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오히려 좋아 (1) (62/124)



〈 62화 〉오히려 좋아 (1)

62화.

6.
가장 행복한 휴일이 무엇일까.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물으면 아마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존나 아무 것도 안 하기.


평소 바삐 사는 만큼 하루라도 쉬고 싶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종택은 완벽한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사아-


직장인들이 출근했을 오후.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잠에서 깬 최종택은 느긋하게 휴대폰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 옆에는 맛 좋은 매실과 과자도 함께했다.
왼손으론 과자를 마시고, 오른손으론 폰을 든 채 입은 빨대를 찾는 것.
삼위일체를 완성시킨 그의 주말은 행복  자체였다. 그 행복 앞에서 최종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그간 너무 열심히 뛰어다녔다.
각성한 후로  날을 손에 꼽기 힘들 정도.
사건 사고가 워낙 많기도 했고, 빠르게 강해지는 맛에 빠진 탓에 힘든지도 몰랐는데 막상 쉬어보니 알겠다.

'피곤이 쌓이긴 했어.'


피로감이 절정에 달했다는 것을.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각성 전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다만, 폰에서 나오는 영상과 그의  위치가 다른 하루를.
그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지이잉-


'음?'


진동과 함께 휴대폰 상단에  알림이 영상을 가렸다.

'모르는 번혼데.'

살짝 눈살을 찌푸린 최종택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
02가 아니니 중요한 전화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한데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기 다 만들었으니까 빨리 와!!
"엥?"


특이한 말투.
하나 이제는 다소 익숙해진 목소리에 최종택이 의문을 표했다.

"권 노아님?"
-그래! 뭐야, 내 번호도 없던 거야? 이런 건방진 녀석을 봤나.
'알려준 적이 없으니까 없지…'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벌써 무기가 완성됐다고요?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요?"
-어. 정신 나갈 거 같아! 빨리 와!

당황해서 묻자 평소와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한데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나 있는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모습.

-빨리 와!
"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던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쉬벌, 지 할 말만 하네. 개같은 년.'


불평을 늘여놓긴 했지만 나쁠 건 없었다.
무기가 완성된 건 좋은 소식이니까. 어떤 무기가 완성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근데 하루 만에 무기를 만들다니… 이게 장인인가?'

거의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웬만한 장인도 몇 날 며칠을 무기 만드는 거에 열중한다던데.

'뭐, 그러니까 세계적인 대장장이겠지.'

어깨를 으쓱인 최종택이 침대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어떤 무기가 나왔나 볼까.'


세계적인 대장장이 권 노아.
S급 광물로 만든 그녀의 무기가 어떨지 기대되었다.



7.
노아의 방주에 오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 먼 곳에 있지 않기도 하고, 노아가 하루 일정을 비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를 안내해준  이전에  제자였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아, 예."

그의 안내를 받아 공방에 도착하자 후끈한 열기가 반겼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도 함께였다.

"빨리 오라니까 왜 이리 늦어!?"
"30분 만에  건데요?"
"그게 늦은 거지! 무기나 빨리 가져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피곤에 절어있어 보였던 것이다.
온몸이 땀에 절어있는 그녀를 보며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땀이 아니라 지린 건가?'


땀이라기엔 뭔가 이상했다.
상체에 비해 하체만 유독 젖어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순간.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이건 못 참지.'


합법거유 로리의 하체가 홀딱 젖어있다?

'오우야. 홍수네 홍수.'


유심히 보고 있는데 시선을 눈치챈 권 노아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뭘 그리 봐! 정신 나갈  같아!"
"아니,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그냥 땀 많이 흘리셨구나 한 건데."
"……"

그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라 반박하고 싶은 눈치인데 본인도 찔리는 게 있는지 입을 열었다닫았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빽 소리쳤다.


"됐어! 무기나 가져가!"
"직접 주면 되지 왜 직접 가져가라는 거에요?"


끝까지 말 한 마디 안 지는 최종택.
한데 정신 나갈 것 같다고  거란 예상과 달리,  노아가 몸을 흠칫 떨었다.
조심스레 무기를 바라본 그녀의 눈빛이 어딘가 공포에 질려있는 건 착각일까.
꿀꺽, 침을 삼킨 그녀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저거 네 전용 무기라 다른 사람이 쥐면 안 돼."
"…?"


저게 뭔 소리지?
그럼 무기는 어떻게 만들었나 싶었지만, 이내 그가 무기를 향해 다가갔다. 듣는 것보단 직접 보는 게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이윽고 무기 앞에 선 그가 턱을 매만졌다.

'음… 외관상으론 별로 특별해 보이진 않는데.'

생각보다 평범한 검이었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투박해 보이는 외관.

'아니, 이게 더 대단한 건가? 어떻게  광물로 이런 모양이 나왔지.'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외관은 이 정도면 됐겠다, 아이템 설명을 확인하기 위해 검을 집었을 때였다.

띠링-

'응?'

갑자기 들린 알림에 시선이 위로 향했다.
동시에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받아 숨겨진 능력이 개방됩니다.]
[자박꼼과 링크되었습니다.]


'뭐, 뭐야 이게.'

자박꼼을 얻은 후로 별의별 일을  겪긴 했지만 무기와 연결된  처음이었다.
벙 쪄있던 그가 황급히 설명을 확인했다.


[여의검]
[등급 : S+]
[공격력 : 971]
[설명 : 미지의 재료와 단단한 뼈로 만든 신비의 무기]
[뛰어난 장인이 만든 검으로 광물의 힘을 온전히 끌어왔다]
[공격 시 5초간 5%씩 공격속도가 상승합니다. (0 / 5)]
[공격  5초간 공격력이 2%씩 상승합니다. (0 / 5)]
[풀 스텍 달성 시 10초간 유지되며, 지속시간 내에 공격하면 지속시간이 리셋 됩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길이와 굵기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무기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
[풀발에 반응합니다]
[주인이 강해짐에 따라 무기도 함께 성장합니다.]
[검기가 마력의 속성을 따릅니다.]
[헌터 '최종택'에게 귀속된 무기입니다.]


'미친…!'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묵직함…!'

처음 검을 잡는 순간 느껴진 것이다.

'마치 내 분신과 같군.'

처음부터 자신의 무기였던 것처럼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오히려 잃었던 걸 되찾은 기분.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은 감각에 지그시 눈을 감은 그가 이내 다시 설명을 읽었다.

'이름도 있어 보여.'

여의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느낌 있지 않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밑으로 시선을 내리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미친, S+등급이라고?'


등급부터가 말이 안 됐다.
현존하는 S+등급 무기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것마저 모두 세계적인 헌터들이나, 미국의 전시관에 보관되어있을 정도. 그런 무기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헌터 '최종택'에게 귀속된 무기입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귀속된 채로.
찢어질 듯 기분 좋긴 했지만, 한 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거래가 안 되는  좀 아쉽네.'

팔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 텐데.
그게 유일한 흠이었지만, 생각해보면 파는  멍청한 일이었다.
이건 성장형 무기다.
그야말로 평생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셈.
그런 무기를 판다는 것부터가  헌터는 거기까지란 소리였다.

'돈이야 지금도 충분하니까.'


플렉스하며 살 정도는 아니지만, 이젠 부족하게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불과 몇 달만의 소득이었다.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차고도 넘칠 터.
때문에 그는  미련 없이 아이템의 성능을 생각할 수 있었다.


'S+급 치고는 무기 성능이 좀 부족한 감이 있긴 한데…….'

공격력이 기본 천 단위가 훌쩍 넘는 그들에 비하면 부족한 수지.
하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직 S+급 성능을 내진 않은 건가.'

최종택이 성장함에 따라 무기도 같이 성장하는 구조인 듯했으니까.
그 외의 성능도 모두 마음에 들었고.
애당초 풀발이나 자박꼼과 시너지 효과를 자랑하는 무기는 이것밖에 없을 테니까.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마력을 소모하여 길이와 굵기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마력을 소모하여 무기의 형태를 바꿀  있다.]

'…길이와 굵기라.'

불순한 생각이 드는  왜일까.
찝찝하긴 하나 사기적인 옵션이었다.
이 무기가 있는  그는 무기고를 들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디 한 번…'

그가 검을 쥐고 마력을 넣었다.
그러자 하얀 무언가가 검에 흘러 들어가더니 은은한 빛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형태가 바뀐 검이 최종택의 손목을 감쌌다.
뱀이 똬리를 뜬 듯한 모양의 팔찌였다.


"오, 진짜 되네."

그에 최종택이 감탄을 흘리자 권 노아가 엣헴, 거리며 어깨를 핀다.
쿠사리를 넣고 싶은 모습.
하나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무기 진짜 마음에 드네요."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피식 웃은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푹 쉬려했는데… 이런 걸 얻으면 못 참지.'

이젠 진성 헌터가  걸까.
새로운 무기를 얻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실험해보고 싶어 미치겠다. 그가 설레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어? 버, 벌써 가게?"
"예."
"어음…"


한데 반응이 좀 이상하다.
머뭇거리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가, 가끔 와. 방어구나 장신구도 필요할  아냐."
"어? 진짜요?"
"그, 그래."

최종택에겐 개꿀인 말이었다.
무려  노아가 직접 제작해주기로 약속한 것 아닌가. 신난 얼굴로 되묻자 눈치를 보던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뭐… 그때마다 던전에서 광물을 얻어야 하긴 하지만……"

그리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다소 붉어진 건 분명 화로의 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치 없는 우리의 종택이는 보지 못했다.

'그 던전은  싫긴 한데… 장신구랑 방어구를 얻을 수있다면야 뭐. 개꿀이지.'

그저 장신구와 방어구도 얻을  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할 뿐.


"그럼 진짜 가볼게요,"
"…썩 꺼져!"
"어우, 갑자기 또 성질이람."
"몰라 이 녀석아!"

그렇게 공방을 나온 최종택이 곧장 플랜을 짰다.

'어디 던전을 가보지? 협회에 연락하면 빨리 얻을 수 있으려나.'


몸이 근질근질했다.
어서 무기의 성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얼마 전에 던전을 클리어하긴 했지만, C급 던전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어 연락을 해보려던 순간.

'음?'

진동이 울리며 화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는 번호였다.
다만, 한 번도 전화를 해본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다소 의아한 기색으로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오늘 만나시죠.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
듣기 좋은 음색으로 돌직구가 날아오자 최종택이 눈살을 찌푸렸다. 잘못 받았나 싶어 다시 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작게 투덜거렸다.


'던전 가야하는데… 어라?'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가 신난 어조로 말했다.

"아. 저도 마침 던전 가야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이 정도면 고의 아닌가요?
"예?"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
왠지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됐다. 요망하게 눈읏음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름과 동시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눈치가 너무 없으시네요. 데이트하자고요.
"…예?"

돌직구였다.
그에 순간 우뚝, 멈춘 그가 생각했다.


'…어? 데이트는 처음 아닌가?'

데이트도 안 하고 수없이 떡을 친 남자, 최종택.
그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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