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노아의 대홍수 (1)
59화
10.
다음날.
최종택 일행이 회의실에 모이자 협회장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왔다.
“허허, 벌써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예."
“정말 대단하구만. B급 헌터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진심으로 감탄한 협회장이 어린아이처럼 물었다.
“어떤 식으로 던전을 클리어 했는지 들을 수 있겠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해야 하니까.”
“미궁 타입에 많은 몬스터가 나왔습니다.”
그 물음에 답한 건 예나였다.
그녀는 던전을 들어간 순간부터, 수많은 몬스터를 만난 것. 그리고 스켈레톤 나이트를 잡고 진짜 중간보스가 나온 걸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아리아가 다쳤다는 걸 들은 순간.
휙-!
협회장이 깜짝 놀라 아리아를 바라봤다.
‘아.’
그리곤 멀쩡한 그녀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했군.’
멀쩡하게 돌아온 걸 보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자신도 사람이다 보니 손녀가 다쳤다는 사실에 순간 머리가 정지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남은 건 손녀뿐이니…’
딸이 외국인과 결혼한다 했을 때.
협회장은 극히 반대했다.
두 번 다시 얼굴도 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의 딸은 정말 그와의 인연을 끊었다.
‘그때 잡았어야했거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뒤늦게 협회장이 연락을 했으나, 그땐 이미 늦었다.
‘대형 게이트 붕괴 사건…’
세상이 안정화되기 전, 최악의 게이트 붕괴 사건.
하필 게이트가 터진 곳이 딸의 가족이 있는 집 근처였고, 결국 딸과 사위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날, S등급 헌터였던 자신은 자신의 가족이 아닌 남을 구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바로 아리아였다.
유일한 딸의 흔적.
그리고 유일한 딸의 유산.
‘아리아마저 잃었다면……’
그런 그의 시선이 최종택을 향했다.
‘그를 만나서 다행이야.’
대단한 남자였다.
전투 능력만 봐도 대단한데 올라운더에 가까운 기질까지 있다니.
최종택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선명해졌다.
“자네….”
“예.”
그에 최종택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그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아리아를 구해주어서.”
“……”
이 순간 헌터협회의 협회장은 없었다.
그저 어여쁜 손녀를 둔 한 사람의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최종택이 묘한 얼굴을 했다.
‘사, 살린 건 맞는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좋은 일을 했는데 이상하게 배덕감이 든다.
손녀의 얼굴에 하얀 액체를 뿌렸는데 할아버지가 감사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한데 또 살린 건 맞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그의 시야에 협회장의 떡 벌어진 어깨와 터질 듯한 근육이 들어왔다.
동시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냥 닥치고 있자.’
목숨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려던 찰나, 이어진 말에 최종택이 흠칫 몸을 떨었다.
“허허, 그나저나 대체 어떤 힐이었나? 그런 중상을 단번에 치료하는 원거리 힐이라니.”
‘…알면 다쳐요.’
협회장님이 아니라 제가.
최종택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뜸을 들일 때, 백보아가 입을 열었다.
“…엄청난 힐이었어요.”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감탄 어린 목소리.
그날을 회상하는 듯 감상에 젖은 백보아와 예나의 모습에 협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오오…! 네가 느끼기에도 그랬느냐, 아리아.”
“에에…!?”
질문을 받은 아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건 최종택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뭘 묻는 거야 지금.’
해맑은 얼굴로 웃고 있는 협회장에게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하나같이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못 들을 걸 들은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아마 자신의 표정도 저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얼굴이 새빨개진 아리아가 버럭 소리쳤다.
“그, 그런 걸 왜 물어요…! 이 변태!”
“…응?”
협회장 입장에선 황당한 일이었다.
힐 잘 받았냐고 물었는데 한순간에 변태가 되었다. 하나 그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손녀의 반응이었다.
왜 은밀한 치부를 보인 듯한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미친.’
이대로 가다간 큰일이 나겠다 싶어 최종택이 화제를 돌렸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아…, 그건 그렇지.”
아니.
당신 지금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
“아무튼 정말 고맙네. 어디까지 얘기 중이었지?”
안타깝게도 협회장은 최종택의 의도대로 따라주었고, 예나가 잽싸게 던전 보고를 이어갔다.
대화에 집중하는 그를 보며 최종택이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와씨, 여기까진가 싶었네.’
저래보여도 한때 권왕이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한국 최초의 S등급 헌터.
은퇴했다곤 해도 아직 최종택이 상대할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가 숨을 고르는 사이 대화는 계속되었다.
“대단하군. 어그로가 튀지 않은 걸 보면 아리아도 많이 성장한 모양이야.”
“물론입니다.”
흐뭇한 얼굴로 아리아를 바라보던 협회장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리치를 혼자 잡았다고? 입장할 때 탱커 없인 힘들 터인데…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가?”
섬의 보스를 잡았다지만, 리치를 홀로 잡은 건 경우가 다르다.
지능의 차이 때문이다.
피지컬적으로는 드락사르가 더 우세할지언정 한낱 짐승일 뿐. 때문에 함정을 준비하거나 골치 아픈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 리치는 전략이란 전략은 다 사용하는 탓에 탱커 없이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원거리 딜만으로 잡았습니다.”
“오오…”
그 대답에 협회장이 무릎을 쳤다.
“원거리 딜이 가능했단 말인가! 원거리 딜만으로 잡을 정도면 무척 뛰어난 스킬이었겠군!”
저 방법이라면 가능했다.
찰나의 순간, 순식간에 녹여야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신성력이라면 가능하지.’
언데드인 리치인 만큼, 높은 수준의 힐이 있는 최종택에게 약한 것도 이해가 됐다.
‘하나… 분명 함정을 준비했을 터인데.’
그 찰나를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궁금했다
그때 예나의 말이 이어졌다.
“…정신을 완전히 무너트렸습니다.”
“호오…. 확실히. 리치는 정신적인 부분으로 공략하는 게 좋기는 하지.”
그런 둘의 대화를 듣던 백보아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 확실히… 잘 넣었죠.”
“……”
그걸 들은 예나가 멈칫하더니 이내 수긍했다.
“음… 확실히 그건 넣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으으으… 더러워.”
“정말 잔인했지요. 불쌍한 리치…”
“…??”
아리아까지 합세해서 소름 돋는다는 듯 양팔을 감싸자 협회장은 점점 아리송해졌다.
어디서 핀트가 어긋난 거지?
대화의 흐름을 잡을 수 없었던 그가 결국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네들.”
“아. 종택 씨가……”
“디, 딜을 잘 넣었다고요! 딜을.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을 이용했나 봐요.”
최종택이 급하게 수습하자 협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줄임말을 좀 아네만… 이건 조금 이상한데……”
“어우, 아닙니다. 줄임말입니다.”
“…그런가?”
이상하긴 하나 어쩌겠는가.
젊은 사람이 그렇다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협회장이 화제를 돌렸다.
“하여튼 던전을 훌륭히 클리어 했으니 비용을 주겠네. 계좌로 보내면 되겠나?”
“비용요?”
한숨을 내쉬던 최종택의 눈이 부릅 뜨일 법한 화제였다.
‘비용을 준다고?’
처음 듣는 말이었던 탓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오히려 협회장이 의아해했다.
“골칫거리인 던전을 클리어 해줬으니 클리어 비용을 주는 게 당연하지.”
“아…?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이어진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자네는 협회 소속이 아니지 않은가. 던전을 몰아준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클리어해준 이상 비용을 치르는 게 맞지. 의뢰라고 보는 게 편할 걸세.”
“아…”
던전의 수익 대부분을 독식하는 길드와는 구조부터가 달랐다.
던전의 클리어가 아닌, 던전의 통제와 소개, 그리고 헌터의 관리가 그들의 업무인 것이다.
그러니 클리어 비용을 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개꿀이네.’
어찌됐든 최종택에겐 좋은 일이었다.
호박이 알아서 굴러들어온 격이었으니까.
‘던전 소개 받아서 돌고, 아이템도 제작하고 클리어 비용도 받는 거잖아?’
심지어 그 호박이 아직 넝쿨째 남아있다.
이쯤 되니 굳이 5대 길드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보고서나 브리핑 같은 귀찮은 것도 알아서 다 해주는데 굳이 왜?
‘그렇다고 협회소속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하나 그건 길드나 헌터 시점에서 본 관점일 뿐, 협회 소속에서 보면 소속을 강요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된다.
‘협회는 이익 단체가 아니니까.’
오히려 A급 던전을 길드에게 의뢰 맡기기도 하는 게 협회였다.
소속된 이들도 공무원에 가까운 느낌.
최종택, 그가 다른 길드에 속하지 않은 점에서 이미 서로 이득을 보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띠리링-
“음? 아, 이 양반……”
갑자기 울린 전화에 잠시 고민하던 협회장이 이내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네. 잠시 전화 좀 받아도 되겠나?”
“편하게 받으세요.”
최종택의 대답에 협회장이 연락을 받았다.
동시에 소음이 터져 나왔다.
-정신 나갈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정신 나갈 것 같애…!!
“……”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떨어트려놓은 그가, 이내 조용해지자 대답했다.
“또 왜 그러나.”
그러자 못마땅한 대답이 들려왔다.
-또? 또!? 검 만드는 거 영감 막힌다고 몇 번을 말했나! 그 새끼 당장 오라 그래!
“알았네, 알았어.”
-정신 나갈 것 같…!!
뚝.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협회장이 곧장 통화를 종료했다.
“하여간 예술가들이란……”
쯧쯧, 혀를 찬 그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를 보며 최종택은 생각했다.
‘뭘 들은 거지?’
뭔가 엄청난 게 지나갔는데.
멋쩍은 얼굴로 최종택을 바라본 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검을 만드는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막히는 것 같네.”
“아.”
“미안하네만 권 노아를 한 번 만나러 갈 수 있겠나? 얼굴을 직접 봐야지만 떠오를 것 같다고 고집을 부리는구만…”
세계적인 대장장이 권 노아.
다소 괴팍해 보이는 그녀를 만나러가는 순간이었다.
1.
노아의 방주.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의 주인은 대장간이었다.
실제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삼아 독특한 디자인을 한 거대한 대장간.
그곳에 실제로 오게 된 최종택이 작게 감탄했다.
“존나 크긴 하다.”
무지막지한 크기라는 건 사진으로 봐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오니 그 위용이 더 크게 와 닿았다.
높이는 4층 건물 정도인데 넓이가 상상이상이다.
‘바이킹 대여섯 개 합친 거 같이 생겼네.’
대장간이 저렇게 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
하나 그녀의 문하생만 해도 세 자리에 이른다는 걸 떠올리니 납득이 되긴 한다.
그 많은 인원이 대장장이 일을 하려면 저 정돈 되어야겠지.
‘기대되네.’
수많은 문하생을 거느린 세계적인 대장장이.
A등급 헌터일지언정 한평생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위인.
그런 사람의 아지트에 간다 생각하니 괜히 떨린다.
‘일단 들어가 보자.’
짧게 심호흡을 한 그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드넓은 내부가 드러났다.
방주라는 컨셉에 맞게 크루저의 내부와 흡사했는데, 고급스럽다기보다는 웅장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장식품들이 투박해서 그런가?’
까앙- 까앙-!
그 영향도 있겠지만, 멀리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망치소리도 분명 한몫했다.
그렇게 복도를 걷는데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기구가 다 권 노아 제작이네?’
모든 장치와 기구에 NOA라는 마크가 붙어있었다.
예약도 잘 안 받아준다는 권 노아 표 가구들이라니….
소 잡는 칼로 닭을 썬 느낌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씨발, 왜 이제와?”
“…??”
갑자기 욕설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멈춰있는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밑이다, 이놈아!”
“응?”
그제야 밑을 바라본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꼬마?’
웬 쪼그마한 여자애가 껄렁껄렁한 자세로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미드는 결코 작지가 않았다.
메론 만한 두 덩어리와 양쪽으로 묶은 붉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오우야.’
…한데 옷차림이 너무 가볍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얇은 나시 사이로 가슴골이 훤히 드러났다.
‘아니야, 종택아. 이건 아니야. 너 이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잖아.’
조금씩 힘이 들어가려는 걸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냈다.
그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평정심을 찾은 그가 아이를 보며 툭 내뱉었다.
“야, 꼬마야. 어르신 어디 있니.”
“뭐?”
그러자 아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에 최종택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권 노아라고, 여기 주인분 계실 거야. 나 무기 만들러왔으니까 빨리 안내해.”
“……”
아이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를 악문 그녀가 한 글자씩 씹어 먹듯 천천히 내뱉었다.
“…내가 권 노아다.”
“아아.”
그에 최종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명이인인가보다.’
역시 세상은 넓고, 같은 이름은 많은 법이었다.
말장난할 시간이 없기에 한 마디 해주려는 순간,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 노아님!”
“…음?”
뭔가 하고 보니 헐레벌떡 달려오는 남자가 보였다.
제법 거대한 체구.
근육으로 가득 찬 팔이 최종택의 다리 크기만 했다.
그에 맞지 않게 순둥하게 생긴 남자가 가쁜 숨을 내쉬더니 아이에게 소리쳤다.
“손님 안내는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나오시면 다들 권 노아님 무시해요!”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니도 무시하고 있잖아!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애!!”
“어우, 자꾸 그러시면 무시한다니까요!”
“아아악! 정신 나갈 거 같애!!”
둘의 꽁트를 보며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