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몽마? 어림도 없지! (3) (66/124)



〈 66화 〉몽마? 어림도 없지! (3)

66화

6.
최종택이 던전을 돌고 있을 때, 영등포 던전 앞에는 비상소집이 열렸다.
한데 그 규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협회장을 비롯한 5대 길드의 S급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다들 와 주어서 고맙네."
"뭐, 당연하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주변을 통제하지만 않았다면, 순식간에 도심이 기자로 도배되었을 정도로.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위급상황이라는 소리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마족 새끼가 나타났다는데. 비행기 타서라도 와야지 않겠어?"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와이 셔츠에 올백 머리를 한 금발 남자.
현 S급 헌터이자 백두산 길드 마스터인 그의 껄렁껄렁한 대답에 이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였지만, 이번만큼은 공감하는 바였다.

"그 씹어먹을 새끼들."

그들에게 있어 마족은 증오의 대상  자체였으니까.
10년 전.
한국은 무려 10명의 S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었다.
S급 헌터 13명을 보유한 강대국 일본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는 전력.

"놈들 때문에 우리가 약소국 취급을 받는 거 아냐."

그런 한국의 위상이 떨어진 건 마족 때문이었다.
돌연히 나타난 A급 마족 던전의 붕괴.
그리고 나타난 마족은 결코 평범한 A등급 몬스터의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S등급 몬스터보다 강한 힘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던전을 빠져나온 마족은 본래의 힘을 되찾으니까…'

그리고 그 날, 한국은 4명의 S급 헌터를 잃었다.
당시 S급 헌터 4명을 보유하고 있던 구성 길드가 희생하지 않았다면 막을  없었으리라.
그게 이유였다.

"이번엔 B급이라고?"
"그렇다네."

고작 B급 던전임에도 S급 헌터들이 소집된 이유.
이런 도심에서 마족이 튀어나왔다간 끔찍한 인명피해가 도래할 테니까.

"에이, B면 그래도 좆밥이네."
"마족은 던전의 등급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종족들이다. 긴장해라, 백두산."

최현우가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며 핀잔을 주자 백두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말을 늘어트렸다.

"예~ 예. 잘나신 오케스트라 양반이 그렇다니 그렇게 알지요."
"……"

누가 봐도 비꼬는 모습.
그에 최현우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대신 반론한 건 구성 길드였다.

"10년 동안 변한  없군. 한심한 줄 알아라, 백두산."
"허."

깔끔한 정장과 머리스타일.
특유의 시크한 외모.
전형적인 여성향 만화의 집사처럼 생긴 남자의 말에 백두산이 가소롭다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길드장도 아닌 새끼는 빠져. 어디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어?"
"저도 S급입니다만."
"S급이라고 같은 S급인  아나? 비서 주제 맞먹지 마라."

으름장을 놓는 말에 세바스찬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저번 던전 때 구성이 희생해서 막은 주제 그런 말을 하다니. 백두산은 은혜를 모르는 길드인 것 여전하군요."
"……"

그 말에 백두산의 입이 닫혔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구성이 없었다면, 희생되는  자신이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던 그가 쯧 혀를 찼다.

"그쪽도 샌님 같은 건 여전해. 그러니 그때도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친 거겠지."
"…명령이었으니까요."
"지랄."

싸늘하게 웃은 백두산이 몸을 돌렸다.
조롱의 의미였지만,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짜증나는군.'

그러지 않았다면 잡긴 했어도, 피해가  컸을 테니까.
4명의 S급을 잃은 와중에 더 피해를 입으면 한국은 약소국  자체가 됐을 거다.
하지만…

"우리도 그때보다 강해졌으니 문제없다고 영감!

협회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폐관 수련에 몰두했던 그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지금의 자신들이라면 그 마족이 나온다 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할  있었다.

"……"

이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의문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던전에 누가 들어간 거죠? A급 미만의 헌터  유망주들은 모두 다른 곳에 있는데…"
"듣고 보니 그렇군요."

 질문에 구성 길드의 집사가 흥미를 가졌다.
처음 마족 던전이 열렸다고 들었을 때만 해도,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라 생각했건만.
막상 오니 제법 오랜 시간 클리어 중이라 내심 궁금했던 차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네. 누가 들어간 거죠?"
"마족 던전에 들어갈 만한 유망주가 있나?"

시선이 집중되자 협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최종택 헌터 파티에게 부탁했네."
"…!!"
"…!"

그에 최현우와 이설은 경악했고, 세바스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종택이라면… S급 유망주인가."
"시상식 때 그놈인가?"

시상식 날 참여하지 않은 그들로선 별 감흥이 없었던 탓이다.

그저 S급 유망주니까 보냈나보다.
그나마 가능성 있겠구나.

 이 정도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채유린의 반응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협회장의 말을 듣자마자 눈빛이 흔들린 그녀가 진심으로 분노를 터트린 것이다.

"왜…! 왜 신입을 보내!! 유망주를 죽일 속셈이야!?"
"……"

그간  번도 보지 못한 격분한 모습.
말 그대로 짐승처럼 포효하는 모습에 길드장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수왕이 저 정도로 화를 낸다고…?'
'요즘 바뀌었다곤 들었지만… 그 헌터에게 무언가 있나?'

웬만하면 협회장에게 대들지 않는 그녀건만.
심지어 협회장도 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다.
뭔가 있다고밖에  수 없었다.
 순간 그들은 최종택에 대한 인식을 수정했다.

'최종택인가 뭔가 하는 놈. 생각보다 더 대단한 헌터였나?'
'그날  곳의 길드가 스카우트를 했다. 뭔가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수왕과 협회장의 반응을 보니 영입할 가치가 있어보이는군. 아가씨에게 따로 보고를 올려야겠어.'

과열되는 분위기에 최현우가 나섰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라, 수왕."
"합리적? S급 유망주를 죽으라고 내던졌는데 이게 합리적이야!?"
"그가 막으러 가지 않았다면 수만 명의 사람이 죽었을 거다."
"…!"

채유린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가 멈칫한 사이 최현우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던전 안에서 마족의 힘이 약해진다는 걸. 그라면  수 있어. 믿고 기다려.
우리가 모인 건 만일을 위해서다"
"……"
"그리고 협회장님의 손녀분도 함께 갔다. 감정적이 된다면, 협회장님이 그래야 맞겠지."
"…빠득."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주먹을 부르르 떨며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그만하게."

협회장의 목소리게 낮게 깔렸다.

"……"
"……"

그의 얼굴을 본 헌터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애써 덤덤한 척 가리지만 손녀를 사지로 몰아세운 것에 대한 쓸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협회장은 그저 한 아이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일단 지켜보지."

그저 나직하게 뱉는 말에 그들이 군말없이 따라준 것은.
모두의 시선이 게이트를 향했다.

7.

쿠웅!

"후우."

육중한 덩치의 마족이 쓰러지자 최종택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빡세긴 하다.'

미노타우로스 같던 마족은 약과였다.
안으로 들어가며 만난 몬스터 중 놈보다 약한 놈은 없었다.
최소 비슷하거나 그 이상.
놀라운  저런 놈들이 고작 잡졸이라는 거다.
리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에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B등급 던전이  정도로 강할 수 있는 건가?'

이 정도면 A등급 던전이라 해도 믿을  같다.

'그래도 아직까진 할 만해.'

물론 빡셀 뿐, 위험할 정돈 아니었다.
최종택이나 맴버들도 결코 평범하진 않았으니까. 살짝 지쳐 보이는 그녀들을 둘러보며 최종택이 입을 열었다.

"일단 조금 쉴까요?"
"좋아요."

그렇게 흐트러진 숨도 고를  자리에 앉으려던 때였다.
아리아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아-

무언가 섬뜩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 느낌은…!'

언제 한 번 느껴본 적 있던 감각.
부랄이 급격하게 쪼그라드는 감각에 최종택이 다급히 아리아에게 달려들었다.

"위험해!"
"으응…?"

깜짝 놀란 아리아가 뒤돌아본 순간.

퍼억!

팔로 과격하게 그녀를 밀친 최종택은 볼 수 있었다.
아리아를 향해 단검을 휘두르는 여성 마족의 모습을.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은 못 막는다.'

풀발이 안  그의 힘으론 역부족이라는 것을.
동시에 그의 손이 움직였다.
짐승과 같은 본능으로 아리아의 한쪽 가슴을 주무른 것이다.

"꺄악! 뭐, 뭐예요!"

노골적인 손놀림에 아리아가 비명을 질렀지만, 최종택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몸에 힘이 넘치는 걸 느끼며 그가 검을 치켜들었다.

까앙!

묵직한 감각이 손목에 울렸다.

-호오… 이걸 막았다고?

작지만, 확실하게 귀에 꽂히는 아름다운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마족이었다.
여태껏 봤던 흉측한 마족과 달리 아름다운 외형을  여성형 마족.
한데 그 수가 하나가 아니었다.

-뭐야, 실패했어? 언니 감 죽은 거 아니야?

검을 맞댄 마족의 뒤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체적으로 눈앞의 마족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온몸을 뒤덮은 비늘.
매끈해 보이는 몸매.
흩날리는 흑발과 작고 창백한 얼굴까지.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최종택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선 넘네."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
그와 동시에 검을 힘껏 튕겨내자 암살자가 뒤로 몸을 회전하며 착지했다. 그런 그녀들을 보는 최종택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뭔가 이상해요. 종택 씨가…"
"뭐 이상한 게 한두 번인가요."

예나의 말에 아직까지 기분이 풀리지 않은 백보아가 뽀로통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이 변한 건 그 직후였다.

"그건 그렇지만… 종택 씨가 정말 화난 것 같아요!"

그 말에 백보아와 아리아가 깜짝 놀라 그를 돌아봤다.
그러자 보였다.
한없이 차가운 얼굴로 이를 갈고 있는 최종택의 얼굴이.
평소 가볍기만 하던 그에게서 볼  없었던 모습에 그녀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종택 씨가 화가 났어…?"
"설마 나를 위해서…"

백보아는 깜짝 놀라 눈이 토끼만 해졌고, 아리아는 설렘을 느끼며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에 화를 내는 거라 생각한 것이다.
난생 처음 보는 그의 멋진 모습에 격한 감동이 몰려오던 순간

"씨바아알!!"

최종택이 이내 분노를 터트렸다.

"여태 남성 몬스터들은 다 벗고 나왔는데…!!! 너희는 왜 없어!!""
"…?"
"??"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돌린 그녀들의 눈이 짜게 식었다.

"아…"

그제야  것이다.

"왜 다 막혀있는 거냐고!! 존나 기대했는데!!!"

마치 중요한 걸 지워놓은 듯한 모습을.
다 벗었음에도 유두와 꽃잎이 없는 모습에 최종택의 이성이 끊어졌다.

"너흰 용서 못 해…"

이건 남자라면 참을  없는 상황.
하지만 최종택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극심한 분노로 머리가 어질거렸고, 귀에는 이명이 쉴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익숙한 알림이 언뜻 들려왔다.

띠링-

[극도의 분노가 차올라 풀발 2단계에 다다릅니다.]
[풀발 2단계가 발동되었습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대하게 부푼 그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딱 대…"

정적이 휩싸였다.

"……"
-……

평소라면 드립을 쳤을 백보아마저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입을 열지 않을 정도.

"…막힌 입을 뚫어주지."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최종택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