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자신감의 근원 (2)
70화
2.
그것은 꿈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자, 유일하게 행복했던 때의 기억.
차가운 바닥에 맨발로 앉아 있는 그녀에게 신부님은 그렇게 말해주셨었다.
-내 딸이 되어주지 않겠니?
더러운 바닥임에도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준 그의 미소가 너무도 편안해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구나.
그때 지은 그의 미소를 그녀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친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러할까 싶었으니까.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에 방긋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가 처음 짓는 미소였다.
-꺄르륵.
-허허, 너무 뛰어다니지 마렴, 넘어질 수도 있지 않니.
그 후로 그녀는 부쩍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부님과 정원을 돌아다니는 것도 즐거웠고, 수녀님께 교육을 받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행복한 건.
-잘했다, 보아야.
기특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신부님의 손길이었다.
그럴 때면 어릴 적 그녀는 방긋 웃곤 했다.
평생 둘의 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낼 거라 의심치 않았다.
[헌터로 각성하셨습니다!]
[SS급 스킬, '신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몬스터들이 그들을 습격하기 전까지는.
헌터로 각성한 그 날,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성당을 덮쳤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수많은 수녀님들이 죽어 나갔다. 그중에는 그녀에게 어머니처럼 대해주던 수녀님도 있었다.
-아아…
절망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에 피로 끈적한 손이 올려졌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조심스레 볼을 어루만진 신부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숨바꼭질이다 보아야. 잡히면 혼나. 그러니 여기 꼭 숨어 있어야 한다.
-신부님… 가지마요…
그 손을 작은 양손으로 잡고 애원하는 그녀를 그는 쓸쓸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총명한 '딸'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파각-!
구어어어-!
벽이 부서져 나가는 소리에 그가 다급하게 비상구의 문을 닫았다.
-살아라. 보아야… 너만은 살아라.
닫기 전, 그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살았다.
신부님의 부탁대로 그녀는 어떻게든 살았고, 이내 헌터 활동을 시작했다.
[너는 고통을 많이 받을 거다.]
하나 신탁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그녀를 선택한 신은 늘 동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구원자를 찾기 전까지 너는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 말대로 그녀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녀와 함께하는 사람은 물론, 헌터들도 수없이 죽어 나갔다. 그녀와 함께하는 모두가 불행해졌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그녀의 능력을 탐할 뿐이었다.
-……
세상에 혼자 버려진 기분.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다 벽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목적지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런 그녀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어준 건 의외로 별 거 없는 대답이었다.
-많이 몰려드는 게 뭔 상관임? 오히려 몹 몰이 최강 스킬인데 개꿀 아닌가요?
-예? 하지만 죽을 수도 있잖…
-남자는 빼지 않죠.
하지만, 그 순간 백보아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바보 같아.'
그렇기에 순수한 그는 그녀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버프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녀를 가지고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쌌다.
-쌀 수 있어…!
-고간포!!
가끔 미친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남자였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안심이 되곤 했었다.
늘 해냈으니까.
오히려 자신에게 마음이 없어보이는 그의 모습에 토라지곤 했다.
'참 눈치도 없지….'
싱긋 웃는 그녀의 눈에 멍청하게 벙 쪄있는 최종택의 얼굴이 보였다.
놀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뭘 보시는 거죠? 변태.'
그리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촤악-
그의 얼굴이 돌연 피로 물들었다.
그 뒤로 피투성이가 된 아리아와 예나가 보였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 그들의 앞에 당당히 서 있는 건 서큐버스였다.
'아아…'
그 순간, 그녀는 떠올렸다.
보스 방에 들어온 순간, 서큐버스의 공격에 당해 쓰러졌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건 꿈이었다.
하지만…
'또야. 또 나로 인해 불행해져…'
그녀의 가슴이 먹먹해지기엔 충분했다.
언제든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악몽이었으니까.
'일어나야 돼… 버프를…'
질끈 감겨있던 그녀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는 증거였다. 이윽고 드러난 희미한 시야 사이로 최종택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
...한데 바지를 벗고 있다.
뒤를 돈 채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오우 씨발, 이건 킹정이지!"
'…??'
이해가 안 되는 모습.
심지어 어딘가 들떠 보이기까지 한다.
여전히 정신이 이상한 그였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에 더 안심이 되었다.
'…바보 같은 사람.'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좀 전의 고통스러워하던 모습과 달리 편안한 얼굴이었다.
3.
그녀가 잠시 정신을 차리기 몇 분 전.
'자신감의 근원이라고?'
스킬을 얻었다는 문구에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곧장 스킬 창을 확인했다.
[자신감의 근원]
-등급 : SS
-설명 : 당신보다 작은 존재에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
동시에 물음표가 터져 나왔다.
"에게?"
겨우 이게 SS등급이라고?
아무리 눈 씻고 쳐다봐도 S급인 풀발보다 약해 보인다.
엿보기 구멍은 범용성이라도 좋지, 이게 무슨 SS등급이란 말인가.
'존나 주작 아니냐.'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올 정도.
허탈함에 멍하니 있던 그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래도 SS인데 뭔가 있을 거야.'
괜히 SS등급은 아닐 거다.
"설마 겨우 나보다 작은 자에게 굴복하지 않는다는 거 하나로 SS를……응?"
한창 중얼거리던 그가 문득 든 생각에 멈칫했다.
'작아?'
그가 반사적으로 밑을 바라봤다.
방금 막 섹스를 끝낸 탓에 바지를 벗은지라 금방 목표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윽고 쥬지를 본 순간.
"아…"
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킹정이지."
그리곤 다시 밑을 바라본다.
"오우씨… 더 커졌어."
허물을 벗고 나온 뱀마냥 더 커진 쥬지.
'이거 조금만 더 커지면...섹스 못하겠는데?'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오는 크기였다.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게 자신감인가…'
절로 어깨가 펴진다.
당당한 자세로 꿋꿋이 선 그가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목욕탕에서 당당해지겠군.'
원래도 당당했지만, 이제는 당당함을 넘어 기고만장해진 그였다.
그날을 상상하며 웃고 있던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다른 스킬도 확인해보자.'
…자신감의 근원이 저런 스킬이기만 한 건 아닐 텐데.
다른 성능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보상을 살펴보던 그가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38]
[능력치]
[근력 : S (0 / 100)], [민첩 : A (50 / 100)]
[체력 : A (30 / 100)], [마력 : A (70 / 100)]
[풀발이 적용된 상태입니다.]
"오오…!!"
동시에 육성으로 환호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를 지르던 그가 이내 주먹을 꽉 말아쥐며 부르르 떨었다.
진한 쾌감이 밀려왔다.
'S등급…!'
물론 풀발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는 패널티가 있긴 하다.
하나 지금의 그에게 있어 그건 더 이상 패널티가 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1초만에 발기가 가능한 게 그였으니까.
'씨발, 내가 S등급이라니. 와…'
뿌듯했다.
섬의 보스를 잡았을 때보다 더한 쾌감과 성취감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그간 노력했던 걸 모두 보상받는 기분.
'의대 합격한 사촌 형이 이런 기분이었나?'
아니, 겨우 그깟 걸로 이 정도의 성취감은 못 느꼈을 거다.
심지어 그의 성취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박꼼]
-등급 : A
-설명 : 레벨이 부족하십니까? 스텟이 부족하시다구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으면 해결됩니다!
'크으…'
그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스킬.
자박꼼의 등급이 A가 되었다.
근력 S등급 달성에 SS급 스킬과 자박꼼 등급의 대폭 상승.
이 모든 게 서큐버스와의 섹스 한 번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야말로 꿩도 먹고 알도 먹은 상황에 최종택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흐흐흐… 이러다 금방 S급 헌터 되는 거 아냐?"
그런 그의 얼굴이 굳은 건 그때였다.
띠링-
[던전, '몽마의 둥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던전이 사라집니다.]
"…어?"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
그의 시선이 밑을 향했다.
늠름하게 솟아 있는 자신감을 본 순간, 안색이 파랗게 물들었다.
"씨발… 바, 바지…!"
냉큼 바지를 집은 그가 주춤주춤 입기 시작했다.
4.
어두워진 밤.
던전 밖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벌써 해가 저문지도 오래 됐는데 아직도 던전이 클리어되지 않은 탓이었다.
"…괜찮은 거 맞지?"
"너무 오래 걸리는데…"
"이미 죽은 거 아냐? 너무 안 나오잖아… 너무 힘든데…"
그에 오랜 시간 기다려온 헌터들이 지친 기색으로 소곤거렸다.
그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긴장을 유지한 채 장시간을 대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저 정도면 이미 죽은 거 같은데…'
'젠장,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죽을 거면 차라리 빨리 죽으라고…!'
대부분의 헌터가 최종택이 클리어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S급 헌터들은 달랐다.
'오래 버티는군.'
'꽤 하는 모양인데?'
던전에 들어간 지 4시간을 넘은 순간, 그들은 던전의 클리어가능성을 염두했다.
그리고 6시간을 넘어 해가 저물었을 때.
'설마… 이걸 클리어한다고?'
'이걸 각성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헌터가?'
가능성을 염두하는 걸 넘어서 경악했다.
마족 던전에서 6시간 이상을 버틴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이윽고 8시간을 넘은 지금.
"……"
"……"
그들은 침묵했다.
지쳐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하나.
'괴물이다.'
'B급 마족 던전에 B급 헌터가 8시간이나 버틴다고? 그럼 보스와 호각을 다투고 있단 소리잖아.'
'살아서 돌아온다면… 무조건 영입해야 된다.'
서로 눈치를 보며 머리 굴리기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과연 D등급 승급시험을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나는… B등급 마족을 잡을 수 있을까?'
'절대 못 잡아. 잡으면 이미 S등급에 준하는 거다.'
최현우의 의문처럼 말도 안 되는 업적이니.
단언컨대 이들 중 최종택과 같은 시기에 B급 마족을 잡을 수 있었던 헌터는 없었다.
'만약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전설이 될 거다.'
그야말로 전설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상황.
그게 이유였다.
'최종택, 그를 무조건 영입해야 된다.'
'탐이 났었는데…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영입해야겠어. 만약 영입이 안 되도 다른 수가 있으니까.'
최현우와 이설이 탐을 내는 이유.
그리고 그건 구성에서 온 세바스찬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길드장님이 우선원을 쓰겠다 하셨지.'
그리고 그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었다.
10년 전.
구성이 S급 헌터 3명을 희생했을 때.
구성 길드는 협회와 5대 길드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았다.
'영입 우선권은 우리에게 있다.'
새로운 혜성이 나타났을 때, 구성이 가장 먼저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물론 영입을 받아들이는 건 당사자 마음이다.
하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길드들의 견제를 막을 순 있으니까.'
구성이 우선권을 쓰는 순간.
당사자가 거부하기 전까지 5대 길드가 일말의 간섭이나 제안을 건넬 수 없게 되니까.
굳이 시상식 날 참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두산은?
'아… 씌발, 빨리 마족이나 잡았으면 좋겠다.'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각기 머리를 굴렸지만, 모두가 계산적인 생각인 건 아니었다.
'아리아… 무사하느냐. 못난 할아비가 사지로 몰아넣은 건 아닐지… 종택 씨에게도 미안하구나.'
'주인님… 무사하시나요.'
협회장과 채유린은 그저 걱정스런 마음으로 게이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스으으-
"어!?"
"여, 열린다…!"
던전이 흔들린다 싶더니, 이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마족 던전이 클리어 됐다!"
"맙소사. 진짜 깼다고?"
던전 클리어.
그에 모두의 시선이 던전을 향했다.
벌써부터 특종의 감이 씨게 왔던 것이다.
협회 측 헌터들은 모두 설레는 눈으로 던전을 바라봤고, 협회장과 채유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바라봤다.
'괴물의 등장인가.'
'우선권을 준비하라 보고해야겠군.'
마지막으로 S급 헌터들은 욕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영겁 같던 5초가 지나고.
파앗!
던전이 사라지며 나타난 최종택 일행의 모습에 그들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입에서 당혹스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이, 이건…"
"어……"
그런 그들의 눈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세 여자가 보였다.
여기까진 괜찮다.
던전을 돌면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 건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어… 안녕하세요…? 사람이 많네요, 하하…"
"……"
반쯤 바지를 걸친 채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남자든 여자든 생각했다.
저건 괴물이다!
인간의 크기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