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삼도류 (2)
82화
콰앙!
언월도가 내리꽂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그에 퍼뜩 정신이 든 이재희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보였다.
“어으… 존나 빡세.”
쌍검으로 간신히 언월도를 막고 있는 최종택이.
아니, 막고 있다 보기도 버거웠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와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검.
저건 간신히 버티고 서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결국 이를 악물고 버티던 최종택이 소리쳤다.
“어서 피해요…!”
“…아, 죄송합니다.”
그녀가 재빨리 물러나자 최종택이 곧장 검을 흘리며 몸을 옆으로 던졌다.
콰앙! 쩌적-
언월도가 꽂힌 바닥이 깨진 거울처럼 갈라졌다.
그 광경에 최종택이 식겁했다.
‘와씨… 실화냐.’
만약 검을 흘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머리가 저렇게 됐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최종택은 위축되는 대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아수라가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호오…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서 무지렁이 새끼인 줄 알았는데…
-제법 하는구나…
아수라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
하나 그걸 들은 최종택의 눈썹은 꿈틀거렸다.
마치 자존심이 상한 아이처럼 눈살을 찌푸린 그가 손을 풀었다.
‘와나, 이 새끼 날 무시해?’
어디 한낱 몬스터 따위가 저런 말을 지껄인단 말인가.
이건 참을 수 없는 상황.
“쌍검을 보여주지!”
발끈한 그가 곧장 아수라에게 파고들었다.
쾅!
쌍검과 언월도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하나 힘의 격차는 분명했다.
팡!
멀쩡한 아수라와 달리 최종택의 양손이 뒤로 튕겨나간 것이다.
드러난 빈틈을 향해 아수라가 언월도를 휘둘렀다.
‘어림도 없지!’
하지만 최종택이 더 빨랐다.
언제 뒤로 튕겨났냐는 듯, 그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깡! 까앙!
한 번, 두 번…
아수라의 언월도를 두드릴 때마다 최종택의 검이 튕겨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수라는 섣불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풀발 2단계 테크닉 모드]
‘보다 더 빠르게…!’
테크닉 모드까지 발휘한 최종택의 재빠른 공격 때문에 틈이 나질 않은 것이다.
아수라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귀찮은 놈이군…!
별로 위력적이지도 않은데, 튕겨낼 때마다 두세 번으로 돌아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최종택도 마찬가지였다.
까앙! 깡!
‘조금이라도 멈추면 죽는다…’
상식적으로 연속으로 빠르게 휘두르는데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마라톤을 전력질주로 하는 것과 같은 상황.
심지어 조금이라도 속력을 늦추면 바로 목이 날아간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후웅-!
그때 갑자기 사각에서 도가 날아왔다.
‘씨발…!’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숙인 순간, 여러 개의 도가 한 번이 쏟아져 내렸다.
‘미친.’
간발의 차로 피해낸 그가 이내 뒤로 물러나자 곧바로 아수라가 따라붙었다.
기껏 벌린 거리가 다시 좁혀졌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세 개의 언월도를 막으며 최종택이 쯧 혀를 찼다.
‘치사하게 삼도류가 뭐냐고 삼도류가…’
놈은 세 마리가 합체하여 탄생한 놈.
당연히 언월도도 세 개였다.
쌍검으로 하나를 막는 것도 힘든데 세 개가 날아오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제길…! 기술 명을 외치지 못해서 힘이 안 들어가…’
너무 긴박해서 입을 열 틈도 없다는 것이다.
페이스를 뺏긴 상황.
이대로 가면 결국 쓰러지는 건 놈이 아니라 자신이 될 터였다.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그때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수많은 검과 꽃잎이 천장을 수놓았다.
정신을 차린 이재희가 합세한 것이다.
푸슉! 파바박!
-크으… 거슬리게 하는구나.
아수라도 예상치 못했는지 허무하게 옆구리를 찔렸다.
하나 그뿐이었다.
수없이 날아드는 검을 상대하면서도 아수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양이 많기에 잠시 발이 묶였을 뿐.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최종택이 곧장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익숙한 촉감을 느끼며 그가 공중으로 알약을 튕겨 입에 넣었다.
까드득-
수많은 캡슐이 깨지며 기운이 솟구쳤다.
온몸이 부풀며 새빨갛게 물들었고, 내부는 터질 듯 맹렬하게 순환되었다.
이제는 익숙한 이명 속에서 알림이 울렸다.
[비이상적인 기운이 들어옵니다.]
[풀발 2단계 극의에 돌입합니다.]
‘주문 외울 시간 따윈 없다.’
그 속에서 최종택은 주문을 외우려던 걸 간신히 참아냈다.
지금은 일초가 중요했으니까.
파앗!
그런 그의 모습에 이재희가 작게 감탄했다.
‘뭐, 뭔가 더 빨라졌어…’
최종택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아수라의 뒤에 나타난 것이다.
까앙!
쌍검과 언월도가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좀 전과는 달리 팽팽한 힘겨루기였다. 한 치의 물러남 없이 꼿꼿하게 서있던 최종택이 자세를 바꾼 건 그때였다.
파앙!
-호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언월도가 허공에 튕겨 오르고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허를 찌른 검술.
그리고 그걸 완성시켜주는 근력과 유연함.
-제법이구나…
아수라의 눈이 드물게 감탄으로 물들었다.
감탄하는 것조차 일그러진 모습처럼 사나운 외관이었다. 수없이 몸을 헤집는 검을 견뎌내고 있다곤 믿기지 않는 여유였다.
터벅터벅.
심지어 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푸욱! 서걱-!
온몸이 난도질당하며 피를 흩뿌렸다.
몸 곳곳에 치명상으로 보이는 상처가 생겼음에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검의 주인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실망했는데…
-너는 좀 다르구나…
-진심을… 다해도 되겠어.
세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위압감에 최종택과 이재희가 침을 삼켰다.
‘…미친.’
‘어떻게… 저걸 견디면서 온다고?’
특히 이재희의 충격이 컸다.
비기와도 같던 검의 주인을 사용했음에도 너무 여유로워 보이지 않은가.
공중에 흩뿌려지는 피가 사실 피가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전력으로…
이윽고 놈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마치 선고하듯 내뱉은 그가 언월도를 크게 휘둘렀다. 척봐도 위협적인 움직임이었지만, 그들은 피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언월도가 노리는 건 그들이 아니었으니까.
쩌저저적-
균열이 간 바닥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시간이 멈추었다.
미니제트기처럼 움직이던 검이 제자리에 우뚝 멈췄다. 아름답게 떠다니던 꽃잎도 허공에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우주에 온 것처럼 몸이 붕 떠 있는 느낌. 이질감에 적응하지 못한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수라도…!
중력이 돌아온 건 그때였다.
후두두둑-
툭. 투둑.
아수라의 짤막한 외침에 이재희의 검과 꽃잎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에 맞춰 세상이 변했다.
투박하던 투기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전쟁이 지나간 듯한 전쟁터가 되어있었다.
-나의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갈라진 바닥과 폭우처럼 쏟아지는 검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아수라의 모습은 한층 더 거대해져있었다. 커진 건 덩치만이 아니었다.
‘미친…, 더 강해졌잖아?’
느껴지는 기운이 한층 더 강해져있었다.
지금까진 봐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 차가운 현실을 마주한 이재희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
그 소리를 들은 걸까.
고향에 온 듯 눈을 감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있던 아수라가 휙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눈동자가 이재희를 꿰뚫었다.
-그래, 네가 있었지…
-너부터 정리 해야겠구나…
“위험해요!”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감지한 최종택이 몸을 던졌다.
이재희를 밀쳐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수라가 한 발 더 빨랐다.
푸슉-
“커헉…”
아수라의 손가락에서 날아간 마력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꽈악.
떨어지는 그녀를 안아든 최종택이 곧장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밀친 덕에 심장은 빗겨나있었다.
‘회복력이 좋아. 상처를 치료하면 바로 전투에 참여할 수 있을 거야.’
판단을 마친 그가 패스트 힐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오만하구나…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다니…
“…!”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그녀를 안은 채 몸을 날리자 뒤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뒤를 돌아보니 바닥이 깔끔하게 갈라져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잡아?’
이게 정녕 S-급이라고?
S급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안 간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고간포를 써야하나…?’
어차피 이재희는 쓰러진 상태.
이제와서 고간포를 아낄 이유도 없었다.
‘그래, 똘똘이 너밖에 없다.’
판단을 마친 그가 곧장 고간포를 쏘기 위해 손을 내렸을 때였다.
쾅!
도약한 아수라가 공중에서 언월도를 내려찍었다.
다급히 손을 올려 쌍검으로 막아냈지만, 이번에는 버티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너만 믿는다…!’
이를 악문 최종택이 허리를 튕겼다.
그러자 눈부신 빛이 고간에서 뿜어져 나오며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콰가가가가-!
한층 더 강해진 위력.
이윽고 빛이 그쳤을 때는 일대가 쑥대밭이 된 후였다.
아수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잡은… 건가?”
그리 중얼거리는 순간.
-…더러운 기술을 쓰는구나.
아수라의 찝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을린 팔을 툭툭 털어낸 아수라가 한층 더 매서운 기세를 뿜어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한 여자가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충격받은 듯 최종택이 멍한 얼굴을 했다.
‘…고간포가 통하지 않다니.’
회심의 일격이었건만.
하나 놈은 충격 받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분노한 듯 쉴 새 없이 그를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까앙! 깡!
쌍검과 세 개의 언월도가 순차적으로 부딪혔다.
언뜻 보면 얼추 비슷해보이는 모습.
그러나 최종택 본인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풀발 2단계 극의를 사용하고도 밀리는 건 처음이었다.
‘저 삼도류… 존나 거슬리네 진짜.’
이게 다 저 언월도 때문이다.
자신은 쌍검을 쓰는데 상대는 거대한 언월도를 세 개나 쓰니 상대가 되겠는가.
심지어 고간포를 봐서 그런지 조준할 각도 주지 않는다.
콰앙!
“크윽…”
이윽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휘둘러진 언월도에 최종택이 바닥을 나뒹굴렀다.
벌떡 일어난 그가 다시 언월도를 막았다.
‘삼도류라니… 존나 비겁하… 아니, 잠깐만.’
그 순간, 무언가 뇌리에 번쩍였다.
‘삼이라고…? 삼…!?’
그의 표정이 도를 깨우친 승려처럼 변했다.
깨달음이란 본래 이런 걸까.
분명 입을 열 틈도 없이 긴박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멈춘 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최종택은 눈을 감았다.
‘아… 그래, 이도류로는 멋있지 않아.’
어째서 체위술이던가.
그 질문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체위술이란 본래 체위를 바탕으로 하는 것… 이깟 검으로 본래의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띠링-
어두워진 시야 속에서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그 알림을 들으며 그는 조용히 눈을 떴다.
피잉-!
[체위술의 오의를 깨닫습니다.]
그 순간, 기운이 솟구치며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풀발 2단계가 새로운 모습을 발합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풀발 2단계에 도달합니다.]
“진 거근 모드…!”
기운이 폭발했다.
-크윽…!
압도적인 마력의 분화에 아수라가 처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게 무슨…!
마력이 기둥처럼 솟아있었다.
너무도 선명한 마력에 아수라조차 눈 뜨고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
최종택의 변화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풀발 2단계 극의!! 한 곳에 모든 힘을 집중 한다!”
한 차례 괴성이 퍼지고,
투둑, 툭.
지퍼가 뜯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에 아수라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게 불길함이라는 걸 느낀 순간, 빛이 그치고 최종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위술 오의… 삼도류(三釖流) 쓰리썸!”
쌍검을 쥐고 당당하게 선 그의 모습은 좀 전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
그에 양 옆에 달린 머리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아직 검이 두 자루밖에 없는데 어떻게 삼도류란 것이지…!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그때 가운데 머리가 말했다.
-밑을 봐-!!
경악에 찬 음색.
늘 근엄하던 가운데 머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목소리에 두 머리가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보였다.
-아니…!
-이럴 수가…!!
고간 사이에 꿋꿋이 날을 세우고 있는 마지막 한 자루의 검이.
그곳에선 짙은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아수라를 보며 최종택이 근엄하게 말했다.
“이것이 삼도류란 것이다…!”
그 위압감에 아수라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순간, 세 머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저걸로 맞으면 안 돼…!’
저건 위력적으로도, 위생상으로도 치명적인 검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