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삼도류 (1)
81화.
5.
[‘전사의 성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격을 증명하십시오.]
“와…”
보스방에 들어선 최종택이 감탄을 흘렸다.
‘투기장인가?’
전체적으로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과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 교실만한 크기의 원으로 된 투기장이나, 그걸 감싼 거대한 관중석까지.
영화에서 보던 것과 흡사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관중석에 관중 대신 수많은 검이 꽂혀있다는 것.
‘와씨… 간지 터진다.’
한데 오히려 그게 더 멋을 더해주었다.
던전의 이름대로 정말 전사의 성지에 들어온 것만 같지 않은가.
이재희도 놀랐는지 한층 커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보스 스테이지는 처음이네요.”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녀의 헌터 생활동안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던전에 들어오기 전 느꼈던 긴장감이 조금 사라졌다.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호승심이었다.
쿠웅!
-자격을 증명하라…
“이번에는 제가 나설게요.”
“예?”
그게 이유였다.
반대 터널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괴수를 보고, 그녀가 최종택의 앞으로 나선 이유.
단순한 객기는 아니었다.
‘전력을 다하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
그녀가 느끼기에 저 보스는 강하긴 해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장소가 투기장이라 그런지 직접 부딪히고 싶었다.
“뭐… 그래요.”
“감사합니다.”
같은 생각이었기에 최종택도 순순히 수긍했다.
다소 아쉽긴 했지만, 자신도 중간보스를 혼자 잡았지 않은가.
‘본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자신과 비슷한 급의 실력자를 보는 건 처음이다.
그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놈은 천천히 다가왔다.
쿵! 쿠웅!
저벅저벅.
그런 놈을 향해 이재희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전사들이 싸움을 앞두고 마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두 명이 중앙에 도달한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걸음이 멈추었다.
‘…5m정도인가.’
그 대신 서로를 노려보았다.
상대의 강함을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 서로를 훑었다.
거기엔 최종택의 시선도 있었다.
‘뭔 도깨비처럼 생겼네.’
가까이 오며 드러난 놈의 외관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머리에 솟은 뿔이나 험상궂은 얼굴, 한손으로 가볍게 든 쇠몽둥이까지.
일본의 오니에 가까운 형태였다.
느껴지는 기운도 서큐버스에게 꿇리지 않을 정도.
‘좀 이상한데.’
그래서 의문이었다.
‘강하긴 하지만… S-급이라고 하기엔 너무 약하지 않나?’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이재희도 이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혹시라도 너무 강한 상대면 호승심을 버리려했건만….
‘이건 예상외인데.’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러운 상황.
‘뭐가 더 있을지 모르니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좋겠어.’
판단을 마친 이재희가 허리춤에 멘 검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녀의 뒤로 언뜻 봐도 수백이 넘어가는 검이 기운과 함께 주위로 퍼졌다.
사아아-
허공을 수놓은 수많은 검들.
그리고 그 주위를 감싸듯이 돌아다니는 꽃잎들이 어울러지는 아름다운 광경.
“제 전력을 보여드리죠.”
그것은 가히 전력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말 그대로 무대가 바뀌었으니까.
서걱- 석-
파바박!
그리고 그 무대의 주인공은 이재희였다.
-크아아악!
수많은 검이 허공을 휘젓고 다닐 때마다 오니의 몸 한 구석이 터져나갔다.
막아도 막을 수 없는 양.
타앗.
참다못해 뒤로 물러나면 꽃잎이 달라붙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움직임은 느려지는 반면, 검은 더욱 예리해졌다.
마치 목표라도 설정된 듯이 날아온 탓이었다.
-크으윽…! 감히…!
엄청난 광경이었다.
그 강력한 보스가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에 최종택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대박. 존나 간지나.’
고고하게 서서 손을 움직일 때마다 수많은 검이 그녀의 의지를 따랐다.
어째서 그녀가 검의 주인인지 알 수 있는 모습.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
하나 감상의 시간은 짧았다.
-크아아악!
더는 버티질 못한 놈이 이내 단말마를 내지른 것이다.
털썩-
S-급의 보스라기엔 허망한 죽음.
그래서였다.
‘…너무 약한데?’
‘이렇게 끝난다고?’
승리했음에도 그들이 환호를 내지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따악-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름답던 무대가 사라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적막한 투기장.
그 위에서 심각해진 얼굴로 최종택을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한 것……”
쿠웅!
갑작스레 울려 퍼진 발소리에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그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자격을 증명하라…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듯, 놈이 투기장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미친.”
“…시간을 되돌린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
하나 이내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역사상 몇 번 발견되지 않은 루프 던전도 아니고서야 그럴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두 번째 상대가 나타났습니다.]
[결투에서 승리하여 자격을 증명하십시오.]
“……”
그 메시지를 보며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투기장이지.”
“뭔가 있을 거라 예상하긴 했어요.”
이래야 S-급이지 않겠는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선 최종택이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놈이 짙은 포효를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어우…”
온몸이 짜릿짜릿한 괴성.
방금 상대했던 놈과는 느껴지는 기운의 질부터가 달랐다.
설상가상으로 놈은 첫 번째 상대와 다르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쿠구구구-
최종택과 이재희를 발견한 순간 냅다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5M의 덩치가 어깨를 들이밀며 달려오는 건 상상이상의 압박감이었다.
마치 탱크가 돌진하는 듯한 느낌.
“허.”
하지만, 최종택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어보인 그가 검집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어디 몇 마리나 나오나 보자고.”
“동감입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이재희도 검을 바로 쥐었다.
6.
쿠웅-!
쇠몽둥이가 바닥을 굴렀고, 이내 육중한 덩치가 바닥에 쓰러졌다.
의심의 여지없는 죽음.
“……”
“……”
하지만, 최종택과 이재희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손이 저릿저릿하고 온몸이 쑤셨지만, 오히려 눈빛은 더욱 날카롭게 벼려져있었다.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세 번째 상대를 처치하셨습니다.]
[자격을 증명하셨습니다.]
“…끝인가?”
“……”
그 메시지를 본 후에야 최종택은 자세를 풀었다.
그보다 조금 늦게, 이재희도 검을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더는 몬스터가 나오질 않는 걸 보니 끝인 것 같네요.”
“어우… 죽겠다.”
그 말에 최종택이 발라당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은 난이도 설정도 모르나… 뭔 새로 나올 때마다 곱절은 강해지냐.’
처음 나온 놈과 두 번째 나온 놈 사이에는 벽이 있었다.
마치 어린 아이와 어른을 보는 듯한 느낌.
근력이든 기술이든, 생존본능이든 무엇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마지막 놈은… 진짜 후우…’
하지만 그런 놈도 방금 쓰러트린 놈에 비하면 그저 귀여운 어린아이였다.
아까는 단순히 높은 벽이었다면, 이건 산이었다.
그냥 비교를 불허하는 강함이었다.
아직도 놈의 주먹에 옆구리를 얻어맞았을 때가 생생했다. 사람이 20m나 날아갈 수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합공 아니었으면 진짜 애먹었을 것 같다.’
어찌됐든 결국 승리했다.
시스템도 그랬지 않은가, 자격을 증명하였다고.
S-등급답게 힘들었던 만큼 더욱 달콤한 승리의 쾌감에 최종택이 눈을 감았다.
띠링-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듣기 좋은 알림이 들려왔다.
보상을 주는 알림이리라.
‘과연 무슨 보상을 줄까?’
그에 최종택은 설레는 가슴을 안으며 눈을 떴다.
띠링-
[자격을 증명하여 아수라가 헌신합니다.]
[그에게서 승리하십시오.]
[건투를 빕니다.]
‘…뭐?’
잠수하고 있던 머리를 누군가 끄집어 올린 것 같다.
퍼뜩 정신이 든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차가운 현실이 먼저 살결로 다가왔다.
사아아-
오싹한 기운이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살벌한 기세.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와 최종택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스으윽-
쓰러져있던 도깨비 세 마리가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키메라가 연성되는 광경이 저러할까.
토가 쏠리는 기괴한 장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 감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다.
“…말도 안 돼.”
“미친.”
다만, 그 방향이 조금 달랐다.
방금까지는 기괴함에 치가 떨리는 거였다면, 지금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무슨 기운이… 이걸 이길 수 있을까?’
단순히 세 마리를 합친 기운이 아니었다.
더하기가 아닌 제곱을 한 느낌.
심지어 형상을 갖추어갈 때마다 점점 기운도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 죽여야 돼.’
같은 생각을 한 걸까.
본능적으로 눈을 마주친 이재희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판단은 빨랐다.
파앗!
둘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S등급인 민첩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속도.
그 속력을 그대로 실은 두 사람이 곧장 검을 찔러 넣었다.
“체위술… 74!”
“제 4장…”
당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가장 강력한 기술들이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금이라면 충분할 터.
푸욱!
이윽고 검 끝이 놈의 가슴을 뚫었다.
정확히는, 뚫은 줄 알았다.
꽈악.
“…!”
“…!?”
놈의 거대한 손이 가슴에 박힌 검을 쥐기 전까지는.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꿈쩍도 안 한다.최종택과 이재희의 동공이 흔들렸다. 쉴 새 없이 떨리는 눈동자에 빠른 속도로 완성되어가는 아수라의 모습이 보였다.
-아…
이윽고 놈이 형상을 모두 갖추었을 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격을… 증명한 자인가…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한 음성은 낮으면서도 묵직했다.
-누가 검의 주인이지….
-여자인 것 같군….
아수라의 세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진탕시키는 느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했다.
“아아… 아…”
무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얼어붙어있는 이재희에게 왼쪽 머리가 천천히 돌아갔다.
이윽고 이글거리는 눈이 그녀를 마주했다.
“아…”
우주를 담은 듯한 눈은, 쳐다보고 있으면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숨이 탁 막혀왔다.
마치 눈동자 안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이 좁게 느껴졌다.
혀를 차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검의 주인이라는 년이 이렇게 하찮을 수가……
-실망이군…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거대한 언월도가 수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