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삼도류 (3)
83화.
7.
검기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절삭력을 높인 검기와 순도 높은 마력을 둘러 파괴력을 높인 검강.
마지막으로 심검의 경지가 있지만, 전설과 같은 것이라 예외로 두는 게 정석이었다.
사실상 검강이 마지막 형태인 것.
때문에 검을 다루는 자들은 모두 검강의 완성도로 상대의 검술을 파악하곤 했다.
그게 이유였다.
-저런 순도 높은 검강이라니…!
최종택의 삼도류를 보고 아수라가 경악한 이유.
-저깟 애송이가 검의 극의를 깨우쳤단 말인가!
스으으-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치던 새하얀 빛이 그치고 남은 뚜렷한 검강은 가히 극의라 칭하기 충분했으니까.
심지어 하나도 아닌, 세 개의 검이 모두 검강을 두르고 있었다.
천상의 검처럼 하얀 검신이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
그 경지를 직관한 아수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을 쳤다.
-아아… 저것이 검의 끝이란 말인가…!
한 검술의 끝을 보는 것.
그것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아수라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야말로 꿈에도 그리던 경지.
한데 그 경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아수라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있었다.
‘…저게 정녕 검의 끝이란 말인가. 저것이… 정녕!’
저런 혼종이 극의라니…
왠지 자신의 검의 길을 걸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는 입 밖으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파앗!
최종택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으니까.
순식간에 다가온 그가 무언가를 휘둘렀다. 동시에 날아오는 세 자루의 무언가를 보며 아수라는 생각했다.
‘마, 막아야해…!’
모두 막을 필요는 없었다.
단 한 자루.
유난히 치명적이게 솟은 검을 막을 생각으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삼도류(三釖流) 오의…”
최종택이 몸을 틀었다.
발을 뻗는 스텝부터 골반, 허리를 타고 어깨까지 이어지는 회전력이 곧 새로운 검로를 만들었다.
-…!
아수라의 눈이 커졌다.
부릅뜬 시야 사이로 휘몰아치는 검풍이 보였다.
모터처럼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검과, 오러를 담은 바람.
“진(眞) 폭풍섹스!”
-아아…
그것은 폭풍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무언가를 감지한 아수라가 온힘을 다해 몸을 감쌌다.
캉! 카앙! 챙!
콰가가가가-
휘몰아치는 폭풍 사이에서 아수라가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검만은 막아야해…!’
상대의 검술의 중심은 그 검이었다.
그 검만 격파한다면 저 삼도류도 자연스레 깨질 터.
그렇기에 지금은 버텨야했다.
웅크리고 버티다 이내 성체가 되는 매미처럼, 그에게도 기회가 올 테니.
한데……
‘어, 어떤 게 그 검인지 모르겠어…!’
너무 빨라서 분간이 안 간다.
실제로 몇 대 맞았는지 피가 나는 듯 했는데 결코 옅은 상처는 아니었다.
‘이대론 안 돼…!’
당장은 버틸 만해도, 저 속도를 생각하면 순식간에 분쇄기처럼 갈릴 터.
그걸 알기에 아수라도 열심히 발악했지만…
‘피할수가 없다…!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구사하는 거지…!?’
최종택의 괴상한 움직임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어깨와 발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한데 그보다 더 신기한 건 어깨보다 허리를 더 빠르게 튕긴다는 것이었다.
이게 사람에게서 나올 속도인가 싶을 정도.
‘기, 기분이 더러워…’
엄청난 속도로 후려 맞고 있는데 고통보다 더러움이 더 큰 건 착각일까.
-…피할 수 없다면! 정면승부를 하겠다!
결국 참다못한 아수라가 웅크린 채 몸을 내던졌다.
최종택과 그의 덩치 차이는 대략 4~5배.
속도에서 밀린다면 몸으로 때려 박는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으리란 판단이었다.
반쯤은 맞는 판단이었다.
쿠구구구-!
거대한 몸집으로 들이밀자 폭풍이뚫렸으니까.
이윽고 드러난 최종택을 향해 도약한 아수라가 온힘을 실어 언월도를 내려찍었다.
콰앙!
세 자루의 언월도와, 세 자루의 검이 부딪혔다.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휘몰아친 마력이 전쟁터를 뒤집었다.
공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까앙! 깡! 깡!
서로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충격파가 퍼졌다.
치열한 공방.
불꽃 튀는 싸움에 최종택이 내심 감탄했다.
‘와씨, 이걸로 저 검을 막네.’
오의라곤 생각했어도 정말 언월도를 튕겨내니 기분이 묘했다.
감탄한 건 아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놈… 남자군.’
상남자가 이런 건가 싶었다.
하나 그 감탄은 시간이 흐를수록 긴박함으로 물들었다.
콰앙! 쾅!
-크윽…!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승기도 잡지 못하고 뒷걸음질치던 아수라가 돌연 멈추었다.
탁.
‘…벽이라고?’
드넓은 전쟁터에서 코너에 몰린 것이다.
사실상 대등한 싸움이 아니라, 버티려고 발악했던 것. 그걸 깨닫는 순간 아수라의 얼굴에 자괴감이 가득 찼다.
쉬익-!
그런 그의 눈에 빠르게 휘둘러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파앙!
본능적으로 휘두른 언월도가 공중을 날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언월도가 바닥에 꽂히고, 이내 아수라는 빈손이 되었다.
검은 검사의 상징.
그 검을 모두 놓친 이상, 이미 진 거나 다름없었다.
-아아…
그 사실에 아수라는 짙은 탄식을 내뱉었다.
보였던 것이다.
“삼도류…! 74!”
자신을 향해 올곧게 찔러오는 세 개의 검이.
그중 가장 굵고 긴 것의 표적이 된 가운데 머리에게서 한이 시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푸욱!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찔린다 싶더니 이내 폭발음과 함께 몸이 터졌으니까.
한 시대를 풍미한 아수라의 죽음이라기엔 실로 허망하고 안쓰러운 죽음이었다.
철컹,
그 죽음을 선사해준 최종택은 근엄하게 검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쌍검을 검집에 집어넣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아직 한 자루 검이 남아있던 것이다.
슈우욱-
마치 검집에 검을 집어넣듯, 지퍼를 올리자 마지막 검이 모습을 감추었다.
“음…, 묵직하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S-급 던전, ‘아수라도’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최초로 진정한 검의 무덤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자격을 증명하셨습니다.]
[보상은 공적도에 맞춰 분배됩니다.]
[공적도 1위는 ‘최종택’님입니다.]
[1. 최종택 : 85%]
[2. 이재희 : 15%]
[공적 보상으로 S급 스킬 ‘수라기’를 획득하셨습니다.]
“…뭐? S급 스킬?”
그 보상을 확인한 최종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나름 쉽게 얻고 있다곤 해도, S급 스킬은 결코 쉽게 얻을 만한 게 아니었다.
평생을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헌터가 대부분일 정도.
‘S급 스킬이 던전 보상으로 뜬다고?’
이건 헌갤러에 올리면 입벌구라고 욕부터 먹을 일이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보상.
하나, 조금 생각해보니 충분히 얻을 법도 했다.
‘저 여자의 스킬과 관련된 특수 던전이었으니까… 어지간히 빡세기도 했고.’
그러니 이 보상은 달게 받으면 되리라.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장 스킬을 확인했다.
[수라기]
[등급 : S]
[설명 : 모든 마력에 수라기가 섞입니다.]
[검기나 마법 등, 마력을 다루는 모든 것들이 보다 강해지고 날카로워집니다.]
[숙련도에 따라 수라기의 농도가 달라집니다.]
“와…”
동시에 감탄이 나왔다.
“…씨발, 이거 얼마만의 정상적인 스킬이냐.”
늘 뭣 같은 스킬명과 설명만 보다가 정상적인 S급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짐승의 본능을 얻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아니, 뿌듯함으로만 치면 그때보다 더욱 컸다.
‘자박꼼이 아닌 경로로 S급 얻은 건 이게 최초 아닌가?’
그런 만큼 기대감도 컸다.
그가 설레는 마음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수라기.”
사아아-
그러자 불길한 기운이 그의 주위로 넘실거리듯 흘러나왔다.
“오오…”
아수라에게서 느꼈던 것과 흡사하다.
마치 새벽에 홀로 공동묘지에 간 듯한 서늘한 기운을 느끼던 최종택이 문득 손뼉을 쳤다.
“잠깐만… 이거 그럼 고간포 쓰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수라기와 파이어 오라가 섞인 고간포라……
잠시 상상의 나래를 그리던 그가 이내 감탄을 흘렸다.
‘뒤졌다.’
고간포가 한층 더 강력해졌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 문득 저 멀리 쓰러져있는 이재희가 보였다.
‘아 맞아. 힐 해줘야지.’
너무 전투에 집중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둘러 달려가 상태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위험해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준 S급 헌터.
그에 걸맞게 회복력이 좋아서 버티고 있던 것이다.
“…으으.”
그래도 고통스러운지 창백해진 얼굴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최종택이 곧장 이마에 손을 올렸다.
“패스트 힐.”
은은한 빛이 안에 스며들자 안색이 점차 편해지는 게 보였다.
‘다행이다. 정 안 되면 고간포라도 써야하나 싶었는… 음, 다행인 건가?’
최종택에겐 몰라도 그녀에겐 참 다행인 일이었다.
하여튼 효과는 확실했다.
1분가량 시간이 지나자 그녀가 눈을 뜬 것이다.
“어, 일어나셨네요.”
“아…”
멍하니 눈을 끔뻑이던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던전은…”
다급하게 말하던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눈앞에 뜬 클리어 메시지를 본 것이다. 그중엔 아수라를 잡고 나온 A+급 무기도 하나 있었다.
“아…”
주변을 둘러본 그녀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최종택 씨가 혼자 잡았구나.’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해야할 건 하나였다.
최종택과 똑바로 눈을 마주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구성의 길드원이 본다면 경악할 일이었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그녀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그녀의 정직한 감사인사에 멋쩍은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아… 뭐, 제가 들어가자고 한 거니까요.”
적당히 얼버무리자 이재희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똑 부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동의한 건 저입니다. 그러니 보상은 저희가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시체들이나 마정석과 같은 보상들도 모두 최종택 씨의 앞으로 분배하겠습니다.”
“어… 그래도 돼요?”
“물론입니다. 사실상 저는 한 게 없으니까요.”
그리 말한 그녀의 미소가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다.
검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했던 그녀이니, 이번 일로 많은 생각이 든 것이다.
‘뭐, 챙겨준다는데 나야 나쁠 건 없지.’
어찌됐든 최종택에겐 좋은 일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언제든 시간 나실 때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그렇게 던전을 빠져나온 그들은 곧장 해산했다.
생사를 함께했다고 보기엔 너무 심플하고 미련 없는 해산이었다.
물론 마음까지 무덤덤한 건 아니었다.
‘어우, 고간포 얼마나 세졌을지 설레네. 체력훈련 좀 해볼까.’
…체력훈련과 고간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우 설레하는 최종택이었다.
한편, 그가 설레하며 집으로 향할 때.
‘…그건 뭐였지?’
이재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아수라에게 당해 쓰러져있을 때, 흐릿한 시야로 얼핏 보였었다. 빳빳하게 선 무언가를 떠올리던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삼도류라니……”
범상치 않은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