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지리는 마력 (2)
56화.
'내가 잘못 본 건가?'
양손으로눈을 비빈 최종택이 다시 앞을 바라봤다.
[다음 풀발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아닌데.'
다시 봐도 똑같은 문구.
그의 반응도 처음과 같았다.
'아니, 뭔 이딴 게 실마리야?'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처음 자박꼼을 각성했을 때 느꼈던 충격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
멍하니 바라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다. 언젠 정상적이었냐.'
굳이 생각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그렇게 상념을 떨쳐냈을 때였다.
눈이 마주친 백보아가 지나가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지리셨네요."
"……"
지렸다는 말이 이리 치욕적일 수도 있는 거였나.
최종택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를 곰곰이 바라보던 그녀가 문득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그건 많이 쓰면 마력이 아니라 기력이 딸리는 건가요?"
"……"
역시나 정상적인 질문은 아니었다.
"마…력이죠? 일단 마력 운용법이니까…?"
당당하게 말하려던 최종택이 순간 말끝을흐렸다.
본인도확신이 안 선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러네. 이건 사정이냐 방출이냐.'
그도 그럴 것이 언뜻 봐도 자박꼼과의 시너지임이 분명한 탓이었다.
그러니 정말 기력을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은가.
잠시 고민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지금 생각해봐야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위력은 확실하네.'
깔끔하게 정리된 복도를 보며 최종택이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스킬인데 세면 그만 아닌가.
이제 와서 정상적임을 찾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나저나 드디어 광역 스킬을 얻은 건가?'
때문에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반겼다.
어찌 됐든 첫 광역 스킬 아닌가.
이건 경축해야 할 일이었다.
그 경사 앞에서 최종택은 여러모로 위협적인 기술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음… 이게 좋겠네.'
고민은 짧았다.
'고간포.'
이름을 붙인 최종택이 작게 감탄했다.
'크으… 내가 지었지만 진짜 잘 지었다.'
자박꼼 헌터다운 네이밍 센스였다.
만족스런 얼굴을 한 그가 고간포를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그래도 이건 좀 추하니까… 나중에 쓰자.
스켈레톤 특유의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끄어어어어…
타닥- 달그락-
"또 옵니다. 포지션 잡죠."
"전 준비 됐어요!"
때마침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최종택과 일행들이 전투를 준비했다.
이번에도 선봉은 아리아였다.
여유롭게 방패를 치켜든 그녀가 도발을 사용했다.
끄어어?
그러자 멈칫한 놈들의 고개가 꺾였다.
한데 그 기세가 엄청나다.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달그락, 소리를 내며 한 곳을 바라보는 건 생각 이상으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히익. 바, 방어태세!"
그에 아리아가 기겁하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반투명한 원이 그녀를 감싸는 것과 동시에 놈들이 덮쳐왔다.
끄어어-!
팍! 타닥!
이성을 잃은 듯한 모습.
도발의 효과였다.
방패 하나로 굳건하게 버티곤 있었지만, 수가 너무많았다.
"으윽… 어떻게든 해봐요!"
그 단단한 아리아가 힘에 겨워할 정도.
점차 밀리는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짐승의 본능!'
그런 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연해진 몸에서 나오는 탄력이 그의 속도를 보다 빠르게 만들었다.
아리아의 앞을 지나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뭐, 뭐예요?"
그에 아리아가 당황해서 소리쳤지만, 최종택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끄으으…?
갑작스레 나타난 그를 본 스켈레톤들이 표적을 바꾸었다.
하지만 최종택이 더 빨랐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다시 왼쪽으로.
콰드득- 파각!
빠득-
사람의 관절 상 움직일 수 없는 경로로 움직인 검이 놈들을 처참하게 부러뜨렸다.
한 마리 늑대와도 같은 움직임.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인지 보지도 않고 피하고 반격하는 묘기에 아리아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저, 저건 또 무슨 스킬이죠?"
불과 며칠 사이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하나 멍한 것도잠시.
"이익, 질 수 없죠!"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가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정확히는, 그가 놓친 몬스터를 막아주는 수준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파바박!
파박!
잠깐의 틈 사이로 곧장 예나의 지원이 들어왔다.
몬스터들 입장에선 멀리 사라지는 최종택보단 예나와 아리아가 거슬릴 법한 상황.
그리고 최종택에겐 최적의 상황이었다.
'확실히 효율이 좋아.'
뒤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 완벽한 환경에 최종택이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든 그가 검을 쥔 채 자세를 살짝 낮추었다.
"체위술……"
그런 그에게 스켈레톤들이 달려든 순간.
"…가위치기!"
한 줄기 섬광처럼 검이 뽑혀나갔다.
그리고 그 직후.
촤악-! 촥!
놈들의 위로 거대한 손톱이 긋고 지나간 것과 같은 상흔이 생겼다.
흔적은 한 번이 아니었다.
푸슉-!
끄어어어-!
시간차로 터진 후속타가 교차로 몬스터들을 쓸고 지나갔다.
마치 짐승이 할퀸 듯한 광경.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많던 몬스터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다.
"와씨, 존나 멋있어."
그 위력 앞에 최종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예상치 못한 짐승의 본능과 체위술의 시너지도 시너진데, 무엇보다 간지가 났다.
남자의 로망을 채워주는이펙트!
'가슴이 웅장해진다.'
하나백보아의 생각은 조금 달랐나 보다.
"흐음… 이름이 그래서야 멋있을 것도 안 멋있는 것 같네요."
"…흠흠."
"푸훕!"
그에 예나는 동의한다는 듯 슬쩍 시선을 피했고, 아리아는 대놓고 최종택을 보며 쪼갰다.
어찌나 웃는지 아주 배꼽이 떨어질 기세였다.
"가위치기면 뭐 질내사정 같은 것도 있겠네요? 푸히히!"
심지어 정답에 근접해서 더 기분이 나쁘다.
'저 새끼가?'
순간 정말 쪼개버리고 싶은 그였지만, 꾹 참았다.
정말 자신의 기술명이 이상한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 존나 멋잇는데.'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쟤가 남자의 로망을 알 리가 없지.'
다른 두 명도 똑같았다.
정신병원에 정상인이 들어가면, 오히려 정상인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것처럼.
이곳에 남자는 자기뿐이라 로망을 몰라주는 것뿐이었다.
'하, 어쩔 수 없지. 내가 이해해야지.'
누가 자위하다 각성한 거 아니랄까 봐, 자위하난 끝내주는 그였다.
5.
그 후로도 전투는 계속되었다.
한데 그 횟수가 일반적이지가 않았다.
'이게 8번 짼가?'
브리핑에 따르면 보통 중간 보스를 만나기 전에 다섯 무리 정도를상대한다고 한다.
그들은 벌써 세 번이나 초과한 상태.
심지어 한 번에 나오는 몬스터가 보통의세 무리 정도를 차지한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운 일이었다.
'가는 길마다 몬스터들이 마중 나오니 원…'
그래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뽕 제대로 뽑고 가네. 그래, 던전은 이래야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감당하는 수준을 넘어 쉬웠다.
처음에나 수가 많아서 벅찼지, 적응된 후론 여유롭게 농담도 따먹을 정도였다.
'다친 사람도 없고. 괜찮네.'
이 기세라면 보스까지도 손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최종택과 일행들은 약간의 휴식만을 취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하나의 무리를 더 처치했을 즈음이었다.
쿠웅!
"오…? 좀 큰데?"
"중간보스잖아요. 그것도 몰라요?"
"뒤진다 너 진짜."
스켈레톤으로 보이는 외형.
하나 입고 있는 판금 갑옷이나, 3배 이상 큰 신장과 몸집은 결코 일반적인 스켈레톤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켈레톤 나이트]
스켈레톤이 격을 높이면 도달하는 존재.
그에 걸맞게 제법 위용 넘치는 모습이었으나 그들은 여유로웠다.
"한 마리면 쉽지."
"얼른 잡고 넘어가죠."
수십 마리씩 상대하는 것보다 차라리 넷이서 하나를 잡는 게 더 쉬운 탓이었다.
익숙한 태도로 아리아가 선봉에 섰다.
쿵.
그리곤 방패로 바닥을 찍은 순간.
붉은 기운이 퍼져나가며 놈의 시선이 끌렸다.
원래라면 중간보스급부터 도발의 성공확률이 낮아지긴 하지만…
끄어어어!
"나이사!"
백보아의 버프를 받은 도발은 달랐다.
그 후는 일사천리였다.
어그로를 확보한 이상 실수만 안 하면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은 이들 중 아무도 없었다.
쿵! 콰앙!"
"잠시 스탑! 어그로 풀려요."
어그로가 조금이라도 튄다 바로 딜이 중단되었다.
"됐다. 다시 어그로 잡았어요!"
그리고 다시 어그로를 확보하면 귀신같이 공격이 날아왔다.
최종택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도 없었다.
저걸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놈이 빈사 상태가 되어있었으니까.
'스켈레톤 나이트의 방어력이 장난 아니라 들었는데…'
아주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다.
마치 RPG게임에서 템빨로 무장한 파티가 보스를 학살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파티가긴장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끝낼게요!"
푹!
기다란 검이 놈의 심장을 뚫는 순간.
그리고 놈이 무릎을 꿇는 순간.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투 자세를 풀었다.
최종택은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고, 아리아는 무거운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나도 조용히 등허리에 활을장착했다.
"…해요!"
백보아가 다급하게 소리친 건 그때였다.
"응?"
긴박함이 잔뜩 담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최종택의 눈이 커졌다.
이내 그의 표정도 그녀와비슷해졌다.
"피카츄! 피해!"
"뭐요? 저를 그런 쥐랑 같은 취…!"
발끈하던 아리아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갑자기 날아온 거대한 불의 창이 그녀를 덮쳐온 탓이었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옆구리를 허용한 그녀가 허공을 날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쾅!
"커헉!"
벽에 부딪힌 그녀의 입에서 피가 튀어 나왔다.
털썩, 무릎 꿇은 몸이 쉴새 없이 떨렸다.
박혀있던 불의 창은 다시 사라졌으나, 손으로 막은 옆구리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리아!"
"…아리아 씨!"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모습에 긴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가 갈게요!"
그중 가장 먼저 행동으로 나선 건 백보아였다.
'구원의 손길이라면…'
직접적인 터치를 해야만 하는 스킬.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죽은 것만 아니라면 거의 모든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
한시가 급하다고 판단한 그녀가 서둘러 발을 놀렸다. 거대한 화염의 구가 바닥에 떨어진 건 그때였다.
"…!"
"뭐, 뭐야…!"
"이건…"
자욱하게 퍼지는 흙먼지에 찌푸린 시야로 놈들이 보였다.
척. 척. 척. 척.
-크크크……
갑자기 나타난 네 마리의 스켈레톤 나이트가 군인처럼 일렬로 서자 아리아와 일행들 사이에 벽이 생겼다.
'젠장…'
의도가 빤히 보이는 행동.
그런 놈들의 뒤에는 로브를 쓴 해골이 있었다.
오브를 들고 선 기다란 놈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스켈레톤 메이지]
최종택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새끼가 중간 보스였구나.'
어쩐지 너무 쉽더라니.
스켈레톤 나이트는 놈의 하수인일 뿐이었다.
최종택이 힐끔 옆을 곁눈질했다.
벽 앞에 쓰러져있는 아리아의 상태가 생각보다더 위독했다.
"제가가게 두세요. 놔두면 죽을 수도 있어요."
"…안 됩니다. 백보아 씨가 위험해집니다."
그런 그녀를 두고 예나와 백보아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예나의 말이 맞았다.
지금 힐을 주겠다고 나섰다간 살리기는커녕 같이 죽을 게 뻔했으니까.
'젠장… 고간포를 진작 썼어야하는데…'
너무 방심했다.
손쉽게 잡을 거라 생각하고 봉인한 게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고간포를 쓰면 저걸 뚫을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고간포가 아무리 강력하다곤 해도, 맷집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스켈레톤 나이트들이다.
심지어 마법사까지 끼어있는 상태.
자칫하다간 상황만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도 해보는 수밖에 없어. 짐승의 본능과의 시너지를……어라?'
그때였다.
'잠깐만. 고간포도 일단 시너지 효과잖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힐하고도 섞을 수 있지 않을까?'
무려 B등급 힐이다.
잘만 되면 아리아의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을 터.
판단은 빨랐다.
'이거다!'
그가곧장 마나를 운용했다.
익숙한 감각과 함께 느낌이 오자 최종택이 소리쳤다.
"내 힐을 받아!"
푸슉-!
그와 동시에 들리는 불결한 소리.
총알처럼 날아간 하얀 무언가가 아리아를 향했다.
촥-
"으윽…!"
정통으로 얼굴에 허용한 아리아가 따스함을 느끼며 인상을 찡그렸다.
"이, 이거 뭐야. 왜 뜨겁지…? 뭐, 뭔가 기분이 더러워."
파이어 오라가 섞여 뜨끈해진 모양.
한데 또 신기하게 상처가 빠르게 낫고 있다.
"……"
"……"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일행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중엔 최종택도 포함되어있었다.
'오우야, 비주얼이 조금…'
신성력이 담긴 고간포라 그런 걸까.
은은한 빛을 내는 하얀 액체가 아리아의 얼굴에 잔뜩 흘러내리는 모습이 상당히 민망했다.
-크크…크?
끄어어…?
그 광경에 몬스터들마저 얼이 빠져있을 정도.
모두가 정지되어있는 침묵 속에서 최종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쌌다."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