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성녀의 조건 (1) (73/124)



〈 73화 〉성녀의 조건 (1)

73화


9.
아리아와 예나.
그녀들이 그간 최종택과 지내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오는 거 막지 않는다.'


저 남자는 열린 문이라는 것.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는 정말로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접근하는 길드의 마스터가 여자다?
그것도 미인?


'무조건이다, 저건.'


반사적으로 뭐라 하려던 아리아가 멈칫했다.

'…나한테 그럴 권리가 있나?'

상대는 구성 길드다.
5대 길드 중에서도 자금력으론 최고라는 길드.
그런 곳에 비해 자신은 겨우 C급 헌터.
능력치나 스킬로는 B급 헌터 수준이라 해도, 구성 길드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나보단 구성 길드에 들어가는 게 맞기는 해.'

그게 현실적이었다.
같은 생각인지 예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묘한 동질감 때문일까.
아님 어제 보았던 그녀의 모습 때문일까.


'…괜찮으신가.'

걱정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구성…'을 중얼거리고 있는 최종택이 밉게만 느껴진다.
씁쓸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잉-

"아. 미안하네."


테이블에 올려둔 협회장의 폰이 격한 진동을 내뱉었다.
진지했던 분위기인지라 협회장이 양해를 구하고 폰을 확인했다.


"흠?"


멈칫한 그가 살짝 굳은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받자마자 본론인가요. 여전히 화끈하시군요.
"……"

사무적인 목소리.
협회장이 침묵하자 상대가 어쩔  없다는  말을 이었다. 그럴수록 협회장이 표정이 딱딱해졌다.

"……알겠네. 전하도록 하지."


이윽고, 전화를 끊은 협회장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슬쩍 최종택을 바라봤다.
뭐가 그리 심각한지 구성을 중얼거리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 게 왔구만…'


구성, 그들이 움직였으니까.
사전에 연락을 주긴 했지만, 사실상 부탁이 아닌 통보에 가까웠다.
우선권이 있는 이상 막을 명분은 없었으니.


'균형이 무너지는 건 좋지 않긴 하지만……'


협회장이 끙끙 앓는 얼굴을 하는 이유였다.
그들이 세 번의 기회를 원해도 거절할 수가 없기에.
하나 생각해보면 다행이었다.

'구성이라면… 그래도 균형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군.'


애당초 4명의 S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던 그들이다.
3명을 잃은 대신 최종택 하나를 얻는다?
그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긴 해도,  나쁘지 않은 균형이었다.
그들의 희생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의견이겠지.'


생각을 마친 그가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구성에게 연락이 왔네."
"구성… 응? 뭐라고요?"

그에 멍하니 중얼거리던 최종택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심히 이상한 반응.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은 본론을 꺼냈다.

"세 번의 기회를 쓰겠다는데… 괜찮은가?"
"아, 뭐… 괜찮습니다.""흐흠."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협회장이 다소 편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날짜 잡자고 하네만, 언제가 편한지 알 수 있겠나?"
"전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아… 역시.'

당당한 그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족 깬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준비가 됐다니…'


유일하게 치료를 받지 않은 그다.
하다못해 지칠 법도  텐데 저리 멀쩡한 모습이라니.
확실히 난 놈은  놈이었다.

'저런 인재를 균형 때문에 묶어놓는 것도 미안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겠어.'


그리 생각한 협회장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성이랑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게! 내 주선하겠네."
"……"


그 말에 최종택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곤 무언가를 상상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올리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야… 아무리 그래도 재벌 3세랑 하는 건 좀 그렇긴 하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혼자 판단을 마친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해보겠습니다."


10.


"아… 구성이라… 구성……"

회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최종택은 연신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엔  전에 들었던 협회장의 말로 가득했다.

-구성과 하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게.

'아니지, 이게 아닌데…'

최종택이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인상 깊었던 제안이라 다시금 떠오른 모양이었다. 이내 그의 머릿속에 협회장의 말이 떠올랐다.

-협회 입장에서 이런 말하긴 좋은 길드네. 지원도 좋고, 10년  재앙을 막기 위해 희생한 길드라 이미지도 좋으니까.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다만…, 현 길드장을 맡고 있는 손녀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네.
"왜죠?"

그 질문에 협회장은 구성 길드의 과거를 말해주었다.

-5년 전만 해도 길드장은 손녀가 아니라 손자였네. 유능한 리더였지.


한데 어째서인지 갑자기 좌천되었다.
그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게 손녀인 지금의 길드장.
아무런 이유도 없는 좌천이었다.
그에 대중들은 S급 헌터 3명을 잃은 것 대문이 아니냐고 추측하곤 했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협회장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S급 세 명을 희생한  재앙을 막기 위해서였으며 그들의 의지였다.
하물며  덕에 이미지가 좋아져 기업 관점에서 봤을 때 적잖은 이득을  상황.
 누구에게 물어도 옳은 판단이었다.

'그런데 멀쩡히 운영 잘하는 길드장이 좌천되고, 각성한  외엔 아무런 정보가 밝혀지지 않은 손녀가 길드장이 되었다라…'

뭔가 구린내가 난다.
심지어 좌천되는 거에서 멈추면 모를까.
현재 구성 길드의 부길드장은 좌천되었던 손자가 맡고 있었다.


-듣기론 일도 잘하고 카리스마도 있다 하니 문제는 없어 보이네만……뭔가 있는  같으니 조심하게.


'흠 손녀에게 뭐가 있다라…'

구성과 만나야하는 입장에선 다소 찝찝한 상황.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 엿보기 구멍에선 피할 수 없지."


그에겐 SS급 투시안이 있었으니까.
직접 만나는 순간 엿보기 구멍으로 그녀를 샅샅이 파헤칠 생각이었……

'잠깐. 방금 내가 존나 야한 말   같은데…'


문득 든 생각에 멈칫한 그였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보다는 손녀가 무언가 구린내를 풍기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엿보기 구멍은 완벽하니까.'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최종택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있었다.


'내 구멍이 통하지 않은 여자가 하나 있긴 하지.'


백보아.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 여자.
그녀가 떠오르자 괜히 마음이 찝찝해졌다.


'…많이 아픈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걸 보면 위험한  아닐 것 같긴 한데…'


아파서 회의도 나오지 못한 게 떠오른 것이다.


'집으로  번 가볼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이, 여자 집에 함부로 가는 건 아니지. 그건 모솔 후다인 나도 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하여튼 그가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그랬다.
그가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아이씨, 신경 쓰이네."

마침 그녀 집 근처인데 이대로 그냥 가긴 좀 불편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국 카톡을 보냈다.


[나 : 많이 아프다던데 괜찮아요?]


'답장 안 오면 말지 뭐.'

그런 생각과 달리 답장은 바로 왔다.
…한데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요오망한년 : 언제 걱정했다고…]

누가 봐도 불만 있어보이는 답장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삐졌네.'

데이트 이후 뽀로통하다 싶긴 했다.

'뭐, 삐질 정신도 있는 걸 보면 걱정할 정도는 아닌가 보네.'


걱정했던 것처럼 몸도 못 가눌 정도는 아닌 모양. 다소 걱정을 던 그가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요오망한년 : 저 괜찮으니까 나중에 봬요.]

"…어떻게 알았지?"

오려는   어찌 알았는지 아주 관심법이 따로 없다.
묘한 눈으로 폰을 내려다보던 그가  혀를 찼다.

'…요망한년'


이러면 그냥 갈 수도 없지 않은가.
폰을 집어넣은 최종택이 걸음을 돌렸다.

10.

[나 : 저 괜찮으니까 나중에 봬요.]

톡을 보낸 이후로 답장이 오지 않는다.
평소라면 내심 서운했겠지만,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아읏… 하아…"

폰을 침대 위에 던진 그녀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몸이 뜨거웠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고, 온 신경이 예민하게 쏠려있었다.
다소 흐릿한 그녀의 시야로 메시지가 언뜻 보였다.

[당신은 극도의 흥분 상태입니다.]
[얼른 해소하지 않으면 점점 심해집니다.]

'…아아.'

저주는 아니었다.
몽마의 저주는 신의 은총으로 상쇄시켰으니까. 그때 이마를 찔렀을  무언가를 심어놓은 게 분명했다.


[관리자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구원자가 오길 기도합니다.]


"아이씨, 아줌마 또…"

여전한 신의 반응에 버럭 화를 내려던 그녀가 힘없이 손을 떨구었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하악, …하아, 장난 받아줄  아니니까 조용히 해봐요."


그리 중얼거리며 몸을 조금씩 꼬았다.
가만히 있다가는 욕구불만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던 탓이다. 한데 꼬는 부위가  쪽으로 치우쳐져있었다.
가장 은밀한 부위.


부비적, 비적,

"하아… 으읏…"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몽롱하게 젖어있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듯 반쯤 풀린 시야 사이로 최종택이 떠올랐다.
한데 좀 이상했다.

'…그 병신같은 사람이 저렇게 잘생겼었나?'

아이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조각처럼 잘생겼다.
웬만한 배우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내가 미친 건가…'

순간,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납득이 갔다.
객관적으로 최종택은 잘생긴 게 맞으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훈훈하게 생겼던 외모는 그가 강해지면서 점점 모델처럼 바뀌었다.
하는 짓이 워낙 바보라 눈치채지 못했을 뿐.


"하아… 아…"
그걸 자각한 탓일까.
그를 떠올리니 이상하게도 욕구를 참기 힘들어졌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가 자신을 덮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환각까지 보이는 것이다.


'…더는 못 참겠어.'

결국, 그녀의 손이 밑으로 내려왔다.
땀에 젖은 잠옷을 벗기자 매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평소와 달리 하얀 피부 사이로 살짝 붉은기가 섞여 있었다.


스윽…


천천히 라인을 타고 내려온 손이 이내 검은 팬티 사이로 들어갔다.
부풀어 오른 속옷이 살짝 움직인 순간.

"아흑…!"

그녀가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평소 자위를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지금은 참을 수 없도록 좋았다.
마치 오랜 갈증으로 메마른 목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진 느낌.

"…더."

참을  없는 갈증에 그녀의 손이 더욱 깊은 곳을 찾았다.
꽃잎처럼 다물어진 새하얀 계곡.
눈을 질끈 감으며 그곳에 두 손가락을 넣으려는 찰나였다.

띵동-


"…!"

갑자기 울린 초인종이 그녀가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숨죽이고 문을 바라본 순간.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왔어요."
'어, 어째서 우리 집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위로 메시지가 떴다.

[관리자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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