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지리는 마력 (4)
58화
주변이 환해진 건 그때였다.
리치가 사라진 영향일까.
음침하기 짝이 없던 방이 단조로운 하얀 내부로 바뀌었다.
드높던 천장은 그대로였지만, 분위기가 바뀌어서인지 아득한 느낌은 아니었다.
띠링-
하나 최종택의 눈은 한 곳만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어딘가 멍해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3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달성 보상이 지급됩니다.]
여기까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직후.
띠링-
[방출식 마력 운용법과 달성 보상이 합쳐집니다.]
[A등급 스킬, ‘마력 운용법’이 ‘무한정력'으로 교체됩니다.]
[스킬, '무한정력'을 획득하셨습니다.]
'…씨발, 이건 또 뭐야. 뭐, 진짜 남자는 지치지 않는 거야?'
갑자기 변한 스킬을 본 최종택이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이젠 익숙한 전개라 그럴까.
놀랍게도 그의 지능이라는 게 상승했다.
'이거 설마 마나 운용법이 정력 운용법이 된 거 아냐?'
드립으로만 쓰던 말이 현실로 다가오려는 상황에 최종택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존나 좋은 스킬일 수도 있잖아.'
아직 모르는 일이다.
애용하고 있는 자박꼼이나 풀발도 이름만 보면 이미 뇌절이지 않은가.
이것도 유용할 확률이 컸다.
'후우…'
이윽고그가 떨리는 손으로 스킬 창을 열었다.
그러자 장황한 설명이 드러났다.
[무한정력]
-등급 : S
-설명 : 마력 회복속도가 대폭 상승하며, 마력 컨트롤이 뛰어나진다.
숙련도에 따라 활용도가 증가한다.
'오오오…!'
그에 방금까지 불안에 떨던 최종택이 탄성을 흘렸다.
'존나 평범해.'
별 기괴한 걸 다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스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찝찝했다.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인그가 다시 설명을 확인했다.
'S등급 마나 운용법이 된 건가?'
말 그대로 방출식 마나 운용법의 진화판이었다.
'어?'
그때 무언가 떠오른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잠잠하게 잠들어있는 분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한층 강력해지겠군.'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아리아 특유의 하이톤이 들려왔다.
"앗, 템 떴어요!"
"어?"
그에시선이 홱 돌아갔다.
그녀의 말대로 바닥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아이템들이 떨어져 있었다.
'두 개… 아니, 마정석까지 세 개인가?'
그중에서도 유독 강한 빛을 뿜어내는 돌을 본 최종택이 작게 감탄했다.
상당한 크기였던 탓이다.
'저 정도면 꽤 비싸겠는데?'
일전에 아가씨에게 받았던 마정성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 억 단위를 받지 않을까.
B등급 던전 기준으로 봐도 대박이 터진 수준.
그리고 그건 다른 아이템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서스의 로브]
[등급 : B]
[설명 : 리치, 아서스가 애용하던 로브]
[불사를 살아가던 그의 마나가 일부 베여있다.]
[체력회복속도 + 50%] [마나 회복속도 + 5%]
[마법 저항력 + 15%]
[어떠한 공격을 받아도 찢어지지 않는다.]
[데스 라이프]
[등급 : B+]
[설명 : 리치, 아서스의 오브.]
[고위 흑마법사인 그가 애용하던 오브로 죽음의 힘이 담겨있다.]
[마법 데미지 + 16%] [마나 회복 속도 + 20%]
[공격 시 2% 확률로 저주 효과를 준다.]
[사용한 마나의 5%만큼 생명력을 회복시킨다.]
[받은 피해의 10%만큼 마나가 차감된다.]
중간보스 때에 비하면 다소 적은 아이템.
'크으….'
하나 그 품질은 차원이 달랐다.
하나같이 B등급 이상이라 그런지 여태 본 아이템들과는 격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고간포랑 효율이좋겠어.'
마나 회복 속도 증가.
소모되는 마나량이 매우 큰 고간포에게 필수적인 요소였다.
마법 공격력을 증가시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문제는 오브가 이미 있다는 건데…어? 잠깐만.'
그때 문득 떠올랐다.
'꼭 무기를 하나만 가지고 다니란 법은 없잖아?'
쌍검술도 있는데 쌍오브가 없을 건 뭐란 말인가.
물론 마법사가 오브나 지팡이를 하나만 드는 건 다타당한 이유가 있다.
대개마법 도구는 중복 적용이 안 되니까.
마법 도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무기 아이템이 효과 중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쉬벌, 이걸 생각 못했네.'
하지만 본 오브는 달랐다.
[다른 효과와 중복 적용 가능]
'이거 개꿀이잖아?'
마치 누군가 일부러 두 개를 들고 다니라고길을 터준 느낌. 그에 당장 오브를집으려던 최종택이 멈칫했다.
'근데 내가 다 가져도 되나?'
혼자 잡긴 했지만, 그래도 파티 아닌가.
같이 잡아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걸 자신이 고집한 거라 애매했다.
어찌 보면 그 고집 때문에 저들이 보상을 못 받는 것 아닌가.
'나누는 게 맞겠지?'
그쪽으로 판단이 기울어지고 있을 때.
"보상 배분을 고민 중이시다면, 종택 씨가 혼자 잡았으니 종택 씨가 전부 가지는 게 맞습니다."
"좀 잔인하긴 했지만, 혼자 잡은 거니 그게 맞죠."
'어라?'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예나와 백보아가 그의 몫으로 인정해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리아까지 합세했다.
"뭐, 저한테 딱히 필요한 것도 없어 보이네요. 있었으면 샀을 텐데 딱히 관심 없어요."
'오… 개꿀.'
그녀들의 반응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쌍오브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오브를 집은 그가 다른 손으로 본 오브를 꺼냈다.
'오오… 영롱하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었다.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데 그 색이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푸른색으로 보이기도 해서 꼭 보석 같았다.
투박한 본 오브가 옆에 끼니 뭔가 패션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스윽, 슥.
그가 두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역시 하나는 찝찝했는데 남자는 두 개죠."
"…??"
내가 뭘 들은 거지?
뭔가 엄청난 걸 들은 최종택이 홱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범인은 백보아였다.
요망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던 최종택이 문득 떠올라 말했다.
"이거야말로 성희롱 아닌가요?"
자신을 민망하게 만들었던 것에 대한 복수였다.
그러자 그녀가 즉답했다.
"맞는데요?"
"……"
그에 최종택이 입을 꾹 다물었다.
'존나 당당하네, 씨발련.'
얼굴에 오리하르콘판을 깔았는지 당당함이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 그녀의 뻔뻔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종택이 할 말을 잃자, 오히려 한 발짝 다가온 그녀가 요망하게웃으며 묻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보시려구요?"
"……"
라벤더 향이 확 풍겨온다.
조금씩 섞여오는 화장품 향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슬쩍 눈웃음친 얼굴을 보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확 그냥, S급 힐 얻어버려?'
그와 동시에 백보아가 다시 뒤로 물러났다.
"장난이에요. 해산하죠."
"……"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됐다. 한 번 봐준다.'
8.
천랑 길드.
자랑스러운 한국의 5대 길드 중 하나.
그곳의 머리를 맡고 있는 비서실장은 지금 무척 당혹스러웠다.
스슥- 슥-
팔락-
'길드장님이…, 일을… 하고 있어….'
천랑 길드의 주인.
동시에 성욕의 화신인 그녀가 온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한데 그 일 처리 수준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보고서 다 처리했어. 내일 협회장하고 미팅 잡고, 최현우한테는 이미 연락 돌려놔서 오케스트라는 문제없을 거야."
"……"
"백두산과 구성은 애당초 이런 거에 관심 없으니 넘어가고. 간부들 소집했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안을 정해야 하니까."
"……"
신속 정확 그 자체.
어찌나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는지 비서실장인 그조차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 모든 걸 처리하고도 그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럼 가자. 1시간 전에 늦지 않게 오라고 전달했으니까 시간 맞을 거야."
"……"
그녀가 홀연히 떠나간 후에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뭘 본 거지?'
그저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바빴다.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뒤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황급히 뒤를 따랐다.
충격은 그후로도 이어졌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예?"
갑작스러운 말에 노인 간부가 당황해서 움찔거렸다.
채유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교육 시스템을 그렇게 돌리면 안되지. 대련 수업 전에 일단 체험을 먼저…… 마력 그렇게 쓰는 거 아니다."
"아아…!"
"그리고 수사팀. 요즘 서리 길드에서 꼬리를 물고 있는 조짐이 보이던데 조사해봐."
"아하…?"
그들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데리고 올 유망주 없냐, 요즘 남자 누구 있냐는 말이나 뱉을 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건설적인 회의란 말인가.
이에 반색하는 간부들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한 탓에 걱정이 앞선 것이다.
'설마 일 처리에도 간섭하는 건 아니겠지?'
'이러다 트집잡히는 거 아냐?'
'당연히 검사 안 할 거라 생각해서 티가 날 텐데……'
그간해온 불법적인 일이나, 그에 준하는 일을 단속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길드 개편! 권력 남용 불허]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고인 물들을 솎아낼 것…]
"미친!"
"아니, 저 색마가 갑자기 뭔 일이야?"
그들의 발에 불이 떨어졌다.
당연히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그들은 속속이 잡혀나갔고, 길드의 문제점들이 순식간에 고쳐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개편되어가는 길드를 보며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아니, 저런 분이 지금까진 왜……'
'나라고 아나…'
'소문으로는 귀신이 쓰였다는 말이 있어.'
'미친…, 아인슈타인이라도 빙의되었나 보지?'
어찌 됐거나그들의 심정은 같았다.
'제발, 귀신이 안 떠나게 해주세요…!'
'또 남자 물어오기 싫단 말이에요……!'
제발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 길드의 분위기에 비서실장, 유진우는 멍한 얼굴로 채유린을 바라보았다.
'단 하루 만에…'
자신이 10년간 노력해도 고치지 못한 것.
그 대부분을 채유린은 하루 만에 해결해버렸다.
5대 길드 마스터이자 현 S등급 헌터라는 게 큰 몫을 하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길래……'
사실 그의 생각과 달리, 채유린은 원래 멍청하지 않았다.
어릴 적 영재 소리를 듣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성인이 돼서 암캐가 된 건, 페널티 때문에 이성을 잡을 수가 없어서였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머리가 맑아졌어.'
최종택, 그와 한 후로 머리에 낀 안개가걷어진 느낌이었다.
그 덕분일까.
본능에 이성을 잃게 되거나, 성욕에 지배당하는 일 또한 생기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나는 그간 얼마나 미련하게 살았던 거지…? 주인님이 없었다면…'
분명 5대 길드에서 추락했으리라.
때문에 채유린은 그런 최종택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일처리를 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었고, 항시 연락을 받을 수 있도록 대기했다.
'주인님과 빨리하고 싶다.'
그녀의 귀가 수줍게 접혔다.
9.
-……천랑 길드에서 물갈이를 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일을 추진한 건 수왕으로 보이는군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설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포커페이스라 불리는 그녀치고 상당한 표정변화였다.
"…요즘 그 암캐가 달라졌네요."
생전 욕설 한 마디 안 하는 그녀가 암캐라 부를 정도의 여자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의 변화는 제법 큰 충격이었다.
비슷한 심정인지 떨떠름한 얼굴을 하던 비서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최종택, 그 남자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
"…뭔가 굉장한 일이 있었나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툭. 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건드리던 그녀의 눈에 언뜻 탐욕이 비쳤다.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지고 싶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사신 이설, 그녀가 처음으로 남자를 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들이 일을 진행하고있을 때.
"음…"
집에 돌아온 최종택은 양손에 오브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오브를서로 맞대본 그가 굉장한 걸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잠시 오브를 만지작거린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한쪽이 더 커야지."
구슬이 두 개인 이상 그것은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