


‘돈 외에는 딱히 큰 메리트가 없으니까.’

협회에는 권 노아가 있으니까.
그의 장비의 값어치는 멀리 갈  없이 여의검만 봐도 알  있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기회.
구성이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노아의 장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이유였다.


-…혹시 다음 던전은 언제가 괜찮으십니까?
“아, 뭐… 저야 언제든 괜찮아요.”


그가 여유롭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
지금 상황에서 갑은 재벌3세인 그녀가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후딱 다녀오지 뭐.’


남은 2번의 기회를 빨리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게 말투에도 담긴 것인지, 이재희의 목소리가 조금 낮게 가라앉았다.

-…알겠습니다. 최고의 던전으로 구해오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던전이 정해지면 연락주세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어쩐지 자존심이 자극된 듯한 음색.
그것을 마지막으로 끊긴 전화에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내가 뭐 말실수 했나?”


놀랍게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갑질을 한 최종택이었다.
멋쩍은 것도 잠시.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던 그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다소 누리끼리함이 섞인 하얀 천장이 보였다.


‘심심하네.’


바쁜  익숙해진 걸까.
예전에는 백수생활이 그리 좋았는데, 지금은 따분해서 근질거린다.
통장잔액도 벌써 130억에 달하건만….


‘술이라도 마실까.’


간만에 술이나 마실까하는 생각에 그가 친구를 찾았다.

[최종변기 기두]
-상태 메시지 : 섬이다. 찾지 마라.


“…음. 쓸모없는 새끼.”


여전히 솔로인 친구 놈에게 작은 애도를 표하던 그가 멈칫했다.

“…가만, 따지고 보면 나도 솔로 아닌가?”


본의 아니게 자폭을 한 그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아무렴 어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놀만한 사람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그런 의미로 연락처에 들어간 그가 가볍게 스크롤을  번 내렸다. 동시에 휴대폰을 뒤로 던졌다.


‘때려 치자.’

절대 스크롤 한 번 내렸는데 마지막이라서가 아니었다.
휴대폰 대신 배개를 안은 그가 대자로 누워 생각했다.

‘음… 100억이라.’

예전부터 삶에 있어 돈은 그리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은 그였다.
그래도 막연히 돈이 많으면 좋긴 할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생각보다 별 거 없네.’

돈 쓰는 맛에 한 번 빠지면 답도 없다는데,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다른 거였다.
돈처럼 물질적인 것이 아닌, 심기체를 모두 이루는 무언가.

‘어쩔 수 없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결연한 얼굴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은 그가 조용히 전원을 켰다. 모든 장비를 갖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체력훈련이다. 최고기록 깨야지.”

역시 훈련만큼 알찬  없었다.

9.

띠링-


[최고기록 달성!]
[당신의 노력에 박수를!]

과녁이 모두 터져나가며 폭죽과 함께 호들갑을 떠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요란한 퍼포먼스.
하나  퍼포먼스를 보는 예나의 표정은 담담할 뿐이었다.
오히려 부족하다는 듯 다시 활을 드는 그녀의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아리아가 다가왔다.


“훈련 그만해요. 그러다 몸 다 상하겠네.”
“……”


힐끔.
그녀를 바라본 예나가 나직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하고 갈게요.”

그리곤 휙 고개를 돌려 다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에 아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서큐버스 때 이후로 하루도 훈련을 쉬는 날이 없다.
헌터로서 좋은 일이었지만,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랬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니 응원보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말려도 듣질 않으니 나도 덩달아 하게 되잖아. 말려야하는데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도 봐라.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는 그녀의 모습에 결국 자신도 방패를 들지 않은가.
말만 안 할 뿐.
그녀도 자신의 약함에 자괴감이 든 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방패를 들고 훈련에 합세했다.
이번에는 실전 훈련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가상전투시스템.
이전에 백보아와 처음 만난 날 셋이서 했던 것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멘티스]
[어둠의 암살자]

한데 나오는 몬스터가 죄다 날센 놈들이다.
궁수와 탱커인 그녀들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성. 하지만 아리아는 익숙하다는 듯 어그로를 잡았다.


“도발!”

아주 약간의 틈.
그 틈을 노리고 방패로 밀치며 도발을 사용한 것이다. 전투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본다면 천부적인 감각이라 칭찬할만한 일.
그리고 아리아가 듣는다면 황당해할 일이었다.

‘내가 이런 거 한 두  상대하는 줄 아나. 이젠 어림도 없다구요!’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각이었으니까.
그건 예나도 마찬가지였다.

파악! 파바박!
키에에엑!

어그로를 잡자마자 화살이 날아와 놈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하나같이 필살이라  수 있는 일격.
무조건 맞춘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격이기도 했다.


크아아악!


당연히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데미지에 놈들이 발악했다.
갑작스레 너무  딜이 박힌 탓이었다.
아리아가 급히 다시 어그로를 끌었지만, 한 마리가 최선이었다.

파앗!

아리아에게서 벗어난 어둠의 암살자가 곧장 예나를 노리고 들어갔다.
위급한 상황.
하지만 예나는 침착했다.

“스으읍.”

숨을 들이쉰 그녀가 이내 호흡을 멈추었다.
세상이 뚜렷해졌다.
암살자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또한 어떤 경로로 기습을 할 것인지. 빠르게 파악한 예나가 이내 시위를 놓았다.

슈우우우욱!
파아앙!

그녀가 가진 최강의 딜링기.
일명 차징 피어싱으로 만든 거대한 화살이 암살자를 몸을 꿰뚫었다.

“…!”

허공에서 복부가 뚫인 암살자는 비명도 못 지르고 절명했다.
그 사이 아리아도 멘티스를 제압한 후였다. 예나가 대부분의 공격을 멘티스에게 꼴아박은 덕이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실력.

“와, 대박… 실력 더 늘었네요.”

그에 아리아가 순순히 감탄했지만, 예나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론 부족해.’

일취월장한 것은 맞다.
하나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해선  된다.

‘과연  화살이 그 서큐버스의 몸을 뚫을 정도일까?’


약간의 피해를 줄 수는 있을 거다.
그게 문제였다.
몸을 뚫지도 못하는 게 최강의 딜링기인 자신보다, 구성에서 지원해줄 헌터들이 더 강할 테니까.


‘이대로라면 정말 구성으로…’

순간, 구성에 들어간 최종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많은 기사를 내며 화려한 데뷔를 한 그의 모습을 떠올린 순간,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그의 옆에는 자신이 없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그랬다면 종택 씨랑 같이 팀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아쉬움이었다.
더는 그의 옆에 설  없게 된다는 것에 대한 미련 정도.
하나 그 감정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분했고, 절망스러웠고 자신의 약함이 미웠다.


‘이대로는 안 돼.’


그렇게 변질된 감정은 이윽고 강박관념이 되었다.
그녀가 몸을 돌렸다.

“…어?”


초점 없는 그녀의 눈과 마주친 아리아가 흠칫 몸을 떨었다.
어딘가 위험한 모습이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만 같은 모습.
낯선 예나의 모습에 멈칫한 사이 그녀는 아리아를 스치고 지나갔다.
불길함에 그녀가 소리쳤다.

“예, 예나 씨? 어디가요! 훈련 마저해요!”
“……”


하나 예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뿐.
그 걸음 끝에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 오피스텔 앞이었다.

[503]

“……”

멍하니 문을 바라보던 그녀가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였다.

탁. 탁탁. 탁.
아앙…


“…?”

문 너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소리.
그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가 이내 문을 두드렸다.

뚝.

그러자 소리가 멈추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당황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누, 누구세요!?
“저입니다. 예나.”
-…예?


그러자 목소리에 담긴 당혹스러움이 더욱 커졌다.
심지어 다급함까지 담겼다.


-자, 잠시 만요! 지금 상황이 좀…! 힘이  많이 들어가서…
“…?”
-아, 아무튼 십 초만 기다려요! 금방 쌀… 아니, 열게요!
“…?”


…뭘 싸?
귀를 의심한 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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