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지리는 마력 (1) (55/124)



〈 55화 〉지리는 마력 (1)

55화.

2.
협회의  처리는 무척 빨랐다.
던전 얘기가 나오고, 본격적인 브리핑을 시작하는 것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번 던전은 아시다시피 리치의 연구실입니다.

드넓은 회의실.
12석이나 되는 기다란 테이블에 한 줄로 나란히 앉은 일행들.  앞에  있는 협회 직원이 열렬히 브리핑을 이어갔다.

"협회가 소지하고 있으나 한 번도 클리어해본 적이 없는 던전이라 초입부밖에 연구가 되지 않은 던전입니다. 던전의타입은……"

내용은 간단했다.
미궁타입의 B등급 던전.
협회 소속이 될 유망주를 위해 일부러 클리어하지 않고 남겨둔 곳이었다.
여기서 최종택은 살짝 놀랐다.

'잠깐만, 그럼 최초 보상이 있다는 소리잖아?'

심지어 어느 정도 연구가 된 채로.
출입과 퇴장이 자유로운 공용 던전타입을 이용한 일종의 편법이었다.
이건 대박이었다.

'이걸 우리한테 줘도 되나?'

염치없는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그도 그럴  이 정도 특혜는 대형 길드에서 조차 받기 쉽지 않다.
그걸 협회 소속도 아닌데 준다는 건 단순한 호의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호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 그리고 최종택 씨의 무기는 조만간 완성이 된다고 합니다만… 아마 며칠은 족히 걸릴 듯합니다."
"아."

지금 쓰는 무기는 쓴지 오래됐는데.
새로 무기 하나 장만해야 하나?
고민 하고 있을 때였다.

"생각해두신 무기가 없다면 그동안 협회 측에서 무기를 대여해드리겠습니다."
'오?'

지원이 넘치다 못해 살벌했다.
권 노아 특수 제작 무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협회 측 무기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편이다.
그런 무기를 선뜻 대여해주겠다니.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었다.
때문에 최종택은 최대한 브리핑에 집중했다.

'모처럼 신경 써주셨는데 멋지게 깨줘야지.'

그게 최종택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었으니까.
그런 마음가짐을 알기라도 했는지 직원도 열심히 브리핑을 이어갔다.

"여기 그래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B등급치고 높고 A등급이라 하기엔 낮은 마력량입니다. B등급에서도 최상위권인것 같네요."
"초입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언데드들인데 그중에서도 스켈레톤이 특히 많이 나옵니다."
"약점은 신성력으로 특히 힐에 취약합니다."

한데 듣다 보니 감탄이 나온다.

'와… 존나 자세하게 짜준다.'

브리핑이라 해봤자 포지션 같은 거나 짤 줄 알았는데 상상 이상으로 자세했다.
그래프를 동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던전의 구조와 몬스터의 습성, 그리고 약점까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놀라운 건 이게 겨우 초입부의 브리핑이라는 것이다.

'한 번 클리어한 던전이면 웬만하면 못  수가 없겠다.'

 협회 소속의 헌터들의 던전 클리어률이 높은지 알 것 같았다.
저런 브리핑을 듣고도 못 깨면 그게  이상하지.

'던전 원래 이렇게 다니는구나. 내가 그간 대충 다니긴 했네.'

거의 등급만 확인하고 들어갔으니….
왠지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는데 문득 백보아가 손을 들으며 물었다.

"힐에 취약한 거면  힐에도 데미지가 들어가나요?"
"흠. 들어는 가겠다만…"

그녀의 상황을 얼추 아는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자매님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위험하니 하지 않으시는  추천합니다. 어그로가 잘못 튀면 큰일이니까요."
"알고 있는데 한  물어봤어요."

그러자 백보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가 절 지켜준다니까."
"…?"

그러며 힐끗 최종택을 바라본다.
그녀의 요망한 눈과 마주친 최종택은 생각했다.

'저 새끼  깝죽대네.'

신성력 빼고 전부 F등급인 주제 뭐 저리 패기 넘치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슥 훑어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복장부터가 정상이 아니긴 하지.'

오늘도여전히 치파오처럼 옆이 트인 수녀복에 가터벨트를 찬 그녀였다.
저 정도면 저게 본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브리핑을 끝낸 직원이 물었다.

"브리핑은 여기까지입니다. 던전은 언제 입장하실 생각인가요?"

 순간.
백보아와 최종택이 동시에 대답했다.

"오늘이죠."
"오늘이 좋겠네요."

그리고 그런 둘을 아리아가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3.

[던전, 리치의 연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맞게 왔네요."

외진 산속.
땅굴 앞에  메시지를 보며 최종택이 대답했다.

"그러네요."

그런 그의 시선이 던전 너머를 향했다.
토끼가 살 것만 같은 평범한 땅굴이었지만,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B등급 최상위일 만하네.'

멘티스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와는 전체적인 마력의 질이 다르달까.
생각해보니 던전 앞에서부터 이렇게 마력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B등급 던전부터 진짜 던전이라더니… 사실인가 보네.'

B등급과 C등급.
분명  끝 차이였지만, 그 난이도는 결코   차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되었다.

'이번에는 쓸만한 템이 나오겠지?'

난이도가 어려워진 만큼 본격적인 아이템이 나올 테니까.
무엇보다,

'새로 얻은 스킬들을 시험하기 딱 좋은 무대야.'

짐승의 본능과, 방출식 마나 운용법의 위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그가 던전 입구에 들어가려  때였다.

"이번엔 넣고 들어가시는 게 어때요? 저번에 못 넣었으니까."
"예?"

느닷없는 백보아의 제안에 최종택이 멈칫했다.

'뭘 넣자고?'

이게 무슨 뜬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당황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던전을 바라보던 아리아와 예나가 깜짝 놀라 끼어들었다.

"여, 여기서요? 아니 그보다 저번…? 이, 이 요망한 사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특이사항이 추가됩니다.]
[아리아]
……
[당황한 척하지만, 밑은 조금씩 젖고 있음.]
[예나]
……
[그날의 던전이 떠오름]

'나도 나지만 둘  참……'

여러모로 정상은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백보아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프 말이에요."
"아……"

갑분싸가 이런 건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리아와 예나가 시선을 피했다.

"흐흥, 알고 있었어요. 버프 넣고 가야… 아니 근데 누가 넣고 가자 해요! 받고 가자고 하지. 이 요망한 사람!"

그러다 뭔가 이상했는지 아리아가 대뜸 소리친다.
하지만 백보아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싱긋 웃어 보인그녀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넣는 게 맞을지도 모르죠."
"…에??"
"뭐, 뭐, 뭐라구요…!?"

당황한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아리아와 예나가 토끼 눈을 뜨자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동시에 손을 올린 그녀가 최종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넣을게요?"
"…?"

그녀의 말과 함께 따스한 기운이  안에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

따사로운 햇살을 쐬듯 편안해지는 감각.
순간 드넓은 평야 위로 산산한 바람이 부는 듯한 환각과 함께 듣기 좋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아아- 아아-

성스럽게 느껴지는 목소리.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에 살짝 눈을 감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녀가 생명의 원천을 불어넣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천상의 하모니를 들으셨습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상승했다고?'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곧장 상태창을 켰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28]
[능력치]
[근력 : B (12 / 100)], [민첩 : B (10 / 100)]
[체력 : C(99 / 100)], [마력 : B (15 / 100)]

'미친!'

동시에 욕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민첩의 등급이 올랐잖아?'

순수 능력치론 C에 머무르고 있던 민첩이 B가 되었다.
다른 능력치도 전체적으로 조금씩 오른 상태.
이대로 풀발을 사용하면 세 개의 능력치가 A등급을 찍는 거다.

'조졌다.'

멍한 그의 시야에 풀어진 얼굴의 예나와 아리아가 보였다.

'이게 겨우 A등급 버프라고…?'
'바, 방금 뭐였지? 뭔가 되게 기분이 좋았는데…'

특히 백보아의 버프를 A등급으로 알고 있는 예나의 충격이 특히 심했다.
하지만 그건 최종택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S등급 버프인가… 장난 없네.'

모든 능력치와 스킬의 위력이 상승하다니.
풀발에 비하면 다소 낮은 성능이라 볼 수도 있지만, 저건 버프다.
타인에게 걸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하면 말도  되는 성능이었다.

'저런 스킬이 최소 2개가  있단 말이지… 대단하긴 하네.'

 웃기만 하는 미친년인  알았는데  때는 하는 여자였다.

'이 정도면 몬스터 몰려와도 괜찮겠다. 아니, 오히려 좋아.'

그야말로 폭업을 할 수 있는 기회.
그의 시선이 던전을 향했다.

'뒤졌다.'

이번 던전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기대감을 안고 던전 안으로 들어간 순간.

삐그덕- 삐걱-
탁.탁.탁.탁.
타닥. 탁. 삐거걱-

"……"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언데드 무리가 최종택 일행을 반겼다.
수십이 넘는 놈들을 보며 최종택이 작게 중얼거렸다.

"조졌다."

4.
예상은 했었다.
백보아가 있는 이상 몬스터가 유독 많이 모일 거라는 것쯤은.

삐거걱- 뿌득-
탁.탁.탁.탁.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복도 너머까지 쭉 깔린 스켈레톤의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이게 그 인해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그나마 미궁 타입이라 한 줄로만 와서 다행이지.
뻥 뚫린 필드 타입이었으면 골로 갈 뻔했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인 파티가 막을 양이 아니긴했다.

"도발! 어그로 묶었어요!"
"광역기 준비 중입니다."

한데 그걸  막는다.
도발을  때마다 어그로가 끌렸고, 방패 밀격을 쓰면 광역으로 몬스터들이 밀려났다.

'와, 이걸 막네.  찐따 같던 아리아 맞냐.'

그저 감탄스런 모습이다.
그래도 수가 너무 많아 완벽히 막아낼 순 없었던 걸까.
잠시 방심하는 사이 스켈레톤들이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몽둥이찜질이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쉬익-!
키에에엑!

"에에엑! 나 죽는…어라? 버틸 만하네?"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데미지 감소 효과를 대폭 상승시키는 방어태세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 해도 너무  아팠다.
예나의 경우도 비슷했다.

"광역기 쓰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그녀가 화살을 공중으로 쏘아냈다.
천장을 뚫을 기세로 솟구치던 화살이 수천 개로 늘어난 건 그때였다.

후두두둑-
푹-! 푸슉! 푸슈슉-!

철의 폭우.
장마철 내리는 비처럼, 화살의 비가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와, 딜 보소.'

예나도 버프의 뽕맛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최종택도 몸이 달아올랐다.

'지금이다. 지금이 딱이야.'

몬스터를 휩쓸고, 다시 채우고를 반복하는 상황.
방출식 마나 운용법을 쓸 수 있는 무대로 지금 상황은 딱이었다.
그가 가만히 정신을 집중했다.
몸 안에 담긴 마력을 제대로 느끼기 위함이었다.
풀발 때문에 기운을 자주 컨트롤 했던 덕일까.

'이건…'

생각보다 느낌이 빨리 왔다.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을 천천히 운기하자 무언가 감각이 느껴졌다.

'…어디서 많이 느껴본 감각인데.'

이윽고  감각을 잡은 순간.

파앗!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는  느끼며 그가 눈을 떴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방출!"

 외침에 따르듯 마력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데 그 경로가 조금 이상했다.

"어어…?"

최종택이 그걸 자각할 땐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밑으로 쏠린 마력을 통제할 겨를도 없이 무언가 발사되었다.

푸슈우우욱-!

마치 댐을 뚫고 나오듯.
고간을 뚫고 나온 무언가가 빠르게 분사되었다.
물줄기처럼 쏘아지던 마력은 점점 크기를 넓혀 이내 부채꼴 모양을 만들어내었다.

콰가가가가-!
끄어어어…!

귀가 찌릿할 정도의 굉음.
이윽고 사정을 멈췄을 때, 반경 50M에 있던 몬스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
"……"

그 엄청난 위력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최종택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쌌다."

그에 대답해주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다음 풀발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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